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제10장 간지의 세계/ 25. 지지의 군더더기들
작성일
2017-03-02 05:46
조회
4924
[131] 제6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25. 지지의 군더더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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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낭랑한 음성으로 적천수를 읽었다.
지지(地支)는 다만
충돌(衝突)이 중요(重要)하고
형(刑)이나 천(穿)은
동하는 듯 마는 듯하다.
“그러니까, ‘지신지이충위중’이라는 말은 ‘지지는 충(沖)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보겠고, ‘형여천혜동부동’은 ‘형(刑)과 천(穿)은 신경을 쓸 것이 없다.’는 의미로 보이는군. 이제 고월의 풀이를 듣도록 하겠네.”
“지신이란 말은 지지의 열두 글자를 신격화(神格化)시켜서 말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렇게 보이네. 간신(干神)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지신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이 좀 불균형(不均衡)으로 보이긴 하네만. 하하~!”
“지신은 지지로 바꿔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네.”
“여하튼 간(干)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뜻이로군.”
“다음은 ‘다만, 충(沖)이 중(重)할 뿐’이라고 해석을 하면 되겠네.”
“여기에서 ‘다만’이라고 한 것은 다른 것은 제외해도 된다는 의미가 느껴지는걸.”
“맞아. 그런 뜻으로 쓴 글이겠지.”
“다만의 뒤에 있는 ‘충위중’을 봐서 충은 중요하지만 다른 것은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란 말인가?”
“왜 아니겠나.”
“그렇다면 충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은가?”
“글만 봐서는 그렇지만, 느낌으로는 어떤가?”
“느낌으로는 ‘뭐 별로 중요할 것은 없지만’이라는 느낌인데 이게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는걸.”
“그게 맞는 거야. 다들 하도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그 중에서 겨우 충 정도나 중요하다고 하던가~!’ 라는 느낌으로 그 나머지는 의미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지.”
“도대체 다들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에 경도 스승님이 이렇게 글을 썼는지도 참 궁금하군.”
“여하튼 충도 사실은 별로 중요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네.”
고월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지지(地支)를 둥그렇게 썼다.
“자, 이것을 보면서 설명하겠네.”
“이게 뭔가?”
“충에 대한 개념도라고나 할까.”
“자오(子午)가 보이는군, 묘유(卯酉)도 보이고, 그렇다면 육충(六沖)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충이라면 사해(巳亥)가 이렇게 나란히 붙어 있어야 하는데 이 도표는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은가?”
“이게 무슨 차이라는 거지?”
“아, 봐도 모르시겠는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네.”
“대충(對沖)~!”
“대충이라고? 마주 보는 것의 충이란 뜻인가?”
“그렇다네. 마주 보고 있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지.”
“명학에서는 옆에 있어야 충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왜 아니겠나. 더구나 생방(生方)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미 살펴보지 않았느냔 말이지.”
“맞아, 생방(生方)은 생지(生支)라고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를 했지.”
“여기에서 방(方)도 이미 상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가 된다는 거지.”
“그렇겠군.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이지?”
“당연히 지학(地學)에서 나온 이야기란 말이지.”
“엉? 지학이라니?”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이라고 하고, 줄여서 풍수(風水)라고도 하지.”
“아, 그래 풍수학이로군.”
고월은 우창과 자원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자세히 했다.
“풍수학에서는 공간(空間)을 중심으로 관찰하게 되지 않는가?”
“그렇지. 지상(地上)의 모습으로 관찰해야 하니까 당연하겠네.”
“그것은 공간에 해당하는 논리가 되고, 당연히 나경도 공간의 의미로 펼쳐진 것이라네. 그러니까 집의 맞은편에 거목이 있으면 그것을 충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네.”
그 말에 우창이 동조를 했다.
“당연하지. 출입을 할 적에 대문 앞에 거목이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러니까 풍수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꺼린다고 하지 않더라도 당장 생활이 불편할 것은 당연한 일이로군.”
“명학에서는 공간을 사용하나?”
“무슨 말을? 명학은 시간으로 논하는 학문이지 않는가?”
“시간으로 논한다면 어제의 오시(午時)가 오늘의 오시와 같은 것일까?”
“당연히 같을 수가 없지.”
“그렇다면 오늘의 오시가 밤의 자시(子時)와 만날 일이 있을까? 그렇게 만나서 자오충(子午冲)을 일으킬 수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충의 의미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 줄로 알겠네. 하하~!”
그러자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자원이 문득 의문이 생겼는지 묻는다.
“참, 임싸부~!”
“무섭게 왜 정색을 하고 부르지?”
“무섭긴요. 호호~!”
“뭐가 궁금한 거야?”
“풍수지리를 왜 풍수라고 하죠?”
“아, 그건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뜻이라네.”
“장풍득수? 무슨 뜻이에요?”
“아 그 뜻은 ‘바람으로부터는 숨어야 하고, 물을 얻는다.’는 이야기라네.”
“그게 무슨 말이죠? 어려워요.”
“바람에 드러나면 기운이 흩어지고, 물을 얻지 못하면 기운이 빠져버린다는 말이지.”
“예? 빠지다니요? 뭐가요?”
“좋은 기운이지 뭐긴 뭐겠어. 가령 떡을 찌는데 솥에서 김이 빠져나가면 떡이 익을까?”
“익을 턱이 없죠.”
“그래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그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는 것이 풍수학이라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풍수도 파고 들어가면 무지하게 복잡하니까 지금은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돼.”
“알았어요. 그냥 이름이 궁금했어요. 다음에 공부할 기회가 있다는 뜻으로 접수하겠어요. 호호~!”
“잘 생각했어. 언제 또 기회가 오겠지. 하하~!”
우창이 고월에게 말했다.
“고월의 말로는 충(沖)은 풍수학에서 나온 이야기란 뜻인가?”
“맞아. 그 뜻이야.”
“풍수지리에서는 지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지?”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네.”
“평면이라…….”
“일정한 지점을 중심으로 삼고 12방향으로 나눠서 대입한다는 생각이라네. 그러니까 상대적인 방향이 되는 거지. 그래서 방(方)이라는 말이 항상 붙어 다니는 거라네.”
“하긴, 땅 위에서 판단한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겠군.”
그러자 고월이 또 다른 그림을 문갑에서 꺼내어 펼쳐놓았다. 이것은 간단히 그릴 수가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정성을 많이 들인 것이 역력했다.
“이것이 나경(羅經)의 표면이라네.”
“아, 본 적이 있군. 그런데 이름이 나경인가? 책도 아니면서 경(經)이 붙어 있는 것은 좀 의외인걸.”
“나경의 뜻은 ‘포라만상(包羅萬象)하여 경륜천지(經綸天地)한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네. 여기에서 라와 경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지.”
“중앙에 있는 것은 자철(磁鐵)인가?”
“지남침(指南針)이라고도 하고, 천지침이라고도 한다네. 자성체(磁性體)가 있는 쇠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서 항상 절대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방향이라면 남북(南北)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네. 보통은 절대적인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서 지남(指南)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네.”
“아, 지남철이라는 말도 그 뜻이었나?”
“맞아. 그래서 이것을 확대하여 기준(基準)이라는 의미로도 차용(借用)한다네.”
“아니, 남쪽을 가리킨다면 상대적으로 북쪽을 가리킨다는 말도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북철(指北鐵)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을까?”
“아마도, 왕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 보네.”
“왕의 관점이라니?”
“왕은 북쪽에 앉아서 남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왕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침(磁針)도 남쪽을 바라본다는 의미란 말인가?”
“일설에는 북쪽을 가리키는 줄만 알았던 자침(磁針)이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남쪽을 가리켰다는 말도 있긴 하더군. 어쩌면 그래서 지남철이라고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런가? 그렇다며 남북이 수시로 바뀐다는 말이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뜻이 아니었겠나 싶은 것이니 그냥 참고만 하게. 그것도 또한 음양이 아니겠는가. 하하~!”
“그런데 이 나경(羅經)은 어떻게 보는 것이지?”
“지금 그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地支)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니 그것만 보시게.”
“아, 뭐든 보면 파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받아서. 하하~!”
“물론 우창의 마음이야 알지, 여하튼 다음 기회에 다시 궁리를 해 보도록 하고.”
“지지를 보니까 서로 마주 보고 있군. 그것은 충의 배치와 같은 것임을 알겠네.”
“잘 관찰하셨군. 그래서 육충(六沖)은 대충(對沖)에서 온 것이라는 근원을 밝혀주는 자료라고 보면 되네.”
“그러니까 충(沖)은 극(剋)으로만 살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로군. 그렇지?”
“맞았네. 사실 명학에서는 충이라는 말조차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경도 스승님은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는 이야기라네.”
“그래서 겨우 ‘충 정도나 생각해 보던가.’라고 한 느낌을 알겠군.”
“예를 들어 자오충(子午冲)이라고 하면 양패구상(兩敗俱傷)일까 자승오패(子勝午敗)일까?”
“그야 당연히 자승오패가 아닌가?”
“그렇지. 자수(子水)가 오화(午火)를 극한다는 것으로만 알면 된다네. 그런데 이것을 충이라고 하게 되면 그것은 충돌(衝突)의 의미가 되어서 둘 다 깨어진다는 의미가 되니 오류(誤謬)가 발생한다는 말이네.”
“과연, 고월의 판단력은 명료(明瞭)하군.”
“괜한 소리는 하지 말고. 하하~!”
“그렇다면, 충의 의미는 없다고 봐도 되겠네.”
“당연하지. 그렇다면 오자오충(午子午沖)은 어떨까?”
“말하자면 두 개의 오화(午火)가 하나의 자수(子水)와 붙었을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맞아.”
“그렇게 되면 싸움은 승패를 논하기 어렵게 되겠는걸.”
“잘 생각했네. 이렇게만 이해하면 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정리를 한 것으로 봐도 되겠네. 하하~!”
“그렇다면 형(刑)이나 천(穿)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단 말이로군.”
“맞았네.”
그러자 자원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도, 임싸부~! 설명은 해 주실 거죠?”
“왜, 이유는 알아야 하겠는가?”
“혹 누가 물으면 아니라고 하는 근거는 대야죠~!”
“그도 그렇군. 그렇다면 형에 대한 도표를 보여주지.”
그러면서 고월은 다시 지지도를 하나 그리고 줄을 그었다.
“이것이 삼형(三刑)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이것을 어떻게 보는 거죠?”
“인사(寅巳), 사신(巳申)으로 보란 말이지. 인사신(寅巳申)이 있으면 형(刑)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형(刑)은 형액(刑厄)을 당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지.”
“그렇다면 사주에 인사신(寅巳申)이 있으면 투옥(投獄)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거예요?”
“맞아. 또 축술미(丑戌未)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네.”
“원래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근거가 있기는 했겠죠?”
“그야 모르지. 여하튼 지금에 와서 오행의 생극이 명료하게 연구가 되었으니 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단 말씀이세요? 왜냐면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이 있거나, 없더라도 모함을 당해서 형틀에 갇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사주팔자에 이러한 것이 있어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문제는 형틀에 갇힌 사람도 인사신(寅巳申)이나 축술미(丑戌未)가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지. 이것은 뭘 의미할까?”
“그것과 형액(刑厄)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맞아, 그래서 경도 스승님도 이렇게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되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천(穿)은 또 뭔지도 설명해 줄까?”
“그럼요. 써먹지는 않더라도 이해는 해야죠. 호호~!”
“자 이 그림을 봐.”
고월은 그러면서 또 하나의 지지를 그렸다.
“이것이 소위(所謂) 천(穿)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말로는 육해(六害)라고 하는 것의 구조라네.”
“천이면 천이고 해(害)면 해지 왜 두 가지가 될까요?”
“그야 모르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이론에 다른 이름이 있는 경우도 흔하니까 상관없다고 봐.”
“그렇겠네요. 그런데 왜 ‘뚫는다’는 의미가 된 건가요?”
“축오(丑午), 자미(子未), 신해(申亥), 유술(酉戌), 인사(寅巳), 묘진(卯辰)을 천이라고 하는데 서로 줄을 그으면 위에서 아래로 뚫리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천(穿)인 거예요?”
“그렇지.”
“에구~! 그게 뭐예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이제 왜 경도 스승님이 ‘동부동(動不動)’이라고 했는지 이해되나?”
“동한다고 하지만 동할 것이 없다는 뜻이겠죠?”
“맞아, 공간(空間)을 의미하는 평면(平面)의 지상(地上)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 놓은 것이, 시간(時間)을 논하는 명학에 깊은 숙고(熟考) 없이 끼어들었다는 생각을 해 보는 거지.”
“임싸부의 설명을 들으니까 무슨 뜻인지 명백하네요.”
“무엇보다도 풍수학에서는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명학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도입해서 사주를 풀이할 이치가 없다는 것이지.”
“당연하죠. 이제 경도 스승님의 말씀을 알 것 같아요.”
“경도 스승님은 논하지 않았지만 육합(六合)이라는 것도 있단 것을 말해 줘야 하겠군.”
그러면서 다시 지지를 그리고 줄을 그었다.
“이것은 육합(六合)이라는 것이라네. 합과 천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
“그렇군요. 물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겠죠?”
“당연하다네. 이러한 공식처럼 보여서 중요할 것 같지만 의미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 정신을 빼앗기다가 보면 아까운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그래서 명학을 연구한 세월이 20년이니 30년이니 하지만 핵심에는 접근도 못해보고 변두리만 맴돌다가 삶을 마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네.”
“정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네요.”
“그러니 올바른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노력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
“맞아요. 이 자원은 두 싸부님을 잡고 놓지 않을 거예요. 공부가 다 될 때까지요. 호호~!”
“그래, 인연이 있으니 열심히 해 봐야지. 하하~!”
“그런데 써먹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것이 재미있기는 하겠어요. 이야기를 할 것이 풍부하잖아요.”
“대부분은 그러한 맛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싸 짊어지고 다닌다고 봐야지.”
“그래도 써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물론이지. 정확하게 생극의 이치를 깨달은 다음에 양념으로 삼아서 사용한다면 누가 뭐라겠나.”
“그러니까 이치도 모르고 그것만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란 뜻이죠?”
“맞아,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꼴이 나는 거지.”
“각주구검요? 호호호~! 정말 멋진 비유예요. 공감이 팍팍 되네요.”
“그렇다면 이치를 알면 써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뭔가 알아둬도 좋을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잘만 쓴다면 버릴 것이야 뭐가 있겠어?”
“그럼 재미있는 것을 다섯 가지만 알려주세요.”
“그럼 머리도 식힐 겸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해 주지. 하하~!”
“역시, 인정 많은 임싸부~! 만세예요. 만세~! 호호호~!”
25. 지지의 군더더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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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낭랑한 음성으로 적천수를 읽었다.
지신지이충위중(支神只以沖爲重)
형여천혜동부동(刑與穿兮動不動)
지지(地支)는 다만
충돌(衝突)이 중요(重要)하고
형(刑)이나 천(穿)은
동하는 듯 마는 듯하다.
“그러니까, ‘지신지이충위중’이라는 말은 ‘지지는 충(沖)이 가장 중요하다.’라는 뜻으로 보겠고, ‘형여천혜동부동’은 ‘형(刑)과 천(穿)은 신경을 쓸 것이 없다.’는 의미로 보이는군. 이제 고월의 풀이를 듣도록 하겠네.”
“지신이란 말은 지지의 열두 글자를 신격화(神格化)시켜서 말한 것이라고 보면 되겠지?”
“그렇게 보이네. 간신(干神)이라는 말은 하지 않으면서 지신에 대해서만 논하는 것이 좀 불균형(不均衡)으로 보이긴 하네만. 하하~!”
“지신은 지지로 바꿔서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네.”
“여하튼 간(干)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는 뜻이로군.”
“다음은 ‘다만, 충(沖)이 중(重)할 뿐’이라고 해석을 하면 되겠네.”
“여기에서 ‘다만’이라고 한 것은 다른 것은 제외해도 된다는 의미가 느껴지는걸.”
“맞아. 그런 뜻으로 쓴 글이겠지.”
“다만의 뒤에 있는 ‘충위중’을 봐서 충은 중요하지만 다른 것은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란 말인가?”
“왜 아니겠나.”
“그렇다면 충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은가?”
“글만 봐서는 그렇지만, 느낌으로는 어떤가?”
“느낌으로는 ‘뭐 별로 중요할 것은 없지만’이라는 느낌인데 이게 올바른 것인지는 모르겠는걸.”
“그게 맞는 거야. 다들 하도 중요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걱정이 된다면 그 중에서 겨우 충 정도나 중요하다고 하던가~!’ 라는 느낌으로 그 나머지는 의미가 없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지.”
“도대체 다들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하기에 경도 스승님이 이렇게 글을 썼는지도 참 궁금하군.”
“여하튼 충도 사실은 별로 중요할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보면 되겠네.”
고월이 그렇게 말을 하면서 지지(地支)를 둥그렇게 썼다.
“자, 이것을 보면서 설명하겠네.”
“이게 뭔가?”
“충에 대한 개념도라고나 할까.”
“자오(子午)가 보이는군, 묘유(卯酉)도 보이고, 그렇다면 육충(六沖)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
“그렇지.”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충이라면 사해(巳亥)가 이렇게 나란히 붙어 있어야 하는데 이 도표는 서로 마주 보고 있지 않은가?”
“이게 무슨 차이라는 거지?”
“아, 봐도 모르시겠는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이네.”
“대충(對沖)~!”
“대충이라고? 마주 보는 것의 충이란 뜻인가?”
“그렇다네. 마주 보고 있어서 일어난 현상이라는 것이지.”
“명학에서는 옆에 있어야 충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왜 아니겠나. 더구나 생방(生方)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이미 살펴보지 않았느냔 말이지.”
“맞아, 생방(生方)은 생지(生支)라고 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를 했지.”
“여기에서 방(方)도 이미 상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가 된다는 거지.”
“그렇겠군. 이것은 뭘 의미하는 것이지?”
“당연히 지학(地學)에서 나온 이야기란 말이지.”
“엉? 지학이라니?”
“풍수지리학(風水地理學)이라고 하고, 줄여서 풍수(風水)라고도 하지.”
“아, 그래 풍수학이로군.”
고월은 우창과 자원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자세히 했다.
“풍수학에서는 공간(空間)을 중심으로 관찰하게 되지 않는가?”
“그렇지. 지상(地上)의 모습으로 관찰해야 하니까 당연하겠네.”
“그것은 공간에 해당하는 논리가 되고, 당연히 나경도 공간의 의미로 펼쳐진 것이라네. 그러니까 집의 맞은편에 거목이 있으면 그것을 충이라고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네.”
그 말에 우창이 동조를 했다.
“당연하지. 출입을 할 적에 대문 앞에 거목이 있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그러니까 풍수학에서는 이러한 것을 꺼린다고 하지 않더라도 당장 생활이 불편할 것은 당연한 일이로군.”
“명학에서는 공간을 사용하나?”
“무슨 말을? 명학은 시간으로 논하는 학문이지 않는가?”
“시간으로 논한다면 어제의 오시(午時)가 오늘의 오시와 같은 것일까?”
“당연히 같을 수가 없지.”
“그렇다면 오늘의 오시가 밤의 자시(子時)와 만날 일이 있을까? 그렇게 만나서 자오충(子午冲)을 일으킬 수가 있을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충의 의미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인 줄로 알겠네. 하하~!”
그러자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는 자원이 문득 의문이 생겼는지 묻는다.
“참, 임싸부~!”
“무섭게 왜 정색을 하고 부르지?”
“무섭긴요. 호호~!”
“뭐가 궁금한 거야?”
“풍수지리를 왜 풍수라고 하죠?”
“아, 그건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뜻이라네.”
“장풍득수? 무슨 뜻이에요?”
“아 그 뜻은 ‘바람으로부터는 숨어야 하고, 물을 얻는다.’는 이야기라네.”
“그게 무슨 말이죠? 어려워요.”
“바람에 드러나면 기운이 흩어지고, 물을 얻지 못하면 기운이 빠져버린다는 말이지.”
“예? 빠지다니요? 뭐가요?”
“좋은 기운이지 뭐긴 뭐겠어. 가령 떡을 찌는데 솥에서 김이 빠져나가면 떡이 익을까?”
“익을 턱이 없죠.”
“그래서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야.”
“그러니까 그러한 지형을 갖춘 곳을 찾는 것이 풍수학이라는 말이라는 거예요?”
“그렇지. 풍수도 파고 들어가면 무지하게 복잡하니까 지금은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돼.”
“알았어요. 그냥 이름이 궁금했어요. 다음에 공부할 기회가 있다는 뜻으로 접수하겠어요. 호호~!”
“잘 생각했어. 언제 또 기회가 오겠지. 하하~!”
우창이 고월에게 말했다.
“고월의 말로는 충(沖)은 풍수학에서 나온 이야기란 뜻인가?”
“맞아. 그 뜻이야.”
“풍수지리에서는 지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지?”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네.”
“평면이라…….”
“일정한 지점을 중심으로 삼고 12방향으로 나눠서 대입한다는 생각이라네. 그러니까 상대적인 방향이 되는 거지. 그래서 방(方)이라는 말이 항상 붙어 다니는 거라네.”
“하긴, 땅 위에서 판단한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겠군.”
그러자 고월이 또 다른 그림을 문갑에서 꺼내어 펼쳐놓았다. 이것은 간단히 그릴 수가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정성을 많이 들인 것이 역력했다.
“이것이 나경(羅經)의 표면이라네.”
“아, 본 적이 있군. 그런데 이름이 나경인가? 책도 아니면서 경(經)이 붙어 있는 것은 좀 의외인걸.”
“나경의 뜻은 ‘포라만상(包羅萬象)하여 경륜천지(經綸天地)한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네. 여기에서 라와 경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지.”
“중앙에 있는 것은 자철(磁鐵)인가?”
“지남침(指南針)이라고도 하고, 천지침이라고도 한다네. 자성체(磁性體)가 있는 쇠를 깎아서 만든 것이라서 항상 절대적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방향이라면 남북(南北)을 말하는 것이겠지?”
“그렇다네. 보통은 절대적인 남쪽을 가리키고 있다고 해서 지남(指南)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네.”
“아, 지남철이라는 말도 그 뜻이었나?”
“맞아. 그래서 이것을 확대하여 기준(基準)이라는 의미로도 차용(借用)한다네.”
“아니, 남쪽을 가리킨다면 상대적으로 북쪽을 가리킨다는 말도 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북철(指北鐵)이라고 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을까?”
“아마도, 왕의 관점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해 보네.”
“왕의 관점이라니?”
“왕은 북쪽에 앉아서 남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왕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자침(磁針)도 남쪽을 바라본다는 의미란 말인가?”
“일설에는 북쪽을 가리키는 줄만 알았던 자침(磁針)이 아주 오랜 옛날에는 남쪽을 가리켰다는 말도 있긴 하더군. 어쩌면 그래서 지남철이라고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네.”
“그런가? 그렇다며 남북이 수시로 바뀐다는 말이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뜻이 아니었겠나 싶은 것이니 그냥 참고만 하게. 그것도 또한 음양이 아니겠는가. 하하~!”
“그런데 이 나경(羅經)은 어떻게 보는 것이지?”
“지금 그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地支)가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니 그것만 보시게.”
“아, 뭐든 보면 파고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받아서. 하하~!”
“물론 우창의 마음이야 알지, 여하튼 다음 기회에 다시 궁리를 해 보도록 하고.”
“지지를 보니까 서로 마주 보고 있군. 그것은 충의 배치와 같은 것임을 알겠네.”
“잘 관찰하셨군. 그래서 육충(六沖)은 대충(對沖)에서 온 것이라는 근원을 밝혀주는 자료라고 보면 되네.”
“그러니까 충(沖)은 극(剋)으로만 살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로군. 그렇지?”
“맞았네. 사실 명학에서는 충이라는 말조차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경도 스승님은 명확하게 깨닫고 있었다는 이야기라네.”
“그래서 겨우 ‘충 정도나 생각해 보던가.’라고 한 느낌을 알겠군.”
“예를 들어 자오충(子午冲)이라고 하면 양패구상(兩敗俱傷)일까 자승오패(子勝午敗)일까?”
“그야 당연히 자승오패가 아닌가?”
“그렇지. 자수(子水)가 오화(午火)를 극한다는 것으로만 알면 된다네. 그런데 이것을 충이라고 하게 되면 그것은 충돌(衝突)의 의미가 되어서 둘 다 깨어진다는 의미가 되니 오류(誤謬)가 발생한다는 말이네.”
“과연, 고월의 판단력은 명료(明瞭)하군.”
“괜한 소리는 하지 말고. 하하~!”
“그렇다면, 충의 의미는 없다고 봐도 되겠네.”
“당연하지. 그렇다면 오자오충(午子午沖)은 어떨까?”
“말하자면 두 개의 오화(午火)가 하나의 자수(子水)와 붙었을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겠지?”
“맞아.”
“그렇게 되면 싸움은 승패를 논하기 어렵게 되겠는걸.”
“잘 생각했네. 이렇게만 이해하면 충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정리를 한 것으로 봐도 되겠네. 하하~!”
“그렇다면 형(刑)이나 천(穿)에 대해서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단 말이로군.”
“맞았네.”
그러자 자원이 얼른 끼어들었다.
“그래도, 임싸부~! 설명은 해 주실 거죠?”
“왜, 이유는 알아야 하겠는가?”
“혹 누가 물으면 아니라고 하는 근거는 대야죠~!”
“그도 그렇군. 그렇다면 형에 대한 도표를 보여주지.”
그러면서 고월은 다시 지지도를 하나 그리고 줄을 그었다.
“이것이 삼형(三刑)을 의미하는 것이라네.”
“이것을 어떻게 보는 거죠?”
“인사(寅巳), 사신(巳申)으로 보란 말이지. 인사신(寅巳申)이 있으면 형(刑)이라는 말이기도 하고.”
“형(刑)은 형액(刑厄)을 당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지.”
“그렇다면 사주에 인사신(寅巳申)이 있으면 투옥(投獄)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거예요?”
“맞아. 또 축술미(丑戌未)도 마찬가지로 보면 된다네.”
“원래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근거가 있기는 했겠죠?”
“그야 모르지. 여하튼 지금에 와서 오행의 생극이 명료하게 연구가 되었으니 논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지.”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단 말씀이세요? 왜냐면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이 있거나, 없더라도 모함을 당해서 형틀에 갇히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사주팔자에 이러한 것이 있어서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문제는 형틀에 갇힌 사람도 인사신(寅巳申)이나 축술미(丑戌未)가 없는 사람이 수두룩하다는 것이지. 이것은 뭘 의미할까?”
“그것과 형액(刑厄)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이 아닐까요?”
“맞아, 그래서 경도 스승님도 이렇게 글을 쓴 것이라고 생각되네.”
“이제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천(穿)은 또 뭔지도 설명해 줄까?”
“그럼요. 써먹지는 않더라도 이해는 해야죠. 호호~!”
“자 이 그림을 봐.”
고월은 그러면서 또 하나의 지지를 그렸다.
“이것이 소위(所謂) 천(穿)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말로는 육해(六害)라고 하는 것의 구조라네.”
“천이면 천이고 해(害)면 해지 왜 두 가지가 될까요?”
“그야 모르지만, 공교롭게도 같은 이론에 다른 이름이 있는 경우도 흔하니까 상관없다고 봐.”
“그렇겠네요. 그런데 왜 ‘뚫는다’는 의미가 된 건가요?”
“축오(丑午), 자미(子未), 신해(申亥), 유술(酉戌), 인사(寅巳), 묘진(卯辰)을 천이라고 하는데 서로 줄을 그으면 위에서 아래로 뚫리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천(穿)인 거예요?”
“그렇지.”
“에구~! 그게 뭐예요?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이제 왜 경도 스승님이 ‘동부동(動不動)’이라고 했는지 이해되나?”
“동한다고 하지만 동할 것이 없다는 뜻이겠죠?”
“맞아, 공간(空間)을 의미하는 평면(平面)의 지상(地上)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고 해 놓은 것이, 시간(時間)을 논하는 명학에 깊은 숙고(熟考) 없이 끼어들었다는 생각을 해 보는 거지.”
“임싸부의 설명을 들으니까 무슨 뜻인지 명백하네요.”
“무엇보다도 풍수학에서는 무슨 말을 하거나 말거나 명학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도입해서 사주를 풀이할 이치가 없다는 것이지.”
“당연하죠. 이제 경도 스승님의 말씀을 알 것 같아요.”
“경도 스승님은 논하지 않았지만 육합(六合)이라는 것도 있단 것을 말해 줘야 하겠군.”
그러면서 다시 지지를 그리고 줄을 그었다.
“이것은 육합(六合)이라는 것이라네. 합과 천은 상반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지?”
“그렇군요. 물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겠죠?”
“당연하다네. 이러한 공식처럼 보여서 중요할 것 같지만 의미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 정신을 빼앗기다가 보면 아까운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고, 그래서 명학을 연구한 세월이 20년이니 30년이니 하지만 핵심에는 접근도 못해보고 변두리만 맴돌다가 삶을 마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네.”
“정말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네요.”
“그러니 올바른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노력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지.”
“맞아요. 이 자원은 두 싸부님을 잡고 놓지 않을 거예요. 공부가 다 될 때까지요. 호호~!”
“그래, 인연이 있으니 열심히 해 봐야지. 하하~!”
“그런데 써먹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것이 재미있기는 하겠어요. 이야기를 할 것이 풍부하잖아요.”
“대부분은 그러한 맛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싸 짊어지고 다닌다고 봐야지.”
“그래도 써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물론이지. 정확하게 생극의 이치를 깨달은 다음에 양념으로 삼아서 사용한다면 누가 뭐라겠나.”
“그러니까 이치도 모르고 그것만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란 뜻이죠?”
“맞아,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꼴이 나는 거지.”
“각주구검요? 호호호~! 정말 멋진 비유예요. 공감이 팍팍 되네요.”
“그렇다면 이치를 알면 써먹을 수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뭔가 알아둬도 좋을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잘만 쓴다면 버릴 것이야 뭐가 있겠어?”
“그럼 재미있는 것을 다섯 가지만 알려주세요.”
“그럼 머리도 식힐 겸해서 간단히 이야기를 해 주지. 하하~!”
“역시, 인정 많은 임싸부~! 만세예요. 만세~!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