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제11장 간지의 변화 / 5. 문자(文字)에 깃든 마음

작성일
2017-03-10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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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5. 문자(文字)에 깃든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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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자원과 우창은 약속이나 한 듯이 고월의 처소에서 만났다. 같은 시간에 주는 아침밥을 먹고는, 나름대로 공부할 준비하고 나오니 대략 생활의 흐름이 같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어머, 진싸부~!”

“오, 자원도 잘 쉬셨는가?”

“그럼요~! 안색을 보니까 진싸부도 편안해 보이시는 걸요.”

“그래, 나도 잘 쉬었네. 어제 늦게까지 두 분의 길손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 취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군.”

밖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고월도 문을 열어서 마중한다.

“어서 들어오지 않고 뭣들 하시는가.”

“오, 고월도 잘 쉬셨지?”

“그렇지 그럼. 어서 들어오시게. 나도 공부를 할 준비를 다 했네.”

그러자 방에서는 이미 물이 끓고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친 고월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어제 만난 일각과 취현에 대한 것으로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제각기 소회(所懷)를 나눈 다음에는 다시 우창의 적천수 낭독(朗讀)이 시작되었다.

“오늘은 천간과 지지를 마치고서 「간지총론(干支總論)」이라는 대목을 시작하게 되는군.”

“아, 진싸부, 원래 천간과 지지를 따로 이해한 다음에는 묶어서 봐야 한다는 뜻인가요?”

“당연하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간지의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군. 고월의 도움이 더욱 절실해지는 순간이기도 하겠지? 하하~!”

그 말을 듣고 고월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간지의 조합(組合)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모두라고 해봐야 60개밖에 더 되는가?”

“밖에가 뭐예요. 그것을 외우느라고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아, 그래? 자원은 외우는 것이 잘 안되는가 보군.”

“정말이에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앞을 외우면 뒤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으니 다시 무한한 반복을 하곤 한답니다. 머리가 참 나쁜가 봐요. 호호~!”

그 말에 우창이 토를 달고 나섰다.

“그건 안 좋은 생각인걸.”

“어머, 왜요?”

“조상이 주신 머리를 탓하는 것은 게으른 자의 비겁한 변명이거든.”

“그래요? 그럼 나쁜 머리를 타고난 것도 감사해야 하는 거예요?”

“당연하지.”

“그건 좀 아닌 것 같잖아요?”

“아니긴 뭐가 아냐?”

“그게 아니라요. 만약에 조상의 능력이 출중해서 총명한 머리를 만들어 줬더라면 한 번만 보면 뭐든 외워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를 들으면 천 가지를 깨닫게 될 수도 있을 테니 공부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겠느냔 말이죠.”

“과연 자원의 머리가 나쁜 거야?”

“그럼요. 완전한 석두(石頭)인 걸요.”

“그런데 어떻게 의학(醫學)과 경락(經絡)은 잘도 외우셨지? 경혈(經穴)은 총 몇 개나 되지?”

“경혈은 12정경(正經)과 임맥(任脈), 독맥(督脈)의 기경(奇經)을 포함해서 14경락에 있는 경혈은 361개가 서로 대응하고 있는 것까지 포함해서 679개밖에 안 되는 걸요 뭐.”

“우와~! 그렇게 많은 경락과 경혈(經穴)이 있단 말이지?”

“무공을 배우려면 혈도(穴道)는 당연히 외워야 하는걸요.”

“아, 듣자니까 어느 혈도를 누르면 말도 못 하게 된다면서?”

“예, 그건 아혈(啞穴)을 제압당하게 되면 그래요.”

“그것도 참 재미있겠는걸. 하하~!”

“남을 괴롭히는 것이 무슨 재미가 있어요?”

“그야 누군가 쉬지 않고 떠들면 써먹을 수도 있으니까. 하하~!”

“법문을 베풀어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야죠. 겨우 조잘댄다고 해서 혈도를 찍을 생각이나 한다면 그게 뭐예요~!”

“문득 든 생각이, 그것을 알게 되면 말을 못 하는 사람에게도 말을 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지.”

“아하~! 그건 참 기특한 생각이시네요. 호호~!”

“사람의 몸은 항상 불완전해서 문제가 생길 수가 있으니까 그런 것도 알아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 뭐.”

“말을 하고 못하고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럼 또 대단한 것이 있나?”

“건곤대나이(乾坤大挪移)를 익히게 되면 시체로 변할 수도 있어요.”

“뭐라고?”

“왜 그렇게 놀라세요?”

“숨이야 잠시 멈출 수도 있다고 하지만 심장까지 멈추는 것이 가능하단 말이야?”

“당연하죠. 몸의 모든 기관을 자유롭게 통제하는 기술인 걸요.”

“그것은 참으로 대단한걸.”

“물론 초절의 고수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기도 해요.”

“그런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단 말이야?”

“소문에는 소림의 달마도 건곤대나이를 이용해서 양무제의 마수(魔手)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던걸요.”

“아, 그런 것이 실제로 있긴 하구나.”

“그것뿐인가요. 만독불침(萬毒不侵)도 가능해요. 모든 경락을 닫아버리는 내공을 익히면 가능하다고 하지만요.”

“무공의 세계도 참으로 무궁무진(無窮無盡)하군.”

“근데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갔죠?”

“아, 조상을 탓하다가 이렇게 되었잖은가?”

“그랬군요. 제 머리가 나쁘다니까 이야기가 이렇게 복잡해지는 것 좀 봐요. 호호~!”

“그 나쁜 머리로 어떻게 경락을 다 외웠을까 싶은 놀라움이지. 하하~!”

“아, 겨우 그걸갖고 뭘 그러세요. 그런데 경락은 오히려 빨리 외웠거든요. 그런데 육갑(六甲)은 참으로 안 외워지던걸요. 왜 그럴까요?”

그 말을 듣고서 고월이 끼어들었다.

“경락은 구체적으로 실제하는 존재이고, 육갑은 추상적인 존재라서 그럴 것이네.”

“아니, 그게 되는 말이에요?”

“말이 안 될 것은 또 무엇인가?”

“자연의 이치로 본다면 물질적인 이름도 있고, 정신적인 이름도 있지만, 그것을 외우는 것은 똑같은 문자를 익히는 것이잖아요?”

“문자와 물심(物心)의 관계가 별개(別個)라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이죠. 글자는 글자, 문자는 문자, 그리고 물질은 물질이잖아요?”

“하하하~!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뜻이야. 하하하~!”

고월이 너털웃음을 웃자 자원이 오히려 의아했다.

“아니, 임싸부, 무슨 가르침을 주시려는지 어서 말씀해 보세요.”

“어제 운산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벌써 잊었단 말인가?”

“하도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무얼 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뭔데요?”

“불일불이(不一不二)라고 하셨잖은가?”

“참, 그 말에 대한 뜻은 잘 모르겠어요. 언뜻 들으면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다시 생각하면 도무지 안개 속이라는 말이에요.”

“문자(文字)에도 마음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생각이 되는가?”

“예? 글자에도 마음이 있다고요?”

“암~!”

“그건 지나친 확대해석(擴大解釋)하는 것이 아닌가요?”

“아니라네.”

“정말요?”

“당연하지.”

“그렇게 명료하게 말씀하신다면 그 연유를 들어볼 밖에요. 어서 말씀해 봐요. 이 미련한 자원을 설득시켜 보세요. 어서요~!”

“도관에서 기도할 적에는 어디다 하는가?”

“그야 신전(神殿)에서 하죠.”

“신전에는 무엇이 있지?”

“신상(神像)도 있고, 신들의 이름도 있잖아요.”

“신의 이름은 왜 써놨을까?”

“알려줘야 하잖아요. 겉으로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모르지만 이름을 보면 즉시로 그가 누구인 질을 알 수가 있잖아요.”

“태산의 정상(頂上)에는 옥황전(玉皇殿)이 있는데 그곳에는 누가 있을까?”

“당연히 옥황상제(玉皇上帝)가 있겠네요.”

“옥황상제라고 쓴 글자가 산 정상에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그 자리에 옥황상제가 계신다는 생각이 들겠죠.”

“그렇다면 깊은 골짜기의 바위 위에 적혀 있다면?”

“위치는 달라도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이렇게 문자에는 그 문자에 걸맞은 기운이 서려있는 것이라네.”

“그래요? 아무래도 억지 같은걸요.”

그러자 고월은 병(丙)자를 썼다.

“자, 이것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들어?”

“밝은 빛이 느껴져요.”

이번에는 계(癸)를 썼다.

“이것은 또 어떨까?”

“어둠침침한 느낌이 들어요.”

“글자에는 그에 대한 느낌이 있다고 보면 될까?”

“그야 당연하잖아요?”

“그러니까 느낌이 있는 곳에는 정신(精神)도 있다고 보면 안 될까?”

“그러니까…….”

“문자와 그 뜻과 그 실체는 서로 동등(同等)하단 말이라네.”

“임싸부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것으로 일단 믿을게요.”

“알았네. 아직은 글자와 정신이 둘로 보인단 말이지?”

“아무래도요.”

“어젯밤에 일각 선생이 말하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어? 정말요~!”

“물심(物心)도 불이(不二)하고, 음양(陰陽)도 불이(不二)하고, 문의(文意)도 불이한다네. 아직은 문리(文理)가 덜 터졌으니 열심히 공부하다가 보면 자연히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네.”

“알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미련곰탱이라는 거죠. 호호~!”

그러자, 우창이 고월의 말을 듣고서 다시물었다.

“지금 고월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뭔가 마음속에서 느낌이 짜르르~하고 전해지는 것 같은 게 있네.”

“오호~! 우창의 수준이 되어야 이해를 할 수가 있는 것인가 보군. 하하~!”

“문자에 정신이 있다는 것을 보면 글도 함부로 쓸 것이 아니라 가려가면서 써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

“당연하지. 그래서 좋은 의미의 글자는 많이 쓰고 나쁜 의미가 되는 글자는 되도록이면 안 쓰는 것이라네.”

그러자 자원이 다시 말했다.

“그것은 말과도 같은 것이잖아요?”

“어떻게?”

“좋은 말을 하면 좋게 되고, 나쁜 말을 하면 나쁘게 된다고 하잖아요.”

“옳지, 그렇다면 언문(言文)이 서로 같다는 말인가?”

“맞아요~!. 아하~! 언문불이라고 했으면 쉽게 이해를 할 것을 그랬어요.”

“원래 이 고월의 말주변이 장 그래. 하하~!”

“그러니까 말에도 기운(氣運)의 파장(波長)이 있단 말이죠?”

“당연하지. 그렇게 소리의 파장으로 수행하는 것을 진언(眞言)이라고 한다네.”

“아, 라마승들이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는 것도 같은 의미인가요?”

“맞아. 그래서 주문을 외우면 뜻이 이뤄지듯이 도사들은 글자를 써서 소원을 빌고 태우면 그 뜻이 하늘에 닿는다고 생각하지.”

“맞아요. 소원을 적어놓고 기도하면 이뤄져요.”

“그래서 악인(惡人)이라고 하지 않고, 불선인(不善人)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라고 보면 되겠지.”

“아항~! 바로 그러한 뜻이었군요. 좋은 말은 권하고, 나쁜 말은 삼간다. 그래도 해야 할 적에는 덜 나쁜 쪽으로 돌려서 한다는 거잖아요?”

“이제 뭔가 말이 통하는군. 하하~!”

“알았어요. 임싸부가 뭘 가르쳐주시려고 했는지를 말이에요.”

“역시 영특(英特)한 자원일세.”

“그러니까 육갑(六甲)이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은 그 뜻이 심오해서 그렇다는 말씀이죠?”

“맞았네. 하하~!”

“여하튼 결국은 외웠단 말이에요.”

“그럼 공부는 절반이 되었다고 해도 되겠네.”

“그렇게 나요? 그래도 듣고 보니 기뻐요.”

“당연하지. 적어놓고 들여다보는 것과 암송(暗誦)하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이해하겠는가?”

“정말 외운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군요.”

“그래서 옛 선비들은 항상 경문(經文)을 외웠지.”

“그렇다면 자원도 적천수를 외울래요. 욕식삼원만법종…….”

“천천히 하시게나. 자꾸 하다가 보면 외워지기도 할 테니.”

“정말 글에도 마음이 있다는 것은 놀라움 자체예요.”

“세상의 만물은 다 마음이 있다고 보면 될 것이네.”

고월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인지라 몸과 사물이 둘이 아니라는 정도는 깨닫고 있는 수준이었다. 자원의 말이 예뻐서 한 마디 더 거들어 줬다.

“숲에서 거대한 나무를 껴안아 본 적이 있는가?”

“당연하죠.”

“그럴 적에 어떤 느낌인가?”

“편안한 기운을 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 힘들 적에는 그렇게 해요.”

“그게 다 사물(事物)에도 정신이 있고 마음이 있다는 뜻이라네.”

“정말요? 놀라워라~!”

“놀랍기는. 만물은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아, 그래서 자연 공부가 도(道)라는 이야긴가 봐요.”

“맞는 말씀이네.”

“그럼 이제 공부해요. 또 뭔가 배워봐야죠.”

“그럴까?”

“간지총론에는 어떤 가르침이 있을지 벌써 설레요.”

고월의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듣고 숙연한 마음이 된 분위기에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