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 3. 냉혈마인이 들려주는 사연

작성일
2017-01-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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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4]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3. 냉혈마인이 들려주는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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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일격(一擊)이 수포로 돌아가자 내심 놀랐던 이군명.

“흥, 못 본 사이에 진전이 조금 있었구나. 그렇다고 해도 오늘 내 손은 벗어나지 못할 게다. 야잇~!”

흉맹하기 짝이 없는 냉혈검이 참회객의 가슴을 파고 들어왔다. 그 순간 참회객의 신영이 번쩍이는가 싶었는데 이군명의 뒤에 서 있었다.

순간.

이군명은 알아챘다. 오늘의 참회객은 예전의 자오검이 아니었다. 더 이상 싸움을 하는 것은 자신의 필패(必敗)를 확인할 뿐이라는 것을 알자 즉시로 검을 거뒀다.

“오호~! 철이 들었구나! 냉혈마인~!”

“시끄럽다. 널 죽이는 것은 내 맘에 달린 것이니 우선 죽기 전에 왜 참회객이 되었는지 연유나 듣고 죽일 참이다.”

“그게 궁금하면 앉아라.”

자신의 주막에서 송장을 치울 일이 걱정이었던 주인의 조바심을 알아보고 참회객이 말했다.

“주인장, 소란을 피워서 미안하오. 여기 새로 밥상을 마련해 주시오. 그리고 계산은 부서진 상까지 포함해서 이놈에게 청구하시오.”

냉혈마인 이군명은 칼을 옆에 놓고 마주 앉았다. 그리고 다시 자오검을 바라다봤다. 이미 그의 얼굴에서 한쪽은 파랗고 또 한쪽은 붉었던 전설의 모습이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너의 얼굴은 어떻게 된 것이냐?”

“이놈아. 말투부터 고쳐라~! 내가 오늘 너의 지장보살이라는 것을 벌써 잊었단 말이냐?”

“아.... 알았.... 소....”

“그래, 그래야 주변의 사람들도 덜 불안할 것이 아니오. 안 그렇소이까?”

“헛소리는 그만하고, 연유(緣由)나 말해 주시오.”

“과거에 죽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치유해 준 것은 거대한 바위와 대추나무 몽둥이였소이다.”

“예? 뭐라고요?”

그제야 서로의 은원관계가 언제 있었느냐는 듯이 말끔히 잊어버리고는 화산의 석실 이야기와 혜암도인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군명. 문득 일어나더니 칼을 던지고는 무릎을 꿇는 것이었다.

“어허, 이건 또 무슨 짓이오?”

“어쩐지, 예전의 살기가 말끔히 사라지고 평안해 보이는 모습이 참으로 궁금했었소이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보잘것없는 인간의 오만이 얼마나 가소로웠는지를 알았소이다. 그래서 나도 강호를 떠날 생각이 들었소이다. 어찌하면 좋겠소?”

“도나 닦으시오.”

“무슨 소리요?”

“그대도 기왕 검을 인연 하였으니 나처럼 강호를 유람하면서 적덕(積德)이나 하고, 하늘이 부르면 편안하게 온 곳으로 돌아가는 거요. 하하하~!”

“그러고 싶소이다. 어디로 가야 그런 기인을 만날 수가 있소이까?”

“물론 스승의 인연이야 각자에게 있는 것이니 뜻이 있으면 길도 보일 것이외다. 마음을 선하게 먹고 있으면 천지신명이 인도(引導)해 줄 거요.”

“그렇게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수행을 했다면 어디에 기인이 있는지도 알 것이 아니오? 그러지 말고 소개를 좀 부탁하오. 그 방면에는 아는 바가 없어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소.”

“아니, 천하의 냉혈마인이 이렇게 변해도 되는 거요?”

“참회객의 얼굴을 보니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짐작이 되어서 이러는 거요. 폐를 끼치지는 않을 테니 부디 길을 터주시오.”

이렇게 간청을 하자, 곰곰 생각하던 참회객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장강(長江)의 풍도현(豊都縣)에 은둔(隱遁)하고 있는 처사(處士)가 있기는 하오만 그대가 인연을 만들 수가 있을지는 나도 모를 일이오.”

“그분의 존함은 어찌 되오?”

“초연수(焦延壽)라는 노인이오.”

“초연수....?”

“아마도 인연이 쉽진 않을 거외다. 워낙 괴팍한 노인네라서 나도 그 양반에게 한수 배우는데 두 달이 걸렸단 말이오. 하하하~!”

냉혈마인은 무슨 마음에서인지. 고분고분하게 참회객이 알려주는 대로 자세하게 위치를 확인한 다음에 초연수라는 기인을 만나서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절예(絶藝)를 익히려고 가벼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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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마친 취현은 목이 마른지 차를 연거푸 세 잔을 마셨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창이 물었다.

“그러니까 취현선생의 사부이신 초연수께서 이름을 취현이라고 지어주셨군요? 그렇다면 노산에는 무슨 일로 오신겁니까?”

“3년 동안 기문에 대해서 열심히 배웠는데 조정(朝廷)에서 자꾸만 와서 벼슬을 해 달라고 귀찮게 하니까 어디로 사라지면서 서찰 한 통을 남겼다오. 그래서 보니까 노산으로 곽성을 찾아가라는 지시였지 뭐요.”

“아, 그래서 노산을 오시는 길에 아까 산문 밖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군요.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껄껄껄~! 별로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줘서 고맙소이다.”

“취현선생님 아까는 실례가 많았어요. 듣고 보니 느끼는 바가 있어요. 양해 부탁드려요. 호호호~!”

어느 사이에 조은령도 오해가 풀렸는지 까르르 웃으면서 사과를 했다.

“아니외다. 낭자의 웃음소리에 모든 것을 다 잊고 말았다오. 고맙소. 껄껄껄~!”

“그렇다면 자오검. 아니 참회객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시겠네요.”

“아니, 왜? 그를 아시오?”

“예, 실은 저의 사형이십니다. 하하~!”

“오호~! 이런 기연(奇緣)이 있나. 참으로 반갑소이다.”

취현은 불쑥 손을 잡고 흔들었다. 원한에만 사로잡혀 있던 이군명에게 지혜롭게 살아갈 인연의 안내자가 되어준 참회객과 인연이 있는 사람에 대한 만남의 반가움이었다.

“앞으로 많이 배우겠습니다. 아낌없는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무슨 말이오. 나야말로 배울 것이 많을 거요. 서로 탁마(琢磨)해서 큰 도를 얻도록 합시다. 껄껄껄~!”

“기문둔갑을 익히셨다고 하니 그 학문의 세계도 궁금해집니다. 다만 아직은 기초를 공부하고 있는 과정이라서 다음에 반드시 고견을 듣도록 할 날이 오리라고 봅니다.”

“이 학문에 기초가 어디 있고 완성이 어디 있단 말이오. 한참을 갔는가 보다 싶으면 다시 제자리인 것을 말이오. 그러니 언제라도 모르는 것을 나누도록 하십시다.”

“그런데 취현선생의 연령이 한참 연장이시니 말씀을 편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편안하겠습니다.”

“오, 그럴까? 그래도 상관없다면 나야 아무래도 좋지. 껄껄껄~!”

“그럼 궁금한 것에 대해서 좀 여쭤봐도 되겠는지요?”

“말해보시게.”

“만나신 스승님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초연수(焦延壽)시라네.”

“그분이 어떤 방면에 전문가이신지 궁금해서 여쭙습니다.”

“역학(易學)의 전문가이시지.”

“역학이라면 주역의 연구가 깊으시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 연구하라고 저술하신 책을 보여주셔서 내가 필사(筆寫)를 해서는 갖고 다닌다네.”

그렇게 말하면서 보따리에서 책을 한 꾸러미 꺼냈다. 이름에는 『초씨역림(焦氏易林)』이라고 쓰여 있었다.

“과연 책의 이름을 봐도 역학에 대한 조예(造詣)가 깊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이것을 얼마나 이해하셨는지요?”

“말도 말게~! 내 천성(天性)이 동남서북으로 싸돌아다니는 것인데 앉아서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이 맞을 턱이 있겠는가. 그래서 보다가 말다가 한 것이 3년이로군. 그래도 약간의 흐름을 파악한 정도는 된다고 하겠네. 껄껄껄~!”

“아니, 그렇게 고명하신 스승님의 가르침인데 어찌 방심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이야기를 듣던 우창은 마음에 안타까움이 생겨서 말을 했다. 다만 말을 하고 나서 너무 심한 말을 했나 싶어서 계면쩍게 웃었다.

“어허~! 대단한 친구로구나. 그러한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 껄껄껄~!”

취현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에서 자잘한 세간의 예의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성품이 그대로 드러났다.

“마음만 앞서서 늘 서두르다가 제풀에 지치곤 합니다. 하하~!”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은령이 끼어들었다.

“소녀도 오행에 대해서는 조금 배웠어요. 그런데 역학은 뭘 하는 거죠?”

“오호~! 대단하시군. 그 어려운 오행 공부를 한다는 것은 과연 우창 아우와 벗이 될 만하겠어. 껄껄껄~!”

그 말을 듣고 우창이 속으로 웃었다. 자원은 이제 겨우 신체와 관련한 오행의 이야기를 나눴을 뿐인데 그것으로 오행을 다 배운 것처럼 말하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경솔해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행에 대해서만 배웠을 뿐인데도 학문의 세계에 대해서 놀라워하고 있어요. 그런데 또 역학은 어떤 것인지 호기심이 생겨서 어떤 학문인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대어 봐요. 호호호~!”

“무슨 겸손의 말씀이신가! 공부란 남녀노소(男女老少)를 불문(不問)하고 저마다의 생각과 직관(直觀)으로 관찰하여 깨달아 가는 것인 줄로 알고 있는데 말이지~!”

“그래서 주역에 대한 귀한 가르침을 듣고 싶어요~!”

“그렇게 하지~! 껄껄껄~!”

“우창도 기대가 됩니다. 하하~!”

“오늘 아침에 객잔에서 잠이 깨어서 노산을 바라보니 과연 곽성선생을 찾아가면 만날 수가 있을 것인지가 궁금하더란 말이지.”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알 수만 있다면 알고 싶겠네요.”

우창이 이야기를 하는데 장단을 맞췄다.

“하늘이 더없이 맑은 것을 보고 상괘(上卦)를 건(乾☰)으로 잡았지.”

“타당하겠습니다.”

“근데 그게 뭐죠? 맑은 하늘이 왜 건인가 뭔가가 되는 거예요?”

아직 주역에 대한 기초가 없는 조은령은 뜻을 몰라서 되물었다. 그러자 우창이 말을 받았다.

“여덟 개의 상징 중에서 하늘이 맑은 것은 하늘답다고 봐서 하늘을 괘로 삼는 것이지.”

“아, 그렇게 보이는 대로 괘를 떠올린단 거네요? 재미있겠어요~! 짝짝짝~!”

“그리고 객잔에서 내다보이는 것은 산밖에 없었지. 당연하겠지만 노산의 부근에서 잠을 잤으니 그럴 수밖에. 껄껄껄~!”

“그렇겠습니다. 그렇다면 상괘(上卦)는 건(乾)이고, 하괘는 간(艮☶)괘가 되는 것이로군요. 그것은 어떤 의미가 됩니까?”

“천산둔(天山遯䷠)이지 뭔가~! 껄껄껄~!”

“옛? 그럼 어떻게 해석이 되는 것입니까?”

그러자, 조은령이 그 말을 받았다.

“아니, 그렇다면 만나려고 하는 선생은 자리를 피해서 숨었다는 뜻인가요?”

“오호~! 낭자의 통변력(通變力)이 대단한걸. 껄껄껄~!”

“그래서 어떻게 되셨습니까?”

“아니?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되나? 그 후의 일이야 그대가 알고, 낭자가 알고, 내가 아는 대로가 아닌가?”

“아하, 그래서 곽성선생은 자리에 없었던 것이군요.”

“이야~! 그렇게 신기한 일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침에 얻은 점괘가 있었기 때문에 출타한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은 것이라네.”

“아, 취현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오, 뭔가?”

“그렇다면 언제 곽성선생을 만나게 될 것인지도 생각해 보시지 않았겠나 싶어서 말입니다.”

“틀렸네.”

“예?”

“동효(動爻)가 없었어. 그 말은 결국 만나지 못할 것이란 이야기지.”

“동효가 무엇입니까?”

우창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궁금해졌다. 그래서 얼른 말꼬리를 잡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 동효를 모르는구나. 무슨 공부를 하는가?”

“지금은 명학(命學)에 대해서 시작한 상황입니다.”

“아, 명학은 역학하고 다른 것이라서 그렇군. 동효란 여섯 개의 효(爻) 중에서 어느 것이 바뀌는 것을 말한다네.”

“어떻게 정해진 괘효가 바뀔 수가 있습니까?”

“철전(鐵錢)을 사용해서 득괘를 하게 되면 여섯 개의 효(爻)를 얻게 되는데 그중에는 정효(靜爻)가 있고, 동효(動爻)가 있다네.”

“아, 그것은 음양이잖아요? 동은 양이고 정은 음이니까요. 호호~!”

조은령이 안다는 듯이 끼어들었다.

“맞아, 그래서 정효는 변하지 않고, 동효는 변하지. 그런데 변하게 되면 다음의 상황을 유추(類推)할 수가 있지만 변하지 않으면 그 점괘 그대로 그 상황은 마무리가 된다네.”

“그렇다면, 동하는 효가 여섯이 된다면 전체의 음양이 바뀌게 되는 것이군요?”

“맞는 이야기네. 그렇게 되면 변한 괘는 지택림(地澤臨䷒)이 되지.”

“오~! 그런 변화가 있었군요. 주역을 알면 참 재미있겠는걸요.”

“그래서 이렇게 천하를 누비면서 스승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껄껄껄~!”

“만약 여섯 효가 동해서 지택림의 괘가 된다면 어떻게 해석을 합니까?”

“그야 기다리는 사람이 광림(光臨)하는 것이지.”

“아하......”

우창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면 달아났던 곽성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자 너무나 신기했다.

“기가 막힌 변화가 생길 수도 있었겠는데 말입니다.”

“껄껄껄~! 왜 아니겠는가. 그래서 억지로 안 된다고 한다네.”

“예? 왜요? 무슨 변화가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조은령만 답답해서 다그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