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 제7장 명학(命學)의 기초공사/ 21. 춘하추동의 변화(變化)

작성일
2017-01-04 16:27
조회
2271

[073] 제7장 명학(命學)의 기초공사


8. 춘하추동(春夏秋冬)의 변화(變化)


=========================

우창은 그렇게 고월이 알려 준 것을 꼼꼼하게 적어놓은 다음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음은 사월(巳月)에 대한 정리를 말할 테니 들어봐. 봄이 끝나고 여름으로 들어가는 계절인 입하(立夏)와 소만(小滿)이 기다리고 있으니 사월(巳月)이 되는 것이고, 육양(六陽䷀)이 되는데, 입하는 여름의 문턱이라는 말이니 이제부터는 계절이 하절(夏節)로 들어가고 더불어 대지의 기온은 상승하여 점차로 더워지는 것이네. 자연의 만물은 태양의 기운을 담뿍 받아서 무럭무럭 자라게 될 것이고, 농부가 애써서 씨를 뿌려 가꾼 농작물들도 잘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볼 수가 있겠어. 특히 소만(小滿)을 생각해 보면 조금 가득하다는 의미이니 맥류(麥類)는 거의 다 자라서 익으려고 하는 단계이기도 하겠다. 곡식이 떨어져서 산이나 들에서 나물을 캐어 먹으면서 연명하던 춘곤기(春困期)도 막바지라고 할 수가 있는 시기라고 생각해 봤네.”

우창의 이야기를 듣고 고월이 감탄했다.

“오호, 밀과 보리에 대해서까지 관찰했단 말이야? 나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소만이 보리가 익어가는 것까지 생각했다니 대단하군.”

“참, 사(巳)는 뱀띠가 아닌가? 사람들이 싫어하는 뱀을 넣은 이치도 있을까?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뱀을 넣은 이유도 있겠지?”

“세상에 이유가 없는 논리가 어디 있겠는가.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이유는 있는 법인데 말이지. 하하~!”

“그렇지 싶었어. 문제는 그 이유를 들려달라는 거야. 왜 그렇게 뱀을 거론하게 된 것이지?”

“그런데 미리 알아둬야 할 것은 원래 뱀의 상징은 지혜야. 그렇게 징그럽고 독을 품고 있고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을 고인들은 하지 않았더라는 것이지.”

“뱀의 상징이 지혜라고? 그건 좀, 아닌 것 같은걸?”

“어허, 무슨 말을. 복희여와도(伏羲女媧圖)를 본 적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복희씨와 여와씨가 뱀의 몸으로 표현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과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될 거구먼.”

 

qhrgmldudhk

 

“용이 아니고 뱀이란 말인가?”

“처음에는 용의 몸이라고도 생각이 되었지. 그런데 고분(古墳)에서 출토된 그림에서는 분명히 인수사신(人首蛇身)으로 되어있으니 움직일 수가 없는 증거가 되었던 것이야. 그래서 뱀은 지혜를 의미하거나 신성한 상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

“아무리 그래도 징그러운 뱀이 지혜의 상징이라니.....”

“어허, 서역인들이 종교적(宗敎的)으로 천주(天主)라는 신을 섬긴다는데, 그 책에도 뱀이 나온다더군.”

“그 책은 이름이 무엇인가?”

“책의 이름은 『성경(聖經)』이라고 한다네.”

“성경이면 성인의 글이라는 뜻이니 그 안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을 것이 틀림없겠군. 그런 책이라면 나도 한번 보고 싶네. 혹시 갖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좋은 책이겠지만 좋은 책이라고 모두 다 챙겨놨다가는 도서관이라도 하나 차려야 할 것이네. 그냥 흘려들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었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네. 어서 들려줘봐.”

“고서(古書)에 이르기를, ‘비박람(非博覽)이면 무이거(無以據)니라.’라는 말이 있잖은가? 여하튼 많이 듣다가 보면 그중에는 쓸 만한 이야기도 들어있기 마련이라네. 하하~!”

“맞아,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고말고~! 그래 그 성경이라는 책에서는 뱀에 대해서 뭐라고 했다던가?”

“최초로 인간을 만든 이가 천주(天主)였더라네. 처음에는 진흙으로 자신의 형상을 닮은 토우(土偶)를 만들고서 코에 숨을 불어 넣으니까 인간인 되고 남자였다는데 우창은 믿어지는 말인가?”

“이야기로 봐서 신화(神話)가 아닌가? 그것은 마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이야기와 다를 것이 무엇이겠나? 믿으면 있는 것이고, 안 믿으면 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뿐이라네. 그보다는 그 안에 깃든 내용이 더 중요할 따름이니 허실(虛實)을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보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

“참 재미있는 우창이군.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이렇게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고자 하니 내가 두 손과 두발을 다 들었네. 하하~!”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고인의 가르침이 소멸하지 않고 고월의 귀에까지 전달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이치에 부합하는 내용이 있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하여튼 내가 졌네 졌어. 괜히 뱀 이야기는 꺼내서 나를 괴롭히는군. 쩝쩝~!”

“그래서 흙으로 만든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은 최초의 인간이 되었다는 말이지 않은가? 그런데 최초의 인간이 남자였다는 것이 신기하군.”

“신기할 것도 참 없지. 그게 무슨 신기한 일이란 말인가?”

“그렇지 않고, 생각해 보게. 서역인(西域人)들은 아마도 남자가 위주라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네. 음양의 이치로 본다면 여성이 먼저 태어나고, 그다음에 남성이 등장해야 하는데 서역에서는 남자가 먼저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냔 말이네. 사는 곳이 다르면 생각도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니 오늘 고월이 아니었더라면 또 하나의 재미있는 것을 모르고 살아갈 뻔하지 않았느냔 말이네. 하하~!”

“그게, 또 그렇게 끼워 맞추니까 뭔가 그럴싸한걸..... 그래서?”

“천주라는 신이 무엇으로 남자를 만들었다던가?”

“진흙으로 만들었다고 했잖은가? 그새 잊어버린 건가?”

“그게 아니라 다시 확인하는 것이네. 진흙은 진토(辰土)가 아니었냐는 말이지. 놀랍게도 진토가 조화를 부린다는 이야기를 서역의 신화에서 얻어듣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 했지 않은가. 참으로 신기 하달밖에.”

“엉?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것 참....”

“진토도 토지만 흙은 모체(母體)를 의미하지 않는가? 그러니 천주가 땅에서 형상을 만들고 천기(天氣)를 불어넣어서 완전한 인간이 되어서 천지(天地)사이에 유일(唯一)한 인간(人間)을 만들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말이네.”

“뭐라는 거야? 말이 안 되는 것도 우창의 머리를 거쳐서 나오면 그럴싸하니 이것은 또 무슨 조화 속인지 알 수가 없군.”

“만약에 나무로 형상을 만들었거나 쇠로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은 그냥 웃고 말 이야기이지만 토(土)로 만들었다는 것이 의미심장(意味深長)한 것이라네. 토(土)는 도(十)라고 배웠는데, 도에서 사람이 태어났으니 그 사람이야말로 도인(道人)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냔 말이지.”

“흙으로 만든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어허~! 은유(隱喩)라고 하지 않았나? 신화(神話)는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우스운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 깃들어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세상의 이치가 고스란히 들어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셨나 보군. 앞으로도 다시 생각해 보게나.”

우창이 진지하게 말을 하자 고월도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우창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더구나 천주가 숨을 불어넣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것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백미(白眉)로군. 그 순간이야말로 천지(天地)가 상합(相合)하는 순간이란 말이네. 땅의 음이 하늘의 양을 만나서 인간의 생명력(生命力)으로 변화(變化)하는 순간인 까닭이지.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은 한 번 읽어 볼 만한 책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었어.”

“과연, 우창은 아무것도 아닌 돌멩이에서도 도를 찾을 것이네. 하하~!”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도학(道學)에서는 세상에 도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는데, 돌멩이는 물론이고, 먼지 하나에도 도가 있다고 한 것을 모른단 말인가?”

“몰라.”

“그것참~! 이제라도 알아둬. 하하~!”

“그래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모여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하지만, 어찌 그것이 인간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그로부터 만들어졌을 것이네. 그러니 천주가 최초로 한 노력은 결국 만물이 소생하게 된 역사(役事)라고 봐야지. 그나저나 그 이야기에는 뱀이 나오지 않았잖은가? 애초에 뱀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고 들었는데 뱀은 어디에 있지?”

“뱀 이야기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 멀었지. 우창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도 뱀을 잊어버렸지 뭔가. 하하하~!”

“어서 다음 이야기를 해 보게.”

“천주가 그렇게 사내아이를 만들었다잖은가. 그랬더니 아이가 심심해하더라는 거야.”

“그야 당연하지. 음양은 짝이 있어야 하는데 만약에 짝이 없이 남아(男兒)가 홀로 살았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될 수도 없고 그것을 기록한 글이 성경으로 추앙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네. 천주가 그것도 이미 설계도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네. 그렇게 해서 여아(女兒)를 만들었겠지?”

“아니, 어디에서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라도 했나?”

“듣긴 어디에서 들어보나? 이야기가 그렇게밖에 될 수가 없으니까 짐작해 보는 것이지. 그래서 여아는 어떻게 만들었다던가?”

“사내아이의 갈비뼈를 하나 꺼내어서 만들었다네. 이것은 또 무슨 의미가 깃들어 있을지 나는 그게 더 궁금하네.”

“오호~! 과연~!”

“뭐가 과연인가?”

“조물주(造物主)는 숨결 한 번도 낭비하지를 않는다는 이치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네. 이것은 이미 생명이란 다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므로 만물평등(萬物平等)의 이치이고 남녀는 동체(同體)라는 유일신(唯一神)의 뜻이기도 하겠네.”

“그렇게까지 해석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남녀의 근본이 같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 말은 음양(陰陽)의 본체는 분리되기 이전의 상황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해서 음양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이듯이, 남녀도 불가분리라는 의미로 가슴뼈를 갖고 여인을 만들었다는 것은 가슴에 있는 뼈는 심장박동을 느끼면서 생명력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뼈였기 때문에 뼈를 꺼냈을 적에 그 사내의 정신도 함께 분리가 되었을 것이네.”

“정말 기가 막힌 해석이군. 감탄하네. 하하~!”

“그런데 아직도 뱀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보군. 참, 이제 사람이 둘이니 이름이 필요했겠는데? 성경에는 이 한 쌍의 남녀에게 어떤 이름을 부여했다던가?”

“사내아이에게는 아당(亞當)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여아에게는 하와(夏娃)라는 이름을 붙여줬다더군. 이름에 대해서도 우창의 말이 듣고 싶은 걸. 무슨 의미인가?”

“물론이네. 이름에는 그만한 의미가 있는 것도 있으니까 궁리하고 살펴보면 또 깊은 뜻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 말이네. 물론 모든 이름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지. 남아(男兒)의 이름이 아당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렇다네. 어쩌면 서역인들의 소리를 한자(漢字)로 바꿔놨을 수도 있으므로 뜻이 없을 수도 있다네.”

“물론 그것은 일단 뜻을 생각해 보면 알 일이지. 아(亞)는 ‘두 번째’라는 뜻이 있지 않은가? 맹자(孟子)를 아성(亞聖)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지. 그리고 세상의 왕(王)의 글자와 닮았으니 정신세계(精神世界)의 왕이라는 뜻으로 아(亞)를 쓴 것이기도 하네. 왕(王)과 아(亞)는 흡사하게 닮았지 않은가?”

“닮았다고 하면 닮기도 했네. 그런데 속이 비어있는 왕(王)이로군.”

“바로 그것이네. 속이 비었다는 것은 공(空)과 통하고 영혼(靈魂)이 자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네. 그래서 정신세계의 왕이라는 의미인데, 그것도 두 번째의 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그렇다면 첫 번째는 누구겠는가?”

“첫 번째? 남자라고는 그 녀석 하나뿐인데?”

“어허~! 그 녀석을 만든 이가 있지 않은가. 천주 말이네. 그가 당(當)이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손에서 창조된 남아는 아당(亞當)이 되는 것이지. 마치 공자님은 성(聖)이고, 맹자는 아성(亞聖)인 것과 같다고 보면 될 거야.”

“당(當)에는 그런 뜻도 있었던가?”

“물론이지. 당(當)에는 균형(均衡)과 마땅하다는 뜻이 있다네. 균형을 이룬 자는 도인(道人)이고, 음양을 주재(主宰)하는 자이니 그야말로 창조주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군. 이렇게 천지자연의 조화를 일으키는 자가 되는 것이니 그가 바로 자연(自然)이고 조물주(造物主)이고 창조주(創造主)인 것이라네. 어떤가? 내 말에 틀린 것이 있으면 말을 해 줘봐.”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군. 천의무봉(天衣無縫)일세. 그렇다면 하와(夏蛙)는 또 무슨 뜻이 있단 말인가? 이러다가 우창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 가게 생겼군.”

“당연히 뜻이 있지, 아당에 뜻이 있었다면 하와에도 당연히 뜻이 있어야 할 것은 자명(自明)한 일이잖은가?”

“그렇겠지. 어련하시려고. 그래서?”

“근데, 하와는 어딘가에서 들어보지 않았나? 왜 귀에 익숙하지?”

“그래? 나는 모르겠는데?”

“가만, 복희씨(伏羲氏)의 아내 이름이 뭐였더라.....”

“복희씨의 아내는 여와씨(女媧氏)지.”

“아, 그랬구나 그래서 어디에서 들어봤다 싶었지. 전혀 다른 이름이었군.”

“나참 나중에는 누가 등장할지 자못 궁금하네.”

“복희씨와 여와씨(女媧氏)는 남매(男妹)간이었잖은가? 그런데 아당과 하와도 같은 몸이니 남매라고 할 수가 있겠지?”

“정말이네? 이건 무슨 조화 속이지?”

“원래 이야기는 뿌리를 찾아보면 어딘가에서 맞닿아 있는 법이라네. 그래서 만법귀일(萬法歸一)이라고 하지 않는가.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지?”

“완전히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될 지경이네. 오늘 우창의 사유력과 추론에 대해서는 내가 감탄하고 또 감탄하네. 하하~!”

“하와(夏蛙)의 하(夏)는 여름을 의미하네. 아마도 이로부터 백자천손(百子千孫)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네. 여름은 만물이 번식하는 불의 계절이 아닌가 말이지. 그러니까 그녀로 말미암아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이지?”

“뭐, 대충 그렇다는 말이네.”

“다음에 와(蛙)는 더욱 의미심장하네. 보통은 개구리와 음란하다는 뜻으로 쓰이지만 글자는 모쪼록 분석(分析)을 해 봐야 그 속뜻이 드러나는 경우도 허다하다네. 그냥 개구리로 봐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 않겠나?”

“당연하지. 그래서?”

고월은 숨이라도 넘어갈 지경이었다.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를 적에 더욱 흥미로운 법이다. 지금 우창의 이야기 속으로 완전히 빨려 들어갈 듯했다.

“앞의 충(虫)은 충(蟲)과 같은 말이니 일체 만물의 생명이 있는 동물(動物)을 말하는 것이라네.”

“충(虫)은 기어 다니는 벌레를 말하지 무슨 일체 동물을 뜻한단 말인가?”

“그래? 나충(裸蟲)이라고 들어봤나?”

“그건 털이 없는 벌레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런 뜻이기도 하지만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네. 결국 인간도 벌레에 불과하다는 의미이지. 얼마나 통찰력이 가득한 말인가.”

“통찰력은 무슨~! 인간(人間)을 모독(冒瀆)하는 것이 아닌가?”

“예전에 스승님께 들었던 이야기라네 불경(佛經)에 나온 것이라고 했으니 스승님의 말씀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면 사실일 것이네.”

“그....래....?”

“여하튼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을 의미한다고 보세. 그다음에 규(圭)를 보면,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의미심장하단 말이네.”

“규는 옛날에 천자가 왕을 봉할 적에 사용했던 것을 말하지 않나?”

 

wlqdhrrb

“그것은 중요하지 않네. 규(圭)는 토가 겹쳐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네.”

“아, 그건 나도 보이는군. 그래서?”

“괘(卦)는 알지?”

“그야 말하면 뭐하나? 점괘(占卦)에서 사용하는 것인데 뭘.”

“하늘의 도(十)와 땅의 도(十)가 눈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규(圭)라네. 그래서 점괘에서 천지의 뜻을 보여주면 그것을 읽어서 길흉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라네.”

“가만,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은 도(十)가 되고, 보이는 것은 토(土)란 말인가?”

“그렇지. 이것은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구분하는 기준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와(夏蛙)의 이름에서 이미 천지창조(天地創造)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이네. 음란하다는 것도 생명창조의 힘이라고 봐야 할 것이니 애초에 이름을 부여했던 뜻이 그대로 살아있다고 봐도 되겠군. 그리고 개구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면 당시의 사람들이 봤을 적에 자손을 가장 많이 번식시키는 동물로 개구리가 보였을 것이네. 이른 봄에 경칩(驚蟄)이 되면 물가에서 볼 수가 있는 무수한 올챙이들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고 해도 되겠지?”

“과연~! 입이 벌어질 지경이네.”

“그래서 남매는 사랑을 나누고 대대손손 자식을 낳았는가? 아마도 그랬겠지?”

“응? 아~!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잊어버렸네. 하하~!”

“그랬나? 미안하네. 내가 너무 호들갑스럽게 이야기를 떠벌였나 보군. 하하~!”

“그렇게 남녀는 낙원(樂園)에서 즐겁게 살았더라네.”

“낙원이라고 했나? 과연 아름다웠겠네. 불경의 극락(極樂)과 같은 뜻으로 보면 될 것이네. 주리면 먹고, 졸리면 자고 그렇게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살았겠군.”

“천주가 두 사람에게 절대로 손을 대면 안 된다는 나무를 한 그루 알려줬다더군.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으니까 절대로 먹지 말라고 다짐을 했다는 거야.”

“오호~! 그랬겠지. 먹지 말라고 해야 먹을 테니까. 그렇게 먹지 말라고 한 것을 필시 먹고 말았겠지?”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나?”

“간단한 일이잖은가? 엄마가 어린아이에게 시렁에 있는 엿은 절대로 먹지 말라고 일러두고 밭에 일하러 간 다음에 아이가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비유도 참 기가 막히군.”

“그야 약간의 사유(思惟)면 알 수가 있는 일이잖은가? 하하~!”

“그런데 그 낙원에는 뱀이 살고 있었다는 거야.”

“아, 이제야 뱀이 나오는군. 뱀이 맡은 일이 뭔지가 궁금하네.”

“뱀이 알려줬다지 않은가. ‘저 과일은 너무 맛이 좋은데 왜 안 먹나?’라고 말이지. 그래서 아이들은 ‘천주가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는다’고 답했고, 뱀은 ‘참 맛이 좋은데 그대들은 못 먹는구나 쯧쯧~!’하면서 사라졌다지.”

“그날부터 오로지 그 과일이 먹고 싶었겠구나. 드디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지? 그것을 먹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다던가?”

“과일의 이름은 선악과(善惡果)였더라네. 그것을 먹고 나자, 서로의 몸을 보고는 옷을 입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게 되었더라지.”

“뭐라고? 선악과?”

“아니, 왜? 과일의 이름이 좀 특이해서 놀라는 건가?”

“과연 성경은 도경(道經)이었군.”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생각해 봐. 무극(無極)은 태초(太初)가 되고, 음양(陰陽)은 창조(創造)가 되며, 사상(四象)은 선악과(善惡果)가 되는 까닭이지. 이보다 더 명료할 수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참 신기하군. 어떻게 만 리나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각한 이야기가 이렇게 일맥상통(一脈相通)을 할 수가 있느냔 말이지.”

“아니, 선악과(善惡果)를 사상(四象)이라고 하는 것은 좀 억지가 아닌가?”

“물론, 언뜻 생각하면 선악도 음양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뜻이지? 그러나 음양이 다시 반복했다면 그것은 성경이 아니라네. 다시 물어볼까? 선악과의 역할(役割)이 우연한 실수인가? 아니면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큰 사건인가?”

“아마도 매우 큰 사건으로 봐야 할 것이네.”

“그봐, 도경에서 음양이 한 번 뒤집히는 조화를 이룬 다음에 사상이 나오듯이 음양에 해당하는 남녀의 한 쌍이 큰 변화를 겪게 되는 것이 선악과라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사상(四象)의 발로가 된다네. 그로 인해서 세상의 이치를 분별할 수가 있었을 테니 이것은 명학(命學)으로 본다면 오행(五行)의 이치에 근접했다고 봐도 되겠네. 오행이 되어야만 분별이 가능하듯이 선악과를 분별의 시발점으로 본다면 이것이야말로 사상의 단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니까 뱀은 지혜(智慧)를 상징한 것이 분명하군. 사람의 몸에서 치부는 매우 중요한 것인데, 그것을 깨닫고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뱀의 역할이 지혜의 신이라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네.”

“성경에는 그 남녀가 자신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부끄러워했다고 했네.”

“아니, 그게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부끄러웠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말이 그 말이네. 자연스러운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것은 이미 분별력이 생겼다는 말이지. 나무에 달린 복숭아가 부끄러워할까? 아니면 자연의 어떤 동물이 자신들의 생식기(生殖器)가 노출되었다고 해서 부끄러워할까? 그보다도 1세의 어린 아기라면 또 어떨까? 자신이 부모처럼 옷을 입지 않았다고 해서 부끄럽단 생각을 했으려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그랬을 리가 없지.”

“그보게. 몸이 부끄러워서 가렸다는 것은 이미 분별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고 그래서 몸을 가렸다는 것은 이제 어른으로 성장을 했다는 뜻이라네. 여인이 몸을 가리고자 하는 것은 정든 남편 앞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니 이것이야말로 남녀의 유별함을 깨달았기 때문임이 분명하네.”

“그래서인가? 남녀는 그렇게 몸의 치부(恥部)를 나뭇잎으로 가렸다고 하네.”

“천주가 그 모습을 보고서 정황을 눈치채셨겠군?”

“맞아. 두 아이를 다그치자 뱀이 먹어보라고 해서 먹지 말라는 것을 먹게 되었노라고 이실직고(以實直告)를 했고, 천주는 노발대발(怒發大發)하셨다더군.”

 

20200425_074909

“그랬다던가? 그건 노인네가 연극(演劇)을 한 거지. 정을 떼느라고. 왜냐면 이제 자신의 일은 모두 끝났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후의 처사(處事)는 어떠했다던가?”

“낙원에서 추방(追放)되어서 황량한 벌판으로 떨어졌고,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으면서 고생스럽게 살았다더군.”

“그러니까 뱀은 지혜를 준 것이 맞군. 뱀이 아니었다면 영원히 낙원에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고, 이 땅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미개(未開)의 천지로 존재하게 되었을 테니 말이네.”

“그 교도(敎徒)들은 뱀을 보면 때려죽이기도 한다더군. 뱀 때문에 이 땅에서 고생스럽게 살아간다면서.”

“어허~! 무지한 인간들이 하는 생각이란 쯧쯧~! 하긴, 신화(神話)와 실화(實話)를 구분하지 못한다면 능히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리 그래도 그것 정도는 구분해야 할 텐데 말이지.”

“아, 그것이 신화랑 실화를 구분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는 말인가? 듣고 보니 그도 그럴싸하군.”

“애초에 그것조차도 천주가 만든 극본(劇本)이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창조주가 왜 뱀을 만들었겠는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일인데 말이지.”

“그게 아니라던데? 뱀은 악마가 둔갑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뭐라고? 세상 천지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흙으로 최초의 생명체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맞아, 그랬지.”

“그렇다면 당연히 뱀도 천주가 만들었어야 앞뒤가 맞는 것이 아닌가?”

“그렇.....긴.... 한데...”

“천주란 분은 참으로 희극(戱劇)의 기질이 있었군. 물론 그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긴 하겠지만.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느냔 말이네. 빈틈이 없군. 그래서 우리네 인생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누리면서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지 않느냔 말이지.”

“서역인들의 생각으로는 이 땅은 고통의 바다라고 한다던데?”

“그야 부처도 한 말이지 않은가? 사바세계(娑婆世界)는 고해(苦海)라고 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사후(死後)에 다시 그 낙원으로 돌아가고자 한다더군. 천궁(天宮)이라고 한다던가?”

“천궁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것은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뜻이라네.”

“원시반본이라니?”

“원래 온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지. 인간의 마음은 가장 행복했던 그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이야.”

“그곳이 낙원이란 말이지?”

“어디 따로 그러한 곳이 있겠나?”

“그럼 그것도 상징이라는 뜻인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궁(子宮)~!”

“자궁이라니?”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을 때를 그리워하고 그곳은 살아서는 갈 수가 없는 곳이므로 이 몸을 떠나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천궁(天宮)이라고 하고 또 다른 말로는 하늘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천국(天國)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네.”

“그렇다면 그렇게도 가고자 하는 곳은 어머니의 자궁이란 뜻이란 말인가?”

“내 생각에는 그렇다네. 모태회귀본능(母胎回歸本能)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內在)되어 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네. 낙원이 있다면 그곳일 것이네.”

“성경에는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輪回)는 거론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우화등선(羽化登仙)을 한다고 해도 구름을 타고 가야 하지 않는가? 그 구름이야말로 어머니의 태반(胎盤)이라고 보면 될 것이네.”

“그....런...가...?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좀 황당한 것도 같고...”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게나. 그냥 짐짓 상상력(想像力)을 발휘해 본 것에 불과한 것인데 뭘. 하하하~!”

“딴은..... 하여튼 우창의 설명이 그럴싸하긴 하네.”

“생각해 보니, 복희씨의 몸과 여와씨의 몸이 뱀이었다는 것이나, 낙원에서 뱀이 남녀의 사랑법을 가르쳐준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러네? 듣고 보니 서로 같은 말이기도 하군.”

“그 뱀이 십이지지(十二地支)에도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으니 또한 얼마나 신기한 일이냔 말이지. 수컷의 뱀은 성기가 둘이라는 것은 알고 있나?”

“그런가? 처음 듣는 말이군.”

“창조력을 나타내고 있는 뱀이 사월(巳月)의 초여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네. 하하~!

“또 있어. 서역의 의원(醫院)들이 자신의 무리를 표현하는 상징으로도 뱀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네. 이때는 쌍뱀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뱀은 지혜로움과 의학의 신으로 받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나면 그렇게 징그럽기만 하다는 생각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을 거야.”

 

20200425_073028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군. 쌍뱀이야말로 복희씨와 여와씨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아마도 서양의 의술은 크게 발달해서 천하를 뒤덮게 될 것이 분명하네. 그런데 뱀을 사(巳)에 넣었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지?”

 

20200425_073920

“용을 닮아서이지.”

“용은 진월이잖은가? 그럼 뱀도 용의 뒤는 따라다닌다는 것인가? 정말로 그렇다면 지혜로움이 용에 미칠 정도라는 말도 되지 않은가?”

“원래 용이 어디에서 나왔겠어? 당연히 뱀을 본떠서 만든 것이지 않겠어? 그러니까 서로는 떼려고 해봐야 뗄 수가 없지. 실상의 뱀으로부터 허상의 용이 창조된 것이니까. 하하~!”

“그게 뱀에 대한 이야기의 전부야?”

“아니, 실제로 간지에 드러내야 전부가 되지.”

“어떻게?”

“갑기년의 진월은 황룡이라고 확인했지?”

“그렇지.”

“그럼 그다음 달은 뭐지?”

“무진의 다음에는 기사(己巳)가 되지 않나?”

“기사는 무슨 뱀이지?”

“기토(己土)이니까 그것도 황사(黃蛇)가 되네.”

“오호~! 그래서~!”

“이제 다 이해가 된 것이네. 그게 전부야. 하하~!”

“띠도 알고 보면 말이 되는 것이 있는걸. 재미있어. 하하~!”

“당연하지. 전혀 황당한 동물을 집어넣은 것은 아니라는 증명은 되는 셈이군. 그럼 또 다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알았네. 이번에는 오월(午月)을 생각해 본 거야. 망종(芒種)과 하지(夏至)의 오월(午月)이니 육양의 다음에는 다시 일음(一陰䷫)이 된다고 하겠지. 이미 하늘은 폭염으로 이어지고 땅은 후끈후끈 달아오르지만 일음이 생긴다는 의미는 체감으로 이해를 할 수가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그러나 자연의 용의주도한 운행은 어김없이 그렇게 진행이 되고 있다는 것으로 수용해야 하겠네. 망종(芒種)은 까끄라기가 있는 곡식이 결실을 이룬다는 이야기이니 대맥(大麥)인 겉보리와 쌀보리가 있고, 소맥(小麥)인 밀이며, 귀리, 호밀이 결실을 이루게 되어서 인간의 굶주림을 해방시켜 주게 되어서 굶어 죽을 가족은 없다고 해도 되기 때문에 또한 하늘이 베풀어 주는 공덕이라고 하겠군. 하지(夏至)는 여름이 극(極)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니 동지의 반대쪽에 해당하며, 이제부터는 다시 태양의 길이는 짧아지게 되고 기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이제부터는 음둔(陰遁)으로 전환이 된다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겠으니 역시 자연에 대한 이치도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알겠군.”

“아주 잘 살폈네. 군말을 더 붙일 것도 없군. 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되었던 거야? 아니면 그것도 몰라서 언급하지 않았던 건가?”

“말은 펄펄 뛰어다녀서 화기(火氣)가 많은 동물이라서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은 했지.”

“맞아. 그렇게만 생각해도 충분하지 뭐.”

“다행이군. 그럼 미월(未月)을 정리해 보지. 소서(小暑)와 대서(大暑)의 미월(未月)이 순서이니 이음(二陰䷠)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네. 소서(小暑)는 조금 더운 것이고 대서(大暑)는 상당히 더운 것이니 그야말로 삼복(三伏)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폭염의 시기가 되겠지. 그리고 이렇게 절정에 달한 더위는 서서히 물러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할 테니 팔괘로 이미 이음(二陰)이 되었다는 것은 겉으로의 더위가 실은 허장성세(虛張聲勢)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도 이제는 알 수가 있겠어. 미(未)를 양띠로 배속(配屬)한 것은 건조한 토양을 좋아하는 동물이어서 미토(未土)의 성질과 잘 맞는 것이라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오호, 이번에는 양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구나. 그럴싸하네.”

“그렇다면 합격인가? 다음은 신월(申月)이네. 미월의 다음에는 입추(立秋)와 처서(處暑)가 포함된 신월(申月)이 되고 음양의 기운은 삼음(三陰䷋)에 해당하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부터는 가을의 기운이 시작되지만 겉은 여전히 덥다는 것도 몸이 느끼는 시기더군. 처서(處暑)라는 것도 더위가 걸쳐있다는 말이고 보면 아직은 가을이지만 여름과 같은 기후라는 의미로 이해를 하라는 뜻이라고 보면 되지 싶었지. 다음 달의 결실을 앞두고 무럭무럭 자라는 곡식들을 바라보면서 농부들은 흐뭇하겠지. 그리고 태풍이라도 와서 몰아치면 안 되기에 매일 하늘의 사정을 보면서 걱정을 하는 것은 가을의 결실이 바로 이 신월의 하늘에 달렸기 때문에 걱정이 많은 원숭이가 신(申)을 차지했을 것이라고 봤네.”

“잘 생각했어. 하하~!”

“그래? 원숭이는 어떤가?”

“뭐, 맞는다고 해도 되고, 안 맞는다고 해도 되지만 결실과 연관된 것으로 보는 것은 맞으니까 그렇게 봐도 문제없어.”

“정확하게 알려줘야지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어떡해?”

“정확한 것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다만 내 생각을 조금 보탠다면, 아직 결실은 되지 못한 상황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이 되지 못한 원숭이를 떠올렸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은 해 봤었지. 하하~!”

“오호, 그게 훨씬 나은걸. 내공이 있어 보여. 하하~!”

“그럼 다음의 유월(酉月)은 어떻게 생각했는가?”

“유월(酉月)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했네. 백로(白露)와 추분(秋分)이 있는 것은 유월(酉月)이니 음양의 기운은 사음(四陰䷓)이 되겠고, 백로란 이슬이 흰빛을 띤다는 것이니 맑은 이슬에서 다소 짙은 빛이 된다는 의미로 생각이 되고, 추분(秋分)은 가을의 중간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 유(酉)를 닭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마도 결실의 계절이므로 매일 달걀을 낳아주는 닭의 속성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 봤네. 문득 가을의 저녁인 유시(酉時)가 되면 반주(飯酒)를 나눌 시간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유(酉)의 연관성으로 술주(酒)를 떠올리기도 했네.”

“완벽하군. 더 보탤 것이 없겠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다음은 술월(戌月)이네. 술월(戌月)은 한로(寒露)와 상강(霜降)이 걸쳐있는 달이고 음양은 오음(五陰䷖)이 되겠지. 한로는 이슬이 차가워진다는 뜻일 테니 그만큼 새벽의 공기는 냉랭할 것이라는 느낌도 살아나는 것 같고, 다음은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인 것을 보면 술월의 술토(戌土)는 화고(火庫)라고 했지만 실은 냉기운을 포함하고 있으니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면도 있네. 그러나 한편 생각을 해 보면 겉으로 냉기운이 감돌고 있으므로 불기운은 속으로 포위가 되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여 지하에서 불의 창고가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 하루의 시간으로 본다면 술시(戌時)는 개가 파수를 보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술(戌)은 개띠와 연관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짐작해 봤지. 술과 비슷한 글자로 수(戍)가 있는데 이것도 지킨다는 뜻인 것을 보면 서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되네. 그러니까 계절의 의미도 생각하고 시각의 의미도 생각하면서 같이 궁리를 하면 오히려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된다는 생각도 들었어.”

“점점 나아지고 있구나. 잘 생각했어. 개의 설명도 적당하군. 창고까지 이야기했으니 더 보태지 않아도 되겠네.”

“그렇다면 다행이지. 그럼 이제 해월(亥月)에 대한 생각이야. 해월(亥月)의 절기로는 입동(立冬)과 소설(小雪)이 해당하니, 이때의 음양은 육음(六陰䷁)이 되어서 천지간에 양의 기운이 모두 끊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 고인의 판단일 것이고, 겨울이 시작된다는 것이 입동이고,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는 소설이지. 이제부터는 천지의 기운은 음기로 변하게 되어서 인간이나 동물은 바깥의 생활은 최소화로 줄어들고 혹독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동면(冬眠)으로 들어가는 동물들도 적지 않으니 개구리와 곰 등이 그러한 형태라고 보면 되지 싶었지만, 해(亥)가 돼지인 이치는 생각하기가 어렵더군. 이에 대해서 설명을 좀 부탁하네.”

“아, 돼지~! 그것은 고래로부터 시월(十月)에는 상달이라서 조상의 묘를 찾아 돌보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가? 그래서 제사에 돼지를 쓰기 때문에 축제의 의미로 돼지가 지정된 것이라네. 농사일도 끝났으니 하늘의 신과 조상의 신들께 감사하는 마음의 정성이라고 보면 되겠지.”

“아, 그렇게 깊은 뜻이 있었단 말인가? 듣고 보니 그럴싸한걸.”

“잘 생각했어. 자월은?”

“자월(子月)은 이렇게 정리했다네. 해월이 지나고 나면 대설(大雪)과 동지(冬至)의 자월(子月)로 전환되니, 비록 겉으로는 혹독한 맹추위가 천하를 덮고 있지만 이미 그 내면에서는 일양(一陽䷗)이 생성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이와 같은 작은 움직임으로 인해서 결국은 세상의 이치도 음의 극에서 양의 시작으로 움직이는 것을 고인들이 간파하고 있었던 건가 싶었어. 대설은 눈이 많이 내리는 계절이라는 이야기가 되겠고, 동지(冬至)는 하루의 길이가 점점 늘어나는 시점이 된다는 것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가 있었지. 쥐는 아마도 번식력을 의미하고 풍부한 식량도 포함되어서라고 하겠지?”

“잘 정리했어. 내가 정리해도 특별히 더 잘하기 어렵겠어.”

“칭찬도 듣고 참 많이 발전했네. 마지막으로 축월(丑月)이네. 절기로는 마지막에 해당하는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 있는 축월(丑月)은 한 해의 가장 추운 계절이니 그야말로 겨울의 기운이 마지막으로 발악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도 무방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양(二陽䷒)이라고 한다면, 내면으로는 상당히 강력한 양의 기운이 솟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는 의미도 포함이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었네. 다만, 겉으로는 너무 추운 계절이라서 환경이 좋지 않은 가난한 사람들은 얼어 죽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소띠를 축(丑)에 배당한 것은 휴식을 취하는 소의 모습을 생각해서일 수도 있겠지. 휴식이 아니면 다음 해가 되어서 일을 할 적에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으니 휴식으로 제대로 쉬는 것도 일의 연장(延長)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 봤다네.”

“완벽하군~!”

“뭐,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대략 그 정도라면 앞으로 미비한 점은 보완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야. 완벽하다니 그 정도로 하루의 품값은 충분하네. 하하~!”

겨우 12개월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를 마치고 고월의 보충 설명으로 흡족해진 우창은 어제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에 부푼 기운이 넘쳐났다. 이제 다시 적천수를 봐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