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 제22장. 연승점술관/ 12.합(合), 관계(關係)의 균형(均衡)

작성일
2020-07-10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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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3] 제22장. 연승점술관(燕蠅占術館)


 

12. 합(合), 관계(關係)의 균형(均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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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춘매가 차려 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오늘 손헌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춘매가 감초에 생강을 넣은 탕을 갖고 왔다.

“오늘도 공부하느라고 힘들었지? 피로를 풀기에 좋은 것을 갖고 왔어. 따뜻하게 마시면서 공부하셔. 근데 뭘 하는 거야?”

“아, 마침 갈증이 났는데 잘 가져왔구나. 고마워. 오늘 귀한 말씀을 들었으니 잘 정리해 놔야 다음에 잊어버리게 되더라도 다시 찾아 읽으면서 복습을 하지.”

“정말 대단하다. 오빠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 만난다는 인연도 참 좋은 거지?”

“물론이지. 다만 만남에도 음양이 있겠지?”

“그런가? 이렇게 공 할아버지나 오빠를 만난 것은 좋은 인연으로 봐도 되겠네? 그렇다면 안 좋은 만남도 있을 테니까 그런 경우를 생각해서 만남의 음양으로 논하면 되는 건가?”

‘합에도 음양이 있다’는 우창의 말에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물었다. 우창이 향긋한 차를 한 모금 마시고서 말을 이었다.

“합(合)은 서로의 만남이겠지?”

“맞아. 만남은 좋은 거잖아. 그렇지?”

“만남이 다 좋은 것이라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만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지?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 좋을까?”

“아니,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않아도 얼마나 좋은 것이 많은데 말이야.”

“학자의 사유(思惟)는 항상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의 그 중간 어딘가에서 머물러 있어야만 오류에 빠져들지 않으니까.”

“뭐가 그렇게 어려워? 내가 알아듣기 쉽게 말해 줘봐. 이성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이고, 감성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래 잘 이해했네. 행복한 만남이 합이라고 생각한다면 불행한 만남도 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철학자의 기준이 된다고 봐야지.”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합이라는 뜻에는 좋은 것이라는 의미가 들어있지 않느냔 말이야. 합을 말하면서 나쁜 의미를 떠올릴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그렇다면 이별은 모두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겠네? 그렇게 된다면 보기 싫은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면서도 마음이 아파야 하는 거야? 합에도 마땅한 것과 마땅치 않은 것이 있듯이[합유의불의(合有宜不宜)] 이별에도 마땅한 것과 마땅치 않은 것이 있는 거야. 그러니까 만남과 이별에 좋고 나쁜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는 거야.”

우창의 이야기를 듣고서 잠시 생각에 빠진 듯한 춘매를 바라보면서 나머지 차를 마셨다. 그러자 춘매가 다시 차를 따라 주면서 말했다.

“오빠의 말을 듣다가 보니까 천간(天干)의 합(合)이 떠오르네? 간합(干合) 말이야. 팔자에 합이 있다는 것도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이해하면 되는 거야?”

“옳지!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거야. 하하~!”

“근데, 궁금한 것이 생겼어.”

“당연히 궁금한 것이 생겨야지 뭘 알고 싶어?”

“내가 궁금한 것은, 이미 육갑(六甲)이 있는데 왜 또 간합(干合)이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자연스럽지 않은 것도 같아서 인위적(人爲的)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해서 말이야. 왜 그런 이치가 나타난 건지 궁금했는데 마땅히 물어볼 방법을 몰랐지. 이렇게 물으면 되는지는 몰라도 오빠가 알아서 설명해 줄 거니까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거야.”

“그래 알았어, 독립적(獨立的)인 것이 무엇인지는 알지?”

“그야 육십 가지의 간지를 말하는 것이잖아. 그치?”

“맞아. 이제 독립적인 간지를 이해하고 나니까 간합이 눈에 들어오는 모양이구나. 전에 알려 줄 적에는 외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려니 했잖아?”

“그야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도 몰랐으니까. 호호~!”

“학문의 진전이란 이런 거야. 배우는 기회가 다르고, 이해하는 기회도 다르고 활용하는 기회도 또 다른 것이 학문이란 존재거든. 어찌 보면 정밀하게 잘 짜인 기계의 구조와 같다는 생각도 들어. 이제 누이가 간합에 대해서 궁금한 마음이 생겼으니 공부는 다시 한 단계 상승(上昇)하겠네.”

“아, 그렇게 되는 거야? 진작에 물어볼 것을 그랬네. 이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래서 궁금한 동굴을 통과하면서 깜깜해서 답답한 체험을 하고 나서야 질문의 門을 만나게 된다는 거지. 하하~!”

“하긴, 오빠가 궁금한 것은 물어보라고 해도 물어볼 것이 없어서 뭘 물어야 하는지를 생각했던 적도 있었네. 이런 것이 ‘궁금한 것’이었구나. 그것도 무슨 뜻인지 몰랐거든. 호호~!”

“그래서 학문(學問)인 거야.”

“어? 학문이라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잖아?”

“먼저 배울 학(學)이잖아, 그러니까 먼저는 무엇이든 모르는 것을 배워야 하는 거야. 그다음에 궁금한 것이 생기게 되지, 그다음에 비로소 물을 문(問)이잖아? 배우게 되면 비로소 물어볼 마음이 생긴다는 의미도 있는 것은 몰랐지?”

“어? 정말이네. ‘물어야 배운다[問學]’가 아니라, ‘배워야 묻는다[學問]’였구나. 정말 오빠의 가르침은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밥을 부드럽게 씹어서 먹이는 것 같아서 항상 감탄하게 된다니까. 호호~!”

춘매의 말에 우창이 미소를 짓고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에 말을 이었다.

“합(合)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사람과 관계(關係)하는 이치에서 나온 거야.”

“관계라면 사주에서는 간지와 간지의 관계를 말하나?”

“그렇지. 천간(天干)의 관계도 있고, 간지(干支)의 관계도 있지. 그리고 지지(支持)끼리도 관계가 있을 것은 당연하지.”

“그러니까 천간의 관계는 간합(干合), 간생(干生), 간극(干剋)이 있고, 간지의 관계에서도 간지합(干支合), 간지생(干支生), 간지극(干支剋)이 있는 거네? 그런데 지지끼리도 생극(生剋) 외에 합(合)도 있는 건가? 그건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왜 그런거야? 예전에는 그런 것도 알아야 한다고 해서 배웠잖아. 호호호~!”

춘매가 이야기를 정리하려는 듯이 차근차근 짚어가면서 물었다. 그러한 춘매의 모습에서 자원(慈園)을 떠올렸다. 세련(洗鍊)된 여인과 야생(野生)에 가까운 여인이 공부하는 모습이 다르면서도 또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오빠~! 뭘 생각하는 거야. 내가 너무 어려운 것을 물었나? 호호~!”

“으응, 매우 중요한 이야기라서 어떻게 정리해야 누이가 잘 알아듣고 혼란스럽지 않을 수가 있을지를 생각했지. 우선 관계(關係)에 대해서 관심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지난겨울을 헛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흐뭇한 것은 말을 할 것도 없고 점점 깊어지고 있는 누이의 안목이 예뻐서 말이지.”

우창의 말에 춘매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파고들어서 물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우창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공부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아 가고 있었다.

“누이가 생각하는 합은 자평법(子平法)에서 의미하는 합과는 좀 다르다는 것부터 말을 해줘야 하겠군. 합이 존재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재물을 취하거나, 그러는 과정에서 이웃과 다툴 일도 생기는 것처럼 말이지. 다만 공식적(公式的)으로는 간합이라고 알아두면 되지만 그 관계에서 본다면 반드시 길한 것도 아니고 절대적으로 흉한 것만도 아니라네. 인간관계와 또 같다고 생각하면 될 일이니까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의 관점으로 합을 바라보면 안 된다는 이야기야.”

“아, 내가 착각을 했던가 봐. 다시 정리하지 않으면 오류에 빠져들겠네. 어서 바로잡아줘. 지금이 그때인가 보네.”

“괜찮아, 그래가면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거니까. 매우 잘하는 거야.”

“그런데 오빠의 말을 들어봐서는 합의 종류가 무척이나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그 모든 상황에 따라서 합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한두 번 들어서는 안 될 것 같아.”

“간(干)과 간(干)의 합만 알고 있으면 돼. 모든 합은 간합의 변화에 불과하니까 말이지. 언제나 핵심을 알고 나면 그 나머지는 몰라도 되거든.”

“천간의 합이야 다 외웠지만 간지합도 알아야 하고, 지지합(支支合)도 있으니 그것에 대해서도 모조리 알아야 하는 거잖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니까. 간지합이든 지지합이든 모두는 간합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니까 말이야.”

“지지의 합은 좀 다른 것이잖아?”

“그렇지 않아, 가령 지지(地支)에 묘신(卯申)이 있으면 묘중을목(卯中乙木)과 신중경금(申中庚金)이 만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만나면 또 관계는 생기기 마련이지. 또 자진(子辰)이나 술자(戌子)가 있다면 여기에서도 무계합(戊癸合)의 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니까 말이야.”

“아니, 지지끼리의 관계는 삼합(三合)이나 육합(六合)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어? 옛날에 사주공부를 한답시고 만난 선생은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얼마나 강조하던지 열심히 외워놨는데 그것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지?”

“그야 쓸모가 없으니까 그렇지. 그런 이야기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다가는 일평생을 연구해도 간지의 언저리도 만져 볼 수가 없거든.”

“그래? 오빠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인 줄로 알 거야. 잘 알았어. 얼마나 궁리를 많이 한 다음에 그러한 결론을 내렸을 거잖아?”

“아무렴.”

춘매가 예전에 배웠던 간지의 관계에 대한 것과 우창이 말해주는 것을 서로 대비하면서 엉켜있는 부분을 정리하느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빠가 말하는 것을 사람으로 대입하면 각자의 존재는 십간(十干)이고, 서로 만나는 인연은 간합(干合)이 되는 건가?”

“맞아, 인간관계에서의 만남은 합(合)이 되고, 헤어지면 극(剋)도 되고, 다시 여기에 추가로 생극(生剋)이 존재하는 것은 생략해도 알아듣겠지?”

“그런데 생극이 이미 존재하는데 왜 따로 합이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관계는 공적(公的)인 것과 사적(私的)인 것이 있는 것과 같은 거야.”

“공적인 것은 뭐지?”

“가령 관리와 만나서 세금을 내는 것은 공적인 만남이겠지?”

“그렇구나. 그럼 사적인 만남은 뭐야?”

“그것은 특별한 만남이라고 할 수 있지. 그리고 특별한 만남은 두 사람 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기도 하지. 말하자면 감정적(感情的)인 만남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남녀가 서로 연모(戀慕)하면 그것이 특별한 건가?”

“맞아.”

춘매가 우창의 간단한 답변에 침을 삼키고서 말했다.

“한쪽에서만 연모하면 그것은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나?”

“그야 도(道)의 관점인 십(十)에서 생각하면 되는거지.”

“도가 왜 십(十)이야?”

“만남이니까.”

우창의 말에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았는지 다시 물었다.

“도가 만남이라고? 도는 심오(深奧)한 이치를 깨닫는 것이 아니었어?”

“만나지 않으면 도는 이뤄지지 않거든.”

“무슨 뜻이야? 쉽게 설명해 줘봐.”

우창은 춘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다.

“가령 손헌 선생이 누이에게 안마를 받고 갔으면 누이와는 도가 이뤄진 것이지만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일어나지 않았겠지?”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한쪽만 연모(戀慕)하는 것은 합이 될 수 없다는 거잖아. 맞지?”

“그래 맞는 말이야. 그래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뜻도 간단해. ‘하나의 음이 하나의 양을 만나는 것을 도라고 한다.’는 뜻인데, 『역경(易經)』의 「계사전(繫辭傳)」에서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야.”

“아, 어쩐지 어렵다 했더니 역경의 이야기였구나. 그러면 음과 양이 있으면 도라는 말이네?”

“맞아.”

“그럼 오빠랑 나랑은 도가 이뤄진거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오빠는 남자, 나는 여자니까 말이야.”

“그것을 한마디로 말할 수가 있나? 무엇에 대한 남녀의 관계냐에 따라서 답은 천 갈래 만 갈래인 것인데 말이지.”

춘매는 우창이 답을 회피하려고 딴전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언성을 조금 높여서 따지듯이 말이 나왔다. 약간은 마음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런 것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알아야 하는데 어떤 면에서는 곰같이 우둔한 우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남녀의 도를 묻는데 왜 딴청을 부리는 거야? 남녀가 만나서 이뤄질 도가 뭐냔말이야~!”

“누이와 나는 사제지간(師弟之間)의 도라고 해야지.”

“아, 그렇구나. 사제간의 도였네. 사제간의 도는 어떤 거야?”

“공부하는 제자가 스승에게 궁금한 것을 묻고, 그 질문에 스승이 올바르게 답변하면 사제간의 도가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춘매가 우창에게 알아들을 만큼 말을 했건만 우창은 모르는 것인지 모르는 체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으나 자신을 여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제자로 생각한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은 서운한 마음이 밀물처럼 밀려왔으나 한편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그래서 오히려 마음 편히 공부에 몰입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일말의 안타까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은 또 다른 번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춘매였기에 남녀의 인연은 신경을 쓰지 않고 공부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빠, 합의 뜻에 대해서 좀 더 기초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냥 막연하게 합은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졌어. 그러니까 귀찮더라도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줬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어. 내가 다 좋은데 이해력이 좀 떨어지잖아? 호호~!”

“불치하문(不恥下問)이 무슨 뜻인지는 알아?”

“알지,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뜻이잖아? 갑자기 그건 왜?”

“그럼 불치상문(不恥上聞)은?”

“어? 그런 말도 있었어? 처음 듣는 말이야. 오빠의 말하는 분위기로 봐서는 윗사람에게 묻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도 같은데 말이야.”

“불치상문 앞에 ‘하물며’를 넣으면 돼.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데 하물며 윗사람에게 묻는 것이랴’라는 뜻이지.”

춘매는 우창의 자상함에 감동했다. 자신이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고르고 있었다는 것을 우창이 눈치챘던 모양이다. 그래서 고르지 말고 뭐든 물으면 답을 하는 것은 우창이 알아서 해 줄 텐데 무슨 걱정을 하느냐는 뜻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알았어. 아무것이라도 생각이 나는 대로 물을 거야. 그럼 합의 뜻을 풀이해 줘봐.”

“합(合)의 글자를 분해(分解)하면 그 뜻도 보이지 않을까?”

우창이 종이에 합(合)을 썼다.

243-2


“아, 글자를 뜯어보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어. 그러니까 합(合)은 인(人)과 일(一)과 구(口)로 되어 있네? 이건 모두 아는 글자라서 쉬워. ‘사람은 입이 하나 있다.’는 뜻이잖아.”

우창이 그 말을 듣고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그리고는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누이의 말이 하도 재미있어서 웃었네. 사람인(人)을 나누면 또 삐침별(丿)과 흐를이(乁)로 나뉘는 거야. 이것을 쉽게 말하면, 인(人)은 ‘두 사람인(人)’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즉 사람은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있어야 사람이라는 뜻이지. 즉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 거야.”

이렇게 말하던 우창이 춘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시 뭔가를 썼다.

243-1


우창이 써놓은 것을 보면서 춘매가 물었다.

“아니, 이건 사람인이잖아? 갑의 인과 을의 인이 모양만 다르지 같은 글자잖아. 그렇지? 무슨 뜻인지가 궁금해. 호호호~!”

“뜻을 묻는 것은 항상 기쁘단 말이야. 하하하~!”

“왜? 배우려는 마음이 보여서?”

“맞아. 그래서 기쁘지. 배우려는 마음이 없으면 묻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으니까 말이야.”

“알았으니까 뜻이나 알려줘봐.”

“그래, 맞는 말이야. 갑(甲)의 인(人)은 같은 두 사람의 인이고, 을(乙)의 인(人)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야. 누이는 세상 어디에서도 갑(甲)과 같은 인(人)은 본 적이 없을 텐데?”

“맞아, 듣고 보니까 인(人)은 을(乙)의 인이지 갑(甲)의 인은 본 적이 없어. 그런데 이게 무슨 뜻이야?”

“사람은 이미 합(合)인 거야. 즉 혼자서 살 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건데, 그럼 둘이면 다 되느냐는 생각도 할 수가 있잖아? 여기에서 서로 길이가 다른 획(劃)을 통해서 그 의미를 알 수가 있는 거지.”

“뭔데?”

“똑같은 사람이면 함께 살 수가 있을까?”

“음.... 서로 잘 살아갈 수가 있지 않을까? 서로 다르면 어떻게 살아?”

“하하하~!”

우창은 춘매의 엉뚱한 답이 재미있었다. 묻는 자의 마음과 답하는 자의 마음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춘매는 도저히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웃고 있는 우창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그러자 우창이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봐, 내가 누이와 똑같은 모습의 여인이고, 공부도 누이와 똑같다고 생각해봐, 재미있을까?”

“그게 뭐야? 재미는 무슨 재미가 있겠어. 볼때마다 짜증이 날텐데.”

“우리가 재미있게 살고 있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야. 나는 음식을 만드는 재주가 없고, 누이는 공부가 필요한 것으로 인해서 함께 지내도 재미가 있는 거야. 이제 이해가 되었지?”

우창의 말에 춘매는 손뼉을 치면서 재미있어했다.

‘짝짝짝짝~~!!’

“우와~! 오빠 말을 듣다가 보면 뭐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네. 사람인(人)은 그냥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인 줄만 알았지 두 사람을 의미한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이 없었어. 그럼 어떻게 해석을 하는 거지?”

“어디 또 해봐.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보자.”

우창의 말에 춘매가 생각이 나는대로 말했다.

“그럼 다시 해볼게. ‘두 사람이 한 입이다’라고 해야 하나?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두 사람은 원래 입도 둘이겠지?”

“당연하잖아?”

“그런데 입이 하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설마 이 입을 밥을 먹는 입이라고만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

“밥을 먹는 입이 아니라면 말하는 입이란 말이잖아? 아무렇거나 입은 입이지.”

“두 사람이 골동품으로 보이는 항아리를 사고자 하는 사람에게 비싸게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야 서로 눈치를 봐가면서 입을 맞춰야지. 사려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야.”

“입을 맞추는 것이 뭐지?”

“입을 맞추는 것은 계획을 세워서 서로 의논하는 것이잖아. 아하~! 그러니까 서로 말이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구나. 마치 입은 둘이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건가?”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춘매가 말했다. 그 말에 우창이 웃으면서 말했다.

“옳지, 누이가 이해를 했구나. 하하하~!”

“아, 그래서 합(合)이라는 글자가 되었던 거야? 그런 뜻이 들어있는 줄은 또 몰랐네. 그렇지만 비싸지 않은 항아리를 비싸게 팔려고 입을 맞추면 사기꾼이잖아?”

“장사한다는 것은 남기려는 거겠지? 밑지고 팔 수는 없잖아?”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는 것은 공인된 거짓말이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남기고 판다고 봐야겠네. 그게 합이었다는 것이 신기해서 말이야.”

“합의(合意), 합동(合同), 합심(合心)으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더 빠르겠지. 혼자서는 합의할 것이 있으며, 합심해야 할 것이 있을까?”

“그런 것은 말도 안 되겠네. 그래서 두 사람의 입이 나온 것이었구나. 이제 글자의 뜻은 이해하겠어.”

“다음으로 왜 합을 하느냐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겠구나.”

“그야 이익금을 남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잖아.”

“하하하~!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더 그럴싸하게 말하면 좋지 않겠어?”

“그런가? 뭐라고 하면 그럴싸 한거야?”

“서로 뜻이 맞지 않는 것을 의논해서 맞추는 것이 합이야.”

“아~! 그것이었구나. 이제 명료(明瞭)하게 알겠네. 그러면 일단 서로 뜻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있어야 비로소 합을 할 꼬투리가 되는 것이구나. 그렇지?”

“맞아. 뜻이 맞으면 합의를 할 필요가 없지. 그러니까 합(合)은 합의(合意)이고, 합심(合心)이지 서로 좋아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는 거야. 이제 이해가 되었지?”

“알겠어. 합은 서로가 자신의 목적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일부분을 양보하면서 자신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계획하는 것인데 그것이 혼자만 이로운 것이 아니라 서로 쌍방(雙方)의 목적에 부합이 되었을 적에 성립하는 것이란 말이잖아?”

“제대로 정리했군.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이제 합은 사랑하는 것이라는 등의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있겠다. 합은 서로 간에 원하는 목적이 있을 적에 얼마간은 상대방에게 양보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니깐 말이지.”

“서로 뜻이 맞으면 합(合)이 되었다가, 그 목적이 다 이뤄지면 충(沖)이 되는 건가? 보통 합충(合沖)이라고 말하는 것은 들어봐서 말이야.”

“그것도 틀린 말이지. 합의 상대는 충이 아니라 불합(不合)이라야지. 충은 싸우는 것이고 불합은 합이 무효가 된 것인데 어떻게 합충이라는 말로 연결을 시킬 수가 있겠느냔 말이지.”

“왜 그런 말이 나왔지? 보통 합충이라고 하잖아?”

“그것은 지지(地支)의 삼합(三合)이나 육합(六合)을 상대하는 의미로 나온 말인데 지지의 합은 논하지 않으니 합충이란 말도 쓸모가 없겠네.”

우창이 이렇게 설명하자 춘매는 또 생각나는 것이 있었던지 다시 물었다.

“참, 생각이 난 건데, ‘합화(合化)’란 말도 있잖아? 그건 왜 말해주지 않는 거야?”

“어?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하하하~!”

“나도 완전 맹탕은 아니잖아? 합을 푸는 것은 충이고, 충을 푸는 것은 합이고, 또 합을 하면 화(化)했는지도 봐야 한다는 것은 주워들은 풍월이지 뭐. 호호호~!”

“만약에 두 사람이 합을 한 다음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면 그것은 화(化)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렇지만 팔자에서는 그런 이치가 없으니까 논할 수가 없지. 합을 했다가 목적이 다하면 다시 불합(不合)으로 돌아갈 뿐이야. 그것은 마치 남녀가 만나서 합이 되어 사랑하고 함께 살다가는 어느 순간에 갈등이 생긴다면 그때는 서로 맞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가 있겠네.”

우창의 말에 춘매도 어렴풋이나마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같았다. 그래서 다른 예로 자신이 이해한 것이 맞는지를 확인했다.

“이제 합의 뜻에 대해서 알겠어. 가령 입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밥과 반찬이 합이 되었지만, 위로 들어가서 소화(消化)된 것은 다시는 분리할 수가 없듯이 될 화(化)가 들어가면 다른 것으로 변했다는 뜻인 거지? 그리고 사람이 둘이 모여서 하나로 입은 맞출 수가 있지만 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이지? 그러니까 합(合)은 있어도 화(化)는 없어서 합화(合化)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맞아. 그렇게만 이해하면 되는 거야. 이제 그만 쉬고 내일 또 이야기하자꾸나. 나도 고단하네.”

우창이 하품을 하자 춘매가 자기의 공부에만 신경을 쓰느라고 우창이 힘들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얼른 잘 쉬라고 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곡부의 밤은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