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4. 끝없는 순환(循環)의 고리

작성일
2017-04-1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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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4. 끝없는 순환(循環)의 고리



우창은 혹시라도 상인화가 마음 상할까 싶은 조바심도 살짝 들었다. 여인은 어머니가 되어서도 며느리를 질투한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서였다.

“그렇겠죠?”

“당연하잖아. 내가 동생을 인연했는데 동생의 인연이 연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녀는 자원(慈園)이라는 낭자입니다.”

“그런가 싶었어.”

“이미 다 짐작하고 계셨네요.”

“음양의 이치인 것을 뭐.”

“참. 음양이 다시 음양으로 확장이 되기도 하나요?”

“그야 당연하잖아? 천 번, 만 번, 계속해서 확장의 연속인걸.”

“음양이 확장되면 사상(四象)이라고 하는 것이 맞습니까?”

“맞아.”

“음양의 상황에 대해서는 심오한 말씀을 들었는데 사상은 또 어떻게 이해를 하면 좋을까요?”

“하늘 아래 별다른 것은 없어.”

“음양이나 음양의 음양이나 모두 같은 것으로 보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래도 되고. 다시 겹치기로 봐도 되고.”

“겹치기로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죠?”

“가령 동생과 내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것은 음양이라고 해.”

“예. 이해가 됩니다.”

“여기에 자원 낭자가 찾아왔어.”

“그것도 무슨 이치에 포함이 되나요?”

“당연하지. 바깥의 음이잖아.”

“예? 무슨 뜻인가요?”

“안에 있는 음을 내음(內陰)이라고 한다면, 밖에 있는 음은 외음(外陰)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아, 그 뜻이군요. 그렇다면 밖에 있는 음은 짝이 없나요?”

“아마도 오라버니가 있었다면 자원도 방 안에 들어올 인연이 되었겠지?”

“그렇게 되면 상(尙)형님은 외양(外陽)이 되는 건가요?”

“물론이야.”

“이야~!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까 머리고 쏙쏙 들어옵니다.”

“이제 또 동생이,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 자원낭자와 또 누구랬지?”

“아, 고월(古越)입니다. 임원보(林元甫)라고.”

“그래 자원과 고월이 공부하고 있는데 동생이 들어가면 어떨까?”

“뭘 어때요? 늘 그렇게 공부하고 있는걸요.”

“지금 가서 공부한다고 생각해 봐. 뭔가 조금은 켕겨서 쭈뼛거리지 않을까?”

“늘 함께하던 벗들인데 왜 그럴까요?”

“생각을 해봐, 자원을 일부러 불러서 온 것은 아니지만 막상 오고 있는 것을 막았으니까 그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지 않겠어?”

“정말, 용의주도(用意周到)하시군요. 사실 그런 마음이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누님.”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동생이 외양(外陽)이 되는 거야.”

“참으로 기가 막힌 설명이십니다. 누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어렵게 생각할 일이 하나도 없네요.”

“원래 자연은 어려운 것이 아니야. 다만 그것을 어렵게 판단하고 선택하고자 하는 마음이 병이라면 병이야.”

“이것을 사상(四象)이라고 한단 말이죠?”

“맞아.”

“일이 점점 커져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이 가정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고, 천하를 이루는 거야.”

“오묘(奧妙)합니다.”

“없는 것에서 하나가 나오고, 하나에서 둘이 나오고 둘에서 셋이 나오고 셋에서 만물이 나오는 이치와 같은 거야.”

“아이구~! 누님~~!!”

“아니, 왜?”

“천천히 해 주셔야죠. 이렇게 쏟아 내시면 어떻게 해요~!”

“원 걱정도. 뭐가 어려워?”

“그러니까, 없다는 것은 무극(無極)이겠지요?”

“맞아.”

“무극에서 음양이 나왔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왜 하나가 나왔다고 하셨어요?”

“태극은 하나니까.”

“태극은 음양이 아닌가요?”

“왜 아니겠어.”

“그럼 둘이잖아요?”

“둘이긴 하지만 떨어질 수는 없지. 엄마와 아기처럼.”

“그렇다면 둘이라고 할 수가 없단 말씀이군요.”

“그래서 그냥 하나라고 하는 거야.”

“일리가 있어요.”

“태극과 음양의 차이는 뭘까?”

“태극은 음양이 아직 분리되기 전 단계라고 할까요?”

“좋은 답이네.”

“전, 여태까지 태극과 음양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해.”

“그게 틀린 걸까요?”

“틀린 것도 아니고, 맞은 것도 아니지.”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참 알쏭달쏭합니다.”

“차차로 다 알게 될 거야.”

“그런데, 둘에서 넷이 나온 것이 아니라 둘에서 셋이 나왔다뇨?”

“여기에서 셋은 ‘세 번째 단계’라는 뜻이야.”

“아하~! 그렇담 세 번째 단계는 음양의 확장으로 사상이 되었단 말이죠?”

“제대로 이해했어.”

“그러니까 문자만 알아서는 답을 얻기 어렵다는 말이 맞습니다.”

“묻는 사람이 있으니까, 이렇게 설명을 해 주는 사람도 있잖아.”

“맞아요.”

“사상의 이름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누님.”

“태양(太陽⚌)과 태음(太陰⚏)에서 자식이 태어나니까, 소음(少陰⚍)과 소양(少陽⚎)이야.”

“그렇게 간단해요?”

“간단하지 않으면?”

“그래도 좀 있어 보이게 또 ‘중생심~!’하시려고요?”

“알긴 잘 아네.”

“소음과 소양은 뭐죠?”

“아버지를 닮아서 소음이 되었고, 어머니를 닮아서 소양이 되었어.”

“그렇다면, 소음과 소양의 음양은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 닮은 소음은 양이 되고, 어머니 닮은 소양은 음이 되지.”

“소음이 양이 된다니까 좀 꼬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죠?”

“그야 이름에서 오는 착시현상(錯視現狀)이야.”

“소양을 양이라고 하면 안 되나요?”

“그것은 누나를 남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니까.”

“그래도 이름이 이상합니다.”

“소양은 양이 적다는 뜻이니까, 음이 많다는 말이야.”

“그야 그렇지요.”

“뭐가 문제야?”

“이 의미는 알고 있는데 누님은 어떻게 설명해 주실까 싶어서 짐짓 여쭤봤어요. 그런데 간단명료해서 좋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해 보는 것은 이해의 폭을 넓게 하는데도 도움이 될 거야.”

“맞습니다. 예전에 태산에 있을 적에 어느 선배의 도움으로 주역의 기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는데 누님이 설명을 들으니까 또 느낌이 다릅니다.”

“당연한 거야. 백 사람을 만나서 듣는다면 또 백 가지의 설명을 듣게 될 거니까.”

“그렇게나마 기초를 해 놔서 지금 누님의 이야기를 듣는데도 어려움이 덜한 것 같습니다.”

“그럴 거야. 이미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들어 본 이야기인 것을 감 잡았어.”

“예? 그것을 어떻게요?”

“수용하는 태도에서 나타나잖아.”

“전 전혀 티를 내지 않았는데요?”

“그건 일부러 내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야. 모르는 것은 아는 채를 해도 어색한 것과 같은 것이야.”

“아, 그렇겠습니다. 누님에게는 모든 것이 명경(明鏡)처럼 분명하게 보이시는가 싶습니다. 놀랍고 감탄스럽습니다.”

“원래 자연은 숨김이 없는 거야.”

“그럼, 셋에서 만물이 나온 것에 대한 이야기해 주세요.”

“고단하지 않아?”

“예?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지금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것은 과욕인 것 같아서 한 말이야.”

“좀 고단하긴 하지만 탄력을 받은 김에 해치우려고요. 하하~!”

“그게 맘대로 되지 않는다니까. 우선 좀 쉬어.”

“예? 쉬라니요? 누님이 고단하신가 봅니다.”

“그 느낌이 왔어. 그래서 좀 쉬었다가 또 이야기하자는 거야.”

“정말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사실 제가 조금 피곤한 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또 꼭 짚어서 말씀을 해 주시니 얼마나 마음이 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좀 누워.”

“그래도 될까요?”

“괜한 말은 하지 말고. 이미 마음은 침상으로 가 있는데 뭘.”

“또 들켰나요? 참말로 무슨 말을 못 하겠습니다. 하하~!”

“자. 이렇게 누워서 한숨 자고 나면 머릿속이 맑은 호수처럼 될 거야. 그럼 또 공부하셔. 난 산책 다녀올 테니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상인화가 밖으로 나갔다. 고요해진 방 안에서 잠시 누웠던 우창은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는지 정신을 차려보니 꿈을 꿨다. 꿈속에서 고향집에 있었다. 어머니와 뒤뜰에서 뛰놀면서 희희낙락(喜喜樂樂)하던 자신의 모습이 마냥 편안하기만 했다. 그야말로 꿈속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상인화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지 인기척이 없었다. 그래서 침상에 누운 채로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 편안함은 뭐지?’

우창은 스스로 생각해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 보는 집에서 이렇게 편안하게 잠까지 잘 수가 있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동생, 편안하게 한숨 잤지?”

마침, 산책을 나간다던 상인화가 돌아왔다는 기척을 냈다.

“누님, 덕분에 잘 쉬었습니다. 달콤하게 쉬었네요.”

“괜히 몽유원이 아니거든.”

“아, 여기가 몽유원이었군요. 어쩐지, 편안했습니다.”

우창이 일어나서 마시던 차로 목을 축이자 상인화도 들어왔다. 그러고는 빙긋 웃으면서 편안하게 쉬고 일어난 우창을 보고는 말했다.

“좀 쉬니까 머리가 맑아졌지?”

“예, 누님 말씀이 어머니 말씀 같습니다. 어쩌면 그리도 저의 속내를 잘도 읽으셨는지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하하~!”

“마음이 가면 정이 가고, 정이 가면 뜻을 헤아리게 되는 거야?”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요? 한집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아도 갈등이 일어나곤 하잖아요.”

“그래서 공부하는 것이잖아.”

“아, 그렇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한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드는걸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장애물이야.”

“그럼 어려울 일이 없나요?”

“무슨 어려움이 있겠어. 생각이 나는 대로 하는 것이 자연이라면 어려울 일은 또 뭘까?”

“듣고 보니 그것도 맞는 말씀이네요.”

“자연은 쉽고 어려운 것이 없어. 다만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고 지어서 스스로 웃고 울면서 때론 즐겁게, 또 때론 고통스럽게 살아갈 뿐이야.”

“참으로 말씀은 쉬운데 의미(意味)는 심장(深藏)해요.”

“그게 이치를 보려는 동생의 마음에 반영(反影)을 일으켜서 그런 거야.”

“아니면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냥 싱거운 말로 한쪽 귀로 흘려버리게 되지.”

“정말 놀랍습니다. 어허~! 또 놀랍다는 말이 나오네요.”

“괜찮아. 놀라움은 많을수록 깨달음이 다가오는 거니까.”

“한숨 푹 자고 났더니 누님이 관음보살로 보이는 건 어쩌죠?”

“그건 동생의 눈이 제대로 돌아온 거야.”

“예? 어쩌면 그렇게 날름 받아 드십니까? 하하~!”

“동생은 관음보살이 뭐라고 생각해?”

“자비(慈悲)의 화신(化身)이잖습니까?”

“그냥 내 앞에 있는 아름다움이 관음보살이야.”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것이 사람이든, 고양이든 꽃나무이든 간에 말이야.”

“우왕~! 또 놀랍니다. 그렇다면 진정 누님은 관음보살이 맞습니다.”

“관음보살로 보이면 관음보살인 거야.”

“마녀(魔女)로 보이면요?”

“그러면 눈을 고쳐야지.”

“왜요?”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고장 났다는 것이니까.”

“참 쉽다가도 어려운 것이 공부이고, 누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한결같은데.”

“관음보살로 보이는 것은 정상이고 요녀(妖女)로 보이는 것은 비정상이라면 이것은 자연의 이치를 좋은 쪽으로만 보려는 편견이 아닐까요?”

“아니야.”

“예? 아니라고요?”

“세상에 요물이나 요녀는 없어. 모두 자신의 마음에 있는 상처가 투영(投影)된 것일 뿐이야.”

“그렇다면 세상은 아름다울 뿐이라는 말씀이지요?”

“당연한 이치야.”

“그렇게만 살면 아무도 미워할 일이 없고, 미움을 살 일도 없겠습니다.”

“미워할 일은 없을지 몰라도, 미움을 살 수는 있을 수도 있겠지.”

“그건 왜지요?”

“모두가 내 생각 같지는 않으니까.”

“참, 그렇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우선은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을 이해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용서하면 되지.”

“이해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되면 어쩌지요?”

“그럼 지옥으로 들어가서 불길을 걸어야겠네.”

“그렇게 된다면 참혹(慘酷)합니다.”

“그게 마음의 장난인거야. 그러니까 관음보살과 만나서 법담(法談)을 나누는 것이 행복인 거야.”

“스님들의 자애로운 미소가 이해됩니다.”

“동생이 ‘스님들’이라고 한정(限定)하게 되면 또 형상에 갇히게 될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냥 누구나 자애(慈愛)롭다고 생각해야지.”

“여하튼 수행하는 스님들은 자애롭지 않습니까?”

“아직 그렇지 않은 스님은 못 봤나 보네.”

“아, 그런 스님도 있습니까?”

“무슨 스님인들 없겠어.”

“하긴 그러네요.”

“그래서 이름에 매이지 말고 행동을 보고 판단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제 머리가 좀 풀렸으면 셋에서 만물이 나온 이야기나 해 볼까?”

“그렇잖아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울고 싶던 차에 뺨을 맞는 격’이지.”

“그건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습니다. 누님.”

“그럼 뭐라고 할 거야?”

“아마도, ‘배고픈 아이에게 밥 들어온다.’고 해야죠. 하하~!”

“그것도 말이 되네.”

우창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서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