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6] 2017년의 망종(芒種) 풍경

작성일
2017-06-05 07:3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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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 2017년의 망종(芒種)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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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이 망종(芒種)이라서 망종에 대한 생각을 해 봅니다. 요즘이야 먹을 것이 옛날에 비해서 넘쳐나서 방송만 틀면 먹깨비들이 나와서 밤낮없이 퍼먹어 대고 있습니다만, 절기의 이름이 붙여질 즈음에는 어떠했을지를 생각해 봤습니다.

망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보리이고, 보리를 생각하면 보릿고개가 자동으로 떠오르기 때문에 겹쳐지는 이미지라고 하겠습니다. 오죽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었으면, '보리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말까지 생겼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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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삶을 곤궁하게 견뎌 온 다수의 베이비부머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일 것으로 보겠습니다. 전후(戰後)의 모든 것이 부족한 시절을 견디려니 뭣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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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종 이틀 전에 만경뜰에서 만난 보리밭입니다. 실은 보리밭을 보고서 망종이 다가왔음을 생각해 본 것이기도 하네요. '보리가 익었으니 망종이로구나....' 싶었지요.

출발한 목적은 깊어가는 가뭄에서 보이는 풍경과, 내친 김에 새만금의 사막 분위기를 보러 갔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오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망외소득이기도 하고, 나들이의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 여정(旅程)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마침 오늘이 망종인 것을 보면서 이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나 적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라도 그만이지만 알아도 해롭지 않을 이야기려니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말하자면, 「2017년형 망종타령」인 셈입니다. 하하~!

 

1. 망종(芒種)의 사전적 이해부터~


망종은 절기 중에서는 오월(午月)에 해당하고, 양력으로는 대략 6월 5~7일 무렵이 됩니다. 그 중에서도 평균으로 본다면 6일이 가장 많다고 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여름철이 시작되는 계절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세시풍속사전에 설명된 내용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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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24절기 중 아홉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소만(小滿)과 하지(夏至) 사이에 들며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 6일 무렵이 된다. 태양의 황경이 75도에 달한 때이다. 망종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이 시기는 모내기와 보리베기에 알맞은 때이다. 그러므로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절후이다.


내용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는 속담이 있다.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망종을 넘기면 보리가 바람에 쓰러지는 수가 많으니 이를 경계하는 뜻도 담고 있다.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 “햇보리를 먹게 될 수 있다는 망종”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망종까지는 보리를 모두 베어야 빈터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할 수 있다. 또 이 시기는 사마귀나 반딧불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매화가 열매 맺기 시작하는 때이다.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이 무렵에는 보리농사가 많은 남쪽일수록 더욱 바쁘다. 그래서 이때는 “발등에 오줌 싼다.”라고 할 만큼 일년 중 제일 바쁜 시기이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며, 농가는 모내기 준비로 바쁘다.



망종에는 ‘망종보기’라 해서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음력 4월에 망종이 들면 보리농사가 잘 되어 빨리 거두어 들일 수 있으나, 5월에 들면 그해 보리농사가 늦게 되어 망종 내에 보리농사를 할 수 없게 된다. 곧, 망종이 일찍 들고 늦게 듦에 따라 그해의 보리수확이 늦고 빠름을 판단하는 것이다.


망종이 4월에 들면 보리의 서를 먹게 되고 5월에 들면 서를 못 먹는다.”고 하는 속담이 있다. 보리의 서를 먹는다는 말은, 그해 풋보리를 처음으로 먹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양식이 부족해서 보리 익을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풋보리를 베어다 먹었다고 하니 그때의 삶을 엿보이게 한다. 그래서 망종 시기가 지나면 밭보리가 그 이상 익지를 않으므로 더 기다릴 필요 없이 무조건 눈 감고 베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보리는 망종 삼일 전까지 베라.”는 말이 있다.


 


 망종에 대한 의미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싶습니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보리와 벼네요. 그리고 이것은 이 땅의 인간이 오랬동안 먹고 살아야 했던 주식이라는 점에서 더 이상의 이론이 없겠습니다.

 

2. 망종의 태양각도는?


태양각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지만, 하지(夏至)에는 23.5도가 된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서 지축이 바로 선다면 없어질 것이지만 그것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고, 아마도 외계에서 행성이 와서 충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만 해 보고 있습니다. 여하튼 현재의 지축이 기울었다는 것을 감안하여 나온 각도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하지가 15일 남았습니다. 하지가 되면 태양은 북회귀선(北回歸線)에 도달하고는 점차로 하향하겠네요. 문득 예전에 대만에서 봤던 북회귀선이 생각납니다. 파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데 마침 인화를 해 뒀던 사진이 사진첩에서 반갑게 맞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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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찍은 자신의 사진을 들고 있습니다. ㅋㅋㅋ

한참 더운 8월의 폭염에 단체로 자유여행을 했던 시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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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6년 8월에 대만을 일주하던 시절이었던가 봅니다. 쪼맨한 디카를 들고 일행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을 화인이 찍었나 싶습니다. 관련 여행기는 한담319번에 포함되어 있음을 찾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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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길이를 보느라고 찍은 사진이었지 싶은데, 이미 8월이라서 하지가 지나간지도 두 달이나 되었네요. 그러니 정확하게 하지날의 풍경이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그나저나 망종 이야기를 한다면서 웬 하지에 다가 북회귀선 추억여행까지. 이렇게 어디로 튈지는 낭월도 모르는 망종 이야기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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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앞으로 보름이 지나면 하지가 되고, 태양이 저 선을 통과한다는 것은 확실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은 망종이라는 것이네요. 대략 주먹구구로 따져봅니다. 보름 동안에 몇 도나 이동하게 되는지도 궁금하더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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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이런 그림도 하나 만들어 봤습니다. 여름과 겨울의 기온에 따라서 태양의 크기를 표현해 봤습니다. 그런대로 느낌이 살아있습니까? ㅋㅋㅋ  보름 후에 태양이 23.5도에 온다면, 매월 3.9도씩 이동을 한다고 치면, 보름에는 약 2도 정도가 이동하게 되므로 망종에는 21.5도쯤 된다고 얼버무리고, 망종에는 어떤 풍경어 전개되는지 다시 만경뜰로 나가보겠습니다.

 

3. 밀과 보리가 익어가는 계절


맞습니다. 망종에는 맥류(麥類)가 결실을 이루는 계절이 맞습니다. 황금들판은 가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합니다. 맥류라고 하면, 15000년 전부터 재배를 했던 곡식으로 쌀보리, 겉보리, 밀, 호밀, 귀리 등을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특성은 망종 무렵에 결실을 한다는 것이고, 곡식의 끝에는 꺼럭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리타작을 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신나게 도리깨질을 한 다음에는 온 몸을 파고 드는 꺼럭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물 속으로 들어가거나 등물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던 고통이지요. 도리깨질은 해 보셨는지요? 더운 날의 보리타작이 고통으로만 기억이 되는 것은 굶주림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까닭이려니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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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는 이미 완전히 결실이 되었습니다. 원래 망종 3일 전에는 보리를 다 베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참고하더라도 얼른 베어야 할 시간임을 의미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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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 옆에는 밀밭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직접 보니까, 우리밀로 만든 국수나 빵에 대해서 약간의 신뢰감이 생기기도 하네요. 요즘 밀농사를 짓는 것이 맞기는 한지 의심이 없지 않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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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을 보면 뭐가 생각나십니까? 빵? 국수? 아니면, 부침개? 만약 이러한 생각이 먼저 드셨다면 시골생활을 하지 않으셨거나, 젊은 벗님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나이가 좀 드셔서 50고개를 넘기신 시골출신의 연륜이 쌓였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밀서리'일 테니까요. 밀서리를 아시는지요?

70%정도 익은 밀을 잘라서 모닥불에 구운 다음에 손바닥에 이삭을 올려놓고 싹싹 부비면, 밀알이 노릇노릇하게 드러나는 그 장면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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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당시 한국의 공통적인 시골풍경이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그러한 이야기를 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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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탐스럽기도 합니다. 문득 연지님이 한 마디 합니다.

연지 : 이거 조금만 잘라가면 안 될까?

낭월 : 뭐할라고?

연지 : 궈 먹게. 호호~!

낭월 : 주인이 있으면야 팔으라고 하겠지만 아무도 없으니...

연지 : 옛날 생각 나지?

낭월 : 나고 말고, 그래도 굽는 것보다는 보는 것이 더 좋다.

연지 : 고소한 맛이 그리운데....

낭월 : 배가 고픈 시절은 아니잖아. 눈이 고플 뿐이지. 하하~!

연지 : 그게 뭔 소리야? 눈이 고프다니?

낭월 : 이러한 풍경을 보려면 이렇게 찾아와야만 가능하니 말이지.

연지 : 맞아, 옛날에는 아무 곳에서나 볼 수가 있었는데...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은 공감대를 만드는데도 최고의 효과인가 싶습니다. 다만 이번 이야기는 「2017년」이야기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옛날의 코드를 여기에서 찾기도 하고 지금의 상황을 보면서 즐기기도 한다고 하겠습니다.

허리 아프게 낫질을 하지 않아도 되고, 비가 지나가고 나면 온 식구가 마당에서 보릿가리를 헐고 볕을 쏘이지 않아도 됩니다. 보리든 밀이든 밭에서 바로 자루로 들어갑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망종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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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는 것 같네요. 보릿꺼럭을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되고, 타작한 것을 바람에 날리기 위해서 바람이 부는 방향을 가늠하지 않아도 되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힘들어서 농삿일을 하기 싫으신 마음이 있다면 이러한 것을 보면서 귀농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시라고 넌즈시 권합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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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을 보니까 또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당시 미국밀이라는 종자를 심어서 수확을 거둔 다음에 아버지는 그것을 지게에 짊어지고 방앗간에 갔습니다. 당시의 방아간은 2km는 걸어야 했는데, 처자식들 배불리 먹는 것을 보려고 밀을 빻으러 가셨지요.

그리고 낭월도 조금 짊어지고 동행을 했습니다. 어린 놈이 짊어지면 얼마나 졌겠습니까만 그래도 힘껏은 짊어 졌겠습니다. 그리고 방아간에서 열심히 밀가루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잠시 후에 언쟁이 벌어졌습니다.

관리자 : 자, 밀가루가 다 나왔습니다.

아버지 : 뭐라카능교? 지금 이렇게 펑펑 나오고 있는데 기계를 끄마 우짜능교~!

관리자 : 아이구 아저씨~! 다 나왔씨유~!

아버지 : 무신노무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능교. 퍼떡 기계를 돌리소~!

아버지께서 그렇게 화를 내신 모습을 본 것도 참 오랜 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내용은, 밀을 빻고 있는데 방아간을 관리하는 사람이 기계를 끈 것입니다. 아버지의 생각으로는 아직 더 나와야 하는데, 기계가 멈춰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항의를 하신 것이지요. 그 소란에 주인어른도 나오셨습니다.

물론 기계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짊어지고 간 것보다 더 가벼운 짐을 지고 귀가했습니다. 정말 그 장면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화가 납니다. 그야말로 눈뜨고 우롱을 당하는 것을 봐야 했으니까요. 그래도 객지생활에서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까 행여라도 그놈들이 자식에게 해코지를 할까봐 그러셨답니다........

지금이라도 부친께서 살아계신다면 그 억울함을 풀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가슴을 저립니다. 혹 살아오시면서 그런 경험을 하셨던 적은 있으셨는지요? 아마도 하도 밀이 귀하다 보니까 따로 빼 내어서 팔아먹던지 칼국수라도 해 먹고 싶었던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더라도 미리 양해를 구하고 두어 됫박 사거나 얻어야 할 일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날강도 노릇을 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그 후로 오랫동안 부친께서는 그 억울함을 품고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해(癸亥)일주가 까닭없이 당한 억울함과, 노동과, 가족의 행복을 겸해서 생각하면서 어찌 쉽사리 잊으셨겠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머니께서도 그 정황을 아셨습니다.

아버지 : 이걸 우야꼬. 지서에 고발해서 뒤짚어 엎어뿌까?

어머니 : 그렇기는 하겠지마는..... 마 잊어버리소~

아버지 : 억울하다카이~!

어머니 : 난들 왜 모르겠노. 그래도 자식 키우는 사람이 맘대로 다 할 수도 없지...

아버지 : 그냥 이대로 참아야 하겠나?

어머니 : 옛날에 도끼 잃어버린 사람이 저승에 갔더란다.

아버지 : 무신 뚱딴지 같은 소리고?

어머니 : 염라대왕이 보니 이름이 같아서 잘 못 데려 왔더라 안카나.

아버지 : 그래서 우짜노?

어머니 : 염라대왕이 고마 집으로 가라 카더란다.

아버지 : 그래?

어머니 : 그 양반이, '집에 갈래도 노잣돈이 없습니다.' 했단다.

아버지 : 그래서?

어머니 : 염라대왕이 주머지를 툭 던져 주면서 '이거 갖고가거라~!' 카더란다.

아버지 : 염라대왕도 할 짓이 없던갑다.

어머니 : 그 사람이, '웬 돈입니까?' 하니까, 염라대왕이 '자네 도끼값이네.' 카더란다.

아버지 : 무슨 말이고?

어머니 : '모년 모월에 아무개가 자네 도끼를 훔쳐갔는데 그값을 받아 놓은 거라네.' 

아버지 : 그라이까, 죽어서 저승의 노자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란 말이가?

어머니 : 맞다. 알았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머니도 웃고, 아버지도 웃었던 장면이 생각납니다. 이것이 망종의 추억에 묻혀 있었다는 것을 오늘 새삼스럽게 알게 되네요. 추억의 힘은 참으로 강렬하고 오래도록 이어지는가 싶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고노무 자슥도 죽었을테니.... 지금쯤은 회계가 끝났지 싶습니다. 모쪼록 베풀고 살아야 한다는 교훈과 함께 때로는 억울하게 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던 한 시절의 초상이라고 하겠습니다. 하하~!

 

4. 밀보리를 벤 자리에는 벼를 심고.


망종이 때론 망종(忙種)이라고도 합니다. 바쁠망(忙)을 희화한 것이기도 하겠습니다만, 뭐가 그리 바쁘겠는가 싶은 도회성장향의 벗님이라면 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리 베랴,
타작하랴,
또 논을 갈랴,
써레질을 하랴,
논두렁을 꿰매랴, 
일꾼 사서 모를 심으랴.

이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눈코뜰 사이도 없으니 발등에 오줌을 눈다잖아요. 너무 바빠서 소변을 제대로 볼 겨를이 없어서 그냥 선 채로 일을 본다는 뜻이니 그 상황을 모르신다면 아마도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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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익은 보리는 베어내고 논을 다뤄놨습니다만, 아직도 덜 여물은 보리는 마지막으로 미뤄 둔 모양입니다. 물론 덜 익은 것이라고는 해도 한장딴이면 다 익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우선순위는 자동으로 정해지는 셈이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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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먼저 모를 심은 곳은 이미 모가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상황이고, 이제 막 로타리를 마친 논은 물을 가득 잡아 놓았습니다. 아무리 가뭄이 심하다고 해도 이 동네에서는 남의 마을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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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를 다 심은 논의 귀퉁이에는 버려진 모들이 말라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상태로 봐서 어제 쯤에서 모를 심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은 얼마든지 살아날 수가 있는 생명력을 그대로 포함하고 있는 것을 보니 또 마음이 짠~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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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모 : 어이~! 옆에 친구, 아직은 살아 있나?

을모 : 그래 아직은 숨이 붙어 있다. 왜?

갑모 : 이대로 말라 죽어버리기에는 억울하지 않아?

을모 :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한이 있나. 운명이려니 해야지.

갑모 : 이게 무슨 운명이야, 생죽음이지.

을모 :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갑모 : 무슨 도인같은 말인겨?

을모 : 우리만 이렇게 선택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

갑모 : 그럼?

을모 : 복숭아, 밤, 사과 등의 과일들도 마찬가지야.

갑모 : 뭔 소리여. 그야 제 엄마가 어쩔 수가 없어서 솎아내는 거잖여.

을모 : 따지고 보면 우리도 우리 엄마가 솎아 내는 거야.

갑모 : 참 내, 말 같은 말을 해야지 처음부터 정확하게 모를 부었어야지.

을모 : 그건 농부도 모르는겨. 모두 발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갑모 : 그래도 기왕 다 자랐으면 심어줘야 할 거잖여.

을모 : 그야 우리만의 생각이지. 그럼 안 되거든.

갑모 : 그건 또 무슨 남은모 말라비틀어지는 소리랴?

을모 : 우리가 저 틈새를 비집고 심어지면 지금 당장은 살겠지만....

갑모 : 그럼 된 거 아녀? 가을에 결실을 거두면 되지.

을모 : 우리 때문에 다른 형제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잖아.

갑모 : 아, 그런가? 그 생각은 못 했군.

을모 : 그리고 생각해 보면 이나저나 죽는 건 마찬가지야.

갑모 : 하긴..... 솥에서 죽으나, 논두렁에서 죽으나 같긴 하지.

을모 : 그러니까 조금 빨리 죽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갑모 : 듣고 보니 묘한 설득력이 있네.....

잠시 주저앉아서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논두렁에도 이야기가 한 바가지입니다. 그러나 해는 자꾸만 서산으로 내달리니 연지님 저녁 약속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끊고 다시 걸음을 재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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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열심히 모를 심는 곳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모자 간인듯 싶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017년 망종의 풍경입니다. 이양기(移讓機)에 비료를 넣는 것은 또 처음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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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만 확대해 봤습니다. 비료포대가 잘 안 보여서입니다. 이제 확실하게 잘 보이죠? 알고 봤더니 이렇게 비료랑 같이 모를 심는 이양기가 최신형이라고 하네요. 예전 구형은 그냥 모만 심었는데 옵션이 추가되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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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호흡이 척척 맞습니다. 모판을 들어서 올려주고, 위에서는 받아서 쟁이는 모습이 문득 '포정해우(疱丁解牛)'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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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비료와 모판을 가득 싣고는 또 모를 심습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대견한 듯이 바라봅니다. 얼마나 행복하실까 싶습니다. 이미 두 모자의 가슴 속에는 가을의 황금들판이 일렁이고 있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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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을 하다가 문득 카메라를 바라봐 줍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사진가가 아니지요. 그래서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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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모를 심지 않아도 되고,

일꾼들 사느라고 저녁마다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고,

못짐을 팔아프게 던지지 않아도 되고,

못줄 잡고 넘기라고 소리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는 시절입니다.

이러한 풍경도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또 어떻게 달라질까요?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그 자리에 앉아 있을까요? 그것도 자못 궁금해 지긴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2017년 6월 2일의 사진을 찍은 날이란 말이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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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가득 실린 모판들이 자기 순서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맨 마지막이 아니기를 바라기도 할 것 같습니다. 좀전에 본 논두렁의 모포기들의 대화가 문득 떠올라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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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은 점점 채워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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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자리를 잡은 모포기는 이제 모가 아니라 벼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올 여름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은 무럭무럭 자라서 가을의 결실을 기대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5. 바다에서 황금들판까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루에 역사를 압축해서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얻은 이미지로 시간을 압축해 봤습니다.

1) 갯펄의 간석지(干潟地)의 상태에서
2) 둑을 막아서 간척지(干拓地)로 만든 다음에
3) 물을 담아 소금기를 우려내고....
4) 모를 심어서
5) 결실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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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 둑 너머에서는 여전히 간척지를 농토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논으로 만드는 것과, 그대로 자연 상태로 두는 것의 차이는 논외로 합니다. 다만 이렇게 망종의 풍경을 보면서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리고 자연은 여전히 톱니바퀴를 잘도 맞춰 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얼른 가뭄이 해소되어서 올해도 풍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벗님의 공부도 나날이 일취월장(日就月將)하셔서 황금들판을 바라보는 가을이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7년 망종지일에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