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 제18장 면상의 기본/ 7. 눈빛에서 보는 심상(心相)
작성일
2017-05-17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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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 제18장 면상(面相)의 기본(基本)
7. 눈빛에서 보는 심상(心相)
우창은 상인화의 설명을 통해서 얼굴의 윤곽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魅了)되었다. 그러한 표정을 보면서 설명에 더욱 흥이 오른 것은 당연히 상인화였다. 누군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호응(呼應)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동생이 관심을 보이니 나도 재미있어.”
“누님의 탐구하는 정신을 저도 물려받고 싶습니다. 얼굴에 대해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그 내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가 있을 것인지가 늘 궁금했었거든요.”
“그야 초면(初面)에서도 대략 그 사람의 내력(來歷)을 훑어볼 수가 있는 학문이라면 면상이 그래도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효과적이다 뿐이겠습니까? 사람을 만나서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의 심성에 대한 선악(善惡)의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면상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선악에 대한 느낌은 얻을 수가 있을 거야.”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내부에 들어있는 심성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지 않느냔 말이지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이러한 기회를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지요. 하하~!”
“여하튼 자꾸 이야기해 달라고 보채는 거잖아?”
“맞습니다. 오늘 누님께서 무엇을 알려 주시더라도 그대로 빨아들여서 영양분으로 저장을 할 참입니다.”
“그야 원한다면 어찌 좁쌀만큼인들 아끼겠어. 염려 말아.”
“고맙습니다. 누님이 말씀하신 대로 얼굴의 윤곽을 구분하는 데는 오행의 이치를 따라서 오형으로 보면 큰 윤곽은 그려진다고 하겠습니다.
“보통은 이목구비를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바탕에 깔려있는 오행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면 윤곽을 잡기가 더 좋을 거야.”
“그러니까 이목구비를 살피더라도 기본적인 오행을 먼저 염두에 두고서 관찰하는 것이 옳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 이야기야.”
“당연한 이치입니다. 지엽적인 문제에 천착(穿鑿)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순서로 본다면 오형을 바탕에 놓고 대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더라도 본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오형의 바탕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거야.”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바탕을 오행의 이치로 둔 다음에는 가장 먼저 뭘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그야 당연히 눈이지~!”
“아, 얼굴의 윤곽을 살핀 다음에는 눈을 봐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래 맞아, 그런데 왜 눈을 가장 먼저 보는 것일까?”
“모르겠습니다. 설명해 주세요. 누님.”
“사람을 보려면 신체를 보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정신을 보는 것이 중요할까?”
“그야 신체도 중요하겠지만 정신을 보는 것이 우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정신은 정신의 출입구(出入口)를 통해서 드러나지 않을까?”
“누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눈으로 정신이 들락거린단 말씀인가요?”
“당연하지, 가령 사람이 혼절(昏絶)한 상황에서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의원이 어떻게 할까?”
“그야 긴급할 적에는 눈을 들여다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왜 그럴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눈은 어느 기관(器官)과 연결이 되어 있을까?”
“눈은 간장(肝臟)과 연결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이지 그것은 눈의 구조적(構造的)인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럼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구조적인 것과 기능적(技能的)인 것에 대해서 구분을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기능이라면 빛을 살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까? 사물을 식별하는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각막(角膜)이나 망막(網膜)과 같은 것은 간경락(肝經絡)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빛을 보고 받아들여서 기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거야. 다만 경락이라는 말은 생략해도 되겠지.”
“그것은 혹 심장(心臟)의 경락(經絡)에서 주관(主管)하는 것입니까?”
“옳지~! 잘 알고 있으면서 괜히 모른 채 하고 시침을 뗀 거야?”
“그게 아니라 무슨 말씀이 나올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오행으로는 뭘 본다는 말일까?”
“그야 목(木)이 아니라면 화(火)가 되겠습니다.”
“맞아, 그 사람의 화(火)에 대한 기운을 볼 수가 있는 곳은 눈뿐이거든.”
“오호~! 그런 것이었군요. 과연 누님의 말씀 하나하나에는 진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괜한 소리는 뒀다가 하고, 눈빛이라는 것에 대해서나 생각해 보셔봐.”
“눈빛이라면, 안광(眼光)을 말하는 것이겠네요.”
“남의 눈에서 그 빛이 보이는 것일까?”
“등불이라면 보이겠지만 눈빛이야 보일 리가 있습니까?”
“그럼?”
“다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을 대했을 적에 제일감(第一感)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눈빛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맞아~! 바로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보고서 판단하는 제일 첫 번째의 원칙이라고 해도 되는 거야.”
“누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기본형보다 먼저 살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느낄 수만 있는 눈빛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기술이 아니겠어?”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이야, 이건 소다, 저건 개다, 하고 배우지만 눈빛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눈을 볼 줄 알면 관상은 다 배운 것이라고 해도 된다는 말이 있는 거야.”
“아, 그런 말도 있습니까?”
“심지어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어.”
“그건 그만큼 눈이 중요하다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면상(面相)에서도 그렇게 본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속담(俗談) 속에는 항상 진리가 내재되어 있어.”
“맞습니다. 그래서 속담을 뜯어보다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가 했더니 누님도 그러셨군요. 하하~!”
“옛날이야기 하나 해 줄까?”
“예. 누님께서 해 주시는 옛날이야기라면 반드시 지혜로운 말씀이겠지요. 기대됩니다.”
“예전에 열어구(列禦寇)라는 사람이 있었대.”
“혹 「장자(莊子)」에 나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동생도 들어본 이름이야? 열어구는 열자의 이름이지.”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하루는 제자가 스승에게 어느 관상가의 이야기를 한 거야.”
“관상가라니, 제자가 거론할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이었겠습니다.”
“스승이 그 말을 듣고는 관상가를 불러오라고 했다잖아.”
“열자는 신이 나서 불러왔겠네요. 자기의 판단이 옳다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맞아, 다음날 그 사람을 데리고 스승을 만났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이 제자의 스승을 보고서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는 거야. 자자가 이상하게 여겨서 따라 나갔더니, 자자에게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의 스승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니 그리 알고 초상을 치를 준비나 하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잖아.”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았던가 봅니다.”
“제자가 그 말을 듣고서 슬퍼하는 마음으로 스승에게 돌아가서 그와 같음을 고하고 애통해하니까 스승이 다시 말했지.”
“걱정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 내일 한 번 더 데리고 와보라고 했던 거야.”
"아무래도 무슨 속셈이 있었던가 보네요."
“아마도 스승도 자신에게 주어진 슬픈 예언을 믿지 못하고 부정하고 싶은가보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스승의 분부라서 다시 점쟁이를 청해서 한 번만 더 와 달라고 했어.”
“보통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은 믿고 싶고, 궂은 것은 피하고 싶은 거죠.”
“다음날 제자가 다시 점쟁이를 데려다가 스승을 뵙게 한 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또 따라 나갔어.”
“아마도, 다시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지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에게 그 점쟁이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말하는 거야. ‘곧 돌아가실 분이었는데 자신을 만난 인연으로 수명이 늘어나서 바로 돌아가시지는 않겠다.’는 이야기였지.”
“하루 사이에 뭔가 변화가 생겼던가 봅니다.”
“점쟁이가 가고 다시 스승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하는 제자에게 내일 한 번 더 와 달라는 부탁하라는 거야.”
“아마도 제자 스승은 뭔가를 실험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속을 알 까닭이 없는 열자는 다시 점쟁이를 불렀어.”
“세 번째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점쟁이가 제자 스승의 얼굴을 보고 밖으로 나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아무래도 수명이 한계를 드러냈나 봅니다.”
“그 점쟁이는 얼이 빠져서 도망가면서 ‘도저히 당신 스승의 얼굴은 내가 점을 칠 수가 없으니 다시는 나를 데리러 오지 마시오.’라고 하고는 바람처럼 달아났다잖아.”
“도대체 제자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관상가를 얼이 빠지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이미 몸을 마음대로 갖고 놀 정도의 수준이었던가 봐. 그렇지 않고서야 눈빛을 맘대로 하고 낯빛도 맘대로 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랬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면상을 봐서 무엇을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거야. 다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고 눈에도 나타나겠지?”
“맞습니다. 누님의 온화한 눈빛을 보면 그 마음이 눈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얼굴을 보면 제일 먼저 눈빛이 보이니까 그 사람의 느낌을 바로 확인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런데 느낌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싶은데요. 누님께서 어떻게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 어렵지. 그래서 우선은 크게 나눠서 생각해 보고 또 점점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거야.”
“참 좋은 말씀입니다. 크게 나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온화한 눈빛과, 예리한 눈빛으로 나누는 것은 가능할까?”
“오호~! 음양이로군요. 음적인 사람의 눈빛은 온화하고 양적인 사람의 눈빛은 예리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말로는, 공격적인 사람은 예리하고 수비적인 사람은 온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이해가 됩니다. 무공이 높은 사람은 눈빛에서 형형한 광채가 난다고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매섭다고 하겠습니다.”
“맞아, 그런 사람의 눈빛은 서로 마주치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소름이 돋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은 감정이 예민해서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눈빛으로 쏘아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지. 오형(五形)으로 본다면 어떤 형에 속한 사람의 눈빛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많을까?”
“아마도, 화형(火形)에 속하는 사람의 눈매가 이렇게 느껴질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요?”
“얼굴 모습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눈빛까지 안광이 번득인다면 웬만한 골목길의 개들은 그 눈빛에 맞으면 기절을 해 버릴지도 몰라.”
“누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느낌만으로도 뭔가 확~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형(火形)의 얼굴에 눈빛도 형형(炯炯)한 광채가 풍겨 나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심성도 날카롭고 예민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역시 총명한 동생이라서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구나.”
“그렇다면 목형(木形)으로 생긴 사람이 눈매가 예리하게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목형의 사람이 그렇게 눈빛을 나타낸다면, 아마도 공격한다기보다는 탐색하는 모습으로 느껴질 수가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쏘아보는 것이 아니라 깊숙하게 파고드는 느낌이겠네요.”
“그렇게 볼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같은 눈빛이라도 오형(五形)에 따라서 느끼는 것은 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 그래서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재미있습니다. 바탕의 모습과 눈빛이 서로 어우러져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각기 다르게 전해준다는 것이 말이죠.”
“동생도 이내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거 같아.”
“이렇게만 안내를 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 누님의 자상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은 사람의 형상과 눈빛에 대해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관상(觀相)의 9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눈빛의 오묘한 이치는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7. 눈빛에서 보는 심상(心相)
우창은 상인화의 설명을 통해서 얼굴의 윤곽에 대한 이야기에 매료(魅了)되었다. 그러한 표정을 보면서 설명에 더욱 흥이 오른 것은 당연히 상인화였다. 누군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고 호응(呼應)을 하는 것에 대해서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 것이다.
“동생이 관심을 보이니 나도 재미있어.”
“누님의 탐구하는 정신을 저도 물려받고 싶습니다. 얼굴에 대해서 어떻게 공부를 해야 사람을 바라보는 순간 그 내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가 있을 것인지가 늘 궁금했었거든요.”
“그야 초면(初面)에서도 대략 그 사람의 내력(來歷)을 훑어볼 수가 있는 학문이라면 면상이 그래도 효과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효과적이다 뿐이겠습니까? 사람을 만나서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사람의 심성에 대한 선악(善惡)의 판단이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면상 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사람의 선악에 대한 느낌은 얻을 수가 있을 거야.”
“그런데 겉으로 보이는 것과 그 내부에 들어있는 심성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지 않느냔 말이지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이러한 기회를 소홀히 생각할 수가 없지요. 하하~!”
“여하튼 자꾸 이야기해 달라고 보채는 거잖아?”
“맞습니다. 오늘 누님께서 무엇을 알려 주시더라도 그대로 빨아들여서 영양분으로 저장을 할 참입니다.”
“그야 원한다면 어찌 좁쌀만큼인들 아끼겠어. 염려 말아.”
“고맙습니다. 누님이 말씀하신 대로 얼굴의 윤곽을 구분하는 데는 오행의 이치를 따라서 오형으로 보면 큰 윤곽은 그려진다고 하겠습니다.
“보통은 이목구비를 생각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바탕에 깔려있는 오행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면 윤곽을 잡기가 더 좋을 거야.”
“그러니까 이목구비를 살피더라도 기본적인 오행을 먼저 염두에 두고서 관찰하는 것이 옳다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 이야기야.”
“당연한 이치입니다. 지엽적인 문제에 천착(穿鑿)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순서로 본다면 오형을 바탕에 놓고 대입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목구비가 어떻게 생겼더라도 본질적인 면에서 본다면 오형의 바탕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 거야.”
“잘 알겠습니다. 그렇게 바탕을 오행의 이치로 둔 다음에는 가장 먼저 뭘 살펴야 하는 것이지요?”
“그야 당연히 눈이지~!”
“아, 얼굴의 윤곽을 살핀 다음에는 눈을 봐야 한다는 말씀이죠?”
“그래 맞아, 그런데 왜 눈을 가장 먼저 보는 것일까?”
“모르겠습니다. 설명해 주세요. 누님.”
“사람을 보려면 신체를 보는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정신을 보는 것이 중요할까?”
“그야 신체도 중요하겠지만 정신을 보는 것이 우선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정신은 정신의 출입구(出入口)를 통해서 드러나지 않을까?”
“누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눈으로 정신이 들락거린단 말씀인가요?”
“당연하지, 가령 사람이 혼절(昏絶)한 상황에서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의원이 어떻게 할까?”
“그야 긴급할 적에는 눈을 들여다본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왜 그럴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눈은 어느 기관(器官)과 연결이 되어 있을까?”
“눈은 간장(肝臟)과 연결되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이지 그것은 눈의 구조적(構造的)인 것을 의미하는 거야.”
“그럼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까?”
“구조적인 것과 기능적(技能的)인 것에 대해서 구분을 할 필요가 있는 거야.”
“기능이라면 빛을 살펴서 보는 것을 의미합니까? 사물을 식별하는 기능을 말씀하시는 것이겠지요?”
“당연하지. 그러니까 각막(角膜)이나 망막(網膜)과 같은 것은 간경락(肝經絡)과 연결이 되어 있지만, 빛을 보고 받아들여서 기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거야. 다만 경락이라는 말은 생략해도 되겠지.”
“그것은 혹 심장(心臟)의 경락(經絡)에서 주관(主管)하는 것입니까?”
“옳지~! 잘 알고 있으면서 괜히 모른 채 하고 시침을 뗀 거야?”
“그게 아니라 무슨 말씀이 나올지 몰라서 그랬습니다. 하하~!”
“그렇다면 눈을 본다고 하는 것은 오행으로는 뭘 본다는 말일까?”
“그야 목(木)이 아니라면 화(火)가 되겠습니다.”
“맞아, 그 사람의 화(火)에 대한 기운을 볼 수가 있는 곳은 눈뿐이거든.”
“오호~! 그런 것이었군요. 과연 누님의 말씀 하나하나에는 진리가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괜한 소리는 뒀다가 하고, 눈빛이라는 것에 대해서나 생각해 보셔봐.”
“눈빛이라면, 안광(眼光)을 말하는 것이겠네요.”
“남의 눈에서 그 빛이 보이는 것일까?”
“등불이라면 보이겠지만 눈빛이야 보일 리가 있습니까?”
“그럼?”
“다만, 느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어떤 사람을 대했을 적에 제일감(第一感)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면 눈빛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맞아~! 바로 그것이야말로 사람을 보고서 판단하는 제일 첫 번째의 원칙이라고 해도 되는 거야.”
“누님의 말씀으로 봐서는 기본형보다 먼저 살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 수도 있어.”
“그런데 느낄 수만 있는 눈빛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그것이야말로 기술이 아니겠어?”
“정말 대단한 기술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배울 수가 있겠습니까? 보이는 것이야, 이건 소다, 저건 개다, 하고 배우지만 눈빛을 배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눈을 볼 줄 알면 관상은 다 배운 것이라고 해도 된다는 말이 있는 거야.”
“아, 그런 말도 있습니까?”
“심지어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말도 있어.”
“그건 그만큼 눈이 중요하다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면상(面相)에서도 그렇게 본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속담(俗談) 속에는 항상 진리가 내재되어 있어.”
“맞습니다. 그래서 속담을 뜯어보다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저만 그런가 했더니 누님도 그러셨군요. 하하~!”
“옛날이야기 하나 해 줄까?”
“예. 누님께서 해 주시는 옛날이야기라면 반드시 지혜로운 말씀이겠지요. 기대됩니다.”
“예전에 열어구(列禦寇)라는 사람이 있었대.”
“혹 「장자(莊子)」에 나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동생도 들어본 이름이야? 열어구는 열자의 이름이지.”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하루는 제자가 스승에게 어느 관상가의 이야기를 한 거야.”
“관상가라니, 제자가 거론할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이었겠습니다.”
“스승이 그 말을 듣고는 관상가를 불러오라고 했다잖아.”
“열자는 신이 나서 불러왔겠네요. 자기의 판단이 옳다는 것도 보여드리고 싶어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맞아, 다음날 그 사람을 데리고 스승을 만났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사람이 제자의 스승을 보고서는 말없이 밖으로 나가는 거야. 자자가 이상하게 여겨서 따라 나갔더니, 자자에게 말을 하는 거야. 당신의 스승은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니 그리 알고 초상을 치를 준비나 하라는 말을 하고는 돌아갔다잖아.”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았던가 봅니다.”
“제자가 그 말을 듣고서 슬퍼하는 마음으로 스승에게 돌아가서 그와 같음을 고하고 애통해하니까 스승이 다시 말했지.”
“걱정은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 내일 한 번 더 데리고 와보라고 했던 거야.”
"아무래도 무슨 속셈이 있었던가 보네요."
“아마도 스승도 자신에게 주어진 슬픈 예언을 믿지 못하고 부정하고 싶은가보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스승의 분부라서 다시 점쟁이를 청해서 한 번만 더 와 달라고 했어.”
“보통 사람의 마음이 그렇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은 믿고 싶고, 궂은 것은 피하고 싶은 거죠.”
“다음날 제자가 다시 점쟁이를 데려다가 스승을 뵙게 한 후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는 또 따라 나갔어.”
“아마도, 다시 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했지 싶습니다.”
“그런데, 제자에게 그 점쟁이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말하는 거야. ‘곧 돌아가실 분이었는데 자신을 만난 인연으로 수명이 늘어나서 바로 돌아가시지는 않겠다.’는 이야기였지.”
“하루 사이에 뭔가 변화가 생겼던가 봅니다.”
“점쟁이가 가고 다시 스승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하는 제자에게 내일 한 번 더 와 달라는 부탁하라는 거야.”
“아마도 제자 스승은 뭔가를 실험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 속을 알 까닭이 없는 열자는 다시 점쟁이를 불렀어.”
“세 번째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점쟁이가 제자 스승의 얼굴을 보고 밖으로 나와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거야.”
“그렇다면 아무래도 수명이 한계를 드러냈나 봅니다.”
“그 점쟁이는 얼이 빠져서 도망가면서 ‘도저히 당신 스승의 얼굴은 내가 점을 칠 수가 없으니 다시는 나를 데리러 오지 마시오.’라고 하고는 바람처럼 달아났다잖아.”
“도대체 제자의 스승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관상가를 얼이 빠지게 만들었던 것일까요?”
“이미 몸을 마음대로 갖고 놀 정도의 수준이었던가 봐. 그렇지 않고서야 눈빛을 맘대로 하고 낯빛도 맘대로 할 수가 있었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랬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면상을 봐서 무엇을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아마도 그럴 거야. 다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고 눈에도 나타나겠지?”
“맞습니다. 누님의 온화한 눈빛을 보면 그 마음이 눈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믿어도 될 것 같습니다.”
“얼굴을 보면 제일 먼저 눈빛이 보이니까 그 사람의 느낌을 바로 확인할 수가 있는 거야.”
“그런데 느낌을 설명하기는 어렵지 싶은데요. 누님께서 어떻게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물론 어렵지. 그래서 우선은 크게 나눠서 생각해 보고 또 점점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거야.”
“참 좋은 말씀입니다. 크게 나눈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온화한 눈빛과, 예리한 눈빛으로 나누는 것은 가능할까?”
“오호~! 음양이로군요. 음적인 사람의 눈빛은 온화하고 양적인 사람의 눈빛은 예리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다른 말로는, 공격적인 사람은 예리하고 수비적인 사람은 온화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
“이해가 됩니다. 무공이 높은 사람은 눈빛에서 형형한 광채가 난다고도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매섭다고 하겠습니다.”
“맞아, 그런 사람의 눈빛은 서로 마주치는 순간, 섬뜩한 느낌이 들어서 소름이 돋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런 사람은 감정이 예민해서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눈빛으로 쏘아버릴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지. 오형(五形)으로 본다면 어떤 형에 속한 사람의 눈빛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많을까?”
“아마도, 화형(火形)에 속하는 사람의 눈매가 이렇게 느껴질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요?”
“얼굴 모습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눈빛까지 안광이 번득인다면 웬만한 골목길의 개들은 그 눈빛에 맞으면 기절을 해 버릴지도 몰라.”
“누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느낌만으로도 뭔가 확~ 전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형(火形)의 얼굴에 눈빛도 형형(炯炯)한 광채가 풍겨 나온다면 그 사람은 반드시 심성도 날카롭고 예민할 것이라는 판단을 할 수가 있겠습니다.”
“역시 총명한 동생이라서 잘 알아듣고 이해하는구나.”
“그렇다면 목형(木形)으로 생긴 사람이 눈매가 예리하게 느껴진다면 어떨까요?”
“목형의 사람이 그렇게 눈빛을 나타낸다면, 아마도 공격한다기보다는 탐색하는 모습으로 느껴질 수가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쏘아보는 것이 아니라 깊숙하게 파고드는 느낌이겠네요.”
“그렇게 볼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같은 눈빛이라도 오형(五形)에 따라서 느끼는 것은 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맞아, 그래서 하나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고 하는 거야.”
“재미있습니다. 바탕의 모습과 눈빛이 서로 어우러져서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각기 다르게 전해준다는 것이 말이죠.”
“동생도 이내 이해를 할 수가 있을 거 같아.”
“이렇게만 안내를 해 주신다면 얼마든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다. 누님의 자상한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우창은 사람의 형상과 눈빛에 대해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관상(觀相)의 9할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눈빛의 오묘한 이치는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의미만큼은 충분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