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 제11장 간지의 변화 / 14. 시작할 곳과 끝나는 곳

작성일
2017-03-19 08:24
조회
2008
[148]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14. 시작할 곳과 끝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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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상생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우창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

 

上下貴乎情協(상하귀호정협)


左右貴乎同志(좌우귀호동지)


 

상하가 귀한 것은 정으로 협력하는 것이고

좌우가 귀한 것은 뜻을 같이하는 까닭이다.

 

우창이 읽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원이 말했다.

“이번엔 상하좌우(上下左右)의 이야긴가요?”

자원의 말에 우창이 동조했다.

“그렇군. 앞에서는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넓게 보라는 의미인 듯싶군. 정확한 것은 고월의 설명을 기다려 봐야지.”

그러자 고월이 말했다.

“내 설명이 별로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걸. 이 대목 정도라면 우창이 풀어 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 그렇다면 어디 보자. ‘상하가 귀하려면 유정(有情)하게 협력(協力)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 보게. 내용이 단순해서 달리 보려고 해도 달리 볼 방법이 없지 않은가?”

“그렇군. 그런데 ‘정협’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그야 정(情)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되지 않을까?”

그러자 자원이 불쑥 나섰다.

“정은 여인에게 많은 것이니까 제가 말씀을 드려 볼까요?”

“오호, 그것도 좋겠네.”

“정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면 되는 것이라고 봐요. 정을 주고받는 것은 서로 마음이 부합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일리가 있군.”

“한쪽에서만 정을 준다고 해도 상대가 받지 않으면 정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생을 받고 싶을 적에는 생을 해주는 인성(印星)이 위나 아래에 있어야 하고, 생을 주고 싶을 적에는 식상(食傷)이 위나 아래에 있으면 정협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우창의 의견에 고월이 동의를 했다.

“틀림없는 말이네. 그렇게만 이해를 하면 되겠네. 굳이 상하라고 했으니까 위와 아래를 의미한다고 보면 정확하겠군.”

“그렇다면 ‘좌우가 귀한 것은 동지’라고 한다니까 동지나 정협은 서로 같은 뜻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요?”

“뜻을 같이하는 ‘동지(同志)’나, 정으로 협력하는 ‘정협(情協)이 같은 말이라면 구태여 달리 볼 필요는 없겠지. 타당하네.”

“이것은 쉽네요. 실제로 사주를 보면 아마도 조금은 만만치 않겠지만 글자의 뜻으로만 봐서는 쉬운 내용이에요.”

“자원의 안목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지. 하하~!”

고월이 칭찬을 하자 자원은 기분이 좋아져서 활짝 웃었다.

“임싸부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죠. 호호호~!

“그럼 다음 구절을 읽어보시려나?”

고월의 말을 듣고 우창이 다음 구절을 읽었다.

 

始其所始 終其所終(시기소시 종기소종)


富貴福壽 永乎無窮(부귀복수 영호무궁)


 

시작할 곳에서 시작되고 끝낼 곳에서 마치나니

부귀와 복록과 수명이 영원토록 다함이 없다.

 

원문을 한 번 읽고 글자를 잘못 읽은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이내 풀이까지 하는 우창이었다.

우창이 읽고 풀이하는 것을 듣고 있던 자원이 나섰다.

“뭐예요? 쳇, 이게 말이 되는 소리에요? 그 안에 깊은 의미가 있는 거예요?”

“아니, 왜 그러시나?”

“너무나 당연한 말을 무슨 깊은 뜻이라고 있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아니, 벌써 자원은 경도 스승님과 맞짱 뜰 수준이 되었단 말인가? 대단해요~!”

그러면서 우창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였다. 물론 장난으로 한 것이지만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아니, 생각해 보세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뭐가 당연한지 설명해봐.”

“뭐 설명을 할 필요도 없겠네요. ‘시작할 곳에서 시작하고, 끝낼 곳에서 끝나니, 부귀영화가 영원토록 다함이 없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잖아요?”

“오호~! 열심히 공부한 보람이 있어서 이미 지견(知見)이 생겼단 이야기지 않은가 축하하네. 하하~!”

“뭘요. 세상에 셋도 없는 두 싸부를 모시고 공부하는데 이 정도는 보답해 드려얍죠. 호호~!”

고월이 정색을 하고 자원에게 물었다.

“자, 그렇다면 묻노니 시작할 곳이란 무슨 뜻일까?”

“그야, 시작하는 곳이니까 처음이잖아요.”

“그렇군. 다시 묻노니, 그 처음이란 무슨 의미일까?”

“일의 모든 것에는 처음이 있잖아요. 시작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시작한다는 것이 사주에서는 어떤 상황을 말하지?”

“그것은…….”

“아니, 왜 그러시나?”

“뜻은 알겠는데 적용시키려니까 어려워요.”

“그래? 난 또 자원이 하도 나대서 공부를 마칠 때가 되셨나 했더니만.”

“죄송하옵니다. 임싸부~! 가르쳐 주시옵소서~!”

“원래 선비는 알아도 다시 확인하고, 모르면 거듭 물어서 행여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되지 않았는가를 살얼음 밟듯이 하는 것이라네.”

“명심하겠사옵니다. 소녀의 경거망동(輕擧妄動)을 꾸짖어 주시옵소서. 흐흑~!”

자원이 멋쩍어서 머쓱해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고월은 우창을 바라봤다.

“우창의 의견을 들어볼까? 여기에서 말하는 시작할 곳은 어딜 말하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사주의 상황에 따라서 시작을 할 곳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네.”

“맞아, 계속해 보시게.”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관살(官殺)에서 시작해서 재성(財星)으로 끝나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봤네.”

“오호~! 거기까지 생각을 했나? 대단하군.”

“임싸부~! 죄송해요. 진싸부의 말씀을 듣고 보니 더욱 얼굴이 화끈거려서 들 수가 없어요. 흐흑~!”

“괜찮아~! 어린 아기도 두 발로 땅을 딛고 서게 되면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깝죽대곤 하느니라. 허허허~!”

“쥐구멍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호호~!”

자원의 너스레에 두 사람은 웃음을 얻었다. 다시 고월이 우창에게 물었다.

“왜 관살을 시작으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을까?”

“그렇게 하면 인성(印星)의 뿌리가 유장(悠長)하여 황하(黃河)의 물처럼 영원토록 마르지 않아서 그 물을 먹고 살아야 하는 생명들에게는 축복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네.”

“오~! 유장(悠長), 좋다~!”

“그러니까 장강의 물이 곤륜산(崑崙山)에서 흘러나온다면 초목(草木)들이 그 곤륜산의 암석들로부터 금극목(金剋木)을 당할 이유도 없으니 전혀 두렵지 않을 관살(官殺)이 되지 않을까?”

“음, 심오(深奧)한 추론(推論)이네.”

“금생수(金生水)로 흘러서 수생목(水生木)이 된다면 힘도 강하고 정신도 강하게 될 것으로 봐서 관살이 뿌리가 되는 것을 생각했네.”

“완전히 동감일세. 다음은?”

“그렇게 튼튼한 인성(印星)을 얻은 일간(日干)은 활발(活發)해져서 자신의 사유를 잘 하게 될 것이니 이것은 식상(食傷)으로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네.”

“맞고~! 틀림없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식신으로 궁리를 하든, 상관으로 능력을 발휘하든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당연히 가능하겠지.”

“그다음에는 노력의 결실로 재성(財星)을 만나게 된다면 고스란히 창고에 재물이 쌓이는 형국이니 이러하게 되면 시종(始終)의 아름다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네.”

그러자 자원이 손뼉을 쳤다.

“짝짝짝~! 어쩜~ 진싸부의 말씀이 그리도 아름답게 들리는 것일까요~!”

“아름답게 들린다는 것은 이미 그 이치와 공감이 되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럴까요? 그 말씀을 들으니 위로가 되네요. 호호~!”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네.”

우창의 말에 고월이 우창을 바라봤다.

“사주에 따라서는 시작은 잘했는데 끝이 마칠 곳에서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시작할 곳에서 시작하지 못했으나 끝은 또 제대로 마칠 곳에서 마칠 수도 있겠는데 이러한 것은 어떻게 사유하면 좋을까?”

“당연하지 않겠나. 세상의 이치도 그와 같아서 대대손손 번창하게 살아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래서 든 생각이라네. 시작은 부실해도 끝이 알찬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반대도 있을 테니 말이네.”

“가령, 비겁(比劫)이 태왕(太旺)하고 인성(印星)이나 관살(官煞)이 없다면 시작을 한 곳은 어디일까?”

“그야 자신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인성의 생이 없으니까 출발점은 자신이 되는 것으로 봐야 하는데 태왕(太旺)하다면 일간의 오행에 해당하는 비겁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라면 말이지.”

“그 사람은 자수성가(自手成家)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아, 그렇게 볼 수가 있겠군.”

“그리고 그 왕성한 기운을 식신(食神)으로 흘려서 재성(財星)에서 끝을 낸다면 어떻게 될까?”

“식신은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니 독창적인 뭔가를 만들어서 큰돈을 벌어 가문을 일으켜 세운다고 할 수가 있겠네.”

“그렇다면 시작은 힘들었을까?”

“당연하지 맨땅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이었을 테니 그 신고(辛苦)함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네.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숙명(宿命)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아마도 그는 힘든 상황을 만났을 때마다 부모의 덕이 없음을 아쉬워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당연하겠네.”

“그래서 시작할 곳에서 시작하지 못한 허물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생각해 보시려나?”

“반대의 경우라면 조상의 덕을 입어서 부유하게 태어났으나 자신이 패가망신(敗家亡身)을 한다면 이것은 끝을 내지 못할 곳에서 끝을 낸 것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니 살인상생(殺印相生)으로 흘러와서 공부나 하면서 살면 될 것이나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서 파산(破産)하게 되는 경우라고 할 수가 있겠네.”

그러자 자원이 생각이 난 듯이 말했다.

“아, 그런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것이 사주에서 논할 수가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네요.”

“아마도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가 있을 것이네.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니까. ‘삼대(三代)를 유지하는 부자(富者)는 없다’고 하지 않는가?”

“맞아, 왜 그런 말이 생긴 것일까?”

우창의 반문에 고월이 설명했다.

“어쩌면 당연할 것이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니 세상의 혹독(酷毒)함을 알 방법이 없고, 모두가 자기 생각대로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일을 벌일 테니 주변에서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영악한 사람들이 달려들어서 다 뜯어먹고는 달아나겠지. 그렇게 되어서 빈 껍질만 남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될 즈음이면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인 거지.”

“오호~! 그러니까 인정(人情)과 사주의 구조를 연계(連繫)해서 생각할 수도 있겠군.”

“아니, 명학(命學)을 인학(人學)이라고 하는 이치를 아직도 몰랐단 말인가? 하하하~!”

“알았네. 고월의 설명을 듣고 보니 더욱 그것이 명료해졌다는 말이네. 명학은 인간을 연구하고 대입하는 학문이 분명하네. 하하~!”

“이제 자원도 시종론(始終論)에 대해서 이해가 되셨나?”

“그럼요~! 이해가 되고말고요. 그러니까 시종이 적절하면 영원토록 행복하단 말이잖아요.”

“옳지~!”

“또, 시종이 적절하지 못하면 그만큼 고통이 따를 수도 있다는 말이고요.”

“그렇지, 잘 이해했군.”

“뜻을 알고 보니까 그 느낌이 더욱 착 달라붙는 것 같아요.”

“자원은 참 총명하단 말이야. 하하~!”

“누구나 원하는 것이잖아요. 부귀(富貴)와 복수(福壽)가 영원(永遠)토록 다함이 없는 것 말이죠.”

“그렇지.”

“인생은 빈천(貧賤)하고 단명(短命)하거나, 오래 살아도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또한 자연의 이치겠죠?”

“당연하지.”

“사주에서 충극(沖剋)이 난무(亂舞)하고, 생생(生生)이 단절되어버리는 사람에게는 뭐라고 해줘야 할까요?”

“수행(修行)~!”

“예? 수행하라고 한다고요?”

“그럼.”

“그런 팔자를 타고난 사람이 수행은 할 수가 있을까요?”

“왜 안 되겠어? 할 수가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연히 노력하겠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물론 쉽지 않아서 사람들은 마음을 다스릴 줄도 모르고 허둥지둥 살다가 몽롱한 채로 세상을 떠나겠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슬퍼요.”

“왜?”

“안타깝잖아요. 사주를 통해서 그것이 다 보인다면 더욱 그럴 거 같아요.”

“그럴 수도 있겠군. 하하~!”

“웃음이 나오세요? 애도(哀悼)를 표해도 부족할 텐데요.”

“다 전생의 죄업(罪業)이려니 생각하면 그런대로 견딜만해. 하하~!”

“아하~! 또 하나 배웠어요.”

“뭘?”

“사주풀이에 감정이입(感情移入)을 하면 안 된다는 거잖아요?”

“오호~! 이제 회전이 잘 되는군. 맞았어.”

“냉담(冷淡)하게 판단하고 그렇게 말하면 너무 인정머리가 없는 것 같기는 하겠어요.”

“아니지, 판단은 냉정하게 하고 조언은 따뜻하게 해야 제대로 잘하는 철학자라고 하겠지.”

“그건 쉽지 않겠는걸요.”

“원래 머리는 차갑게 하고, 가슴은 따뜻하게 하는 것이 인간적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머리는 이성(異性)이고 가슴은 감정(感情)이란 말이죠?”

“당연하지.”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저도 힘써 노력할게요.

자원의 말에 두 사람도 마주 보며 한바탕 웃었다. 누구나 부족하지만 그렇게 깨달아 가면서 서서히 학자의 풍모를 갖춰가는 것이 흐뭇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