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 태산(泰山)을 오르는 두 갈래 길

작성일
2017-08-23 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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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0] 태산(泰山)을 오르는 두 갈래 길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달력에 처서(處暑)가 보이니 이제 살만 하지 싶네요. 더위에 잘 지내셨는지요? 기나긴 여름과 씨름하다가 보니 어느덧 가을이 다가왔습니다. 가을 바람에 가을타령을 하고 싶어서 한 마음을 일으킵니다. 2004년에 태산에 갔던 필름들을 스캔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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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산(泰山)이 있으니 오른다.


태산은 중국의 산동성(山東省)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실은 산동이라는 이름도 태산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붙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1532m의 산입니다. 높이로 본다면 강원도 태백산(太白山))이 1567입니다. 그러니 태산이 태백산보다도 낮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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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태백산이 의미가 있듯이, 중국에서는 태산이 의미가 있습니다. 태산은 오악독존(五嶽獨尊)이거든요. 오악은 오방의 산을 말합니다. 그래서 무수히 많은 크고도 높은 산을 두고서 오직 태산을 가장 높이 우러른다는 것입니다. 산은 높이로도 판단하지만 상징성으로도 판단합니다. 태산은 높이로 높은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높은 산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오악의 이름을 간단히 적으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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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東嶽) - 태산(泰山)
남악(南嶽) - 형산(衡山)
서악(西嶽) - 화산(華山)
북악(北嶽) - 항산(恒山)
중악(中嶽) - 숭산(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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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어스가 보여주는 태산의 전경입니다. 태산타령을 하면서 태산 시를 한 수 읊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모두가 다 아는 노래입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 양사언-

외울 수가 있는 몇 안 되는 시 중에 하나입니다. 양사언이 태산을 가보고서 지은 시일 수도 있고, 그냥 하나의 상징으로 태산을 정해 놓고 의미를 부여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태산은 상징의 의미가 큰 곳이므로 가봤든 말았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낭월이 해 본 생각도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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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저마다의 태산은 있기 마련이다.


벗님의 태산은 무엇입니까? 아직 태산이 없다고요? 음... 그러시다면 얼른 태산부터 찾아 보시기를 권합니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태산이 있습니다. 그 산이 어떤 산이라고 하더라도 한 번은 올라야 할 산이라고 하겠습니다. 낭월은 오르고 보니 명리태산이었던 모양입니다. 혹 벗님께서도 명리태산을 향해서 출발하셨다면 동행이십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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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다다르면 길을 만나게 됩니다. 산마다 길이 있으니 산도(山道)가 되겠습니다. 바다에 가도 바닷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해도(海道)입니다. 하늘에도 길이 있나요? 그렇다면 천도(天道)가 되겠습니다. 하늘, 땅, 바다에는 모두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은 고인도 갔던 길이고, 지금 사람도 가고 있는 길이고, 나중 사람도 가야 하는 길입니다.

고인(古人)은 홀로 외롭게 갔던 길이고, 금인(今人)은 고인의 자취를 따라서 가는 길이며, 후인(後人)은 다시 금인의 자취를 따라서 가야 하는 길입니다. 비록 같은 길이지만 저마다의 다른 인연으로 동행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은 길을 가지 않으면 삶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은 삶입니다. 그것을 일러서 「생명지도(生命之道)」라고 하면 되지 싶습니다.

마음으로 동행하겠다면 어디 길을 찾아 봅시다. 그 길은 지도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길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길이 평탄할 수도 있고 가파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길을 어떤 방법으로 택하는가에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중간에 끊긴 길을 만나지는 않으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길 중에는 더 갈 수가 없는 길도 있으니까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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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막힌 길도 만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면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되돌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적합한 말이 있을까요? 도단(道斷)이라고 할까요? 길이 끊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더 갈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갈 수가 없는 길로 들어선 것을 원망 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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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길과 끊긴 길이 같을까요? 비슷하다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다만 막힌 길보다 더 나쁜 상황이 끊긴 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힌 길은 뚫어 본다고나 하겠습니다만, 끊긴 길은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아, 다리를 놓으면 된다고요? 그렇긴.... 하겠습니다....

 

3.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홍길동이 아닌 다음에는 두 길을 동시에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합니다. 일평생을 그렇게 무수한 선택을 하면서 삶의 퍼즐을 맞춰가는 것이 인생이려니 싶기도 합니다. 그 동안 맞춰왔던 퍼즐은 뜻하신 대로 잘 이어졌습니까? 물론 그 중에는 실패를 한 길도 있을 것이고, 성공을 한 길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 봐도 알 수가 있는 것은 낭월도 그 길을 그렇게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벗님께서 태산을 정했다면 이제 함께 출발을 해 보십시다. 어떤 산은 길이 멀고, 어떤 산은 길이 가까울 것입니다. 운전면허의 길은 가까울 것이고, 고등고시의 길은 멀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은 부동산 자격증도 힘들다고 합니다. 임용고시도 만만하지 않다고 하니 따지고 보면 저마다의 태산은 모두 어렵다고 해야 할까 싶습니다. 여하튼 그 길이 길든 짧든, 평탄(平坦)하든 기구(崎嶇)하든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될 일이 아닌 까닭입니다.

일단 길을 정했다면 반드시 두 갈래의 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불교에서는 자력(自力)이냐, 타력(他力)이냐로 구분합니다. 스스로 개척해 갈 것인지 아니면 남이 닦아놓은 길로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두 길은 모두 장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첫 발을 들여놓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서 먼저 심사숙고를 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길이 보인다고 해서 성큼성큼 가다가 되돌아 오려면 힘드니까요.

갈림길에서 갈등하면 그것은 시간낭비일 뿐입니다. 이미 목표를 정했으면 수단에 대해서도 판단을 서둘러서 해야만 하는 것은 머뭇거린다고 해서 신통한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타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서 판단을 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의 계획은 아침에 세우고, 일년의 계획은 봄에 세우고, 평생의 계획은 젊어서 세운다고 합니다. 인생의 길은 출발 전에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4. 홀로 가는 길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길이 홀로 가는 길입니다. 걷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주먹밥을 먹으면서 길만 따라서 걸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처음에 생각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가 보지뭐...'라고 생각합니다. 가볍게 생각하고 출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짧으면 3년, 길면 10년이 지난 다음에 어느덧 스스로 산정(山頂)에 다달아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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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본 것과 들은 것은 기록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또 누군가에게는 편안한 안내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태산을 오르는 길은 6000계단이 있습니다. 하나하나 발로 밟아야만 도달할 수가 있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면서 생각하고 또 깨달음을 얻어가면서 가는 길은 분명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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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게 홀로 가는 길조차도 이미 누군가에 의해서 많은 공력이 들어갔던 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러한 길이 있는지조차도 알 방법이 없었을테니까요. 돌을 다듬고, 깨고, 쪼아서 만든 계단 하나하나에는 그만큼의 땀이 깃들어 있습니다. 공부하는 관점으로 본다면 독서(讀書)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모름지가 다섯 수레에 실을 만큼의 책을 읽으라'고 했으니 삶이 길은 그 정도로 알아둬야 한다는 의미인 것으로 이해를 해 봅니다.

때론 기묘한 풍경을 만나서 홀로 손뼉을 치면서 신명이 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길을 왜 진작에 가지 않았던가를 탄식하면서 말이지요.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학습(學習)이란 이런 것이겠네요.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을 비할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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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길입니다. 말하자면 공도(公道)인 것이지요. 공공의 길이기 때문에 다른 길로 빠져들 가능성도 낮습니다. 물론 길이 끊겼을 확률도 낮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 길이 끊겼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바로 손을 봐서 보수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전한 길로만 가면 됩니다. 이것이 스스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길을 보니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걷다가 되돌아 가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길을 가면서 그런 생각을 열 번 이상 해보지 않았다면..... 아마도 제대로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벗님들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는 게 보입니다. 하하~!

맞습니다. 혼자서 가는 길은 외롭고 고단합니다. 때론 숨이 턱에 닿아서 가슴이 따가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가야 합니다. 스스로 택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에는 쉬엄쉬엄 가면 됩니다. 그래서 착(辶)입니다. 쉬엄쉬엄갈 착이잖아요.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운(運)도 그렇고, 도(道)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책받침으로 되어 있는 글자들은 모두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서두르면 고통이 따른다는 의미도 되는 셈이네요. '쉬엄쉬엄'이라는 말의 반대편에는 '허둥지둥'이 있을 것입니다. 남들은 잘 가고 있는데 자신만 뒤에 쳐진 것 같으면 허둥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만큼 위험도 커지게 됩니다.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가르침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라고 하겠는데, 무리하게 달려가다가 제풀에 지쳐서 쓰러지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풍경이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5. 편승(便乘)하는 길


홀로 가고 싶지만 여러 가지의 조건에 의해서 부득이 편승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비행기가 있고, 자동차가 있고, 배가 있는 것입니다. 바다를 헤엄쳐서 건너려면 힘도 들지만 위험하기조차 하니까요. 그래서 편리하게 타고 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타력입니다. 불교의 수행으로 본다면, 자력은 참선하는 것이고, 타력은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자, 일단 가는데 까지는 편승하기로 했다면 다음으로는 탈 것을 골라야 합니다. 버스, 택시, 기차, 기차라도 고속도 있고 저속도 있고, 자전거까지 있습니다. 그 모두는 타력에 속합니다.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는 목적지의 거리와 주머니 사정의 타협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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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을 타력으로 올라가려면 삭도(索道)가 있습니다. 새끼줄 삭입니다. 그러니까 새끼줄로 만든 길을 이용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영어로는 곤돌라라고도 합니다. 여하튼 줄에 매달려서 가니까 케이블카라고 해도 안 될 것은 없습니다. 이것을 타기로 했으면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다가 다시 후회하고 돌아오는 수고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타력은 그래서 좋다고 하겠네요. 물론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백 가지는 됩니다.

가장 큰 단점은 내 생명을 남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재수가 없으면 줄이 끊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중간에 정전이라도 되면 그대로 멈추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잖아도 가끔은 사고도 나지요. 그런 것을 보면 두렵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력으로 가기 어려운 태산만댕이에는 이것을 타는 것을 망설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설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으랴...' 하거나, 혹은 '사고가 나더라도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것은 비행기를 타도 마찬가지이고, 꾸벅꾸벅 졸면서 운전하는 고속버스를 타도 마찬가지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죽을 확률이 차를 타고 가다가 죽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최선이라면 감수해야 한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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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중천문(中天門)이라는 것을 알고 탑니다. 그러나 주변은 온통 안개 속에 휩싸여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면 자신이 과연 잘 가고 있는 것인지,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다시는 돌아 올 수가 없는 길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면 문득 그냥 걸어갈 것을 괜히 편하게 하려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싯다르타가 수행자의 길로 가기로 작정하고서도 이러한 일은 있었습니다. 자력으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멀고도 힘든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깨달은 이들을 찾기로 했지요. 그렇게 해서 찾은 스승이 '알라라 칼라마'였고, 다음에 만난 스승은 '우다카 라마푸타'였지만 그 둘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타력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더랍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당연히 자신이 믿을 만한 안내자를 따라 간다고 하더라도 중간에서 의혹에 잠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황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고 합니다. 안개 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스승을 따라 가는 것이 잘 가고 있는 것인가 싶은 생각이 들 무렵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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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불안한가 싶어서 동행을 보면 그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찮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두려워지게 됩니다. 이것이 여행이고 수행이고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기도 하면서 가는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오히려 될대로 되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편안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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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거나 말거나 시간은 흐르고 길은 이어집니다. 결국은 삭도는 목적지인 중천문에 도달하게 되고 비로소 안도를 하게 됩니다. 이제 1차 관문은 무사히 도달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여기까지는 일단 무사하게 도착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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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벽부터 걸어서 출발했던 일행과도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굼뱅이는 굴러서 가고, 노루는 뛰어서 가고, 제비는 날아서 갔지만 모두 만나는 곳은 섣달 그믐날이더라고 하나요? 딱 그 이야기가 생각 났습니다. 힘들게 걸어서 첫 관문에 도착한 사람이나 편하게 위험은 감수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도착한 사람이나 그 자리는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면 걸은 사람만 손해를 본 것일까요?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갈등과 고통을 겪었을텐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남요. 신체적으로 한 곳에서 만난 것은 같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논한다면 이미 두 팀의 체험은 전혀 다른 세계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포기한 것이 타력을 이용한 것이고, 목적지에 방점을 찍었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반면에 자력으로 걷기를 택한 경우에는 과정에도 큰 비중을 두게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를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후에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여하튼 우리는 지금 태산을 향해서 오르고 있고, 그 첫 번째 관문에 다달았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타력은 없습니다. 그 흔한 대나무 가마도 보이지 않더군요.

가끔은 선생에게 맡기면 모두 다 알아서 해 주고, 마무리까지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혼자 웃을 때가 있습니다. 선생의 노력도 여기까지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격려를 해 줍니다만 속으로는 웃습니다.

'아이구 인간아~ 아직도 갈 길이 이렇게 남아있는데... 쯧쯧~!'

그래도 법화경(法華經)의 화성유품(化城喩品)을 생각하면서 인내심으로 기다려 주기도 합니다. 제자는 참으로 여리기도 하거든요. 그래도 언젠간 끝을 내고 마는 것을 보면서 비로소 가르치는 자의 보람을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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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휴식으로 마음을 가다듬고는 다시 길을 재촉합니다.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거든요. 물론 도저히 더 걸을 상황이 되지 않는 길손은 다시 되돌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첫 관문에서 되돌아 가기도 합니다. 낭월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그랬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봐서 벗님도 아마 모르긴 해도 두어 번은 망설였을 경험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실까 싶습니다. 하하~!

 

6. 마지막 남은 길


이 단계를 등산으로 치면 8부 능선에 오른 것이고, 수행으로 치면 초견성(初見性)이라고 할 수 있지 싶습니다. 아, 고시로 치면 1차 합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하튼 절반의 농사는 마친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나아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 보장되는 것이고, 물러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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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고인들의 흔적이 담긴 글귀를 음미할 여유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은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 길이 아니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휴식도 일이라는 말은 정답입니다. 휴식이 없는 일은 고문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이렇게 쉬엄쉬엄 가다가 보면 어느 사이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쯤에서 허둥대다가는 자칫 안개 속에서 길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길을 가다가 잘 보이지 않으면 잠시 쉬면서 고인의 흔적을 추적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천지자연의 이치가 쉬라고 하면 그것은 계절로 보면 겨울이고, 길손에게는 주막집이며, 태산나그네에게는 안개라고 봅니다. 그렇게 잠시 쉬노라면 또 충전이 되고 하늘도 열리고 길도 드러납니다. 다시 생기충만하여 길을 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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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주인일쎄~!(五嶽獨尊)」

흐뭇한 마음으로 한 번 더 쳐다 봅니다. 뭔가 안개 속에서나마 가닥이 잡히는 느낌을 가져 보셨다면 이런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주인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계속해서 길을 가면 됩니다. 이제 홀로이지만 홀로가 아닙니다. 고금(古今)의 현성(賢聖)이 모두 도반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굽이를 돌고 벼랑을 건너면서도 흔들리지 않으면 됩니다. 그렇게 점차로 정상은 가까워집니다. 공부는 마무리가 되어 갑니다. 가끔은 뭔가 깨달았다는 생각도 살짝 듭니다. 비로소 공부하는 맛이 이런 것이겠거니... 싶은 순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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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 관문도 통과 했습니다. 이미 일을 마치고 중생교화를 하러 하산하는 도인도 보입니다. 거의 다 되어 갑니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단계를 불퇴경지(不退境地)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바로 자리가 이 자리입니다. 꿋꿋하게 허리에 힘을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깨달음이 일상이 되는 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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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했습니다. 정상입니다. 이제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수많은 인연들의 얽힘이 그곳에서도 가득합니다. 자물통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서 정상까지 와서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중생심을 보게 됩니다. 정상에 왔다고 해도 모두 같은 정상이 아닌 모양입니다. 그러한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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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황묘(玉皇廟)」

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입니다. 옥황상제는 하늘의 임금입니다. 신중의 신이요, 하늘 중의 하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옥황전의 뜰을 밟고 올라서면 내가 하늘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정상에 도달했다는 것은 내가 신과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알고 나면 신의 행사를 이해할 수가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어느 분야건 도가 트면 모두 도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태산이 왜 오악독존인지는 이곳을 보면 알게 됩니다. 옥황상제가 계시는 곳이기 때문에 과거의 제왕들이 이 먼 길을 달려왔던 것입니다. 천자(天子)는 하늘의 아들이므로 부친에 해당하는 옥황상제를 뵙고 인증을 거쳐야 비로소 천자의 권위가 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산들은요? 남악, 서악, 북악, 중악을 통털어서 황제가 기도하는 곳은 태산 뿐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상징적인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면, 그러니까 자신의 영역에서 모든 이치를 알고 나면 비로소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로소 옥황상제를 만날 능력이 된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경지에 도달한 사람을 뭐라고 합니까?

「입신(入神)」

맞습니다. 입신이라고 합니다. 신의 경지에 들어갔다는 말이고,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러한 경지가 있음을 알지만 도달하는 것은 누구나 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리고 벗님도 이러한 인연이 주어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낭월도 이러한 경지를 깨닫게 위해서 올 가을에도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태산을 올랐던 흔적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 저마다 가야 할 길이 있다면 그 길에서 뜻한 바를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알찬 가을이 되시기를 처서가 들어온 날에 폭우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한 생각을 들려 드렸습니다. 그래서 또 행복한 낭월입니다. 고맙습니다.

 

2017년 8월 23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