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제13장 형상론(形象論)/ 2. 자시(子時)가 둘인 이유(理由)

작성일
2017-03-30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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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제13장 형상론(形象論)

2. 자시(子時)가 둘인 이유(理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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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바탕 자원을 칭찬하고는 다음 구절로 눈을 돌렸다. 우창이 낭랑한 목소리로 읽고, 두 사람은 들었다.

    獨象喜行化地 而化神要昌(독상희행화지 이화신요창)

 

    한가지로 이뤄진 형상(形象)은 설화(洩化)하는 행운(行運)을 기뻐하니

    이때에는 설(洩)하는 식상(食傷)이 번창(繁昌)하기를 요구(要求)한다.


“아, 이번엔 독상(獨象)이라고 되어 있군. 내 짐작(斟酌)이 맞는다면 한 가지의 오행으로만 되어있는 형상을 말하는 것일까?”

“짐작이 바로 맞았네. 그 이야기로군.”

“아니, 단지 여덟 글자로 구성이 되는 사주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이 드러난단 말인가?”

“아무렴.”

“도대체 서로 다른 간지의 조합이 얼마나 되기에 그렇단 말인가?”

“우선 생각해 보면 알 일이 아닌가?”

그러자 궁금증이 넘치는 자원이 열심히 계산에 들어갔다.

“생각해볼게요. 우선 연주(年柱)가 한 바퀴 돌려면 60년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지.”

“그럼 연주가 서로 다른 사주는 60가지가 되겠네요. 맞죠?”

그 말에 우창도 동의를 했다.

“틀림없는 이야기로군.”

“그럼 매년(每年)마다 12개의 월주(月柱)가 있으니까 여기에 12를 곱하면 되잖아요?”

“옳은 이야기로군 그럼 몇 가지가 되나?”

“그럼 연주(年柱)와 월주(月柱)가 서로 다른 것은 720가지가 되겠는걸요. ‘60년씩 12개월이면 720’이니까요.”

“계산도 잘하시는군.”

“그럼 다음은 일주(日柱)예요. 당연히 육갑(六甲)이 한 바퀴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까 60가지의 경우가 있겠어요. 다만 한 달은 29일이나 30일이므로 계산하기 편하게 30일로 하면 두 달에 걸쳐서 돌아가게 되어있으나, 이러한 것은 복잡하니까 생략하고 그냥 쉽게 따져보는 걸로 해요.”

“대략(大略) 따져보면 되지, 구체적으로 조금 다른 것이 뭐 대수겠는가.”

“아마도 크게 다르진 않을 거예요. 여하튼 이렇게 되면 720에다가 다시 60일을 곱해야 하겠네요.”

“그럼 얼마가 나오나?”

우창은 계산에 대해서는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에 아예 계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는 습관이 있었다. 잠시 생각을 하면서 손가락을 꼽작거리던 자원이 말했다.

“어머, 4만 3천 2백이에요. 여기에 다시 시주(時柱)를 넣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시주는 13가지로 대입하면 되겠군.”

“예? 하루는 12시가 아니던가요?”

“그야 당연한데 자시(子時)는 둘로 나눠지거든.”

“무슨 말씀이세요? 그 이야기는 첨 들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지만 명학(命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의견이 둘로 나뉜다네.”

“어떻게 말인가요?”

“자시(子時)가 시작되는 야삼경(夜三更(23시)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새날로 보는 학파(學派)와, 자정(子正:24시)부터 새날로 보는 학파가 있기 때문이라네.”

“왜 기본적인 이야기에서 서로 의견이 달라지는 거죠?”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은 간지이기 때문이지.”

“아, 그렇겠네요. 눈에 보인다면 명료할 텐데 말이죠.”

“그러다 보니까 자시(子時)에 대해서 왈가왈부(曰可曰否)를 하지만 각자 자기 기준으로 생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야지.”

“그렇다면 임싸부는 어느 쪽의 이론을 따르세요?”

“나는 자정(子正)을 시작일(始作日)로 보는 견해를 따른다네.”

“그 말씀은 하루를 13시로 본다는 뜻인가요?”

“맞아~!”

“그렇게 확고(確固)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그만한 이유도 있으시겠는걸요. 그 이야기부터 들어야 하겠어요.”

“그보다도 자원의 생각은 어떨까?”

“제 생각에는 삼경(三更)의 초(初), 그러니까 자초(子初)부터 날이 바뀌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왜 그래야 하는지는 물론 알 수가 없죠.”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니까 무리가 아니지.”

“그렇다면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를 어서 들려주세요. 뭔가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단 말이죠.”

“이유야 당연히 있지. 혹 우창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는걸. 어서 이야기를 해 주시게. 그것만 고대하고 있다네. 하하~!”

“그렇다면 설명할 테니 이치에 타당한지 혹은 불합리한지 판단을 해 주시게.”

“그야 여부가 있는가. 이야기를 들어보세. 그에 대한 확실한 기준을 잡아놓지 않으면 막상 부딪쳤을 적에 해결책을 몰라서 난감할 테니 확실히 알아 두겠네.”

“연월일시의 네 기둥이 있다고 하면 시주(時柱)는 연월일의 어느 기둥과 서로 공통점(共通點)이 있다고 하겠는가?”

그러자 자원이 나섰다.

“당연히 월주(月柱)겠죠?”

“그래? 왜 그렇지?”

“연주(年柱)나 시주(時柱)는 순환(循環)되는 기준이 60이고, 월주(月柱)와 시주(時柱)는 12니까요. 그건 간단한 문제 아녜요?”

“아, 그렇군. 간단한 문제이지만 사실 매우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네. 그래서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알았어요. 그다음에는요?”

“시주(時柱)의 견본(見本)으로 삼을 대상을 월주(月柱)에서 찾으면 이치적으로 타당할까?”

“그야 물론이죠.”

“자시(子時)는 어느 월과 비교하면 좋을까?”

“당연히 자월(子月)이라야 하는 것 아녜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간단한 문제부터 확실히 짚어가면서 설명하려는 것일까요?”

“그야 이러한 문제로 혼란을 일으키면 안 되는 까닭이지.”

“전혀 그럴 일이 없을 것이고, 이야기를 다 들어본 다음에 판단하면 되니까 어서 이야기나 해 주셔 봐요.”

“그렇다면 자월의 절기(節氣)는 알고 있나?”

“자월은 대설(大雪)부터 시작해서 동지(冬至)를 거쳐서 소한(小寒)에서 끝나고 다시 소한부터는 축월(丑月)이 시작되는 것이 맞죠?”

“왜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지?”

“그야 계절과 인체의 건강은 밀접하니까요. 호호~!”

“아, 선행(先行)으로 학습(學習)을 한 것이 이렇게 도움을 주는군. 하하~!”

“놀랍게도 뭔가 필요해서 배운 것이 또 이렇게 쓰인다는 것이 신기한 것이죠. 그래서 학문의 효과는 알아갈수록 더욱 커지는 것을 알겠어요.”

“그 맛에 공부하는 것이라고 봐야지.”

“그럼 이제 어서 설명해 주세요.”

“자초(子初)는 대설(大雪)과 같다고 보면 될까?”

“물론이죠. 자정(子正)은 동지(冬至)랑 같고, 자말(子末)겸 축초(丑初)는 소한(小寒)과 같겠네요.”

“어허~! 아예 그다음까지 정리를 해버리는군. 하하~!”

“답답해서 그러죠. 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자꾸만 어린아이들이 엿가락을 잡아당겨서 늘여놓듯이 쭈욱~쭈욱~ 늘이고 계시니.”

“그랬던가? 이제 준비가 다 되었네. 하하~!”

“그것 봐요. 또 딴 말씀을. 그렇게 자신이 없으시면 그냥 자시초(子時初)로 적용하시면 되잖아요?

“그럼 이제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하시게.”

“잘 알았어요.”

“이제 시(時)에 대해서는 잠시 뒤로 젖혀두고 자월에 대해서 설명하겠네.”

“아이참, 명이 짧은 사람은 숨넘어가겠어요~!”

“자원의 속이 터지게 생겼군. 하하~!”

우창이 팔팔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자원에게 한 마디 던졌다. 그리고 고월을 바라봤다. 고월도 우창을 바라보고 한 번 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도 답답한 마음의 자원에게 물어볼까? 한 해의 시작은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정월 초하루잖아요? 그것도 말씀드려야 해요?”

“아, 자연의 기준을 말하지 않았구나. 내가 실언을 했네.”

“자연의 기준은 또 뭐죠?”

“정월 초하루의 기준은 뭐지?”

“그야 음력으로 달이 새로 시작하는 12개월 중에 입춘이 있는 달의 첫날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정월초하루의 설날은 달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었나?”

“그렇잖아요? 무슨 기준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태양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라네.”

“태양이라면 동지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

“동지가 되면 짧아졌던 해가 극에 달해서 점점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잖아요.”

“오호~!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군.”

“그 정도는 상식이라고 봐요.”

“아, 그런가? 그렇다면 상식을 믿고서 생각해 보면 되겠군.”

“생각하기는 뭘 생각해요?”

“자월의 시작을 왜 자초(子初)인 대설(大雪)에서 시작하지 않고 하필이면 대설이 시작되고 나서 15일이 지난 다음인 동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한 해의 시작으로 삼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지?”

“예? 그야 한 해의 흐름은 이지(二至)로 나눠져 있잖아요. 하지(夏至)와 동지 말이죠.”

“그렇다면 자월의 시작을 동지(冬至)로 삼았더라면 어떨까?”

“그건 참 간편한 말이네요. 그런데 왜 그렇게 절기를 만들었을까요?”

“그야 누가 알겠는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거예요. 이유는 몰라도 자월의 중간에 있는 동지가 한 해의 시작인 것은 틀림이 없다고 하겠어요.”

“그렇다면 이제 자정(子正)을 하루의 시작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셨겠나?”

“예? 아하, 그러니까 자월의 중간인 동지에서 태양의 길이가 길어지듯이, 자시의 중간인 자정에서 하루가 시작된다는 말이잖아요? 그것은 반박을 할 수가 없는 대입이라고 해야 하겠어요.”

“왜 자시(子時)의 초(初)를 하루의 시작으로 삼지 않지?”

“그것은 동지의 기준을 적용하면 이해가 되겠어요.”

“그럼 설명이 되었을까?”

“너무너무 충분해요. 그런 이치가 분명한데도 왜 자초(子初)를 하루의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학자가 존재하는 것일까요?”

“글쎄, 그것은 나도 모르겠지만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보네.”

“그런데, 실제로 일주(日柱)가 달라지는 것이잖아요. 그 앞의 사각에 해당하는 60분(分)은 자초를 시작으로 삼게 되면 일주(日柱)가 다음 날이 될 것이니까 그 차이를 확인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랬으면 이러한 문제점도 해결이 되었겠지?”

“당연하잖아요.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했듯이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의 삶을 대입해서 확인하면 될 일을 갖고서 너무 이론적으로만 분쟁한 것 같아요.”

“왜 아니겠나. 그랬으면 참 좋겠지.”

“그런데 왜 그러한 결과를 얻지 못한 거죠?”

“그야 나도 모르지. 다만 그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짐작이 되네.”

“어머~! 왜 그렇죠? 임싸부 같은 열혈적인 학자들이 달려들면 해결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나야 아직 임상의 경험이 거의 없어서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내가 임상을 하더라도 이에 대한 명료한 답안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네.”

“이유가 뭘까요?”

“무엇보다도 이유에 반론이 나오고, 반론에 또다시 재반론이 나오게 되면 통일을 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니까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이겠느냔 거죠.”

“생각을 해 보시게. 그 시간에 태어난 사람들이 일단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지.”

“아, 그렇긴 하겠어요.”

“또 운명이란 것이 그렇게 칼로 무를 자르고, 도끼로 장작을 패듯이 명료하게 나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다음으로 나타나는 문제점이지.”

“음.... 그렇겠어요.”

“또 설명하고 해석하는 학자에 따라서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나는 것도 난제(難題) 중의 난제라고 해야지.”

“과연 그렇겠어요.”

“이렇게 여러 가지의 이유로 인해서 실제의 상황을 확인한다는 것은 어려움에 봉착(逢着)하게 될 것이네.”

“그렇다면 태어난 시간에 대해서 명확하게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숙제는 여전히 남게 되겠어요.”

“맞아, 비슷한 것에서 명료함을 찾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

“그래서 임싸부는 아예 이론적으로 타당한 것을 선택하기로 하신 거죠?”

“그렇다네. 어떤가? 이제 이해가 되셨는가?”

“예~! 명확하게 이해를 했어요. 더 이상 출생시간에 대한 문제 중에서 자시(子時)의 시작점은 자정(子正)이라는 것으로 결정하고 고민하지 않을래요.”

“대부분 그 무렵이면, 어머니가 주무시다가 낳았다고 하는 정보를 갖고 있기가 일쑤라네. 하하~!”

“그러니까, 가령 갑자(甲子)일이라고 한다면, 자정 이후에 태어나면 갑자(甲子)시가 되고, 하루를 지나서 저녁을 보낸 다음에 자정의 이전에 태어난다면 병자(丙子)시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만 이해하면 된다네. 겸해서 갑자일 병자시에 태어났는가 했는데 자정을 넘겼다면, 이번에는 병자시는 같지만, 일진(日辰)이 달라져서 을축(乙丑)일이 된다고 보면 틀림없다네.”

“맞아요. 그렇게 적용하면 되겠어요. 그렇다면 자정 전의 자시는 뭐라고 부르면 적당할까요?”

“저녁의 밤에 해당하는 자시라고 해서 야자시(夜子時)라고 부르면 되지.”

“그럼 자정이 지나고 태어나면 주자시(晝子時)가 되나요?”

“주자시라고 해도 되지만 조자시(朝子時)라고 많이 부른다네.”

“그렇다면 일간(日干)에 따라서 야자시에 해당하는 자시를 정리할 수가 있을까요?”

“가능하지.”

“그걸 좀 정리해 주세요.”

자원의 말을 듣고 고월이 정리해서 적었다.


    갑기일의 조자시는 갑자(甲子), 야자시는 병자(丙子)

    을경일의 조자시는 병자(丙子), 야자시는 무자(戊子)

    병신일의 조자시는 무자(戊子), 야자시는 경자(庚子)

    정임일의 조자시는 경자(庚子), 야자시는 임자(壬子)

    무계일의 조자시는 임자(壬子), 야자시는 갑자(甲子)


이렇게 적어서 보여주자, 그것을 본 자원이 다시 열심히 입을 달싹이면서 암기했다. 뭐든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은지 몰입해서 외우다가 갑자기 말했다.

“그러니까 시주(時柱)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잖아요?”

“이해가 되셨다니 다행이군.”

“특히 자정(子正)의 시작에 대한 설명은 상당한 객관성과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요. 그대로 하면 되겠어요.”

“자, 그렇다면 이제 하던 계산을 마저 해 볼까?”

“그게 뭐죠?”

“아니, 지금 사주의 종류가 얼마나 되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

“아, 맞다~! 호호호~!”

“하루에 나타날 수가 있는 사주의 숫자는 12가 아니라 13이란 거지.”

“알았어요. 그렇다면 다시 4만 3천 2백을 13으로 곱하면 되겠어요.”

“그렇게 하면 얼마가 나오지?”

“가만 계셔보세요. 이건 좀 복잡하네요. 아, 나왔다.”

“얼마나 되지?”

“56만 1천 600인데요. 우와~! 이렇게 엄청난 종류의 사주 조합이 나온단 말이에요? 이 정도인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물론 자원의 계산이 틀렸을 수도 있어요.”

“참으로 대단하군.”

우창도 놀랐다는 듯이 감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