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6. 설기(洩氣)와 누설(漏泄)의 사이

작성일
2017-05-0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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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제17장 체용(體用)의 도리(道理)

16. 설기(洩氣)와 누설(漏泄)의 사이


그렇게 다음 구절로 넘어가려 순간에 우창이 문득 생각이 난 듯이 한마디 했다.

“이치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손익(損益)에 대한 경도 스승님의 마음은 조금 이해를 해서 풀이를 해 보고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그 말에 고월은 즉시로 답을 했다.

“무엇이 어렵겠는가? 부억(扶抑)의 관점도 이해했으니 손익(損益)의 관점을 이해하는 것도 유익하면 했지 해로울 일이 뭐가 있겠나. 하하~!”

“문득 든 생각이, 강자는 식상이나 관살로 덜어내라는 의미인 것은 알겠는데. 이것을 그냥 막연히 짐작만 하고 넘어가는 것보다는 명료하게 이해를 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네.”

“옳은 말이네. 학문은 서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거든. 그럼 좀 더 상세히 이에 대해서 분석(分析)을 해 보도록 하세.”

자원이 궁금한 것에 대한 것을 먼저 물었다.

“손(損)은 ‘덜어 낸다’는 말이잖아요?”

“그렇지.”

“그러니까, ‘덜어낸다’는 말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그 의미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말은 했지 않은가.”

“하나는 식상(食傷)으로 손상(損傷)시키는 거라고 하셨던가요?”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느낌으로는 손상이라는 말이 썩 어울리진 않는군.”

“그럼 뭐라고 해야 적당하죠?”

“식상으로 손상시키는 것은 ‘설기(洩氣)한다’고 하지.”

“설기는 기운을 빼낸다는 뜻인 거죠?”

“이것은 물통의 물이 넘쳐서 흘러가는 것을 의미한다네.”

“물이 빠져나가는 것은 물통에 구멍이 나도 가능하잖아요?”

“아, 그것은 약자(弱者)에게 식상이 있을 경우라면 적당한 비유가 될 수 있겠군.”

“왜 그렇죠? 이나 저나 물이 흐르는 것은 마찬가지잖아요.?”

“넘치는 물이 흘러가는 것과 부족한 물이 새어 나가는 것의 차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설기(洩氣)라는 말은 ‘새어 나간다’는 뜻도 있는데요?”

“그런 경우에는 누설(漏泄)이라고 하지.”

“누설과 설기가 뭔 차이인지 모르겠어요.”

“아니, 총명한 자원이 여태 이야기를 해도 못 알아들었단 말인가?”

“그러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그게 그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요.”

“참 이상하군. 갑자기 맹순이가 되셨나? 하하~!”

“잠깐만요. 강자의 식상은 넘쳐나는 것이고, 약자의 식상은 새어나가는 것이란 말이죠?”

“옳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를 한 모양이네. 하하~!”

“그러니까, 손(損)의 뜻에는 넘쳐나는 것을 의미하고, 새어나가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단 것이죠?”

“맞아, 만약에 진정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뜻으로 손(損)이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정신(精神)에서도 손상이 되는 것으로 이해하면 또 말이 되지.”

“아하~! 강자가 넘치는 기운을 식상으로 흘려보낼 적에는 설기(洩氣)라고 해서 정신적으로 본다면, 제방의 물이 가득해서 넘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될까요?”

“적절한 설명이로군.”

“만약에 약자가 자신이 버틸 힘도 부족한 상황에서 식상이 있어서 기운이 빠져나간다면 이것은 제방에 구멍이 생겨서 물이 새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될까요?”

“매우 실제의 상황에 부합되는 설명이네.”

“그렇다면 손(損)에도 두 가지의 뜻이 있다고 봐야 하겠네요. 이것을 임싸부가 설명해 주세요.”

“이미 자원이 다 설명을 해 놓고서 무슨 설명을 또 해 달라는 건가? 하하~!”

“그래도 제가 생각한 것은 왠지 믿음이 안 간단 말이에요. 정리가 필요합니다~! 호호~!”

“허약(虛弱)한 일간(日干)이 손상(損傷)되면 정신에도 결함(缺陷)이 생긴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당연하겠네요.”

“반대로 일간이 충실(充實)하면 정신력도 원활(圓滑)하다고 보면 되겠지?”

“이치가 하나로 통하네요. 맞는 말씀이라고 보겠어요.”

“체용장에서 ‘부(扶)’가 약한 자를 돕는 것이 자연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신장에서 말하는 익(益)은 약한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군.”

“아하, 서로 통하는 것이 있었네요.”

“약자의부(弱者宜扶)하여 익(益)하고, 강자의억(强者宜抑)하여 ‘손(損)’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네.”

“그러니까, 사람에게는 정신이 있으니, 부족한 것이나 손상된 것은 보완(補完)해서 이익(利益)되게 해 주면 된다는 의미로 봐도 되겠죠?”

“정말 알차게 공부하는 자원일세. 하하~!”

“그렇다면, ‘일편(一偏)으로 구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고 한 의미는 뭘까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명학(命學)의 이치가 아니라는 핵심(核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나.”

“치우친다는 것은 경도 스승님님이 이전에 궁구하던 학자들의 병폐(病弊)를 지적한 것으로 봐도 될까요?”

“앞에서도 말했잖은가? 무조건 정관(正官)만 찾아서 사주의 안이나 밖을 쏘다니는 당시 학자들의 모습에 대해서 말이네.”

“정말이네요. 그야말로 일편으로 구하는 것이 틀림없겠어요.”

“심지어 그림자에서도 찾고, 메아리에서도 찾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안타까웠겠느냐는 마음이 이해가 되네.”

“참으로 선지자(先知者)의 길은 험난한 것인가 봐요.”

“그렇게 이치에도 부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불가(不可)하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試行錯誤)를 보면서 연구하고 또 궁리했겠느냐는 생각이 절로 든단 말이지.”

“역시! 핵심(核心)은 중화(中和)에 있는 거란 말이죠?”

“일단(一端)으로 논하는 것은 자연을 이해하는 이치가 아니듯이, 일편(一偏)으로 구하는 것도 또한 마찬가지라는 뜻이라네.”

“그렇다면 시종일관(始終一貫) 한쪽으로 치우친 학문도 있나요?”

“음…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치우쳤다고 할 수도 있겠지.”

“예? 그건 어떤 학문이죠?”

“아, 자원에게는 아직 어려울 것이니 차차로 익혀보도록 하지. 지금은 그 보따리를 끌러놓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이네. 하하~!”

“그래도 조금만 말씀을 해 주셔봐요. 몰라도 궁금하잖아요~!”

“기문둔갑은 줄여서 기문(奇門)이라고도 하는데, 그야말로 제왕(帝王)의 학문이라고도 하지.”

“제왕의 학문이라면 그것이야말로 학문 중에 최고라는 의미잖아요?”

“아, 그런 제왕이 아니라, 왕을 위한 학문이라는 뜻이라네.”

“왕을 위한 학문도 있어요?”

“옛날부터 왕을 위한 학문이 있어왔다네. 사실은 일반 사람들은 학문을 접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세월도 허다(許多)했지.”

“왜 그랬을까요?”

“누구나 왕이 되면 현재의 왕은 얼마나 불안하겠는가?”

“엄청 불안해서 잠도 오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왕가의 비전(秘傳)으로만 전하도록 엄중(嚴重)하게 통제하고, 평민은 물론이고 제후(諸侯)들도 접근을 못하도록 했었다네.”

“그렇다면 저는 관심 갖고 싶지 않아요. 왕이 될 마음도 없으니까요. 호호~!”

“그래서 우선은 모든 학문의 뿌리라고 할 수가 있는 중화(中和)의 이치를 담고 있는 명학(命學)부터 공부하는 것이라네.”

“명학과 기문의 차이는 뭘까요?”

“명학은 개인을 위한 것이고, 기문은 제왕(帝王)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손(損)은 음적(陰的)으로 보면, 허약한 일간의 기운을 유출(流出)하는 것이라고 하겠고, 양적(陽的)으로 보면 넘치는 일간의 기운을 유출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까요?”

“적확(的確)한 판단이라고 하겠네.”

“이렇게 공부가 재미있는 것인 줄을 왜 미처 몰랐을까요? 호호~!”

“늘 재미가 있었을 것이네. 다만 요즘에 와서 좀 더 깊어지는 이치로 인해서 깨달음이 더욱 깊어진 탓이겠지. 하하~!”

“그렇긴 해요. ‘도유체용(道有體用)’이나, ‘인유정신(人有精神)’을 생각하면서 뭔가 공부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삼삼해요.”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축하를 할 일이로군.”

“점점 빠져들어 가는 것이 진즉에 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라니까요. 호호~!”

“그렇다면 더 깊이 들어가 봐야지. 어떤 경우에 넘치는 것을 손(損)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부족하지만 제가 생각한 것을 말씀드려 볼게요.”

“어디 들어보세나.”

“어떤 사람이 있는데, 특별한 재능은 없으나 힘은 장사예요. 그래서 시장에서 무거운 짐을 옮겨주고 품값을 받는 일을 한다면 넘치는 힘을 사용해서 밥을 만들었으니 이러한 것은 ‘덜 손(損)’의 뜻에 부합한다고 봐요.”

“대단히 적절한 표현이로군. 그렇다면 부족한 기운을 손(損)하는 것은 어떤 비유가 가능할까?”

“그 경우는, 가령 어떤 사람이 몸은 지치고 힘들어서 피로가 가득 쌓였지만, 미리 약속한 일이 있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 상황에서 힘들게 나가서 하루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잘 설명하셨네. 그렇게만 이해하면 손(損)에 대한 것은 문제없이 이해한 것으로 보면 되겠네.”

“아니죠~!”

“뭐가?”

“이것을 사주에서는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주셔야죠. 이런 이야기만으로 사주를 풀이할 수는 없잖아요?”

“아, 인겁(印劫)이 많으면 강자(强者)가 되겠지?”

“물론이죠~!”

“기운이 넘치는 장사(壯士)를 비유했지 않은가?”

“맞아요. 그 의미였어요.”

“그렇게 인겁이 많아서 강자가 되었다면 고용(雇傭)이 되어서 맡은 일을 잘 처리할 수가 있겠지. 관직(官職)에 종사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군.”

“아하~! 그렇다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렇게도 찾아 헤매는 정관(正官)을 비로소 사용할 수가 있다는 의미인가요?”

“맞아. 공부를 많이 했다면 국록(國祿)을 받을 수가 있으며 공(功)이 쌓이면 귀품(貴品)이 될 수도 있겠지. 물론 이것이야말로 정관(正官)의 본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설명만 들어봐도 부귀(富貴)하는 사람의 모습이 그려져요.”

“다만, 누구나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라네. 상중하의 정관(正官)이 있다면 하품(下品)의 경우에는 농가(農家)에서 머슴살이하면서 일 년 내내 일을 하여 먹고 살아갈 재물을 획득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 그렇다면 정관(正官)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지위는 또한 천차만별(千差萬別)이란 말씀이네요?”

“당연하지, 그것을 등급(等級)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네. 비록 본인에게 해 줄 이야기는 아니지만, 학자라면 그 정도는 판단하고 삶의 수준(水準)을 파악할 필요는 있다고 하겠네.”

“그야말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네요. 뭐든 지나치면 그것을 손상(損傷)시켜서 균형을 이뤄야 하는 자연의 이치라고 봐도 되겠어요.”

“맞는 말이네. 과다(過多)하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한쪽으로 기울었는데, 태과(太過)하다면 기울기가 너무 심해서 심각한 문제가 된다고 할 수가 있겠지.”

“아, 그렇게 볼 수도 있는 거네요? 태과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여러 경우를 다 생각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분에 못 이겨서 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르는 짓도 할 수가 있겠지.”

“분신(焚身)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네. 일반적으로는 분신이라고 하고, 불가(佛家)에서 깨달음을 위한 구도(求道)의 일종으로 하는 것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고도 한다지만 그 모두는 자연에서 본다면 모두 과강(過强)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지.”

“열렬한 깨침의 마음이라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야 불교인의 말이지, 자연이 몸에 불 지르는 것을 원할까?”

“물론 그럴 리는 없겠네요.”

“자기 착각으로 치우쳐서 헛된 망상을 하게 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편지우편(偏之又偏)’이랄 수밖에.”

“그러니까, ‘치우치고 또 치우쳤다’는 말씀인가요? 아하~!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어요. 듣고 보니 임싸부의 말씀이 타당하네요. 태어난 것은 천수(天壽)를 누리는 것이 자연이니까요.”

“강자(强者)에 대한 이해는 그만하면 되었다고 볼까?”

“물론이에요. 그렇다면 익(益)의 경우도 같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겠어요.”

“어디, 자원이 나름대로 풀어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