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 7. 나무 한 그루의 생사(生死)

작성일
2017-01-1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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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제8장 교학상장(敎學相長) 


7. 나무 한 그루의 생사(生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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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을 한 바퀴 돌아서인지 마음은 차분해지고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차를 끓이고 있는데 조은령이 찾아왔다. 우창이 자리를 권한 다음에 차를 따랐다. 향긋한 녹차 향이 넓지 않은 방 안에 감 돈다.

“차가 참 좋아요. 싸부~!”

“그래? 기왕 하는 김에 싸부님까지 하면 안 될까?”

“싫어요. 그러면 할아버지 같단 말이에요. 그냥 싸부로 할래요. 제 맘이니까요. 그래도 오라버니에서 싸부로 승급시켜 드렸으면 만족하실 줄도 아셔야죠. 호호~!”

장난기 가득한 눈망울로 까르르~ 웃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 여인에게 오행의 이치를 가르쳐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해 봤다. 무엇보다도 오행의 핵심은 생극(生剋)에 있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근데 령아는 오행에 대해서 아는 것이 뭐지?”

“그야 다 알죠~! 금목수화토잖아요?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게 뭔데?”

“쇠, 나무, 물, 불, 흙이요.”

“또?”

“또요? 뭐가 또요? 령아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그 나머지는 싸부가 알려 주실 거잖아요.”

천하태평인 조은령이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호기심 어린 기대감을 가득 품고서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더 이상 물어봐야 돌아오는 답은 빤하지 싶다. 그야말로 무지(無知)를 넘어서 백지나 다름없는 이 여인에게 오행의 심오한 이치를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다행히 그런 것은 다 알고 있으니까 언제 돈을 벌게 되고, 언제 남편을 만나게 되고, 언제 자녀를 얻게 될 것이며, 또 몇이나 얻게 될 것인지를 묻지 않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마음에 조바심은 없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가르친다면 순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오히려 엇길로 들어가서 쓸데없는 시간의 낭비를 하지 않아도 되므로 어쩌면 조은령으로서는 다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라는 말이 있는데 들어봤어?”

“당연하죠. 상생은 좋은 것이고 상극은 나쁜 것이잖아요.”

“잘 알고 있네. 물론 일반적인 사람들의 답변일 경우라면.”

“예?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이라고요? 그렇담 싸부의 생각은 어떤데요?”

“때론 생이 나쁘기도 하고, 또 때론 극이 좋기도 하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 첫발을 들여놓았구나 하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던데요?”

“그러니까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했잖아.”

“아, 그러셨죠. 설명해 주세요.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아요. 상생이 나쁠 수도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잘 들어봐. 여기 나무가 있다고 생각하자고. 나무는 오행이 뭐지?”

“아이구~! 싸부, 너무 하시잖아요? 그런 것도 물어보셔야 해요? 나무요. 나무, 나무, 나무~!”

“나무는 뭘 먹고 살지?”

“나무는 물을 먹고 살죠. 참내....”

“왜? 무시를 당한 것 같아서 속이 상해?”

“그렇잖아요. 물어도 적당한 것을 물으셔야죠.”

“근데 어쩌나~! 내가 보기에는 령아가 네 살배기 아기 같은걸.”

“쳇, 싸부가 그렇게 보인다면 그게 맞겠죠. 그래서요?”

“나무가 물을 먹고 사는 것을 수생목(水生木)이라고 하는 거야.”

“수생목요? ‘물이 나무를 낳는다’는 말인가요? 나무가 나무를 낳는다고 하면 또 모르지만, 물이 나무를 낳다뇨. 그게 말이 되는 거예요?”

“어찌 생(生)은 낳는다는 뜻만 있을까? 기른다는 뜻도 있지.”

“그렇담, ‘물이 나무를 기른다’고 하면 되네요? 너무나 자연스러운 말인걸요. 그런데요? 그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렇게 빤한 것으로 싸부 노릇을 하실 요량이신 건 아니시죠? 호호~!”

“잘 들어, 나무는 물이 있어야 잘 자라니까 아예 물에 담가버리는 거야. 나무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에구~! 말이 되는 말씀을 하셔야죠. 그럼 나무가 죽어버리지 어떻게 살아요? 나무도 안 키워 보셨어요?”

“왜? 상생은 좋은 것이라며?”

“그게 상생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무는 적당히 물을 줘야지 너무 많이 주면 병든단 말이에요. 뿌리가 썩어버리게 되죠. 예쁜 꽃을 피우라고 난초에게 물을 많이 줬다가 죽어버려서 혼이 났던 적도 있다고요.”

“그렇다면, 상생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란 말이야?”

“아, 이제 알았어요. 상생도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요. 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랐네요.”

“이치는 알았는데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을 몰랐었던 거야. 이제는 말을 하고 생각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깨닫게 될 거야.”

“그렇담, 상극(相剋)이 좋을 수도 있단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극을 한다면 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이잖아요? 그럼 죽을 텐데 어떻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정원사(庭園師)가 하는 일은 뭐지?”

“나무를 가꾸는 것이죠.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고, 가지도 잘라주고 그래서 보기 좋게 키우는 것이잖아요.”

“가지를 왜 잘라? 그걸 나무가 좋아할까?”

“나무는 안 좋아하겠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아름답잖아요. 정원이란 어차피 사람들을 위해서 만든 곳인걸요.”

“그렇다면 가지를 자르는 것도 상생(相生)이겠네?”

“에구~! 말이 돼요? 가지를 자르는데 어떻게 상생이 될 수가 있어요. 자르고 나면 진액도 나오는데. 그것은 상극이라고 해야죠.”

“그래? 그럼 나무가 죽어버릴 텐데?”

“예? 무슨 말씀이세요? 가지를 자른다고 나무가 죽는 다뇨?”

“아니, 령아가 좀 전에 그랬단 말이야. 난 령아가 한 말을 그대로 대신하고 있을 뿐이거든.”

“그래서 상극도 필요한 때가 있고, 그것으로 인해서 좋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음.... 맞아요. 이제야 싸부의 말씀에 대해서 이해를 했어요.”

“참 총명한 제자로다. 하하~!”

“근데, 정원수(庭園樹)는 불쌍해요. 가지도 잘리고 물을 주지 않으면 살아가는 것도 힘들 수가 있잖아요? 즉 관리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단 말이죠. 그냥 자연에서 맘대로 자라는 것보다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아니, 왜 그렇게 남의 일 이야기하듯 하세요?”

“그야 나무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니까. 하하~!”

“감정도 없으세요? 나무의 입장이 되어보시란 말이에요. 역지사지(易地思之)도 모르세요?”

“아니,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세요?”

“산에서 마구 자라다가 다른 나무에게 치여서 죽어버리기도 하고, 목수가 톱을 들고 와서 잘라가 버리기도 하니 반드시 산에서 자연적으로 산다고 해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단 말이지.”

“싸부의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기도 하겠네요. 정원에 있으면 아무나 함부로 베어가는 일이 없을 것이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자랄 수가 있으니까 그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나무도 교감이 있으면, 사람들이 보면서 예쁘다, 멋있다, 잘 생겼다 하면서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냥 숲속에서 멋대로 자라는 것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지 않을까?”

“그건 동의할 수가 없네요. 나무가 무슨 교감이 있어요? 그냥 싸부의 생각이거나 시인들의 감흥일 뿐이겠죠.”

“농작물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다던데”

“그야 농부의 생각이겠죠.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가 있겠어요.”

“와, 령아의 고집도 상당하네. 하하~!”

“말이 되는 것은 믿고 말이 안 되는 것은 거부해야죠.”

“대단해~!”

“엉? 칭찬의 말인데 느낌은 왜 아니죠?”

“당연히 칭찬이 아니니깐 그렇지. 하하~!”

“나무도 교감을 한다고요? 싸부는 그것을 믿으세요?”

“나무가 생명이 있을까? 물이 생명이 있을까?”

“그야 나무죠. 물이야 무슨 생명이 있겠어요.”

“그렇다면 물도 교감을 한다면 나무는 당연히 교감을 할 수가 있다고 해도 될까?”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당연하겠네요.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증명할 수가 없다면 공론(空論)이잖아요?”

“한 잔의 물을 떠놓고 천지신명께 기도한 다음에 그 물을 마시면 약효가 있다는 말을 들어봤어?”

“원래 지성이면 감천이라잖아요. 그러니까 영험(靈驗)도 있는 것이겠죠.”

“아니? 물이 하늘과 교감을 한단 말이야?”

“교감은 무슨요. 그냥 정성이 지극하니까.... 어? 교감을 한다는 말이 되어버리네요? 싸부가 무슨 술수(術數)를 발휘하시는 거 아니에요? 왜 제가 하는 말들이 모두 제 입으로 뒤집게 되냐고요~!”

“그야, 령아가 깨닫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지. 조금 전에 한 생각이 바로 뒤집힌다는 것은 그걸 증명하잖아.”

“아고~! 그냥, ‘넌 바보야~!’라고 하시죠. 에둘러서 좋게 말해도 그 의미는 바로 전달이 되거든요. 쳇~!”

“여하튼, 우리는 나무도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합의를 본 것인가?”

“네~!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의 제 능력으로는 아니라고 우길 근거가 없으니까 일단 항복을 할게요. 호호~!”

“그래,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뒤집을 이야기를 갖고 오셔. 하하~!”

“알았어요. 조금만 공부를 하면 가능할 거예요. 지금은 워낙 아는 것이 없어서 꼼짝 못한다는 건 확실해요. 나쁜 싸부~!”

“근데 나무는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나?”

“그건 또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씀이세요?”

“그럼 나무가 물만 있으면 산다고 생각하는 거네?”

“당연한 거 아녜요? 물만 있으면 살지 또 다른 것이 필요해요?”

“햇볕은 없어도 될까?”

“아, 당연히 햇볕도 필요하죠. 근데 햇볕은 항상 있는 거잖아요? 물처럼 주고 싶다고 해서 줄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우창은 조은령의 톡톡 쏘는 반응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일찍이 남자들과의 문답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이 없는 대신에 활기가 느껴졌다. 문득 두꺼비가 벌을 먹는 이유는 벌이 입안에서 톡톡 쏘기 때문이라고 한 말이 떠올랐다. 과연 그럴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되었다.

“그럼 화초를 방 안에 두면 어떻게 되나?”

“그야 시간이 흐르면 누렇게 되다가 결국은 죽어버리겠죠.”

“물을 주는데도?”

“이건 물의 문제가 아니라 볕의 문제죠. 그러니까 나무는 볕도 필요하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화생목(火生木)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겠죠?”

“여하튼 눈치 하나는~!”

“당연하죠. 하나를 배웠으면 셋은 몰라도 둘은 알아야 그나마 덜 미련한 제자란 소릴 들을 것 아녜요. 호호~!”

“그렇다면 볕은 많을수록 좋을까?”

“아하~! 물처럼 볕도 너무 많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함정을 파고 계신 거죠? 호호~!”

“어, 애써 파놓은 함정에 멍청한 제자가 안 빠지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사나?”

“그야 제자 철들어 가는 재미로 사심 되죠.”

“그렇다면, 화극목(火剋木)에 대해서 설명해 봐.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설명이니까.”

화극목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우창의 말에 조은령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궁리를 한다. 이번에는 제대로 답을 해서 칭찬을 들어야 하겠다는 듯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