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제19장. 오행쇠왕의 중화/ 3. 출생(出生)의 환경(環境)
작성일
2017-05-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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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제19장. 오행쇠왕(五行衰旺)의 중화(中和)
3. 출생(出生)의 환경(環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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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자원이 쉽게 알아듣도록 설명한다는 것이 어려웠지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설명해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다시 생각하면서 말했다.
“내가 이해한 것을 설명해 볼 테니 잘 들어봐. 비유하면 갑을(甲乙)이 인묘(寅卯)월에 태어나면 왕성(旺盛)하다고 하고, 해자(亥子)월에 태어난다면 강성(强盛)하다고 하는 것은 알겠지?”
차근차근 말을 해주는 것을 들으면서 자원도 이해하려고 집중했다. 우창이 애써서 알아듣게 말을 해 주자 반가워서 얼른 답했다.
“그럼요~! 그 정도는 알죠.”
“쇠왕(衰旺)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비록 득령(得令)을 했더라도 강왕(强旺)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쇠약(衰弱)한 경우조차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가 되었어.”
“정말 어려운 이야기예요. 그걸 어떻게 판단한단 거죠?”
“말하자면, 왕이불왕(旺而不旺)이라, 왕성해 보여도 왕하지 않은 경우가 있고, 쇠이불약(衰而不弱)이라, 허약해 보여도 또한 허약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거야.”
“그러니깐요. 그것을 어떻게 머리로만 판단을 해서 알 수가 있느냔 말이죠.”
나름대로 설명하다가 답이 궁색해진 우창이 고월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무래도 고월이 어떤 사례를 보여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런 자료가 있을까?”
가만히 듣고 있던 고월이 말했다.
“자료야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 하하~!”
“그렇다면 하나 만들어서 보여주시게 자원에게 설명을 해 주려고 해 봐도 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는 것만 알려 준 셈이 되었네. 하하~!”
고월이 잠시 생각하다가는 사주 하나를 적었다.
丙 庚 丁 辛
子 午 酉 卯
“이러한 사주가 있다면, 왕쇠를 어떻게 판단할 수가 있는지 살펴보고 답을 해 보시게.”
그러자 자원이 먼저 나섰다.
“우선 진싸부가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건드려 볼께요.”
“아, 그것도 좋겠군. 어디 설명해 봐.”
자원이 사주를 들여다보면서 생각이 나는 대로 말했다.
“경금(庚金)이 유월(酉月)의 금왕절(金旺節)에 태어났으니까 왕성(旺盛)한 것으로 봐야 하겠어요.”
“그렇지.”
우창이 맞장구를 치자 자원이 우창을 보고 한 번 미소를 지은 다음에 계속해서 풀이를 했다.
“그런데, 앉은 자리의 오화(午火)가 부담을 줘요. 더구나 월간(月干)의 정화(丁火)와 시간(時間)의 병화(丙火)는 더욱 힘들게 하는 모습이예요. 이렇게 되면 오히려 왕(旺)이 변해서 약(弱)으로 되는 것일까요?”
“내가 봐도 굉장히 어려운 사주인 걸. 고월에게 설명을 부탁해야 하겠네.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건가?”
“심리적으로 판단을 해 보면 어떨까?”
“아하, 심리적으로요? 그렇다면 또 도전해 볼께요.”
“그래 보셔봐.”
“일간(日干)은 경금(庚金)이라 중심이 있어요.”
“그리고?”
“월간(月干)에 정관(正官)인 정화(丁火)가 있으니까 그가 하는 말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자원이 최대한 생각을 집중해서 풀이하자 우창이 격려를 했다.
“옳지 잘 한다.”
“다음으로 일지(日支)에도 오화(午火)가 있어 정관(正官)이니까, 이 또한 괘념(掛念)이예요. 그래서 기억하는 힘이 상당하다고 봐요.”
“오호~! 그리고?”
“시간(時干)에는 편관(偏官)인 병화(丙火)가 있어서 인내심이 무척 강하다고 해야 하겠어요.”
“그럴싸한 걸. 하하~!”
고월이 자원의 해석에 동의를 했다. 흥이 난 자원이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월지(月支)의 유금(酉金)은 경쟁심(競爭心)이 강하다고 봐요. 연간(年干)의 신금(辛金)도 마찬가지이므로 관리하는 능력도 경쟁적으로 한다고 봐야 하겠어요.”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하면 잘 어울릴까?”
“국록(國祿)을 먹는 관원(官員)을 해도 잘 하겠어요.”
“그렇게 해석을 해도 되겠군. 그런데 쇠왕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을 할 수가 있을까?”
“사실, 그것은 참으로 어려워요. 아무래도 쇠한 쪽으로 봐야 하겠어요. 특히 인성(印星)에 해당하는 토(土)가 한 점도 없다는 것은 비록 월지(月支)의 계절(季節)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누릴 힘은 없는 것으로 봐야 하겠잖아요?”
“맞아. 그가 일반인의 집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살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고월의 말에 자원이 입을 닫고는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우창을 가리켰다.
“자원이 아무래도 버거운가 보군. 우창이 설명해 보게.”
“그렇겠지, 사실 나도 자신이 없는 걸. 그래도 생각이 나는 대로 말을 해 보겠네. 우선 평민으로 태어났다면 고단한 삶이 될 것으로 봐야 하겠지. 사대부에 태어났더라면 벼슬을 맡는다고 하더라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위해서 할 수가 있을 것 같군.”
“그렇다면 왕가에 태어난다면?”
“엉? 왕가라면 왕자로 태어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마음대로 방종(放縱)하고 폭군(暴君)으로 세상을 어지럽힐까? 아니면 자중(自重)하고 신중(愼重)하게 처신해서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릴까?”
“사익(私益)보다는 공익(公益)을 중시할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성군(聖君)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겠네. 사주에는 어딘가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
“환경에 따라서 이 사람의 지위는 달라질 수가 있다는 말인가?”
“당연하지 않을까 싶군.”
“좋은 사주이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고단한 사주라고 하겠지. 마음을 편히 하고 하루도 쉴 수가 없는 형상이라고 보이는 것은 잘못 본 것일까?”
“아니, 잘 보셨네. 사실 평생을 생사(生死)의 존망(存亡)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긴장하고 살았다고 볼 수가 있을 것이네.”
“이 명식의 주인공은 누구인지 아는가?”
“건륭(乾隆)이라는 왕의 사주라고 알려져 있다네.”
“왕의 사주라고 하기엔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그렇기도 하지.”
“이렇게 무력한 사주를 갖고도 왕 노릇을 한단 말인가?”
“물론이라네. 사람이 살아가는 일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야 환경(環境)이 아닐까?”
“그렇지. 환경이 왕가(王家)임을 고려한다면 허약하더라도 왕이 될 수가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될 거네.”
“아니, 내 생각에는 왕의 사주는 뭔가 대단히 색다른 모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지.”
“보통 그렇게들 생각하지. 사주의 격이 높으면 삶의 지위도 높을 것이라는 착각(錯覺)을 한단 말이야.”
“그렇다면 반드시 그러한 것도 아니란 말인가?”
“흔히들 그러한 생각으로 선입견을 갖고 있지만 막상 사주를 들여다보면 천태만상(千態萬象)이라네. 하하~!”
“과연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깨닫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하겠네. 제왕의 사주나 고단한 평민의 사주나 다를 바가 무엇이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생각해 보게. 그날 그 시간에 태어난 사람이 건륭제(乾隆帝) 한 사람 뿐일까?”
“그렇지 않겠지. 천하는 넓은데 어찌 한두 사람이라고 하겠나.”
“당연하지. 그래서 사주만으로 지위(地位)나 부유(富裕)를 논한다는 것은 자칫 황당무계(荒唐無稽)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이네.”
“결국 명학(命學)만으로 모든 부귀빈천(富貴貧賤)을 단언(斷言)한다는 것은 무리수(無理數)가 된다는 이야기인가?”
“물론이네. 그런 법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보면 아마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네.”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자원이 끼어들었다.
“두 싸부의 귀한 말씀을 듣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 것인가 하고 말이죠.”
자원의 말에 우창이 반갑게 물었다.
“자원에게 무슨 기발한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네. 어서 말해봐.”
“한 날 한 시에 밭에 콩을 심었는데 어떤 콩은 100알이 달리고, 또 어떤 콩은 10알이 달린다면 이것은 같은 사주로 태어났더라도 서로 다른 삶을 살 수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그럴싸한 걸.”
우창이 동조하자. 자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콩밭이라도 거름기운이 많고 습기가 적당히 있는 곳에 떨어진 콩은 왕가에 태어난 사람과 같고, 한쪽 구석의 메마른 곳에 떨어진 콩은 빈한(貧寒)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교육도 못 받고 자라나서 겨우 연명(延命)이나 하는 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저처럼 말이죠. 호호~!”
“아무도 돌보지 않는 삶은 고단함을 포함하지만, 또한 무한(無限)의 자유로움도 공유(共有)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
“물론이예요. 호호~!”
“그것을 고인은 비단옷을 입은 돼지에 비유하곤 하지.”
“예? 돼지가 비단 옷을 입다니요?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예전에 하늘에 제사를 지낼 적에 제물로 돼지를 잡아서 바쳤다는 말을 듣지 못했나?”
“아, 물론 들어봤죠. 그런데 비단 옷이라는 말은 금시초문인데요?”
“원래, 돼지 이전엔 뭘 올렸을까?”
“떡이나 밥을 올렸겠죠.”
“어허~!”
“아니, 제가 엉뚱한 답을 했나 봐요?”
“그 옛날에는 인신(人身)으로 제물을 삼았다네.”
“예? 사람을요?”
“그렇다네. 많은 사람의 목숨을 끊어서 제물로 올리면 그 소원이 더욱 잘 이뤄질 것으로 생각했던 시절도 있었다네.”
“어쩌면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다가 점차로 변해서 염소나 돼지를 올리게 되었지.”
“아, 그것은 참 다행이네요.”
“그렇게 제물로 올릴 돼지는 더러운 우리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라 향기로운 향을 피운 곳에서, 맛난 음식으로 키우면서 몸도 정갈하게 씻고 비단 옷을 입혀서 키운단 말이네.”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사육되어서 길일을 택한 다음에 비로소 목을 따서 제물로 상에 올라가는 거지.”
“엄머~! 정말이네요. 어쩔 수가 없이 그렇게 되겠네요.”
“그 순간에, 그 돼지는 뭘 생각할까?”
“아마도, 진흙구덩이에서 뒹굴면서 되는대로 먹고 살아가는 것을 부러워하겠네요.”
“한날 한 시에 태어난 돼지의 삶이 그렇다고 본다네. 그러니까 누구는 왕가에 태어나서 사육되어서 천만근이나 되는 무게를 안고 살아가고, 또 누구는 빈 배처럼 가볍게 천하를 떠돌면서 자유를 누리면서 고단하게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라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의미는 알겠어요.”
“왕가에 태어나서 제왕(帝王)의 부귀(富貴)를 누리는 사람과, 빈가(貧家)에 태어나서 곤궁(困窮)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야 예로부터 있어 왔지.”
“대부분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또한 그러할 거예요.”
자원이 의미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답하자, 고월이 말을 이었다.
“건륭제의 사주가 빈가(貧家)에서 태어난 아이의 사주였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신고(辛苦)함이 적지 않았을 거라고 봐요.”
“그렇다면 반전무인(盤前無人)의 마음으로 명식(命式)을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예? 반전무인이 무슨 뜻이죠?”
그 말에는 우창이 설명을 덧붙였다.
“아, 반(盤)은 바둑판을 말하고, 그 앞에 어떤 사람이 앉아 있더라도 의식하지 말고 바둑판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이야.”
“아하~! 알겠어요. 사주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에 현혹되지 말고 사주만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죠?”
“맞아. 만약에 ‘이 사주는 왕의 사주다.’라고 하면 아무래도 그게 신경이 쓰여서 판단에 착오(錯誤)가 생기거나 마음대로 추명(推命)하기가 어렵겠지?”
“정말 소중한 말씀이네요. 앞으로 공부할 적에도 반드시 잊지 않아야 하겠어요. 그러니까 바둑판은 기반(棋盤)이고, 사주판은 명반(命盤)이네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하하하~!”
자원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은 웃었다. 고월의 설명이 이어졌다.
“생각이 부족한 명리학자는 그 사람의 주머니에 돈이 얼마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네.”
그러자 우창이 그 말에 한 마디 거들었다.
“예전에 어느 역술가는 사주를 볼 적에도 반드시 재물이 몇 만 금의 거부라느니, 엽전 몇 푼의 가난뱅이라는 말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지.”
“결과물로 사주를 유추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학문이 아니라 예언과 때려 맞추기의 눈치놀음이라고 봐야 하겠네.”
그 말에 자원이 다시 손뼉을 쳤다.
“오늘 임싸부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누구의 사주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긴 사주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이치가 보이네요. 맞죠?”
“정확하게 이해를 했군.”
“그러니까 사주의 일간(日干)이 쇠약(衰弱)하거나 왕성(旺盛)한 것을 보고 판단할 줄을 안다면 명학의 오묘(奧妙)한 이치의 절반은 알았다고 한다는 거잖아요?”
“맞아. 절반. 하하~!”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는 다 알았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네요?”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아직도 알아야 할 것은 태산처럼 쌓여있음을 잊지 말란 뜻이겠지.”
“그런 것 같아요. 단순하게 왕쇠(旺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왕쇠의 진기(眞機)라고 했으니 참된 기틀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잖아요?”
“왜 아니겠나. 그렇지만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언젠가는 그 이치도 백천(百千)의 일월(日月)처럼 명료(明瞭)하게 드러날 것이네.”
“정말 그렇게 되는 날이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중요한 것은 서둘지 않는 것뿐이라네.”
“잘 알겠어요. 늙은 쥐가 항아리를 뚫고 빠져나오듯이 한 곳만 열심히 파다가 보면 밝은 하늘이 보이겠죠?”
“당연하지~!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