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2. 두루두루 갖춘 주역(周易)

작성일
2017-04-14 10:28
조회
2011
[174] 제16장 역경(易經)의 입문(入門)


2. 두루두루 갖춘 주역(周易)



우창은 잠시 연산(連山)과 귀장(歸藏)에 대해서 생각에 잠겼다. 물론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으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서 기록하고 적용한 고인의 노력에 대해서는 이해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누님, 그렇다면 주역은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야 간단하잖아~! 주나라의 역(易)이라고 하면 되겠네.”

“그것 말고 더 있어 보이는 관점에서 말이지요.”

“그럼 모든 것을 포함한 역이라고 할까?”

“예? 그건 무슨 말씀이지요?”

“주역의 주(周)가 무슨 뜻이야?”

“그야 주나라를 의미하잖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주나라 문왕(文王)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그러고 보니까 공자는 문왕의 숭배자(崇拜者)였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네.”

“그런가요? 문왕이 주역을 쓴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어요.”

“맞아. 그런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주(周)가 의미하는 것은 두루 갖춰서 모자람이 없다는 자부심(自負心)이 포함되어 있다는 거야.”

“그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다른 것도 처음 듣기는 하지만요.”

“연산역(連山易)은 무슨 뜻이랬지?”

“산이 첩첩하게 겹쳐져 있는 것이니까 아직은 산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떠오르는걸요.”

“오라~! 그 사이에도 뭔가 생각을 하셨구나~!”

“예, ‘왜 연산일까?’를 생각하다가 보니까 옛날에는 사람들도 산의 동굴(洞窟)을 의지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귀장역(歸藏易)은?”

“산에서 사람들이 살다가 너무나 불편하니까 들로 나오기 시작했다고 보면 어떨까요? 그래서 땅에 자리를 잡으면서 귀장(歸藏)의 필요성을 느꼈을 거라고 봅니다.”

“이야~! 대단하구나!”

“물론, 들판에서 살아가기에 맞는 역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귀장이라고 생각해 봤습니다.”

“여하튼 우창 동생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나.”

“고마워요. 누님~!”

“그래서 산에서 들로 나온 사람들이 다시 주(周)를 생각한 이유도 있을까? 이거 아무래도 오늘 내가 동생에게 홀딱 반하고 말겠네.”

“뭔 말씀을요. 반하기는 이 우창이 누님의 해박함에 반했지요.”

“괜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주역이 그렇게도 대단하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은 주나라의 번창에서도 알 수가 있었다고 봐.”

“그랬겠어요. 이제 생각해 보니까 주역의 특별한 점도 이해가 되겠습니다. 연산과 귀장을 거친 다음에 등장한 주역은 확실히 그 위치가 높아 보이네요.”

“그니깐~! 그래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나 봐.”

“맞는 말씀입니다. 누님의 말씀에 공감이 백 배입니다.”

“이제 주역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물론입니다. 덕분에 상식을 풍부하게 했습니다. 이제 주역의 팔괘(八卦)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부터 설명해 주세요.”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뭘?”

“아닙니다. 누님의 조곤조곤한 음성으로 정리하면서 듣고 싶습니다. 하하~!”

“원 참, 동생도 짓궂기는~!”

“무극(無極)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근거(根據)를 논하기도 하지.”

“무극이 뭐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태허(太虛)와 태초(太初)와 태시(太始)를 거쳐서 태소(太素)를 거친 다음에 생긴 것이 무극(無極)이라고도 하는데 여하튼 내가 이해하기에는 ‘음양미분전(陰陽未分前)’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아, 그러한 이름이 붙은 것은 ‘음양으로 나뉘기 이전의 상태’라는 말씀이지요?”

“맞아, 그것은 천지자연이 음양으로 나뉘기 이전의 상황이라고 이해하는 거야. 태허면 어떻고 태시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말아야. 괜히 단계를 많이 만들어서 쓸데없이 혼란만 발생시킨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놀이터로 놔두고 잊어버려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어.”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동의합니다. 괜히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에 동감입니다. 하하~!”

“그렇다면 음양으로 나뉘는 과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호~!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무극이 상태에서 음양으로 나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소용돌이로 이해를 하면 어떨까요?”

“어? 무슨 뜻이야?”

“무극의 상태에서 어떤 움직임이 있어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고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 소용돌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님~! 이 어린 동생에게 너무 많은 답을 기대하시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것까지 생각할 수가 있겠냐고요~!”

“원, 동생도 참, 떼를 쓰기는~!”

“누님~!”

“왜?”

“사실은 이렇게 떼도 써보고, 어리광도 피워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다정다감(多情多感)하신 누님을 만났으니 한번 해 보고 싶었습니다. 하하~!”

“동생은 누나가 없었구나?”

“예, 맞습니다.”

“알았어. 가끔 떼를 써도 좋아~!”

“이번에는 우창이 물을 겁니다. 근데, 소용돌이는 어디에서 왔을까요?”

“소용돌이는 인연(因緣)에서 왔어. 움직이지 않는 것과 움직이는 것이 서로 만나서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네.”

“예? 인연은 그럼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야 하는 거잖아요?”

“물으시렴.”

“그럼 인연인 어디에서 왔습니까?”

“인연은 한마음에서 왔어.”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연의 시작은 일념(一念)에서 온 것이니까.”

“일념이라고 하신 것은 어쩌다가 문득 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해를 해도 됩니까?”

“뭐, 그렇게 생각해도 안 될 것이 없겠네.”

“음…….”

“왜? 맘에 안 들어?”

“그럴 리는 없겠지만, 왠지 누님의 말씀이 너무 허접해 보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죠?”

“그야 동생이 무극에서 뭔가 대단한 기대를 했었나 봐.”

“맞아요. 누님께서 무극에 대한 멋진 답변을 해 주실 거라는 기대감이었는데 갑자기 힘이 쭈욱~ 빠지잖습니까?”

“사실, 진리는 힘을 뺀 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무공을 익히려면 맨 처음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아?”

“기마자세(騎馬姿勢)지요.”

“기마자세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죠.”

“오호~! 그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기마자세의 사이에는?”

“그러니까 가만히 있다가. 기마자세를 하려고 하는 순간! 뭐가 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겠는걸요.”

“동생은 무예는 익히지 않았지?”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무예를 익히게 되면 가장 먼저 그것을 배우는데 모르는 것을 보고 알았지 뭐.”

“그게 뭔지 알려 줘요.”

“힘을 빼야지.”

“예?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라고요?”

“당연하지. 완전히 힘을 빼야 무술을 연마할 준비가 되고 그다음에 힘을 주면서 기마자세를 하는 거야.”

“우왓~! 뭔가 커다란 불망치가 머리를 ‘꽝~!’하고 때리고 지나간 것 같습니다.”

“오호~! 그것참 다행이네.”

“그러니까 제가 무극(無極)에서 태극(太極)으로 전환(轉換)되는 과정에서 너무 큰 의미를 부여했다는 말씀이신 거지요?”

“맞아. 자연의 이치는 별것이 아니야. 그냥 일상(日常)일 뿐이지.”

“그걸 알면서도 뭔가 기대감(期待感)이 생기곤 합니다. 이건 무슨 병일까요. 누님?”

“학자병(學者病)~!”

“예? 그런 병도 있습니까?”

“그럼, 세상에 병이 얼마나 많은데.”

“학자병을 고치려면 어떻게 합니까?”

“수류화개(水流花開)의 관법을 닦아.”

“그건 어떻게 하는 거죠? ‘물이 흐르고 꽃이 피는 관법’이라뇨.”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

“예? 아, 하하하~! 전 누님께서 절 놀리시는 줄 알았어요. 하하~!”

“놀리긴,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힘만 빼면 바로 치유(治癒)가 된다는 거죠?”

“이미 치유가 되었어.”

“그럼 다시 공부해야 하겠네요.”

“이미 공부하고 있어.”

“정말, 말로는 누님을 못 당하겠습니다.”

“난 다만 동생의 마음에 반응(反應)하고 있을 뿐인데 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리에 메아리가 화답(和答)하는 이치지 뭐야.”

“그럼 제가 묻는 대로 누님이 답을 하신다는 거네요?”

“맞아.”

“잘 모르겠네요. 다시 여쭙습니다. 무극이 뭡니까?”

“동생이 처소의 문을 나서기 전이지.”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요?”

“문을 나서기 전에는 어디로 나가겠다는 마음이 없었잖아?”

“아, 맞아요. 무심하게 문을 열었지요.”

“그게 무극이야.”

“그럼, 태극(太極)은요?”

“발걸음을 몽유원으로 향한 거.”

“아무런 마음이 없었는데도요?”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못 느낀 것이겠지.”

“못 느낀 것이 없는 것 아닌가요? 뭐가 다르지요?”

“문을 나서기 전의 상태는 없는 것이고, 문을 나선 상태는 못 느낀 것이라고 해.”

“그 차이를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변화(變化)가 생긴 거야.”

“그렇긴 하죠. 걸음을 옮겼으니까요. 그런데 그 걸음에 의미를 두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이 없어. 그렇게 무심에서 일념이 생긴 거야. 문득 ‘오늘은 이쪽 길로 가봐야지’라고 하는 순간(瞬間)이 태극이야.

“뭔가 이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죠?”

“변화는 방에서 문을 열기 전에 이미 일어난 것이기도 해.”

“그건 누님의 비약(飛躍)이 좀 심한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고서야 오라버니께서 나가시면서 오늘 귀인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했겠어?”

“예?”

“맞아. 그것이 무극이고, 태극이야.”

“정말 누님~!”

“왜 또?”

“감동의 물결이 가슴속에서 일렁입니다.”

“그래 태극 다음에는 음양이니까.”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음양은 남녀의 사랑이라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야. 음양은 팔만사천(八萬四千)가지야.”

“그 말씀은?”

“세상은 음양의 이치가 아닌 것이 없단 말이야.”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음양일까요?”

“남매음양(男妹陰陽)~!”

“그런 음양도 있습니까?”

“여기 있잖아.”

“그런가요?”

“그렇게도 다양한 음양의 흐름을 살피는 것이 주역의 공부라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으로 봐.”

“누님의 말씀은 그야말로 청산유수(靑山流水)입니다.”

우창은 내심 상인화의 말에 감탄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