[248] 제22장. 연승점술관/ 17.고민(苦悶)이 가득한 여인

작성일
2020-08-0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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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7. 고민(苦悶)이 가득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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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헌에게 절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은 우창이 말을 꺼냈다.

“오늘에서야 무위(無爲)의 한쪽을 맛봤습니다. 유위(有爲)에서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强迫觀念)이 항상 따라다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달걀 속의 병아리는 때를 기다려야 하지만, 그때가 오면 자연히 어미 닭의 도움을 받아서 껍질을 벗어나 드넓은 세상과 하나가 된다는 이치를 알고 보니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우창의 소감을 담담하게 듣고 있던 손헌이 한마디 했다.

“이제 그대는 진실로 자평법을 공부하는 학인일세. 허허허~!”

그러자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 춘매가 한마디 거들었다.

“할아버지. 그렇다면 그동안은 자평법을 공부하는 학인이 아니었단 말씀이세요? 얼마나 놀라운 능력을 가슴에 품고 있는데요. 그건 과소평가(過小評價)를 하셨에요. 호호호~!”

“아, 그런가? 그야 춘매의 공부가 아직은 멀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춘매가 보기에는 대단한 것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않을 수도 있으니까. 어둠의 동굴에서는 반딧불이도 밝다고 생각하겠지만, 태양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생각이 될까? 허허허~!”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춘매가 손헌을 평상에 눕게 하고서 정성을 기울여서 자신의 재능을 선물했다.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하느라고 다른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생각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손헌도 가만히 춘매의 손길만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반시진이 흘렀다. 손헌이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더 시원한걸. 춘매의 손끝에는 눈이 달려 있는 것만 같다네. 어쩌면 그리도 구석구석 잘도 찾아서 풀어주는지 말이네. 허허허~!”

두 사람은 만족스러워하는 손헌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손헌도 떠나려는 사람에게 굳이 저녁밥이라도 먹고 가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마음이 동하면 떠나가는 것이 바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손헌인 까닭이었다. 오죽하면 그의 호에 바람을 뜻하는 손(巽)을 넣었으랴.

“오늘 큰 가르침을 평생토록 가슴에 새기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가르침을 받을 일이 생기면 찾아뵙겠습니다.”

“아무렇거나. 가끔 놀러 와도 된다네. 화진에게도 좋은 말을 해 주면 또한 고마운 일이겠네. 허허허~!”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주 낭자께서 우창의 토굴로 나들이하셔도 좋습니다. 자평법에 대해 약간이나마 전해 드릴 것이 있다면 오늘 스승님의 가르침에 대한 약간의 보답으로 여기겠습니다. 언제든지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주 낭자도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고맙습니다. 언니도 볼 겸 나들이를 하겠어요.”

그렇게 주객이 작별을 나누고는 우창과 춘매는 손헌의 집을 나섰다. 우창은 길을 걸으면서도 말이 없어졌다. 찾아올 적에 생각했던 것들이 사뭇 달라졌다는 느낌이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오빠~!”

“.....”

“오, 빠!!”

춘매가 거듭해서 큰 소리로 부르자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 우창이 춘매를 바라봤다. 그것을 보고서 춘매가 재미있다는 듯이 까르르~ 웃었다.

“오빠의 표정을 보니까 흡사 바보가 따로 없어요. 호호~!”

“아, 그런가? 그동안의 공부는 땅에서 발이 떨어지면 큰일이 나는 것인 줄만 알고 있었다면 오늘의 가르침을 받고 보니까, 허공으로 껑충 뛰어도 된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잖아. 그래서 이 상쾌한 기분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던 거야.”

“생각하지 말고 그냥 풍경이나 감상해요. 공 할아버지께서 오늘의 풍경이 소중할 따름이라고 하셨잖아요.”

“언제? 그런 말씀은 안 하셨는데....?”

“쳇~! 알았어요. 계속 그렇게 멍~때리면서 가세요.”

그렇게 말을 던지고는 저만치 앞서서 걸어가는 춘매의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새삼스럽게 이 순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상의 행복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춘매가 먹을 것을 마련하는 동안에 우창은 오늘 들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렇게 적으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부터는 더욱 열심히 학문의 연마(硏磨)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다는 것을 느낀 까닭이었다.

춘매가 정성으로 마련해 준 저녁을 먹고는 우창의 집에서 차를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았다. 우창에게도 춘매에게도 오늘 손헌을 만났던 일은 큰 사건이라고 해야 할 변화였기 때문에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 오늘 공 할아버지와 나눈 이야기는 어땠어?”

“말해서 뭐해, 그야말로 감동과 충격이었다고나 해야지. 생전 처음으로 머리를 커다란 방망이로 한 대 맞은 것만 같았지 뭐야. 누이가 옆에서 거들어주지 않았더라면 더 혼란스러웠을 거야. 그런데 어떻게 그 어려운 말을 잘도 알아들었어? 난 그것도 참 신기하더라. 하하~!”

“그랬어? 내가 봐도 오늘의 오빠는 여느 때와 달랐어. 갑자기 바보가 된 것도 같고 해서 오히려 내가 놀랐다니까. 왜 그랬을까? 어쩌면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는 거야?”

“그랬지? 내가 생각해도 좀 의아하긴 했어. 그것은 지식(知識)이 아니라 가치관(價値觀)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나 싶기도 하군. 그렇게 머릿속을 온통 뒤흔들어 놓은 손헌 선생님의 설법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

“어쩐지~! 그랬었구나. 그렇다면 분명히 좋은 일이었던 거지?”

“당연하지. 아마도 이전에 생각한 학문의 세계는 달걀 안에서 바라본 것이었다고 하면, 오늘 이후의 세계는 달걀 밖에서 보는 세상이 될 거야.”

“그 정도로 큰 변화였구나. 축하해~! 호호~!”

“이 모두가 누이의 덕이로군. 고마워. 진심으로 말이야. 하하~!”

“오빠가 좋아한다면 나야 다 좋지. 앞으로 내게 가르쳐 줄 공부도 달라지겠잖아? 그러니 얼마나 기대가 되겠냔 말이야. 이야기 듣느라고 힘들었겠다. 일찍 쉬고 내일 또 공부를 가르쳐 줘야지?”

“그래, 잘 쉬어.”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골목에 있는 매화나무에는 붉은 홍매(紅梅)가 곱게도 피어올랐다. 거무튀튀한 고목에서 어쩌면 그렇게도 고운 색으로 물든 꽃이 피어나는 것인지 신기하기조차 해서 한참을 그렇게 들여다보고 있는데 춘매가 아침 먹은 것을 치우고는 점술관으로 나오다가 우창을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오빠, 춘매(春梅)가 참 곱지?”

“그렇구나.”

“뭐야? 웃자고 던진 말을 그렇게 싱겁게 받다니. 쳇~!”

“춘매를 보고 춘매가 곱다고 해서 그렇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지?”

“아니, 그 춘매만 보이고, 이 춘매는 안 보인단 말이야?”

“원 그럴 리가 있나. 내 눈에는 홍매나 춘매나 모두가 예쁘기만 한걸.”

“아, 그랬쪄요? 호호호~!”

“날도 쌀쌀한데 들어가서 차를 마실까?”

물을 끓여서 차를 만들어서 향을 음미하면서 마시고 있는데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인기척이 있었다.

“어? 이른 아침에 손님이 왔나? 나가볼게.”

춘매가 문을 열고 보니까 중년의 여인이 주변을 경계하면서 쭈뼛거리고 서 있다가 춘매를 보고서는 말했다.

“저, 도사님께 뭣 좀 여쭤보려고 왔는데 계신가요?”

“예, 잘 오셨네요. 마침 도사님이 계시네요. 어서 이리로 오세요~!”

그렇게 안내를 하여 손님의 자리에 앉게 하고는 아직은 쌀쌀한 아침의 시간에 찾아온 여인을 위해서 따끈한 차를 한 잔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한쪽으로 물러나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딴전을 피우는 척하면서 귀는 활짝 열어 놓았다.

“이른 시간에 누추한 곳을 찾아주셨네요. 우선 날도 차가운데 따뜻한 차부터 드시고 천천히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예. 고마워요.”

그렇게 차 한 잔을 마시도록 가만히 기다렸다. 우창은 항상 손님이 먼저 말을 꺼내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주는 시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이윽고 여인이 말을 꺼냈다.

“예전부터 잘 알고 있던 언니가 연승관(燕蠅館)의 도사님이 용하시다고 해서 찾아뵈었어요. 어제도 왔었는데 그냥 망설이다가 갔어요. 오늘은 큰맘을 내어서 문을 두드렸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그것도 때가 있는 모양이네요. 잘 오셨습니다. 천천히 궁금하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시면 됩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이미 찻잔을 주고 난 다음부터 점괘를 암산(暗算)하고 있었다. 그래야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내심으로 가늠을 할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사주를 물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은 천천히 물어도 되는 것이기 때문에 급하지 않았다. 우선 이야기를 듣기 전에 오주괘(五柱卦)를 머릿속에 적어보았다. 무슨 말을 하거나 참고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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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점괘를 생각해 보자 심히 우려가 되었다. 일간(日干)의 정화(丁火)가 의지할 곳이 없는 것도 안타깝거니와, 지지(地支)의 분위기도 자못 심각해서 무엇을 묻더라도 어렵다는 답을 해야만 할 상황임을 직감(直感)하고 여인이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인이 그렇게 두 번째의 차를 따라주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실은 궁합(宮合)을 좀 보고 싶어서 찾아뵈었어요.”

“궁합이라면....? 누구를...”

“실은 제가 부군(夫君)을 전쟁터에서 잃고 홀로 지내기를 십여 년 만에 재취(再娶)를 원하는 남자가 나타나서 재혼(再婚)하려고 하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좋은 일이네요.”

“그렇긴 하지만, 둘이 결혼을 하면 잘 지낼 수가 있을지 걱정이 되어서요.”

“결혼하시려고 마음을 먹으신 건가요? 아니면 아직은 생각만으로 따져보고 있으신 건가요?”

“이미 가정을 이루려고 서로 간에 결정하고 집도 알아보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먼저 세상을 떠난 전의 남편에게 마음이 걸려서 자꾸만 걱정이 앞서네요.”

“아 그렇습니까? 비록 초혼은 실패했더라도 재혼은 행복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하~!”

우창은 웃었다. 말하자면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서 좀 전환을 시켜보고 싶어서였지만 여인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시 여인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꾸만 점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이런 점괘로는 행복한 결혼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인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궁합이라도 좋을지 궁금해서 말씀을 듣고 싶었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함께 살기로 했는데 마음이 불안하니까 위로의 말을 듣고 싶은 것이었군요?”

“그게 아니라.....”

우창은 이미 화살은 활을 떠났다고 판단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단지 불안한 마음에 위안을 받고자 하는 목적으로 찾아온 여인이었다. 이러한 경우에 달리 해 줄 말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냥 위로만 해 줄 수도 있다. 천생연분이 만났다고 해 주면 그만이고, 여인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창의 생각에 그러한 위로는 없었다. 이미 너무 늦은 것임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이왕 함께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함께 만들어 가셔야지요. 오늘 제가 해 드릴 말씀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궁합을 볼 단계가 지났다는 의미지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알죠. 그렇지만 그래도 혹시 무슨 액운이 끼어든다면 그것을 방지할 방법이라도 알아놔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걱정되셨나 봅니다. 그렇게 걱정하기로 들면 그냥 혼자 사시는 것이 최선입니다. 이왕에 함께 살아가기로 했으면 믿고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새로운 남편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실은 전남편에게서 낳은 아들이 있는데, 아들과도 잘 지낼지 걱정이 더 되어서 불안하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이해가 됩니다. 그렇다면 아들과 새아버지의 인연이 나쁘다는 해석이 나오면 결혼은 포기하실 참이십니까?”

“그건 아니지만.... 결혼이 나쁘게 나왔나요?”

우창의 말을 들으면서 느낌이 안 좋다고 생각했던지 여인이 더욱 근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우창의 안색을 살피면서 말했다. 우창도 거짓말은 못하는 것이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장은 희망적인 말을 해 준다고 해도 그것이 앞으로 이 여인의 삶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어서 함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야 모르지요. 사주도 아직 묻지 않았잖습니까? 다만 미리 이야기를 들어보고서 사주를 볼 내용인지부터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주머니의 말씀을 들어봐서는 사주를 봐서 뭐라고 답을 드릴 단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해되시는지요?”

“아, 그러셨군요. 이해가 되고 말고요.”

그렇게 말하면서 모처럼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우창은 문득 며칠 전에 들었던 손헌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변할 수가 있는 것은 말하고, 변할 수가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는 황금보다도 더 빛나는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지금 찾아온 이 여인의 가슴 속에 있는 불안감은 이미 변화를 할 단계를 벗어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니까 이전에는 점괘를 적어놓고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장황하게 설명을 했을 우창이다. 그런데 이제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는 생각이 들자 사주를 적어놓고서 뭐라고 말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근심만 추가해 줄 따름이라는 것이 손바닥처럼 보이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이렇게 생각에 잠긴 우창에게 여인이 다시 물었다.

“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여쭙겠어요.”

“예, 말씀하십시오.”

“실은 아이를 제가 키우는 것에 대해 시댁에서 매달마다 양육비를 보내 주시고 있어요. 그런데 혹시라도 재혼하게 되면 그것을 핑계로 해서 주던 돈을 끊지는 않을까 싶은 걱정이 되어서요.”

“아, 그것도 걱정되시겠네요. 그렇다면 또 여쭙지요. 만약에 아이의 양육비를 끊게 된다면 그것으로 인해서 재혼하지 않으실 것인지요?”

“그건..... 아니...지요...”

“일단, 더 이상의 돈은 없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양육비를 보내 주면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미 화살을 쏘았는데 그것이 과녁에 맞거나 혹은 맞지 않거나 간에 되돌릴 수는 없다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실 겁니다. 과녁에 맞지 않을까 봐서 쏘려던 화살을 도로 거두는 것도 또한 큰 미련만 남게 될 테니까 말입니다.”

“정말 도사님의 말씀은 구구절절(句句節節) 틀린 것이 하나도 없네요. 처음엔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서 좋은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으로 재혼을 생각했는데 막상 결정을 내리고 보니까 이렇게도 많은 생각이 뒤를 따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차라리 재혼을 포기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 생각까지도 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주셨으니 다시 여쭤야 하겠어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재혼을 포기하는 것이 나을까요? 그냥 강행하는 것이 나을까요? 질문이 달라져서 죄송하지만 몇 가지의 질문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왜 두려워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그래서 재혼을 꼭 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겠다는 것을 떠올렸어요. 이렇게 장황하게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이에 대해서 다시 귀중한 답을 듣고자 합니다.”

“정말 처음의 마음을 고칠 수도 있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어렴풋하게나마 재혼해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마음이 바뀌면서 무엇을 물어야 할 것인지를 명료하게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다시 말씀을 듣고 싶어요.”

우창은 이렇게도 상황이 달라질 수가 있다는 생각하면서 내심으로 놀랐다. 처음에는 답변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제는 5할의 여지가 생기게 되었으니 비로소 자신의 존재가 해야 할 역할이 있게 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원점에서 상담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주머니의 생년월일을 알려주시겠습니까? 이제 제가 조언을 해 드릴 여지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춘매가 사주를 뽑아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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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들여보면서 궁리하고서 잠시 후에 말했다. 춘매는 적어놓은 사주를 보면서 용신을 궁리하느라고 내심으로 분주했다.

“사주를 봐하니 어려서는 큰 어려움을 모르고 잘 지내신 것으로 보이는데 부유한 가정으로 혼인을 하고 나서부터 악몽을 꾸는 듯이 힘든 나날을 보내시다가 부군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고 나서는 홀로 지내셨나 싶습니다.”

“맞아요. 그랬어요. 세상을 다 훔쳐도 팔자 도둑은 못 한다더니 제 팔자에도 그렇게 나오나 보네요?”

“올해로 나이는 43세가 되셨으니 중년의 행복한 삶을 누리셔도 하루가 아까울 호시절에 재혼을 앞에 놓고서 고민하고 계시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작년부터 같이 살자는 남자가 생겨서 혼자 살아가기보다는 함께 사는 것이 외로움이라도 면하려나 싶어서 기대하게 되었고, 그다음에는 걷잡을 수가 없이 결혼을 당연하게 여겼어요. 그런데 막상 어린 아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로 착잡한 심경이 생기네요.”

“그러셨겠습니다. 그런데....”

“아,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만약에 남편의 복이 없고, 오히려 다시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재혼은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요.”

“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외로움을 벗어날 때가 덜 되신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재혼하게 된다면 앞으로 예상되는 조짐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일 수가 있겠고, 외로움만 견디신다면 도화만발(桃花滿發)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4~5년만 더 기다리셨다가 좋은 남자가 생기거든 그때 다시 생각해 보신다면 후회가 없을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원하시는 답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실은 두어 군데에서 물어봤어요. 한 곳에서는 ‘꼬였던 팔자가 쫙~ 풀릴 테니 어서 결혼을 하라’고 했고, 또 한 곳에서는 ‘섶을 지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인데 왜 고초의 길을 택하느냐’고 해서 마음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도사님의 명쾌한 설명을 듣고 보니까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지를 알겠어요. 왜냐면 그 사람과 재혼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팔자가 늘어질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반신반의하던 끝에 오늘 말씀을 듣고 판단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과연 아직은 아이도 어리고 새로운 짐을 짊어지는 것이 현명한 것이 못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다음 기회를 보는 것이 좋겠어요. 오늘 이렇게 깨달음을 주셔서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정말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여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상담료를 춘매에게 건네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춘매가 손님을 배웅하고는 돌아와서 우창에게 바싹 다가앉아서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아니, 오빠, 무슨 상담을 그렇게 해요?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궁금하다고 하면 묻는 대로 답을 하면 될 것을 왜 볼 필요가 없다고 해서 옆에서 듣는 나까지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하는 거야?”

“아, 그랬어? 미안하군. 하하하~!”

“그것도 공 할아버지의 영향이야?”

“아마도 그렇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재혼을 하기로 한 다음에는 아무 것도 볼 필요가 없는 거야?”

“아니지, 이미 마음속에서는 점괘를 훑어봤지.”

“아, 그래? 어쩐지~! 점괘가 안 좋게 나왔구나. 그치?”

그제야 우창은 오주괘를 적었다. 춘매에게 설명을 해 주려면 점괘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만 궁리하고 있었던 점괘를 적어놓고 말했다.

“자, 어디 누이가 풀이해 볼래?”

“내가 뭘 알아? 그래도 우선 일간(日干)이 정화(丁火)라는 것과 앉은 자리에 유금(酉金)이 있다는 것은 보이네. 그럼 의지처가 없다는 것이잖아? 연월(年月)에서도 도움을 받을 글자가 없네.”

“아니지, 없다고 하면 안 되고.”

“아, 맞다! 월지(月支)에 묘목(卯木)이 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해야 하는 거지?”

“남편은 어디에 있지?”

“점괘에서는 정관(正官)이 있으면 남편이고, 없으면 편관으로 대신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남편은 시간(時干)의 계수(癸水)가 편관(偏官)이네? 편관은 부담스러운 것이라고 하지 않았어?”

“당연하지. 그냥 단순히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인연을 맺으려고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지, 만약에 한시진을 당겨서 왔더라면 임인(壬寅)시가 되었을 것으로 그렇게 된다면 육체적인 욕망을 좇아서 함께 살려고 한다고 해도 되겠지?”

“아, 정임합(丁壬合)이 또 그러게 쓰이는 거야? 와~! 재미있다. 호호호~!”

“뭐든 보이면 써야지. 하하하~!”

“이렇게 나왔으면 만나는 남자는 흉하다고 말을 해줬어야 하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답답하게 빙빙 돌렸던 거야? 옆에서 듣는 내가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지 뭐야.”

“예전 같으면 해 줬지. 그런데 손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보인다고 모두 말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잖아.”

“와우~! 그러고 보니까 오빠도 제법 고수티가 나는걸. 멋져~!”

“고맙네, 누이가 알아주니 뭔가 진척(進陟)이 있었나 싶기도 하네.”

“맞아, ‘바뀔 것’과, ‘정해진 것’의 차이는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놀라운 말씀이었던 것은 틀림없어. 뭐든 정해진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더욱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겠다는 것을 알았어. 오빠에게도 큰 변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일어나서 얼마나 좋은지 모를 정도야. 호호호~!”

“물론이지. 배웠으면 바로 응용을 해야 내 것으로 만들어져서 달아나지 않고 자리를 잡으니까.”

“그래서 결혼하기로 했다고 하니까 이미 정해진 것이어서 봐줄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었구나? 듣고 보니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하니까 바뀔 수가 있다고 봐서 설명을 해 준 것이고? 난 배웠다고 해도 그렇게 바로바로 활용하지 못하는데 오빠는 역시 천생이 상담가라고 해야 하겠어.”

“누이도 공부가 더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되는 거야. 나도 처음부터 이렇게 잘했던 것은 아니니까 열심히 공부하면 어떤 상황을 접하게 되었을 적에 어느 방향으로 풀어가야 할 것인지를 알 수가 있는 거야.”

“알았어. 그 아주머니의 사주를 보면, 월지(月支)와 일지(日支)의 묘목(卯木)은 편재잖아? 이것은 어떻게 해석해야지?”

“누이가 보이는 그대로 풀이를 해봐.”

“편재는 내 마음대로 하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맘대로 하고 살면 되고 남편도 맘대로 할 수가 있다고 해석해야 하는 거잖아?”

“맞아.”

“그럼 사주를 보는데 다른 곳에서 답을 찾는단 말이야?”

“사주 안에서도 보고, 사주 밖에서도 봐야지. 사람이 사주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지. 안 그래?”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남자의 입장도 생각해봐. 여인이 고분고분하고 현명하게 처리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결혼했다가, 자기에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겠다고 나대는 처를 만났을 적에 참고 살거나 포기하고 떠나거나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아, 무슨 뜻인지 알았어. 그러니까 이러한 여인의 팔자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기가 어렵겠구나. 그치?”

“행여 재산이라도 많아서 그것을 보고 들어온 남편이라면 몰라도 그것도 아니라면 평생을 참고 살기에는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지?”

“그렇구나. 이것이 오빠와 나의 차이네. 난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거든. 사주에서 맘대로 하고 살면 되는데 왜 초혼을 실패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빠의 설명을 듣고 보니까 이해가 되네. 그런데 사별(死別)하는 것과 이별(離別)하는 것은 다른 거잖아?”

“이나 저나 떠난 것은 같은 거야. 명이 길면 도망가고 명이 짧으면 죽는 것이 다를 뿐이겠지. 결국은 외롭다는 것이야.”

“정말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

“그래가면서 점차로 수준이 높아지는 거야. 하하하~!”

우창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애쓰는 춘매가 사랑스러웠다. 공부하려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희망이 보여서 좋은 까닭이다. 점심을 차리겠다고 나가고 나자 다시 손헌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언젠가는 공법(空法)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아서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