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9] 제9장 천간의 소식 / 8. 고체(固體)와 흑체(黑體)의 사이

작성일
2017-01-29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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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8
[099]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8. 고체(固體)와 흑체(黑體)의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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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언뜻 들으면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이더란 말이지요. 그런데 형님의 말씀을 듣고서 연결을 시켜보려고 아무리 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여쭤본 것입니다.”

“잘했어 아우.”

“어떻게 생각하면 올바른 이치를 벗어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왜 이러한 말이 강호에 떠다니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나도 처음에 천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적에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네. 그리고 그런 것으로 알고 있었지.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식견이 쌓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거지.”

“그러셨군요. 그래서요?”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냥 넘어갔는데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이에 대한 비급(秘笈)을 손에 넣게 되었다네.”

“아하~! 뜻이 있으면 천지신명이 도우시나 봅니다. 어떤 것입니까?”

“그 책의 이름은 『심리추명(心理推命)』이라네.”

“예? 심리추명이란 말이죠?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에 대한 이치로 운명을 추론(推論)한다’는 뜻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네, 처음에는 그 글귀를 접하고 무슨 헛된 공상(空想)을 심심풀이 삼아서 적어놓았는가 싶었다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그 내용에 대해서 동의하게 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

“내용의 의미가 깊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박식(博識)한 형님께서 잠심(潛心)을 하고 궁리하셨을 리가 없었을 테니까요.”

“당연하지. 처음에는 우습게 생각했던 내용에 몰입해서 반년여를 연구하고 정리를 했다네.”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바위와 보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의를 내리면 됩니까?”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었다네.”

 

경심여암동고체(庚心如巖同固體)

신심탐옥생흑심(辛心貪玉生黑心)

 

“그 말의 뜻은 ‘경의 마음은 바위같이 견고한 물체이고, 신의 마음은 옥을 탐하는 것과 같아서 검은 탐심(貪心)이 생긴다.’는 것이잖습니까?”

“맞았어! 그러니까 ‘경(庚)은 바위이다’가 아니라, ‘경은 그 내면의 마음이 거대한 암석과 같다’는 뜻이었던 것이지.”

“그런데 왜 오해가 생겼을까요?”

“원래 문자는 그러한 오류를 늘 일으킨다네.”

“그렇다면 비유를 했던 것이 실제가 되어버린 것이로군요.”

“맞아~!”

“가령 ‘자두나무 아래에서 갓의 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한 말을 들은 선비가 갓이 벗겨졌는데 마침 자두나무 아래여서 다시 고쳐 쓰지 않고 그냥 갓을 들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갓을 고쳐 썼다는 것과 다름이 없군요.”

“원래의 뜻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남이 오해를 살 일은 조심해서 경계하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글만 읽고 뜻을 풀이하지 못하여 오해가 생기는 것이지.”

“맞습니다. 형용사(形容詞)를 주어(主語)로 받아들인 결과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 후로 학인들은 ‘자두나무와 갓의 끈’만을 생각하고 있듯이 ‘경은 바위다’라는 말만 죽을 때까지 외우고 그렇게만 알고 살다가 떠나가는 거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로군요. 그러나 형님께서도 그 ‘심리추명’이라는 책을 얻지 못하셨더라면 또한 그렇게만 알고 계셨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모르고 살았다면 끔찍한 일이었지. 그 글을 읽고 소름이 돋았다네.”

“이해가 됩니다. 그러고도 남았겠습니다.”

“그러니까 경(庚)이 바위와 같다는 것은, 중심을 굳게 지키는 백도(白道)의 고수처럼, 자신의 본심을 선하게 지키는 존재가 되는 것이고, 신(辛)이 보옥(寶玉)을 탐한다는 것은 여태까지 우리가 말한 흑도의 괴수(魁首)와 같이 마음에는 온통 물욕(物慾)만을 갖는다는 의미와 상통하는 것이지.”

“이제 형님의 말씀과 고서의 언급에서 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것도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나 전해야지 함부로 이야기하게 되면 괜히 오해를 불러일으켜서 귀찮을 것이라서 말은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라네.”

“형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진리의 왜곡은 이제라도 바로잡아서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지기(知己)로세~!”

갑자기 옆에 있는 조은령이 손뼉을 쳤다.

“짝짝짝~! 멋지세요. 두 분의 대화에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보이는 것 같아서 기뻐요. 소녀도 반드시 그 소중한 이치를 깨달아서 그러한 글을 남긴 선생의 높은 뜻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어요.”

“그 글을 쓰신 고인은 누구신지요?”

“아, 이름은 하충(何忠) 선생이었다네.”

“처음 듣는 고인의 존함입니다.”

“하충 선생의 설명을 보면, 또 다른 의미로 경(庚)을 고체(固體)라고도 한다네.”

“고체라면 단단한 물체를 말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경(庚)은 바위가 맞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고체라는 의미가 바위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라네.”

“말이 됩니다. 뭔가 서로 연관이 없는 듯 연관이 있네요.”

“고체와 제팔식(第八識)은 어떤가?”

“그것도 연결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팔식을 부동심(不動心)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 그렇다면 바로 연결이 되네요. 견고한 마음이잖습니까?”

“하충 선생은 어떻게 이러한 것을 살폈을까 싶다네. 참으로 대단한 통찰력이 아닌가 말이네.”

“정말 놀랍습니다. 무형(無形)의 고체란 말씀이시잖아요.”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은 마음이란 말이지.”

“과연 형님께서 놀라실 만하네요. 그러니까 하충 선생의 고체(固體)를 형님이 제팔식과 연결 시켜서 해석하신 거군요?”

“맞아, 기본이론의 뼈대가 탄탄하면 뭘 끌어다 붙여도 근사한 그림이 되거든.”

그러자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조은령이 물었다.

“아니, 두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어요. 고체라면 바위를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나서요.”

“그럴 수도 있겠군.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것은 바위라는 생각이 계속 사라지지 않는 것이겠지?”

“맞아요. 경순선생님~! 어떻게 해요?”

“그렇다면 또 생각해 봐야지. 하하~!”

“이해가 될 수 있게 설명 부탁드려요~!”

“바위를 무엇으로 깰 수가 있을까?”

“그야 석수(石手)가 정과 망치로 깨죠.”

“그렇다면 석수의 마음이 깬다고 해도 될까?”

“마음으로요?”

“바위를 깨겠다고 마음을 먹지 않아도 바위가 깨어질까?”

“어렵겠네요.”

“그렇다면 바위도 깨는 것이 있단 말이잖은가?”

“이제 조금 이해가 되려고 해요.”

“그래서 바위보다 단단하지만 세상에서 단단하다는 것을 비유할 만한 것은 바위이기 때문에 철석(鐵石)과 같다고 했던 것으로 보이네.”

“그렇다면 신(辛)이 흑심(黑心)이라고 한 것과 보석(寶石)을 비교하면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요?”

“보석을 보면 마음이 밝아질까 어두워질까?”

“그야 환하게 밝겠죠~! 너무너무 좋아서 말이지요.”

“그것은 조 낭자 손에 보석이 주어졌을 때겠지?”

“당연하죠~!”

“그런데 그게 남의 손에 있어. 그래도 환하게 밝을까?”

“그야 마음이 아프겠죠.”

“왜?”

“갖고 싶으니까요.”

“그럼 가지면 되잖아?”

“어떻게 남의 것을 가질 수가 있어요?”

“갖고 싶다는 마음은 밝을까, 아니면 어두울까?”

“어둡겠어요.”

“탐욕(貪慾)이 눈을 가리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말을 믿나?”

“그럼요~! 탐욕은 사리판단(事理判斷)을 못 하게 하잖아요.”

“어쩌다가 ‘보석을 탐하는 마음’이라고 한 것이 ‘보석’이 되어버린 기가 막힌 사연이 그 안에 있었던 거야.”

“그게 그렇게 되는 것이었어요?”

“이제 조금 이해가 되는가?”

“예, 그래서 무림의 흑도는 물욕과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혀서 온갖 못된 짓을 하면서도 그것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른다는 생각을 못 하는 것인가 봐요.”

“경신(庚辛)의 두 글자에서 이러한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적에 얼마나 신이 나던지 단숨에 산꼭대기로 달려 올라가서 목이 터지라고 고함을 질렀지.”

“그정도였습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오랜 시간을 두고 궁리를 해도 풀리지 않았던 것이 봄눈처럼 풀렸는데 말이지. 하하~!”

문득 그 일이 어제의 일인 것처럼 회상하는 경순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띠었다. 움직이지 않던 마음에서도 흥분이 되었던 당시의 느낌이 떠올랐다.

“과연 학자의 본분은 진리를 깨닫는 기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소녀도 그러한 경지를 맛보고 싶어요. 호호~!”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니 꾸준하게만 하시구려, 조 낭자.”

“형님, ‘고체와, 잠재의식에 포함된 부동심과, 경(庚)과, 양금(陽金)’이 모두 한 줄에 꿰어지는 것으로 정리를 하면 되겠지요?”

“잘 이해하셨네.”

“그리고, ‘흑체와, 잠재의식에 포함된 탐심과, 신(辛)과, 음금(陰金)’도 마찬가지로 가능하겠습니까?”

“그렇다네. 이제 그만하면 경신금(庚辛金)에 대해서는 이해가 잘 되셨다고 봐도 되겠네. 그것을 일러서 ‘금(金)의 본질(本質)’이라고 한다네.”

“참 형님, 탐심이라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요?”

“당연하지. 모든 욕망은 탐심이라고 해야 할 테니까 말이지.”

“이렇게 공부를 하여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것도 탐심입니까?”

“당연하지 않겠는가? 탐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네.”

“백도와 흑도로 구분해서 이해하려니까 그게 걸렸습니다. 신(辛)의 역할이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처음에는 이해의 정리를 위해서 긍정(肯定)과 부정(否定)으로 이해를 하지만 그것이 정리되고 나면 이렇게 자연스러운 변화도 유추(類推)가 가능한 것이니까. 하하~!”

“원래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었군요.”

“이것도 단계적이라고 할 수가 있지.”

“이해가 됩니다. 칼을 만지는 어린아이에게 처음에는 ‘손 대지마~!’ 라고 강력하게 주의를 주지만, 나중에는 칼의 이로운 점도 이야기를 해 주는 것과 같다고 이해를 해 봅니다.”

“맞아.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마음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은 모두가 흑심(黑心)이라고 보면 된단 말씀이란 것을 또 깨닫습니다.”

“잘하고 계신 거네. 하하~!”

“처음에는 신(辛)은 천하에 몹쓸 인간의 쓰레기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가 싶었던 것인데, 생각해 보니 그것만은 아니라고 정리를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약에 그냥 넘어갔더라면 또 고치는 데 한참 걸렸겠습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음양의 이치로 대입하면 되는 것을.”

“음양이었군요. 신(辛)의 음양을 또 생각하는 것은 몰랐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 음양으로 대입할 수가 있으면 좋겠지?”

“그렇겠습니다. 그러니까 신의 음양은 밝은 쪽으로는 학문을 성취하는 욕망이고, 어두운 쪽으로는 물욕을 채우려는 욕망이겠네요.”

“틀림없지.”

“정말 기초가 중요하고 기본이 소중하다고는 합니다만 오행의 이야기는 아무리 들어봐도 재미가 있고 오묘한 무엇이 느껴집니다.”

“여부(與否)가 있겠는가? 당연히 기초에서 힘을 얻지 못하면 정답에는 도달할 수가 없고, 정답에 도달할 수가 없다면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신기루(蜃氣樓)에 불과할 뿐이지.”

“잘 알겠습니다. 형님”

“다행이네. 만만치 않은 내용인데도 이해가 되셨다니 말이지. 하하~!”

“선생님, 흑체(黑體)와 흑심(黑心)은 같은 건가요?”

“아, 조 낭자는 여전히 이해가 잘되지 않는단 말씀이로군. 근본이 같다고 보는 것이라네.”

“그래도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고체는 색이 없어, 무색(無色)이지. 그런데 그 고체에 탐욕이 덧씌워지게 되면 모든 빛을 흡수해 버리게 되지. 그러면 검은빛이 되는 거라네.”

“모든 빛을 흡수한다고요? 그건 더 이해가 되지 않는걸요.”

“밤에는 사물이 어떻게 보이나?”

“그야 검게 보이죠.”

“왜 그럴까?”

“깜깜하니까요. 그건 빛이 없기 때문인가요?”

“맞아, 빛의 부재(不在)라네.”

“빛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요?

“무색(無色)은 투명(透明)하지만, 무광(無光)은 검어진다네.”

“그렇다면 경(庚)은 투명한 것이고, 신(辛)은 까만 건가요?”

“까만 것과 검은 것은 다르지.”

“같은 말이 아닌가요?”

“까만 것은 물체의 색을 말하고, 검은 것은 빛의 유무(有無)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음……. 어려워요.”

“천천히 연구하시게나. 서둘 것도 없고, 서둘러서도 안 된다네. 하하~!”

“아무래도 우창은 이해가 잘 되셨겠지?”

“그렇습니다. 형님의 말씀이 뭘 의미하는지는 다음에 령아에게 설명을 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되었네. 원래 공부에도 단계가 있는 법이거든. 하하~!”

“저도 얼른 높은 단계로 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단 말이죠?”

“맞아~! 령아의 공부가 얼른 깊어지도록 내가 힘써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말아. 하하~!”

“학문을 연구하고 묻고 답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경신(庚辛)과 심리(心理)에 대한 말씀은 참으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앞으로 많은 생각의 실마리가 되지 싶습니다.”

“겨우 열 개 중에서 두 개를 이야기했을 뿐인데 소득이 좀 있었던 모양인가? 하하~!”

“소득이 아니라 보배를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