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제6장 적천수 입문 / 3. 순응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다

작성일
2017-01-0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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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 제6장 적천수(滴天髓) 입문


3. 순응하면 길하고 거스르면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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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은 침상에 누웠어도 정신이 말똥말똥해서 잠이 쉽사리 들지 않았다. 고월이 알려 준 지장간에 대해서 모두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잠이 들 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비로소 적천수의 시구가 얼마나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공감을 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궁리를 해 보자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도 자연적으로 생겨난 마음이 되었다. 다음날 다시 공부할 시간이 되자 우창은 부지런히 고월을 찾았다.

“잘 쉬셨지?”

“나야 물론 잘 쉬지. 근데 우창은 잠을 편이 이루지 못했을 것 같은걸? 글자들이 아른거려서 말이지. 어땠어?”

“왜 아니겠나. 정확히 맞췄어. 그래서 이렇게 서둘러 다시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겠나. 하하~!”

“오늘은 그럼 다음 구절을 살펴볼까? 어디 한 번 읽어 봐.”

우창은 다음 구절을 찾아서 읽었다. 인도(人道)라는 제목 아래에

 

「戴天履地人爲貴(대천이지인위귀)」

하늘을 이고서 땅을 밟는 것 중에

사람이야 말로 가장 존귀한 것이니

 

라고 되어있었다.

“음, 이 구절은 비교적 쉬울 것 같은걸. 맞는지 잘 들어봐.”

“어디 잘 들어봄세.”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것 중에는 사람이 가장 귀하다.”

“뭐 일사천리군. 더 풀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단 말이지. 그대로 통과해도 되겠는데 어떤가?”

그래도 조심스러운 우창은 다시 곰곰이 생각하면서 한 자 한 자를 음미했다. 학문의 길은 서두르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한다는 스승님 가르침을 늘 잊지 않고 있는 덕분이었다.

“하늘 아래와 땅 위에서는 사람이 가장 존귀하다는 이야기로군. 이것은 사람의 관점으로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당연하지 뭐 다른 의미가 있겠어?”

“문득, 이 책은 철학적인 책이지 종교적인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그건 또 뭔 말인가?”

“불타의 가르침이라면 ‘만물은 모두 평등하므로 인간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해 본 말이네.”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군. 부처의 관점은 개유불성(皆有佛性)이라지 않는가? 그러니까 일체 모든 생명체가 있거나 없거나 간에 불성이 있다는 말이니 우리가 추구하는 철학적인 관점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

“그래서 철학은 인문학(人文學)이라고도 하는 것이로군. 당연히 철학자는 인간이 가장 소중하고 존귀하다고 해야 할 것이니 이해가 되는군. 그럼 이 대목은 합의를 본 것 같으니 다음 구절을 볼까?”

 

「順則吉兮凶則悖(순즉길혜흉즉패)」

따르면 길하거니와

거역하면 흉하게 되느니라

 

글을 읽어 본 우창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러한 것으로만 쓰여 있다면 더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라고 하겠단 생각을 하면서 해석을 했다.

“천지자연의 이치에 순응한다면 길상(吉祥)이라고 하겠으나, 사람이 흉한 것은 그것을 일그러트렸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보이는군.”

“나도 그렇게 생각되네. 자연의 이치를 알아서 그에 따르면 길하고 어기면 흉하다는 말은 나도 하겠네. 그건 뭐 하러 써놓은 거야?”

“앞의 구절을 같이 연결해서 살펴보면 ‘인간이 가장 귀하지만 하늘의 이치를 거스른다면 흉하게 된다.’는 의미인 것 같아.”

“그렇게 보면 타당하겠네.”

“근데, 글귀는 조금 어색한 맛이 있는걸. 왜냐하면, 순즉길하면 패즉흉해야 하는데 흉즉패라고 한 것이 좀 어색하게 보이지 않나?”

“원, 별걸 다 갖고 시비로군. 그야 아무렴 어떤가? 의미만 제대로 전달이 되면 그걸로 충분한 거잖아?”

털털한 고월은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괜히 건드려 봤다가 본전도 찾지 못한 느낌이 든 우창은 그냥 웃어넘겼다. 따지고 보면 뜻이 중요한 것이 맞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거 아주 쉬운 걸 이렇게만 하면 3일이면 이 책을 마칠 수가 있겠어.”

뜻이 쉽게 풀린다고 생각을 했는지 고월은 설레발을 쳤다. 그러나 아무리 쉽다고 해도 그 속에 숨겨놓은 뜻이 있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조심조심, 여리박빙(如履薄氷)으로 한 줄씩 풀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 우창은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는 점이었다.

“여하튼 우리는 지금 잘 하고 있는 것 같네. 그럼 다음 구절을 살펴보도록 하지. 지명(知命)이라는 제목 아래에 나온 글귀네.”

 

要與人間開聾聵(요여인간개농외)

順逆之機須理會(순역지기수리회)

 

인간의 귀 멀고 눈먼 것을 열어주고자 한다면

순역의 기틀을 모름지기 깨달아야 하느니라

 

우창이 읽고 나서는 나름대로 제목부터 해석을 해 봤다.

“지명(知命)이라면 ‘운명을 안다’는 뜻인가? 목숨은 아닐 것이고.”

우창이 제목을 생각하다가 고월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고월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는다.

“아마도 목숨을 논하는 것은 의학(醫學)이 담당할 것이니 그건 아닌 것 같군. 운명의 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 이번엔 내가 풀어봄세. ‘인간의 농외를 열고자 한다면’이라는군. 농외는 귀머거리를 말하는 것이겠지?”

“제대로 잘 이해했네. 다만 농(聾)은 귀는 들리는데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고, 외(聵)는 아예 귀의 고막이 없어서 전혀 아무 소리도 못 듣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정리를 하면 더욱 명료해지겠네. 물론 여기에서는 질병의 차원에서 선천적으로 귀가 안 들리는 사람은 의미가 없으므로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뜻’으로 보면 맞겠어.”

“그렇게 설명하니 더욱 또렷하게 정리가 되는구나. 같은 귀머거리라도 의미는 다르다는 것을 또 배웠어. 하하~!”

“다음 구절은 내가 읽고 풀어보지. 「순역지기수리회(順逆之機須理會)」라고 되어 있군. 순역(順逆)은 순응하거나 거역하는 것을 말하겠고, 그 기틀을 알고자 한다면 앞 구절의 요(要)가 여기에 와서 떨어져야 하겠는걸. 그러기 위해선 모름지기 간지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보면 되겠어.”

“간지의 이치가 어디 있는가? 그냥 리(理)만 있는데?”

“아니, 앞에서 건원과 곤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이치는 바로 간지의 이치를 의미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해석을 해 본 것이야.”

“아하~! 해석하는데도 수준이 있는 것이었군. 나는 아무래도 발바닥으로 읽은 수준으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데, 우창은 명석한 머리로 해석을 하니 훨씬 이해가 쉽고 맛깔스럽기조차 한걸.”

“어허~ 겸양(謙讓)이 지나치네. 그냥 주변의 글자들을 끌어다 붙여서 이해를 조금 더 하기 쉽게 할 방법이 없나 하고 기웃거리는 것일 뿐이야. 말하자면 임기응변에 불과한 셈이지. 하하~!”

“무슨 소리야 그게 실력이지.”

“그래 알겠네. 여하튼 뜻이 쉬우니까 진도가 팍팍 나가는걸. 다음 구절을 봐도 되겠지?”

“당연하지. 어서 읽어보세.”

제목은 ‘이기(理氣)’였다.

 

理乘氣行豈有常(이승기행기유상)

이치를 타고 기운이 흐르니 어찌 항상 같으랴

 

“이치를 타고 기운이 흘러 다니는데 어찌 항상 같을 수가 있겠는가? 이게 무슨 뜻을 담고 있는 말이지?”

우창은 ‘이승기행’의 네 글자에서 막혀버렸다. 이러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서이다. 그것을 보고 다시 고월이 깔깔댔다.

“하하~! 우리는 정말 환상의 짝이로군. 내가 조금 아는 것은 그대가 모르고, 또 그대가 잘 모르는 것은 내가 다행히 조금 알고 있으니 말이야. 하하하!”

“그렇다면 어서 설명이나 해 봐.”

“이 이야기는 이기론(理氣論)이라고 하는 것이야. 이(理)는 체(體)가 되고, 기(氣)는 용(用)이 되어서 이가 움직이면 기도 움직이고 이가 멈추면 기도 멈춘다는 이야기로 말할 수가 있지. 이것은 마치 그림자가 사람을 따르는 것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어.”

“아,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였나? 당연히 이치와 기운이 항상 같을 수는 없겠지. 늘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지 않겠느냔 말이지.”

“자, 여기에 대해서도 해결을 봤군. 다음은?”

“그래도 다시.... 잘....”

“에구, 이미 끝난 것을 뭘 뒤적거려. 하하~!”

“아니, 너무 몰아치지 말게나. 하나하나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대충 넘어가봐야 다시 벼랑을 만나면 되돌아오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지.”

“그런가? 그럼 더 물어보게. 내가 이해하고 있는 질문이길 바라네. 하하~!”

“내가 잘 이해를 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지. 이(理)는 사람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기(氣)는 상황에 따라서 움직이는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어느 사람이 있는데 배가 고플 적에는 음식으로 마음이 가고, 화가 나면 분노로 마음이 흐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될까?”

“물론이지. 그러니까 이(理)는 불변(不變)하지만 기(氣)는 상변(常變)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다 되었는데 뭘 더 생각해 본다는 것인지 모르겠군.”

“팔자를 연구하는데 왜 이런 글귀가 있느냐는 거야. 사주는 가만히 있으나 삶의 여정은 항상 출렁댄다는 의미인지, 글자는 사간사지(四干四支)에 불과하지만 서로 어떤 만남으로 인해서 작용은 저마다 다르다는 이야기인지 설명을 부탁하네.”

“그걸 나눌 필요도 없이 다 통용(通用)되는 말이라고 정리하면 되겠어. 결국 같은 말이니까 말이지.”

“음, 그렇군. 그럼 다음 구절을 보자.”

 

進兮退兮宜抑揚(진혜퇴혜의억양)

나아가고 물러가니 누르거나 드날림이 옳으니라

 

“나아가고 물러남에 누르거나 드날려 줌이 마땅하다.”

우창이 이렇게 해석하자 고월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아마도 지나치게 앞으로 나가면 적당히 눌러주라는 말인가 보군. 정원사는 나무가 웃자라면 가지를 잘라주고, 또 너무 자라지 못하면 거름을 줘서 자라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정원사도 해 보셨나? 어찌 그리 잘 아는가 싶어서.”

“꼭 해 봐야 하나? 그냥 상식이잖아~! 자네는 가끔 너무 진지해서 탈이란 말이야. 하하~!”

“그런가? 내가 좀 그렇긴 하지? 하하~!”

“때론 대충 생각하고, 또 때론 진지하게 생각해야지 그렇게 매사에 좁쌀영감처럼 꼼꼼하게 따지다가 항상 뒤에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단 말이야. 융통성이 있어야지. 융통성!”

“천성이 그러한 걸 어쩌겠나.”

“이 대목에서도 깊이 풀어볼 것은 없지 싶군. 그러니까 이치의 변화에 따라서 진퇴를 하게 되니까 그에 따라 균형을 맞추라는 이야기인데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하겠어.”

“아, 그건 중요한 말인걸. 그러니까 자연이 그렇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여름이 너무 치우쳐서 더울 적에는 그것을 눌러줘서 가을로 변화를 시키고, 또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지경이 되면, 다시 따뜻한 기운으로 북돋아 줘서 봄으로 변화시킨다는 말이잖아. 멋진데~!”

“그런가? 자칫하면 그냥 넘어갈 뻔했는데 그대가 잡아 주는군. 역시 관찰력은 나보다 세 수는 위라고 봐야 하겠어. 대단해~!”

고월의 너스레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천지의 자연은 늘 이렇게 저절로 되도록 두는 것이 아니라 과다(過多)하면 축소시키고, 과소(寡少)하면 확장시키는 것이구나. 그리고 적당한 것은 그대로 두겠지. 이러한 것이 자연의 이치란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는구나.’

“아니, 뭘 그리 골똘하게 생각하는가? 말을 해야 알지.”

“억양(抑揚)이라는 글귀가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생각해 봤지.”

“그게 뭐라고 아름답기까지 할까?”

“눌러야 할 것은 눌러주고, 세워야 할 것은 세워주는 것이 자연이라는 뜻이니 그 중심을 관통(貫通)하고 있는 것은 조화(調和)의 균형(均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네.”

“오호~! 억양에서 조화를 읽었단 말이구나!”

“자연이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범인(凡人)이고, 부단히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인(道人)이지 않을까?”

“그렇겠네. 자연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은 저마다 급수가 다른 까닭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그만큼 보이는 것도 달라서 저마다 각기 다른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로군. 그러니 지혜롭게 살아가려면 결국은 도를 닦아야 한다는 말이 되나?”

“맞아, 결론은 수도(修道)~!”

“누가 수행자가 아니랄까, 이러고들 노는군. 남들이 보면 참 가관이겠어. 하하~!”

그 말에 고월이 맞장구를 쳤다.

“그야 뭐 아무렴 어떤가. 저마다 자기 잘난 맛에 산다지 않는가? 어서 다음 구절이나 보자고. 이거 탄력을 받는 것을 보니 공부가 꽤 진척을 보겠는걸. 하하~!”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 나도 그렇게만 되어서 어서 멋진 자연의 이치를 바로 깨닫고 자유로운 운용(運用)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단 말이지. 그럼 또 다음 구절을 살펴보세.”

“어서어서~!”

고월이 이렇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에는 이미 자신은 대략 내용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찾아야 할 깊은 의미는 없는 대목이라고 여겨서 얼른 넘어가자고 했는데 우창은 처음이기도 하고 천성이 침착하기 때문에 아무리 다그쳐도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진행하는 것이 다소 답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다려 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