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제13장 형상론(形象論)/ 3. 일행(一行)의 사주(四柱)

작성일
2017-03-3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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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제13장 형상론(形象論)

3. 한 가지 기운으로 된 사주(四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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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독상(獨象)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일이 이렇게 옆길로 새어버렸군. 하하~!”

고월이 이렇게 말하면서 웃자, 우창이 다시 독상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뜻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리고 어떻게 생긴 것이 독상인지 궁금해서 고월에게 물었다.

“독상의 사주는 어떻게 생겼는지 자료가 있으면 좀 보여주시려나?”

“어렵지 않네.”

그러면서 쌓인 자료의 뭉치 속에서 하나를 끄집어내서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러고는 적당한 예를 찾았는지 석판에 옮겨 적었다.

 

壬 癸 壬 壬


子 亥 子 子


고월이 적어놓은 사주를 바라보던 자원이 화들짝 놀란다.

“아니, 무슨 사주가 이렇게 생겼어요?”

그 말에 고월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이 사주도 분명히 56만여 가지의 사주 속에 들어있는 하나라고 보면 되겠지.”

“정말 놀라워요. 이렇게 생긴 사주를 타고난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흉(凶)~!”

“아니 왜요?”

“편중(偏重)~!”

“오호라~! 치우쳤다는 말씀이로군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오히려 순수(純粹)하다고 하는 이야기도 할 수 있겠는걸요.”

“순수라니? 그건 무슨 말이지?”

“아니, 다른 오행이 섞이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순수한 것이 좋은 점도 있겠지. 그러나 균형의 관점에서는 완전히 ‘꽝~!’이라고 봐야지.”

“아하~! 망했다는 말씀이죠? 그렇긴 해보여요.”

“이런 사주도 구경해 볼 텐가?”

“어디 뭔데요?”

丙 丁 丙 丁


午 巳 午 巳


“이런 사주는 또 어떤가?”

“어머나~! 정말 불바다예요.”

“그러니까 단지 여덟 글자의 조합이지만 이렇게 나타나는 형상은 천차만별(千差萬別)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네.”

“이런 사주는 특별한 이름이 없어요?”

“왜 없겠어. 있지.”

“뭐라고 불러요?”

“불덩어리 사주라고 부르지.”

“뜻이야 알겠는데 명칭이 있을 것 아니에요?”

“염상격(炎上格)이라고도 하네.”

“염상이요? 오호, 불이 이글댄다는 의미로군요. 그럼 앞의 사주는요?”

“윤하격(潤下格)~!”

“윤하라면 ‘촉촉한 것이 아래로 가는 틀’이라는 의미인가요? 격(格)자가 있어서 말이죠.”

“격은 일정한 형식에 붙는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되네. 집에다가 성을 붙여서 정씨댁, 고씨댁 하듯이 말이네.”

“재미있어요. 이런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해요.”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재미가 있을지 몰라도 본인의 삶은 순탄하다고 보기 어렵겠지?”

“그럴 것 같아요.”

“이렇게 한 가지의 오행으로 되어있는 사주를 특히 일행득기격(一行得氣格)이라고도 한다네.”

“일행(一行)이라면 한 가지 오행으로만 되어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로군요.”

“그런 셈이지. 그러니까 이런 사주를 실제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고 할 수가 있지.”

“아, 그래서 경도 스승님님이 독상(獨象)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나 봐요.”

“그렇지. 공부하는 사람이 알고는 있어야지. 일평생 한 번도 만나지 못할지라도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니까.”

“잘 알겠어요. 그러니까 독상은 어떻게 하라는 거죠?”

우창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다음 구절을 읽었다.

“그러니까, 독상은 ‘희행화지(喜行化地)’라고 했으니 ‘화(化)하는 지지(地支)로 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인데. 이건 무슨 말이지?”

“그것은 강한 기운을 식상(食傷)으로 흘려보내서 조화(調和)를 이룬다는 의미라네.”

“아, 수(水)로만 된 사주는 목(木)으로 흘러가야 하므로 필요한 것은 식상(食傷)이 되고, 화(火)로만 된 사주는 토(土)를 만나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는가?”

“그렇다네. 이렇게 수로만 되어있는 왕성한 사주에서 토가 들어오면 반발할 것이고, 금이 들어와 봐야 이미 넘치는 것을 더 보태는 셈이니 아무런 감동도 주기가 어려운데 목이 들어오면 유일하게 기뻐한다는 뜻이지.”

“만약에 화(火)가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불은 꺼져버리고 여덟 글자의 물이 그 불을 차지하려고 난리가 나겠지. 이것은 마치 굶은 사자들의 우리에 토끼 한 마리를 던져주는 것과 같다고 하겠네.”

“오호~! 그 설명을 들으니 느낌이 팍~! 오는군. 알겠네. 왜 화지(化地)를 기뻐한다고 한 것인지를 말이지.”

“같은 수라도 이미 넘치는 물에 추가로 물 한 바가지를 보탠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본다면 오로지 유일하게 목을 기뻐한다는 경도 스승님의 판단이 옳다고 하겠네.”

“여기에서 행(行)이란 것은 운행(運行)을 말하는 건가?”

“맞아. 매년 들어오고 나가는 태세(太歲)를 말하지.”

“아, 그러니까 사주의 여덟 글자가 운행(運行)하다가 태세(太歲)의 간지를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로군.”

“그렇지. 이것을 행운(行運)이라고도 한다네.”

“그러니까 형상에서는 어떤 운을 만나면 좋은가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도 되겠나?”

“그렇지, 양상(兩象)은 두 오행을 편안하게 해 주는 운이 좋다는 말이고, 독상은 설기(洩氣)하는 운이 좋다는 말이라네.”

“다음 구절에 나오는 ‘화신요창(化神要昌)’의 뜻을 보면, ‘화신(化神)이 창성(昌盛)하기를 요망(要望)한다’는 뜻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되겠군.”

“당연하지. 이제 화(化)의 뜻에 대해서는 명료(明瞭)하게 이해를 한 것 같군.”

“독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라는 의미인지를 잘 알겠네. 다음의 구절로 넘어가 봐도 되겠군.”

우창은 다시 다음 구절을 읽었다.

    全象喜行財地 而財神要旺(전상희행재지 이재신요왕)

 

    완전(完全)한 형상(形象)이면 재성(財星)의 행운(行運)을 좋아하니

    재성(財星)이 왕성(旺盛)하기를 요구(要求)한다.

“이번엔 전상(全象)이 나오는군. 전상이라고 말을 한 것은 온전치 못한 형상(形象)도 있기에 나온 말이겠지?”

우창의 물음이 고월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렇긴 하네. 그런데 전상(全象)과 오기(五氣)의 경우가 서로 어떻게 다른지를 잠시 생각해 봤네.”

“그렇군. 오기가 모였다면 그것도 전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텐데 별도로 구분을 한 것은 아마도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겠지 싶군.”

“오기(五氣)보다 전상(全象)이 더 격조(格調)가 있게 느껴지는걸.”

“그렇다면 오기는 그냥 오행이 섞여져 있는 것을 의미하고, 전상(全象)은 오행의 기운이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있어서 완전한 흐름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네.”

“고월의 생각에 나도 동의하네. 그렇다면 전상은 사주의 구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합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사주를 타고나려면 아마도 전생에 무량공덕(無量功德)을 쌓은 사람이라고 봐야 하겠지?”

“왜 아니겠는가. 복이 있다는 것은 이러한 사주를 타고났다는 것을 의미해도 될 것 같네.”

“그래도 부럽진 않아요. 순탄하면 순탄한 대로, 고비가 많으면 고비가 많은 대로 저마다의 번뇌는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오호~! 자원은 이미 심리학자이고 불교의 고승이로군. 하하~!”

“그런 거예요? 그냥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고승은요 무슨. 호호~!”

“겉으로 누리는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있고, 속으로 누리는 부귀영화도 있지. 지금 자원이 말한 것은 겉보다 속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라는 뜻이잖은가?”

“맞아요. 금은보화에 쌓여서 고뇌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당연하지. 그래서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한다네.”

“물론 저마다 가치관(價値觀)과 기준점이 다르겠지만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빈털터리가 부자이고, 부자는 빈털터리가 되는 거지. 하하~!”

“설마 제가 갖지 못해서 스스로 위로한 생각은 아니겠죠?”

“아니, 자원은 가진 자들이 부러운가?”

“아뇨~!”

“그럼 되었지 무슨 생각을 많이 하는가. 유심론(唯心論)과 유물론(唯物論)의 견해차이라고 보면 될 것이네. 하하~!”

“알겠어요.”

자원의 우창의 말에 느낌이 있었다. 잠시 생각하고는 다음 구절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전상(全象)은 재지(財地)를 좋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이죠?”

그 말에 고월이 답했다.

“재(財)가 뭔지는 알고 있지?”

“재는 일간(日干)의 오행이 극하는 것에 대한 이름인 것이 맞죠?”

“틀림없군. 음양이 같으면 편재(偏財)이고, 음양이 다르면 정재(正財)라고 구분하지만 특별히 나누는 경우는 가끔이고 대부분은 그냥 묶어서 같이 보고 재성(財星)이라고 한다는 것도.”

“옙~! 그렇게 정리를 할게요. 그런데 재의 운을 좋아한다는 것은 왜 그럴까요?”

“전상(全象)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미 모든 오행을 다 갖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특별히 부족한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참 복이 많은 사람인 것은 틀림없네요.”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노력한 것은 결실(結實)을 이루는 것이 궁극(窮極)의 목표라고 봐서 결실을 의미하는 십성(十星)인 재성을 좋아한다는 뜻이라네.”

“재성이 결실이라는 것은 무슨 뜻이에요?”

“아, 그것에 대해서 이해가 좀 부족했던가 보군.”

“모든 것은 다 결실이 아닌가요? 왜 재성을 결실이라고 하죠?”

“오행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네.”

“흐름은 시종(始終)에서 설명해 주셨는걸요.”

“시작(始作)을 어디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으냐고 한다면 뭐라고 답을 할 텐가?”

“인성(印星)이요~!”

“왜 그런가?”

“인성에서 나를 생하는 기운이 일어나니까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원원유장(遠遠悠長)하게 흐르려면 인성(印星)의 힘도 충만하다면 더욱 좋겠지?”

“아하~!”

“왜? 느낌이 오셨는가?”

“관살(官殺)로 시작을 삼아야 해요.”

“그건 또 왜?”

“곤륜산(崑崙山)은 험난하지만, 그곳에서부터 솟아난 한줄기의 물이 있기 때문에 흘러 흘러서 장강(長江)을 만들잖아요?”

“오호~! 그래서?”

“그래서 그 물로 토양(土壤)을 비옥(肥沃)하게 해서 곡식이 자라고 그것을 뜯어먹고 살아가는 인간들이라고 볼 수 있단 말이죠.”

“맞았네. 그래서 관살을 멀리 있는 자신의 뿌리로 삼는다면 가장 좋다고 하겠네. 그리고 관살은 가까이 있으면 일간(日干)인 나를 공격하여 고통스럽게도 하지만 멀리 있어서 인성을 생조(生助)한다면 이것은 오히려 큰 도움이 되는 작용으로 나타난다네.”

“이해가 팍팍 되었어요. 임싸부~!”

“그렇게 발원(發源)이 멀기 때문에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 흘러서 잘 먹고 살아가게 되면 비로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이것은 식상(食傷)의 영역이라고 봐야 하겠지?”

“맞아요. 식신(食神)은 없는 것을 만들어서 발명가(發明家)가 되고, 상관(傷官)은 그것을 유통해서 사업가(事業家)가 되죠.”

“빠릿빠릿하게 답을 하니 예쁠 수밖에 없군. 하하~!”

“고마워요. 예쁘게 봐 주시니 더욱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호호~!

“식상이 노력했으니 결실은 당연히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것은 재성(財星)으로 대신해서 말을 할 수가 있지.”

“아, 그래서 결실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뜻이었군요. 이해가 되었어요. 관살로 시작해서 재성으로 끝낸단 말씀이죠?”

“맞아.”

“그렇다면…….”

“왜 또 무슨 질문을 하려고 긴장시키나?”

고월은 자원의 말을 듣고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