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 2. 자오검(子午劍)의 소식(消息)

작성일
2017-01-23 06:13
조회
2014

[093] 제9장 천간(天干)의 소식(消息) 


2. 자오검(子午劍)의 소식(消息)


=======================

낭인이 앞장을 서서 걷다가 전각이 늘어서 있는 곳까지 다다르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보면서 우창에게 손을 들어서 앞장서라는 시늉을 했다. 우창이 그 뜻을 알고는 앞장을 서서 걸었다.

전에 산책길에서 만났던 곽성을 떠올렸는데 문득 자기에게 찾아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상청궁의 뒤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반도봉(蟠桃峰)의 아래에 있는 수행처에 머물고 있어서 가끔 상청궁에 들리곤 했다는데 그날 우연히도 우창과 만났던 것이다.

“참, 령아는 처소에 들어가서 쉬시지? 반도봉까지는 한참 가야 하는데 힘들까 걱정이네.”

“무슨 말씀이세요. 령아도 시간이 되면 반도봉에 가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이참에 동행하겠어요.”

그렇게 해서 세 사람이 상청궁을 벗어나서 반도봉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자 나무에 팻말이 붙어 있었다.

「반도봉주부재(蟠桃峰主不在)」

그러니까 반도봉에 일이 있어 가는 사람이라면 사람이 없으니 다음 기회에 찾아와 달라는 친절한 안내문이었다. 그것을 본 낭인이 말했다.

“껄껄껄~! 곽성선생이 오늘은 인연의 줄을 맺지 않으시는구려. 일단 거처를 알았으니 다음에 또 찾아가면 되겠소이다. 젊은 도사의 도움에 감사드리오~!”

포권을 하면서 작별을 고하자, 우창이 막았다.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의 처소에서 하루 쉰 다음에 같이 곽성선생을 뵙도록 하십니다.”

“참 고마운 말씀이오. 껄껄껄~!”

우창이 조은령을 바라보자 무표정하게 딴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자기 처소로 안내를 했다.

“자, 누추합니다. 어서 드시지요.”

“그럼 호의를 받아들이겠소이다. 다만 후환은 책임지지 않을 것을 미리 밝히는 바이오. 껄껄껄~!”

아마도 자신으로 인해서 두 사람이 다투기라도 할 것에 대한 농담을 던진 것으로 보였지만 우창은 그냥 웃음으로 받았다.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물을 끓이는 일은 조은령이 알아서 준비했다. 잠시 후, 차를 앞에 놓고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우창이 입을 열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을 올립니다. 소생은 진하경(陳河鏡)이라고 합니다. 우창(友暢)으로 불려주셔도 됩니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아, 원래 진형이셨구려. 반갑소이다. 호의에 감사드리오~!”

“아닙니다. 그 정도야 무슨 대수라고요. 하하~!”

“노부는 이군명(李君明)이오. 아호는 취현(聚賢)이라고 불러주시오.”

그러자, 조은령이 그 말을 받았다.

“아니, 소녀가 알기로는 냉혈마인이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 이름을 바꾸셨나요?”

조은령의 말에 흠칫 놀란 낭인이 말했다.

“어허~! 이런, 세상이 비밀은 없소이다. 껄껄껄~!”

“취현선생님, 누이의 무례함을 너무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아니외다. 껄껄껄~!”

“아마도 무슨 연유가 있으시겠지 싶습니다.”

“껄껄껄~! 진형도 궁금증이 많으신 것 같소이다.”

“아, 아닙니다. 하하~!”

“괜찮소이다. 천성이 선량(善良)하신 것을 보니 쓸데없는 이야기라도 혹 수행에 도움이 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소이다.”

“아, 가르침을 주신다면 무조건 환영입니다.”

“낭자의 눈매가 매섭소이다. 노부는 냉혈마인이 맞소~! 다만 3년 전까지만 사용하던 이름이오.”

“그러시다면.....”

“원래 낭자가 알고 있는 대로 강호에서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던 과거가 항상 부끄럽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죽어서까지 그 이름은 오래도록 강호에 떠돌면서 악인의 대명사로 남게 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소이다. 껄껄껄~!”

그 말들 듣자마자 조은령이 쏘아붙였다.

“흥~! 이름을 바꾼다고 해도 자신의 죄업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아시는군요.”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우창은 긴장이 되었다. 손님을 앉혀 놓고서 너무 심한 면박을 줬다가 그 화가 조은령에게 미칠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조은령은 전혀 개의치 않고 할 말을 해 버렸다.

“아마도 그 죄업을 다 갚으려면.....”

“어허~! 령아.”

“뭐 어때요? 제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닌걸요.”

“진형 개의치 마시오. 저 정도는 그냥 달콤한 자장가에 불과하다오. 물론 나도 개의치 않소이다. 껄껄껄~!”

“이거 송구합니다.”

우창은 괜히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실, 내 몰골을 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약간의 사연이 있소이다. 이것도 인연이니 이야기를 들려 드려도 좋겠소?”

“아, 물론입니다.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후학이 듣는다면 큰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사실 무림인은 항상 은원(恩怨)의 관계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오.”

“그럴 수가 있겠다고 생각됩니다.”

“오랜 옛날에 내 오른쪽 팔을 가져간 한 검객이 있었소. 그와 대결에서 역부족으로 팔만 끊기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소이다.”

“아, 예.”

“물론 우창선생은 모르겠지만 저 낭자는 알 수도 있지 싶구려. 그는 천하제일검이라고 스스로 오만하게 거침없이 강호를 누비던 자오검이오.”

“옛? 자오검이요?”

“예? 자오검이라고요?”

두 사람이 동시에 놀라자. 오히려 취현이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낭자가 아는 것이야 무림인물인 듯하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창선생이 알고 있는 표정을 짓는 것은 의외로구려~!”

“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를 찾아서 강호의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행방이 묘연했소.”

“세상은 참으로 넓으니까요.”

우창이 장단을 쳤다.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강호는 의외로 좁기도 하다오. 왜냐면 자오검 정도의 무공과 악랄함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은 무족천리(無足千里)로 소문이 퍼져나가기 마련인 때문이오.”

“그렇기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강호에서 깔끔하게 흔적이 사라졌지 뭐요. 그래서 아마도 어느 고수의 암수에 명을 달리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복수는 잊으려고 했소이다.”

“그랬겠습니다.”

“그런데 일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터졌지 뭐요.”

“예? 어떤 일입니까? 궁금합니다.”

“우연히 운남의 산중에서 내공을 연마하고 있는데 마을에 소동이 일었다는 소식을 들었단 말이오.”

“아, 예.”

“부리나케 산을 달려 내려갔더니 50여 명의 흑도 고수들이 조정에서 세금을 걷어가는 호위대를 공격하고 공물을 탈취하는 현장이었소.”

“저런~!”

우창은 무림인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을 듣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래도 결과가 궁금해서 계속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현장에 가보니 금은보화를 실은 수레는 다시 원래대로 호위대가 챙겨서 떠난 다음이었소.”

“예? 좀 이상한 일이었네요.”

“맞소. 그래서 혈도를 찍혀서 쓰러져 신음하는 흑도의 인물 중에 한 놈을 일으켜 세우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지 않았겠소.”

“그랬더니요?”

“갑자기 바람처럼 나타난 검객에게 칼도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소. 왜냐면 그는 강호에서 10대 마두에 들어갈 정도로 무공이 고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오.”

“그럴 만도 했겠습니다.”

취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


 

냉혈마인은 그중에 정신이 들어있는 놈을 붙잡고 물었다.

“도대체 그가 누구냐?”

“아니, 냉혈마인 아니십니까?”

“그렇다. 이렇게 한 자가 누구더냐?”

“우리도 너무 몰라서 이름이나 알려주고 가라고 했습지요.”

“그랬더니?”

“그는 자신의 이름을 참회객(懺悔客)이라고 했습니다.”

“참회객......?”

“냉혈마인께서도 처음 들어보시지요?

“어떻게 생긴 놈이더냐?”

“언뜻 봐서는 무림인물 같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검법이 생각났습니다.”

“뭐라고?”

“순식간에 당하고 말아서 정신이 없었는데 그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검법에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검법이냔 말이다.”

“자오검법이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아니, 강호에서 갑자기 증발해 버린 자오검 오혜량이 살아있었단 말이냐?”

“그런데 사람은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천하제일검을 알아볼 수가 없다니 너의 천리안(千里眼) 오태선이라는 명성이 부끄럽군.”

“말도 마십쇼. 그런 제가 알아보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은 더구나 알아볼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말입죠.”

“아니, 자오검이야 처음 본 사람도 알아볼 수가 있는 인물이잖으냐?”

“그러니까요. 반적반청(半赤半靑)의 얼굴이 아니었단 말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자오검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아닐 게다. 그럴 리가 없지.”

“이름은 참회객이라고 했습니다. 자오검이 아니었지요. 어쩌면 자오검의 제자일 수도 있지 싶었습니다.”

“그가 사라진 곳은 어느 쪽이냐?”

“바쁜 일도 없는지 대로로 휘적휘적 걸어갔습니다.”

그러면서 오태선이 앞쪽을 가리켰다. 그 말을 듣자마자 냉혈마인은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최상의 경신술을 끌어올려서 나무와 나무를 밟고 내달렸다.

그렇게 한 시진을 달려서 주막이 나타나자 행방을 물어보기 위해서 주인장을 찾았는데, 대청에는 허름하게 생긴 검객이 밥을 먹고 있었다.

“주인장, 말 좀 물어봅시다~!”

“예예~! 뭘 도와드릴 깝쇼?”

“혹 얼마 전에 이 앞을 지나가는 검객을 보지 못했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 길로 지나간 검객은 없고, 지나온 검객은 계십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손끝을 따라서 다시 그를 바라본 냉혈마인 이군명은 더 망설일 것도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실례하겠소이다.”

“.....”

그는 본 체도 않고 묵묵히 밥을 먹는 것을 계속했다. 슬그머니 비위가 상한 이군명이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다.

“실, 례, 하, 겠, 소, 이, 다~!”

“어? 무슨 일이시오?”

그제야 고개를 들어서 쳐다보는 남자.

“혹시 그대가 조금 전에 숲속에서 괴한들을 제압한 장본인이오?”

“그렇소이다마는?”

“뭘 좀 알아볼 것이 있어서 뒤를 쫓았소이다.”

“무엇이오?”

“그대가 자오검법을 사용한 것이 맞소?”

“아마도.”

“자오검을 어디에서 배웠소?”

“그건 왜 물으시오?”

“내가 알아볼 것이 있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이미, 복수심이 불타오른 이군명은 바로 검이라도 뽑을 기세였다. 그러나 그는 태연하게 앉아서 다시 밥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이놈이~!”

화를 참지 못하고 칼로 밥상을 그어버렸다. 상은 두 쪽으로 갈라지고 음식물은 모두 마룻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어허~! 냉혈마인 그 성격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구나. 하하~!”

“엉? 나를 어떻게 알아보느냐?”

“그대는 자오검을 몰라봐도 이 자오검이 그대를 어찌 못 알아보겠느냐? 예나 지금이나 몰골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핫하하~!”

그가 웃는 소리를 듣고서야 이군명은 비로소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앗, 설마 했는데 과연 자오검이었군~!”

“아직도 자오검에게 볼 일이 남았느냐?”

“그렇다. 옛날에 진 빚을 갚으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쥐새끼처럼 어디로 사라져서 종적이 없더니 이렇게도 고맙게 제 발로 나타나 주었구나. 이제야 내 가슴에 맺힌 원한을 갚을 수가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원한으로 인해서 감정이 복받치는지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커졌다. 그는 손이 없는 오른팔로 자오검을 가르치면서 말했다.

“그날 네가 내 목을 붙여 놓은 것은 필생(畢生)의 후회가 될 것이다. 이제 그 빚을 갚아야 하겠다.”

“그야 그대의 일이지. 난 자오검이 아니라 참회객이다. 이제 과거의 죄업을 씻고 개과천선(改過遷善)을 했으니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나랑 같이 도나 닦읍시다.”

“이런 미친놈이 감히~!”

다시 칼을 꼬나들었으나 여전히 오혜량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서 칼을 뽑아라. 오늘 여기가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냉혈마인, 넌 내 적수가 아니다. 그만 목숨이 붙어있는 것을 이 참회객의 배려로 알고, 살았을 적에 못된 짓 그만하고 착하게 살아라.”

“이놈이~!”

이군명은 분을 참지 못하고 검으로 앉아있는 자오검의 정수리를 내리찍었다. 그야말로 강호에서 위맹(威猛)을 떨치던 냉혈검에서 싸늘한 검광이 흩뿌려졌다.

순간~!

자오검, 아니 참회객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팔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사뿐하게 마당에 내려섰다.

그 바람에 칼을 들고 달려들던 이군명은 뒤로 두 걸음을 비틀거리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당에서 그 모습을 본 참회객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