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제19장. 오행쇠왕의 중화/ 2. 삼명(三命)의 오묘(奧妙)한 이치

작성일
2017-05-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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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제19장. 오행쇠왕(五行衰旺)의 중화(中和)


2. 삼명(三命)의 오묘(奧妙)한 이치(理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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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말없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고 있으니까 자원이 재촉했다.

“진싸부, 혼자만 들여다보지 마시고 읽어 주세요. 같이 궁리해야죠.”

“아니, 그게 아니라 문득 글귀를 보니까 풍수를 공부한 사람이 첨부(添附)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럼 읽어보도록 하지.”

생시내귀숙지지(生時乃歸宿之地)
비지묘야(譬之墓也)
인원위용사지신(人元爲用事之神)
묘지정방야(墓之定方也)
불가이불변(不可以不辨)

우창이 소리를 내어서 낭랑(朗朗)하게 다 읽은 다음에 고월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월령(月令)은 집이라더니, 생시(生時)는 분묘(墳墓)라는 군.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로군. 그것 보게. 뭔가 생뚝맞은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왜 아니겠나.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니, 이 구절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가져다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걸.”

“하긴, 누가 써 넣었더라도 내용이 충실(充實)하다면 누가 뭐라겠느냔 말이지. 만약 알찬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오직 감지덕지(感之德之)할 따름인데, 이렇게 내용도 없는 것이 떡 하니 자리만 차지하고 있으니까 웬만한 안목의 학자가 바라보면 바로 들통이 나는 거네.”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후대의 학자들이 적천수에 대해서 주석(註釋)을 붙인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닐 텐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言及)을 하지 않았더란 말인가?”

“그야 모르지. 이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은 이유가 몰라서일 수도 있고, 알지만 그냥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을 테니까.”

“하긴....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더라도 우리처럼 이렇게 의심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도 있겠군.”

“맞아. 아마도 생각이 있는 학자라면 그랬을 것이네. 웬만하면 공자의 정신을 계승하려고 하니까.”

“공자의 정신이 뭐지?”

“술이부작(述而不作)이지.”

“술이부작이라면, 풀이는 하더라도 짓지는 않는단 말인가?”

“그렇다네. 역경에 대한 해설을 하면서 그런 언급을 했던 모양이네.”

“그야 원판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적에 해당하는 이야기이지. 이러한 것이 달라붙어 있으면 공자라고 하더라도 놋그릇에 붙은 녹을 제거하듯이 과감히 털어내고 긁어냈을 것이네.”

“그랬을 지도 모르지. 하하~!”

“여하튼 뜻이나 음미해 봐야지?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판단해 보고 말이네.”

“맞아, 어디 풀이를 들어보세.”

우창이 뜻을 생각하면서 글을 풀이했다.

“그러니까, ‘생시내귀숙지지((生時乃歸宿之地))’라는 말은 ‘태어난 시주(時柱)는 돌아가서 잠을 잘 곳’이란 말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 밖에 해석이 되지 않겠는걸.”

그러자, 자원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용에서는 비유한다면 묘(墓)와 같다고 했는데, 연월일시와 묘지(墓地)가 무슨 상관일까요?”

자원이 의아해서 묻는 말에 고월이 풀어서 설명을 해 준다.

“상징적(象徵的)인 의미로 본다면 일리는 있다고 하겠지. 시주(時柱)는 삶의 마지막인 노후(老後)를 의미한다고 보면, 무덤이 가까워졌다는 것과도 서로 통할 수가 있지 않겠나?”

“아항~! 그런 의미에서 나온 비유였군요. 그렇게 말 한다면 일리는 있다고 하겠어요. 그렇다면 이치적으로는 어떤가요?”

“명학의 이치로 본다면 물론 헛된 말이라고 보네.”

“그래요? 헛된 말이 들어온 것은 역시 누군가 군더더기를 첨부했다고 본단 말씀인 거죠?”

우창도 흥미가 덜한 내용인 것으로 보여서 얼른 다음 구절로 넘어갔다.

“다음은, ‘인원위용사지신(人元爲用事之神)’이라고 했으니, 시지(時支)에 당령한 천간(天干)인 인원을 말하는 것이겠고, 이것은 ‘묘지정방야(墓之定方也)’라고 했으니 묘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는 뜻인가?”

“맞아, 그러한 뜻이라고 밖에 볼 수가 없겠네.”

“그러니까 시지(時支)의 지장간도 용사(用事)가 있다는 뜻인가?”

“오호~! 이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군. 일설(一說)에는 월지에 초기(初氣)가 당령(當令)이면 시지도 초기 당령이라는 설이 있긴 하지.”

“그게 무슨 말인가?”

“가령, 인월(寅月)의 중기(中氣)인 병화(丙火)에 태어난 사람의 시간이 진시(辰時)라고 한다면, 진시의 중기인 계수(癸水)가 용사(用事)라는 말이라네.”

“그....래.....?”

“왜? 반응이 시큰둥 하지? 혹 다른 의견이 있는가?”

“얼른 들으면 말이 되는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그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뭘 생각하셨기에?”

“아니, 생각을 해 보게. 월지는 30일 중에서 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가령, 인월의 기준은 30일 중에서 나눠지는 것이지 않은가?”

“그야 당연하지. 그래서?”

“그렇다면 시지에도 지장간이 있을 것이므로 이것은 하루인 12시를 기준으로 삼아서 나눠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네.”

“예를 들면?”

“가령 진시(辰時)라고 한다면 불과 팔각(八角-1각은 15분)이라고 하는 120분 이내에서 비율로 나눠야 한단 말이네. 그렇다면 진시라고 하더라도 진시초에 태어났다면 을목(乙木)이 용사(用事)하고, 진시중에 태어났다면 계수(癸水)가 용사하고, 진시 후반에 태어났다면 무토(戊土)가 용사를 한다는 뜻이라네.”

“논리적으로 본다면 틀림없는 이야기로군. 그러나 진시(辰時)에 태어난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다시 초중말(初中末)을 논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겠는걸.”

“물론 정확한 출생의 시점(時點)을 알고 있다고 할 경우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봐야 하겠지. 그렇지만 월지의 당령에 따라서 시지의 인원도 정해버린다면 이것은 실제로 작용이 되고 말고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치적으로 모순(矛盾)을 안고 있단 말이네.”

“정확히 문제점을 짚었군. 동의하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론을 능청스럽게 중간에다가 끼워놓았으니 글의 뜻이 제대로 풀어질 리가 없단 말이지.”

고월의 이야기에 우창도 동조(同調)했다.

“오호~! 무슨 말인지 명료하게 알겠네.”

“물론 묘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으니 삭제(削除)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고인도 그냥 뒀으니 우리만 알고 넘어가면 되는 걸로 마무리를 하면 되겠지? 하하~!”

“참으로 통쾌(痛快)한 이야기로군. 하하하~!”

“하물며, ‘불가이불변(不可以不辨)’이라니, 가리지 않으면 안 된다지 않는가? 그러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느냔 말이지. 이것은 절대로 경도 선생의 생각이라고는 볼 수가 없다는 확실한 증거(證據)이기도 하네.”

고월이 확실한 증거라고 하자 우창도 다시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실제로 사주를 풀이해 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써 놓을 수가 있겠느냔 생각이 들어서라네. 아무리 정확하게 구별을 하려고 해도 명료하게 구분할 수가 없는 애매모호(曖昧模糊)한 출생의 시간(時間)을 놓고서 정확하게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니 이것이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 아니겠는가?”

“우창의 마음이 내 마음이라네. 하하~!”

“아, 그런가? 그렇다면 월령(月令)편과 생시(生時)편은 그냥 못 본 것으로 하고 넘어가면 되겠지?”

그러자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자원이 한 마디 거들었다.

“만약에 제가 혼자서 이러한 대목을 접했더라면 며칠을 두고 고민했을 거예요. 그런데 두 싸부께서 명확하게 정리를 해 주시는 바람에 편승(便乘)하여 저절로 통과하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호호호~!”

“그야 자원의 스승복이라고 봐야지.”

고월이 자원의 말에 동조하면서 우창에게 말했다.

“다음 구절을 봐도 되겠지?”

“물론이네. 다음 구절을 살펴보세.”

우창은 책을 보면서 다음 구절을 읽었다. 다시 우창의 글 읽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능지쇠왕지진기(能知衰旺之眞機)
기우삼명지오(其于三命之奧)
사과반의(思過半矣)

“내용을 보면, ‘능히 쇠왕(衰旺)의 참된 기틀을 아는 것이야말로 삼명(三命)의 오묘한 이치’라고 했군.”

고월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했다.

“아무리 봐도 그 이야기임이 분명(分明)하겠지?”

“달리 해석을 할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네. 경도 선생의 자평학(子平學)의 관점은 쇠왕(衰旺)에 있었다는 것임을 여기에서 천하(天下)에 선포(宣布)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어떻게 보면 ‘적천수의 핵심(核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우창도 감을 잡았군. 이 한마디로 경도 선생의 의도(意圖)를 정확하게 판단했다고 봐도 되겠네.”

“그렇게도 중요한 쇠왕(衰旺)을 어떻게 공부해야 능지(能知)가 된다는 말인지를 설명해 주시게.”

“보통 쇠왕의 기준을 말하면서 월령(月令)의 인겁(印劫)을 말한다네.”

“월령의 인겁이란, 월지에 인성(印星)이나 비겁(比劫)이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는 말인가?”

“맞아, 그렇게 해서 월령을 얻은 자는 왕성(旺盛)하다고 하고, 월령에 식재관(食財官)이 있어서 월령을 잃은 자는 쇠약(衰弱)하다고 한다네.”

“그렇게 놓고 본다면 쇠왕을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이치지 않은가?”

“당연하지.”

“그런데 왜 경도 선생은 호들갑스럽게 그것만 알면 삼명의 이치를 다 얻는다는 듯이 말씀하셨을까?”

“바로 그 쉬운 쇠왕의 관점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 그 속에 잠복(潛伏)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러면 그렇지, 그렇게 간단히 알 수가 있는 이치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군.”

“아무리 복잡하다고 하더라도 기본은 있는 법이라네.”

“기본을 안다면 절반은 얻은 것이나 같다는 말인가? 뒤의 구절에서 ‘사과반의(思過半矣)’라고 한 것을 보면 말이지.”

“맞아, ‘사과반의(思過半矣)’에서 ‘사과반(思過半)’은 주역 계사전(繫辭傳)에서 나온 말이라네.”

“얼떨결에 주역도 공부하게 생겼군. 계사전에는 뭐라고 했는지 설명해 주시려나?”

“계사전의 하편(下篇)에 나오는 말인데, 「지자관단사 즉사과반(知者觀彖辭 即思過半)」이라고 했다네.”

“그 뜻에 대해서 풀이해 보면, ‘아는 사람은 단사(彖辭)만 봐도 절반은 얻은 것이나 같다.’는 뜻인가?”

“맞아, ‘사과반’은 절반 이상을 얻는다고 할 수도 있고, 대부분을 얻는다고 할 수도 있으니 거의 다 깨닫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네.”

“그렇다면, 주역의 해설서에 그러한 것이 있단 말인가?”

“주역의 괘를 공자가 풀이한 것이 계사전(繫辭傳)이니 결국은 공자의 말이라고 하겠네. 다만 후대의 학자 중에서는 공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그 진위(眞僞)는 밝힐 방법이 없다고 하겠군.”

“고월의 설명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쇠왕(衰旺)의 이치를 제대로 깨닫는다면, 이것이 바로 주역의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라는 것인가?”

“결국은 체용(體用)장에서 말한 ‘부지억지(扶之抑之)’와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될 것이네.”

고월의 말에 우창이 이해가 되었다는 듯이 말했다.

“아,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배웠으니 무슨 뜻인지 알겠군. 그렇다면 쇠(衰)하면 부(扶)하고, 왕(旺)하면 억(抑)하는 것으로 연결을 시켜도 될까?”

“바로 그러한 의미로 봐도 무리가 없겠네. 다만, 여기에서는 기본적인 부억(扶抑)에서 한걸음 더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되겠지.”

“어떻게 해야 더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인가?”

“기본적으로는 강자(强者)와 약자(弱者)를 구분하는 방법을 의거(依據)하여 판단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라네.”

“오호~! 그 중에서도 또 변화가 있으니 그것을 알게 된다면 삼명의 오묘한 이치를 거의 다 깨달을 수가 있다는 말이로군.”

자원은 이해하기에 버거운지 잔뜩 찡그리고 생각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푸념삼아 한 마디 던졌다.

“말로야 쉽잖아요?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어떤 상황에 대한 설명인지 이해한다는 것은 봄날의 아지랑이를 잡으려는 마음과 같잖아요. 너무 어려워요. 좀 쉽게 설명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그 말을 듣고 우창이 자원에게 이해를 도와줘 보려고 말했다.

“사실 나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아. 그렇지만 자원이 어렵다고 하니까 내가 이해한 만큼이라도 설명해 볼까 싶군.”

“부디 그래 주시기를 앙망(仰望)하나이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