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 1. 도관(道觀)의 바깥 풍경(風景)

작성일
2017-03-0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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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제11장 간지(干支)의 변화(變化)

1. 도관(道觀)의 바깥 풍경(風景)

다음날은 하늘이 흐렸다. 자원은 밤이 늦도록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느라고 끙끙대다가 잠이 들어서인지 꿈속에서도 공부하느라고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산문 밖으로 산책이라도 나가보려고 가벼운 몸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구름이 없었다면 꽤 따가운 볕이 내리쪼였을 것인데 다행히 하늘에 구름이 덮여 있어서 선선한 바람이 꽤 걸을 만했다. 그렇게 걷다가 보니 어느덧 산문으로부터 꽤 멀리 나왔는지 제법 큰 마을이 나타났다.

「사자구(沙子口)」

‘음, 마을 이름이 사자구인가 보네.’

‘모래알 입구? 아마도 산에서 흘러내린 모래가 많은 곳이라는 뜻인가.’

이미 노산의 경계를 벗어났는지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기분이 들떴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마을 어귀를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날카로운 쇳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챙! 챙, 챙~!”

강호의 무림에서 잔뼈가 굵은 자원에게 그 소리는 보나 마나 한바탕 구경거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급하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내달렸다. 싸움에는 항상 절정(絶頂)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회를 놓치게 되면 김빠진 구경이 되고 만다.

모퉁이를 돌아서자 한 무리의 구경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한쪽에서는 칼을 맞고 쓰러진 시신 서너 구가 뒹굴고 있었다.

검을 잡고 있는 낭인.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삿갓을 쓰고 있는 외팔의 검객. 아, 생각났다. 냉혈마인 취현(聚賢).

그런데 지금의 상황으로는 아는 체를 하기는 적절하지 않아 보였다. 이미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림인들이 여덟 명이나 있었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는 모습에서 다른 말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싸움판을 목격한 자원은 흥분이 되었다. 그래서 조용히 시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다는 불구경과 싸움 구경 중에서 실전(實戰)을 보는 구경은 세상에서 최고였다.

잠시 자리를 잡고 살펴보니까 여덟 명의 사람들은 모양새로 봐서 백도(白道)의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나같이 온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나쁜 짓을 많이 하였다는 것을 짐작했다.

“이얍~!”

냉혈마인의 일합(一合)에 또 한 명이 선혈(鮮血)을 허공에 뿌리면서 고목처럼 쓰러졌다.

“으윽~!”

단말마(斷末魔)의 한 마디를 남기고는 부르르 떨다가 이내 고요해졌다. 그러자 나머지 일곱 사람이 손을 거뒀다. 그리고는 모두 무릎을 꿇었다.

“냉혈마인을 몰라 뵈었습니다. 널리 헤아려 주시옵소서.”

“산동육괴~! 이제야 눈깔이 제대로 보이느냐? 흐흐흐~!”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산동육괴라고 불린 사람은 눈이 하나 없었다. 그리고 철퇴를 들고 있었는데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필시 예전에 냉혈마인을 알아봤다는 것이 분명했다.

“참회(懺悔)하고 조용히 살아가려는데 그대들이 협조하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흐흐흐흐~!”

그렇게 말을 한 취현이 산동육괴를 보면서 음산하게 웃었다. 그 모습은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게 했다. 자원의 눈에도 예전에 상청궁에서 봤던 그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을 정도였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나 봅니다. 부디 자비심을 베풀어 주신다면 다시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자 다른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머리를 땅에 닿게 조아렸다. 아마도 그중의 두목이 산동육괴였던 모양이다.

“알았으니 썩 사라져라~!”

이렇게 한 마디를 내뱉자, 일곱의 사내들은 죽은 동료들을 둘러메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돌아서면서 말했다.

“뉘신가 했더니 조낭자 아니신가?”

“아니, 벌써 알고 계셨군요. 분위기가 좀 그래서 알은체를 못 했어요. 그간 편안하게 지내셨어요?”

“노부야 어딜 거나 편안한 세상천지가 아니겠나. 껄껄껄~!”

“어쩌다가 저런 인간들을 상대로 칼을 뽑으시게 되셨어요?”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가 보군. 오랜만에 만났는데 차나 한잔할까?”

“예, 좋아요.”

두 사람은 멀지 않은 객잔으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를 주문하고는 취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못 본 사이에 조낭자의 공부가 큰 진전이 있었구먼. 축하드리네. 껄껄껄~!”

“예? 무슨 말씀이세요?”

“예전의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어엿한 학자가 되셨으니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군.”

괜한 소리를 한다는 생각으로 그 말에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노산을 찾으신 거예요?”

“아, 먼저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다시 반도봉을 가는 길이었다네.”

문득 자원은 경순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한 말이 연달아서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러셨군요.”

“그래 요즘은 뭘 공부하시나?”

“아 예, 「적천수(滴天髓)」라고 하는 명서(命書)를 읽어보고 있어요.”

“명서라……. 참 좋은 공부를 하시는군.”

“적천수를 아세요?”

“소문만 들었지 보진 못했다네.”

“네. 그러셨군요.”

그러면서 자꾸 창밖을 살피는 취현의 모습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 누굴 기다리시는 건가요?”

“그렇다네. 껄껄껄~!”

“혹 누구신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괜찮네. 참회객을 만나기로 했다네.”

“참회객이라면…….”

“맞아 우창의 사형이라는 자오검 말이네. 껄껄껄~!”

“옛? 자오검이라고요?”

“아니, 왜 그렇게 놀라는가?”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냉혈마인을 만나는 것도 기절할 일인데, 자오검까지 등장한다는 것은 초풍까지 해야 할 일이죠.”

“그런가? 껄껄껄~!”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아, 별일 아니라네.”

“별일이 아닐 수가 없죠. 필시 무슨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런 냄새는 참 잘도 맡으시는군. 껄껄껄~!”

“뭔가 피비린내가 날 것만 같은걸요. 뭐예요?”

“좀 전에 조무래기들을 보지 않았나?”

“예, 산동육괴라고 하셨죠.”

“맞아, 지금 천하의 검웅(劍雄)들이 노산을 향해서 운집(雲集)하고 있다네. 그래서 상청궁도 한바탕 검난(劍難)의 소용돌이를 면키 어렵지 싶군.”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혹시 예전에 흑표방(黑豹邦)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던가?”

“들어봤죠. 온갖 사악(邪惡)함으로 이름을 떨치던 악인들을 불러 모아서 저들의 왕국을 세운다는 말만 들었었는데 혹 그들과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놈들이 노산을 근거지로 삼아서 동해를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왜 하필 노산이죠?”

“노산을 거점으로 하고, 산동반도(山東半島)를 장악하면 연경(燕京)으로 출입하는 해로(海路)를 장악할 수가 있거든. 산동을 손아귀에 넣고서 천하(天下)에 군림(君臨)하려는 꿈을 꾸고있는 것이겠지.”

“흑표방의 수괴(首魁)는 누구예요?”

“금의금성(金衣劍聖) 초규황(肖圭皇)이 음흉한 계획을 세워 놓고 강호의 악도 인물들을 가리지 않고 마구 쓸어 모으고 있다네.”

“재물은 많은가 봐요?”

“내부적으로 어떤 조직들이 움직이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은밀하게 목적을 향해서 추진하고 있나 보네요.”

“그런데 이제 그들의 본거지로 노산을 장악하겠다는 것을 우연히 강호에 알려지게 되었다네. 그래서 불원천리(不遠千里)하고 달려오다가 그놈들을 만났던 것이라네.”

“그러니까 모여드는 군웅(群雄)들을 흑표방에서 미리 차단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네요.”

“맞아. 지금은 떠났지만 또 다른 놈들이 나타날 것으로 보네. 그만 조낭자는 돌아가서 우창에게 피신하라고 전하는 것이 좋겠는걸.”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소녀도 미력(微力)이나마 보태야죠.”

계속해서 밖을 바라보던 취현이 손짓했다. 그러나 한 무림인물이 그것을 보고는 객잔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자원은 짐작으로 자오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하하~! 취현도인을 여기서 만나는군요. 편안하셨습니까?”

“취현이 은인(恩人)을 뵈옵니다.”

방금까지 당당하던 취현은 어디가고 다소곳하게 자세를 낮춘 모습으로 참회객(懺悔客)을 맞았다.

“은인이라니 가당찮소. 그냥 참회객으로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엇, 동행이 계셨군요. 처음 뵙겠소이다. 참회객이오.”

“소녀 인사드립니다. 조은령(曹銀鈴)입니다.”

그리고 포권으로 무림인이라는 자세를 취했다. 참회객도 그것을 알아보고는 짐짓 내공을 실어서 마주 인사를 했다.

“오, 무림인이었구려. 반갑소이다. 하하~!”

자원은 참회객이 쏟아내는 내력으로 인해서 자칫했으면 뒤로 세 걸음이나 밀려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진기를 끌어 모아서 버텼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화가 치밀었다. 초면에 이것은 아니잖느냐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참회객을 뵙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자원도 내공을 실어서 마주 진기를 쏘아 보냈다. 그러자 참회객이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호~! 놀라운 내공인걸. 현현자(玄玄子) 장삼풍(張三豐)의 절예(絶藝)를 여기에서 접하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실례했소. 하하~!”

“아니에요. 노산에 혈겁(血劫)이 다가온다는 말을 듣고 보니 혹시라도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시험해 보신 거라는 것을 알았어요. 호호~!”

“조낭자를 보니 심성(心性)이 참 맑으시군. 어디에서 공부하고 있소?”

그러자 취현이 나서서 소개했다.

“실은 참회객께서 들으면 반가워할 일이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어서 해 보시오.”

“혜암도인의 애제(愛弟) 중에 우창이라고 있습니까?”

“우창……. 모르겠네만.”

그러자 자원이 나서서 설명했다.

“화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만나셨다고 하던데요.”

“아, 그 친구. 이름이 진하경(陳河鏡)이라고 했는데, 호가 우창이란 말이오? 그런데 왜 갑자기 그 이야기를?”

“우창 선생께 지도를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참회객은 사숙이 되시네요. 호호~!”

“오호, 이렇게 반가울 데가. 뜻밖인걸. 하하~!”

참회객도 진심으로 반가워했다. 그것을 본 자원은 괜히 으쓱해졌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일로 노산이 시끄럽게 될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것을 읽었는지 취현이 말했다.

“조낭자는 너무 걱정할 것이 없다네.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자연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려니 하시게나. 껄껄껄~!”

“아, 이미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그만 도관으로 올라가지요.”

그렇게 해서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상청궁의 객사로 향했다.

그 사이에 찌푸렸던 날씨는 맑게 개어서 햇살이 제법 따가웠다. 다들 내공들이 있어서 걸음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그래서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고 하는 말이 나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순식간에 상청궁 객사에 다다라서 방을 얻은 다음에 여장(旅裝)을 풀고는 서둘러서 우창을 만나러 가자고 했다.

“무엇보다도 우창을 봐야지요?”

“그럼요. 소녀가 안내하겠어요. 이쪽으로~!”

그 바람에 자원은 안내자가 되어서 우창의 처소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물론 취현은 이미 머물렀던 곳인지라 어디인지 알고 있었지만, 참회객과 보조를 맞춰서 천천히 자원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