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제19장. 오행쇠왕의 중화/ 5. 적천수(滴天髓)의 핵심(核心)

작성일
2017-05-30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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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제19장. 오행쇠왕(五行衰旺)의 중화


5. 적천수(滴天髓)의 핵심(核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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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부터 단비가 노산을 적시고 있었다. 모처럼 시원한 빗줄기를 보면서 우창은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어제의 흥분(興奮)했던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다시 오행의 이치를 조금은 더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가 있었다.

어제 나눈 이야기를 다시 되씹으면서 명학의 핵심에 대해서 좀 더 이해를 깊이 하고자 상념(想念)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렇게 정리를 하니까 간단하게 이야기가 정리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물론 아직 중화(中和)편은 설명을 듣지 않았지만 이미 그간의 공부에서 해답은 나온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체용(體用)으로 바탕을 삼고,
정신(精神)으로 작용을 알고,
쇠왕(衰旺)으로 변화를 보고,
중화(中和)로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자, 앞에서 나왔던 간지(干支)에 대한 이야기나, 형상(形象)에 대한 내용들은 모두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공사에 해당했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결론은 간지(干支)의 이치를 모두 한 마디로 정리한 대목이 여기에 있었다는 생각에 가슴 속이 다 시원해 짐을 느꼈다.

이렇게 생각에 젖어 있는데 자원이 밖에서 부른다.

“진싸부~! 아직도 준비 안 하셨어요~?”

우창이 문을 열고 보니 자원이 우산을 쓰고 밖에 서 있었다. 어느 사이에 공부 준비를 다 끝내고 고월에게 갔다가 우창이 아직 나오지 않자 궁금해서 찾아 온 것이었다.

“어, 내가 늑장을 부렸네. 숙녀에게 비를 맞히다니, 어서 와~!”

“아니 예요. 지나는 길에 아직 안 일어나셨나 하고요. 주무신 건 아니죠?”

“아니지 그럼. 잠시 생각을 좀 정리하느라고 그랬네. 어서 들어와.”

“임싸부가 기다릴 거예요. 준비 되셨으면 같이 가요.”

“그럴까? 그럼 잠시만 기다려.”

그렇게 말을 한 우창이 공부할 것을 챙겨서는 자원이 한 켠을 내어 주는 우산을 같이 쓰고 고월의 처소로 향했다. 향긋한 여인의 체취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마침 고월도 산책을 나갔다가 들어오다가 서로 마주쳤다.

“여, 편안하셨는가? 그림이 아주 좋군.”

“우중에 어딜 다녀오시느라고?”

“아, 스승님께 문안드리고 오는 길이라네. 어서 들어가세.”

“그러셨군. 백온 선생님은 편안하시지?”

“그러시네. 자기 관리는 잘 하시거든. 하하~”

자리에 앉은 세 사람은 간단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 자원이 끓인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배울 공부의 내용을 살펴본다.

“우창이 읽어 봐야지? 오늘은 중화(中和) 편이로군.”

“항목의 이름만으로도 매력적(魅力的)이네.”

그러자 자원도 기대가 되는 듯이 재촉을 한다.

“드디어 핵심(核心)의 일단락(一段落)이 되는 거죠? 어떻게 정리가 될 것인지 기대가 되요. 호호~!”

우창이 글을 읽었다.

기식중화지정리(既識中和之正理)
이우오행지묘(而于五行之妙)
유전능언(有全能焉)

“내용은 과히 어렵지 않아 보이네. ‘기식중화지정리(既識中和之正理)’라, ‘이미 중화의 올바른 이치를 알았다면’이라고 해석하면 되겠는데 달리 어려운 대목은 없어 보이는데 자원은 어때?”

“그러니까 이 구절의 핵심은 ‘중화(中和)의 올바른 이치(理致)’에 있는 것이네요? 중화의 올바른 이치라고하면 치우치지 않고 중심과 균형(均衡)을 잡는 것에 대한 말이 아닐까요?”

고월이 자원의 생각을 거들었다.

“맞아, 올바른 이치를 알지 못하면 편중(偏重)된 이치(理致)에 사로잡혀서 정확(正確)한 관점(觀點)을 얻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겠지.”

“이치가 편중 될 수도 있을까?”

우창의 말에 고월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이치야 편중되고 말고가 어디 있겠는가만 그것을 이해하고 이치라고 주장하는 사람에게 편중과 중화가 있을 뿐이라네.”

“중화(中和)는 이미 앞서 말한 체용(體用)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정신(精神)을 잘 파악하고, 왕쇠(旺衰)를 살피는 것에서 편중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라고 이해하면 되지 싶은데 어떤가?”

“틀림없는 이야기로군.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러자 자원이 한 마디 거들었다.

“단지 여덟 개의 글자가 간지(干支)로 조합(組合)을 이루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이치를 찾아서 체용, 정신, 왕쇠를 판단하여 중화에 이르도록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니겠어요.”

“당연하지, 그 중에서 천변만화(千變萬化)가 일어나서 오묘(奧妙)한 조화(造化)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그래도 크게 봐서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은 잡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단계를 뛰어 오른다’고 하는 것이라네. 하하~!”

고월의 말에 자원은 기분이 좋았다. 얼떨결에 허둥지둥 쫓아가기만 바빴는데 어느 사이에 이러한 관점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조차 했다.

“정말, 공부의 의미가 뭔지를 절절히 느끼는 요즘이예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무리 하게 되는 순간들이예요.”

우창이 다시 다음 구절에 대해서 풀이를 했다.

“다음은 ‘이우오행지묘(而于五行之妙)’라, 그러니까 중화(中和)를 아는 것이 오행(五行)의 오묘(奧妙)함을 아는 것이라는 뜻이로군.”

“그렇겠네. 오행의 이치가 오묘함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네.”

“오행의 이치란 기본적(基本的)으로는 생극(生剋)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면서 변화무쌍(變化無雙)한 조화(造化)를 일으킨단 말이지 않은가?”

“그렇다네. 그로 인해서 인간의 심리(心理)와 자연의 이치(理致)와 삶의 여정(旅程)이 그 안에서 생극제화(生剋制化)를 일으키게 되는 거라네.”

“중화의 이치를 알면 오행의 변화를 알게 된다는 말이니까 마지막의 구절은 ‘유전능언(有全能焉)’이라고 했군. 이제 전능(全能)이라는 말이 나오네? 완전하게 능통(能通)한단 뜻일까?”

“그 외에 또 무엇이 더 있겠느냔 말이로군. 어떤가? 그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오행의 변화를 알게 되면 그 외에 무엇이 또 있느냐는 말이라면 괜히 이상야릇한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일까?”

“잘 생각했네. 그래서 오행의 생극제화(生剋制化)를 벗어나서 특별한 것을 찾는 것은 ‘중화(中和)의 정리(正理)가 아니라’는 의미도 되는 셈이네.”

“참으로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군. 전능(全能)은 전지(全知)가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 아닌가?”

“모든 것을 알게 되어야 모든 것을 능히 실현(實現)할 수가 있으니 그 말이 타당하다고 하겠네.”

“앞에서 언급한 사과반(思過半)과 대응되는 말로 보이기도 하는 걸?”

“오호~! 잘 이해하셨네. 쇠왕(衰旺)을 알면 사과반이 되니, 거의 이해한 것이고, 중화(中和)를 알면, 전능(全能)이 되니 전부를 알게 되는 군.”

“문구가 참 재미있지 않은가? 경도 선생도 재치(才致)가 있으셨던가 보네. 하하~!”

“쇠왕과 중화의 대구(對句)는 생각할수록 묘미(妙味)가 있단 말이야.”

“생각해 보면, ‘능지(能知)’와 ‘기식(旣識)’이 짝을 이뤄서 능히 아는 것과 이미 아는 것이 서로 소통한단 말이네. 능히 알게 되면 이미 아는 것이 된다는 말이지 않겠는가?”

“그것도 재미있는 대입이로군. 그 다음에는?”

“다음에는 ‘쇠왕(衰旺)’과 ‘중화(中和)’이니 쇠왕을 알게 되니 중화도 이미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말과 같겠다는 거지.”

“그럴싸 한 걸. 그렇게 대입하니까 또 새로운 맛이 나는 군.”

고월이 동조(同調)를 하자 우창도 신이 나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또, ‘삼명지오(三命之奧)’와 ‘오행지묘(五行之妙)’가 절묘(絶妙)하게 짝을 이룬단 말이네. 삼명의 깊은 뜻을 알게 되니 오행의 묘한 이치가 드러난다는 의미가 된다는 말이네.”

“그렇다면 ‘과반(過半)’과 ‘전능(全能)’도 짝을 이뤄서 완전한 마무리가 된다는 뜻이겠군?”

“맞아. 그래서 쇠왕과 중화를 생각하다 보니까, 다시 체용(體用)과 정신(精神)도 이러한 관점으로 연결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네.”

“그렇게 되니까 중간에 끼어 있는 월령(月令)과 생시(生時)가 다시 어색한 손님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걸. 하하~!”

“맞아, 마치 고담준론(高談峻論)으로 이어지다가 갑자기 세속(世俗)의 잡담(雜談)으로 전환(轉換)되는 것과 같은 느낌이기도 하네. 하하~!”

“그렇다면 이후로 나오는 이야기도 어쩌면 앞의 네 항목에 대한 부연설명(敷衍說明)에 지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

“어허~! 이제 배우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의미를 느낀단 말인가?”

“왜? 내가 생각한 것이 일리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이다음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앞의 핵심을 다시 풀어서 설명하는 정도가 되므로 묘미는 부족하다고 할 수가 있겠네.”

“과연(果然).......”

우창과 고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원이 가만히 생각하더니 질문을 던졌다.

“두 싸부님의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이 대목에서 적천수의 핵심(核心)이 모두 실체(實體)를 드러냈다고 봐도 되는 건가요?”

그 말에 우창이 보충해서 설명했다.

“이야기로 본다면, 이 대목이 절정(絶頂)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 다음에는 정리하는 느낌으로 풀어간다고 보면 될 거 같아.”

“그럼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그런 아니지. 이제 구체적으로 활용(活用)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것으로 봐야겠지.”

“활용(活用)이라면, 앞의 이치는 핵심(核心)이고 그 핵심의 이치를 바탕으로 삼고 실제 사주를 만났을 적에 어떻게 풀이를 하면 된다는 해설(解說)이 되는 건가요?”

“맞아~! 틀림없이 이해를 했어.”

“그렇다면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는 천천히 공부해도 되겠네요?”

“그건 또 왜?”

“지금 당장 활용을 할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핵심에 접근해야 하니까 말이죠.”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활용하는 법도 그리 간단하진 않으니까 경도 선생이 수고롭게 써 놨겠지? 사실 왕쇠(旺衰)를 알면 중화(中和)를 전능(全能)으로 부린다는 뜻은 이해를 했다고 하더라도 사주마다 그 왕쇠의 형태가 다르고 상황이 다를진대 일일이 중화의 지점을 찾아낸다는 것은 또 상당한 내공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을 하다가 고월을 향해서 물었다.

“고월은 어떻게 생각하나? 중화의 이치를 더욱 깊이 하기 위해서는 그 다음의 내용도 계속 읽고 익혀야 하지 않을까?”

그러자, 고월이 웃으면서 말했다.

“왜 아니겠나. 실은 지금 핵심을 보여 줬을 뿐이라네. 이것만으로 오행의 오묘한 이치를 깨달은 학자는 상사(上士)라고 하겠지.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봐도 될 것이네.”

“그렇다면 상승(上昇)의 내공(內功)을 갖고 있는 사람은 이미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인가?”

“물론이지. 이미 10년 세월을 오행의 이치와 씨름을 한 학자가 이 대목에 이르러서 활연개오(豁然開悟)를 한다면 그 뒤는 볼 필요가 없는 것이겠지. 이러한 현상을 점수돈오(漸修頓悟)라고 할 수가 있겠네.”

“점수돈오? 그건 무슨 뜻인가?”

“점차로 수행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깨닫게 된다는 말이네.”

“오호~! 그렇다면 우리는 돈오점수(頓悟漸修)라고 하면 되겠나?”

“그렇다네. 공부의 방법은 이렇게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가 있겠지.”

“역시 고월은 우리의 스승이시네. 그렇게 명쾌한 해답을 주니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겠군.”

“무슨 말인가. 우리는 도반(道伴)이라고 해야지. 그래서 탁마상성(琢磨相成)하여 함께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라네.”

“그야 고월의 생각이지 자원과 나는 그렇게 생각이 되지 않는단 말이네. 우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싶기도 하단 말이네.”

“그런 소리 마시게.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영향을 미치는 것이 공부하는 과정임을 그 사이에 잊었단 말인가? 우창은 자원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는 것이 없었단 말인가?”

“아니지, 자원의 재치가 넘치는 이야기에서도 깨달을 것은 많았지.”

“그것 보게. 이렇게 서로 공부하는 것이라네.”

“하긴..... 그렇긴 하네. 여하튼 이제 적천수의 핵심을 이해하고, 오행의 의미를 알고 보니까 과연 앞으로 이것을 더 잘 정리하고 정미(精微)롭게 궁리해야 하겠다는 목적이 생기는 걸.”

“왜 아니겠나. 더욱 열심히 공부하여 장상명주(掌上明珠)로 갖고 놀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자 자원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짝짝짝~! 맞아요. 왠지 공부는 이제부터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서 흥분이 되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어요. 호호호~!”

그렇게 세 사람은 잠시 공부의 여운을 즐기면서 각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초여름의 매미 소리가 적막이 감도는 방 안에 울러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