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 2. 역학과 명학의 차이(差異)

작성일
2017-02-07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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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제10장 간지(干支)의 세계(世界)

2. 역학과 명학의 차이(差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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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만에 고월의 처소를 찾은 우창은 익숙하게 차를 만들어서 마주하고 앉았다. 고월은 앉자마자 흥분한 듯이 우창에게 말했다.

“우창, 경순 선생은 참 대단한 학자셨군. 명학계(命學界)로 본다면 아마도 지진(地震)이 일어날 것 같군.”

“난 아직 잘 몰라서 그런지 전혀 모르겠어.”

“일반 술객(術客)들이 논명(論命)하는 것과는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

“그 정도였어? 무슨 이야기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봐 그래야 이 우둔한 사람도 알아듣지.”

“내 팔자가 해석하기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이 있거든.”

“오호~! 그래 나도 그것이 참 궁금했었네. 어떻게 사주를 보고서 그러한 풀이가 척척 나오는지 신기하기도 했다네.”

“풀이하는 것이야 말을 잘하면 놀라운 이야기도 할 수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기본적인 바탕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지.”

“미안하네.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못 알아먹으니 말이야. 하하~!”

“아, 그렇지.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 보군.”

“학문의 이치는 몰라도 고월의 마음은 알 것 같은걸.”

“그렇다면 어디 조금 부연 설명을 해 드림세.”

“알기 쉽게 풀이해 주시게.”

고월은 붓으로 자신의 사주를 다시 썼다.

 

壬 丙 戊 癸

辰 午 午 巳

 

“이것이 내가 태어난 팔자라네.”

“그래. 어떻게 풀이를 하는 것인가?”

“우선 오행으로 살펴보면 어느 오행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가 있지.”

“그렇다면 내가 살펴보지. 화(火)가 넷, 수(水)가 둘, 토(土)가 둘인가?”

“맞아, 틀림없네.”

“그게 어떻게 해석이 되길래 형님은 고월이 살아온 것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풀이를 한단 말인가?”

“우선 중요한 것은 병오(丙午)일에 태어났다는 것이라네.”

“아, 그래서 자네가 병화(丙火)로 태어났다고 하는 건가?”

“그렇지~!”

“형님에게 설명을 들은 것으로 한다면,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그것이 심하게 되면 난폭하게 변한다고도 했는데?”

“다른 술객(術客)들은 불덩어리라고 풀이를 하지.”

“그럴 만도 하겠는걸. 사주의 절반이 화(火)가 아닌가?”

“그래서 시간(時干)의 임수(壬水)가 불을 끌 수 있는 핵심이라고들 한다네.”

“그것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걸.”

“문제는 임(壬)은 얼마나 힘이 있느냐는 것이라네.”

“음……. 금생수(金生水)가 되지 않았으니…….”

“그렇게 보이는가?”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는걸.”

“당연히 그렇게 보는 것이 맞는 관찰이라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강호의 술사들은 이 사주에서 매우 중요한 용도가 되어야 할 임(壬)이 무력하여 쓸모없는 팔자이므로 삶도 별 볼일이 없다고 한다는 것이지.”

“그래?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걸.”

“그들은 월간(月干)의 무토(戊土)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왜? 당연히 그 자리에 있으니 작용도 할 것이 아닌가?”

“무계(戊癸)가 만나면 화(火)로 변한다는 주장을 하는 까닭이지.”

“오호~! 그런 말도 있나? 하도 변화가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그래서 아까 형님에게 그 부분을 다시 확인해 봤던 것이라네.”

“아, 그것이 자네에겐 풀어야 할 숙제와 같은 거였나 보군.”

“맞아. 그랬더니 형님은 전혀 그렇게 보지 않더란 말이야.”

“어떻게 보셨기에 그러는가?”

“형님의 관점으로는 무(戊)도 살아있었다는 거지.”

“그러니까 무가 제 기능을 하느냐 못하느냐는 해석의 차이였다?”

“제대로 알아들었군. 그 이야기야.”

“아무리 그렇기로 그것이 그리 중요한가?”

“당연하지. 해석의 방향이 전혀 달라져 버리니까.”

“어떻게 달라지는데?”

“무가 제 기능을 못한다면 수운(水運)이 길하고, 한다면 토운(土運)이 길하게 되거든.”

“아, 운의 대입에서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단 말인가?”

“그렇지. 왜냐하면, 배의 선장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게 된다는 말이나 같지.”

“그렇다면 참 큰일이군.”

“항상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나름 많은 고심을 했었던 거지.”

“그런데도 여태까지 그것이 풀리지 않았던 것인가?”

“자네가 형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급하게 만나보려고 했던 것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함이었지.”

“그렇다면 축하를 할 일이 아닌가?”

“축하는 몰라도 숙제가 하나 풀린 셈이지. 고맙네. 하하~!”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다고 봐야 하지?”

“강호의 술사들이 부귀공명을 이룰 수가 있다고 한 것은 허상(虛像)을 추구하는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네.”

“그건 안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 허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참으로 삶의 낭비일 수도 있지 않은가?”

“뜻과 무관하게 정확하지 않은 말은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실제 하지 않는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네. 정확한 말이 중요한 것이지.”

“그렇다면 어떤 길로 가야 한단 말인가?”

“선택(選擇)은 간단하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학문의 길이란 이야기야.”

“우리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예전에 들었던 말 중에서, 벼슬길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머릿속을 어지럽혔었다는 거야.”

“아, 그럴 수도 있겠네. 이해가 되는군.”

“벼슬로 가야 할 것인지, 아니면 벼슬에 미련을 버리고 학자의 길로 가야 할 것인지, 이 두 갈래의 길에서 항상 답을 얻지 못했던 답답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지.”

“그런데, 강호의 술사들은 왜 벼슬길이 인연이라고 한 것인가?”

“시상일귀격(時上一貴格)이라는 명칭에 매여서이지.”

“귀격(貴格)은 좋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벼슬길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라네.”

“아니, 그렇게 알고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만 된다면 물론 좋은 말이긴 하지. 그러나 그렇게 해도 되지 않는다면 괜한 시간만 허비한 꼴이 되지 않겠나?”

“왜, 시상일귀격이라고 하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인가?”

“그건 일종의 공식(公式)과 같은 것이라네.”

“아, 공식이 있으면 풀이를 할 적에 용이(容易)할 수가 있겠군.”

“문제는 그 공식에 매여서 정답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

“선입견(先入見)이 생긴다는 의미인가?”

“맞았어~!”

“음…….”

“생각을 해 봐. 사람들이 내 사주를 볼 때마다, ‘그대는 부귀영화를 누릴 거다.’라는 말을 한다면, 처음 한두 번은 그렇게 말을 하는가 보다 싶다가도 자꾸 반복해서 듣다가 보면 과연 내 길이 그러한 것인지에 대해서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 않겠느냔 말이지.”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데 괜한 희망(希望)만 품게 될 수도 있겠군.”

“미래에 대한 예언(豫言)이 그렇게 나온다면 과연 혼란스럽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되게냔 말이지.”

“당연히 희망을 품고 출세의 길로 나가려고 노력하겠지.”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허황된 꿈에 사로잡혀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면 또한 학문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는걸.”

“올바른 길로 안내를 받으려고 조언을 구한 것이 오히려 장애가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부작용(不作用)이라고 해야 한단 거지.”

“맞는 말이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고월의 사주에 대한 풀이를 한 것에 대해서 그런 의심을 품게 되었던 것인가?”

“지금 내 처지를 보게나. 과연 귀격(貴格)으로 타고난 사람의 삶이 이와 같아서 될 일인가 말이지.”

“원래는 관가(官家)에서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 말도 틀렸다고는 못하지 싶은걸.”

“그래서 나도 그 말이 사실일 것이라고 믿었다네.”

“물론, 그래서 과거에 대한 꿈이 있어서 공부도 했을 테고.”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부친에게 횡액(橫厄)이 닥치면서 모두가 뜬구름이 되어버렸으니 어찌 그러한 팔자의 풀이에 공감이 될 수가 있었겠는가?”

“아, 그럴 만도 하네그려.”

“그래서 과연 술사들이 풀이한 내 팔자가 올바르게 해석이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던 것이라네.”

“풀리지 않던 문제를 형님이 제대로 풀어줬단 말이지?”

“생각지도 못한 무(戊)의 사용법을 말씀해 주셨다는 거지.”

“그래서 청운(靑雲)의 뜻을 버리고 백운(白雲)의 길을 따르라고 한 것이었단 말이지?”

“그렇다네. 공부하되 벼슬길이 없으니 괜한 꿈을 꾸지 말고 도를 닦고 도학을 공부하라는 가르침이야말로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란 말이지.”

“과연, 듣고 보니 자네의 의문에 대해서 공감이 되는군.”

“이제 두 마음을 접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명학에 대해서 파고들어야 하겠다는 답을 얻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를 일이네.”

“무(戊)를 쓰는 것과 도학을 공부하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형님께서 무를 일러서 뭐라고 하던가?”

“고독(孤獨)이라고 하셨지.”

“고독은 수행자도 된단 말이네.”

“적어도 부귀공명(富貴功名)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군. 하하~!”

“당연하지. 하하~!”

“그런데, 그게 왜 학문이 되는가?”

“아직 자네의 공부가 부족하니 차차로 설명해 주겠네.”

“임(壬)은 또 왜 벼슬길이 되는지도 궁금한걸.”

“지금은 조금 난해(難解)하더라도 더 공부하면 자연히 알게 될 걸세.”

“언제나 그 의미를 가르쳐 줄 텐가?”

“우리가 공부하는 책이 있지 않은가. 그것을 다 공부하고 나면 상당히 깊은 힘을 얻게 될 것이네.”

“아, 적천수 말인가?”

“이제부터 몰입해서 적천수 공부를 해야겠네. 사실 내 팔자도 맞지 않는 이론들에 대한 것을 붙잡고 세월을 보낼 필요는 없으니까 좋은 책을 제대로 잡고 파고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말이지.”

“근데 형님의 풀이를 듣고서 마음이 바뀌었나?”

“물론이라네. 이제 희망이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지.”

“참, 생각이 났는데, 역학(易學)을 공부해야 할지, 아니면 명학(命學)을 공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지 않았었나? 그건 무슨 의미인가?”

“아, 그것도 대단히 중요한 조언(助言)이었지.”

“어차피 이 공부는 구분할 필요도 없이 모두 다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중심은 잡고 가야 하지 않겠나?”

“역학과 명학의 차이가 있는가?”

“당연히 차이가 크지.”

“어떻게 다르지?”

“역학은 출세하려는 목적이 있고, 명학은 공부나 하는 훈장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거든.”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인 걸?”

“가령, 운산 선생은 역학 쪽으로 연구를 하신단 말이야.”

“출세하겠다는 뜻이 있단 말인가?”

“내가 태산에서 노산으로 동행을 했던 낙안도 같은 방향일 것으로 보는데?”

“맞아, 항상 병법에 대해서 골몰하는 것은 틀림이 없네.”

“그것 보게. 병법은 조용히 학문을 연구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아하~! 그렇다면 역학은 무과(武科)가 되고, 명학은 문과(文科)가 된다고 할 수도 있겠는걸.”

“하하~! 우창은 참으로 총명한 친구일세. 정확하게 핵심을 짚었군. 역학은 역동적(力動的)이니 무사(武士)라고 할 수가 있다면, 명학(命學)은 안정적(安定的)이니 문사(文士)라고 할 수가 있겠지.”

“오호~! 그러니까 문무(文武)의 길에서 선택이 어려웠던 것이로군.”

“그렇다네. 경순 형님을 뵙고서 이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얻었으니 얼마나 통쾌하겠느냔 말이지.”

“과연, 놀랍네. 진심으로 놀라워~!”

“뭐가 말인가?”

“세간의 학문에서만 문무가 있는 것인가 했는데 도학에서도 문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냔 말이네. 하하~!”

“그것을 뭐라고 하겠는가?”

“그야 음양법(陰陽法)말고 또 있겠나? 하하~!”

“옳지~! 잘하네. 하하~!”

“그렇다면, 역학을 공부할 사주는 어떤 특징이 있는가?”

“나중에 차차로 알게 될 것이네. 서둘지 않아도 되네.”

“두 학문은 공부하는 마음도 서로 달라지겠는걸?”

“당연하지~!”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말을 해 줄 수가 있겠지?”

“그야 어렵지 않지, 역학은 적중(的中)에 목숨을 건다네.”

“어차피 예언한다면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분위기가 좀 다르다네.”

“좀 쉽게 설명을 해 주셔봐.”

“내가 말 한 ‘목숨을 건다.’는 것에 대해서 유념(留念)해 보게나.”

“문득, 살벌(殺伐)한 긴장감(緊張感)이 느껴지는걸.”

“바로 그거야, 내가 해 주려는 말이~!”

“오호~!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몰랐네.”

“우창은 ‘진검승부(眞劍勝負)’라는 말을 아는가?”

“그건 무림(武林)의 고수(高手)들이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일합(一合)을 겨루는 말이 아닌가?”

우창은 이러한 말을 하는 고월이 의아(疑訝)해서 바라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