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제5장 노산의 인연/ 6. 삼명기담적천수(三命奇談滴天髓)

작성일
2017-01-04 16:12
조회
2832

[059]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6. 삼명기담적천수(三命奇談滴天髓) 


=======================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날이 밝아왔다. 그래도 마음은 날아갈 듯이 상쾌했다. 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가볍게 산책을 한 우창은 다시 고월이 만들어 주는 노산의 명물인 노산차(嶗山茶)를 음미했다. 햇차라서 그런지 그 향은 더욱 짙었다. 머릿속이 다 정화되는 느낌이 좋았다. 연거푸 서너 잔을 마시고 나자 마음은 안정이 되고 몸은 편안해졌다. 어느 사이에 여행으로 지친 피로도 말끔히 사라진 것을 느꼈다.

“지난겨울은 추워서인지 찻잎이 많이 자라지 않았군. 그 대신 맛은 더 진한 것을 보면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법칙이 존재하는 모양이야.”

“그것이야말로 음양법 아니겠어?”

“오호~! 그 정도의 소식은 알고 있다는 뜻이로군. 하하~!”

“도사 앞에서 요령을 흔든들 누가 알아주겠는가만. 하하~!”

“뭔 소리야. 다 같은 길을 가는 동도(同道)인 것을.”

“어제 그 책 이름이 뭐였지?”

“뭐 말인가?”

“아, 자네 스승님이신 운산선생께서 주셨다는 것 말이야.”

사실, 우창은 새벽 내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그것이 궁금했다. 어제는 늦게까지 고월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느라고 내용에 대해서는 말을 꺼낼 겨를이 없었는데 다시 생각이 났던 것이다.

“아, 『적천수(滴天髓)』라네.”

“무슨 책 이름이 그런가? 보통은 듣기 어려운 이름이로군. 누가 그것이 책 이름인 줄 알기나 하겠는가 싶군.”

“왜 아니겠는가. 나도 처음에는 스승님께서 낡아빠진 책을 주시기에 이게 뭔가 싶었는데 내용은 얼마나 어려운지 아직 한 줄도 제대로 이해를 못 했다네. 하하~!”

“그렇게 어렵다니 더욱 흥미가 동하는걸. 명서(命書)가 맞기는 맞는 거겠지?”

“모르겠어. 그것도 아닌 것 같아. 명서에는 보통 음양과 오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으니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 것인지도 요령부득(要領不得)이지 뭔가.”

“여하튼 운산선생께서 쓰신 것이겠지?”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왜냐하면, 첫 구절에 ‘유운산(劉雲山) 찬(撰)’이라는 글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거든. 어디에서 얻어 온 것인지도 모를 일이야.”

“그렇다면 더욱 소중한 비급(秘笈)이 아닐까?”

“여하튼 비급이든 뭐든 내용을 알아야 뭔가 판단이라도 할 텐데 도통 알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 처박아 두고 있었던 거야.”

“설마하니 허접한 책을 소장하고 있으시다가 제자에게 주기야 했겠는가? 그래도 책을 좀 읽었다니까 대략적인 느낌은 있을 것이 아닌가?”

“어디 한 번 살펴볼 텐가?”

그렇게 말을 한 고월이 던져 준 죽간을 펼쳤다. 과연 그의 말대로 첫 줄부터 명서와는 사뭇 다른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삼명기담적천수(三命奇談滴天髓)」라고 제목이 되어있는데 그 아래의 구석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경도(京圖)’라는 두 자가 쓰여 있다. 이것을 보지 못한 고월이 누가 지은 것인지도 안 나왔다고 했던 모양이다.

“이보게 고월, 이건 뭘까?”

“어디.... 아, 사람 이름일까? 아니면 무슨 그림이라는 뜻일까? 어느 시대 수도(首都)에 대한 그림을 의미할 수도 있겠는걸.”

“그것도 듣고 보니 그럴싸하군.”

“일단 책이 이름에 적힌 것으로 봐서 지은 사람의 이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네. 이것을 어떻게 입수하게 되었는지 운산선생께 여쭤보면 어떨까?”

“그야 뭐 어려울 일이 없지만, 그 책이 궁금한 모양이군. 혹 우창에게 인연이 맞는 책일 수도 있겠는걸. 하하~!”

“이름이 왠지 매력적이지 않은가? 삼명(三命)은 아마도 천명(天命), 지명(地命), 인명(人命)을 말할 것이라고 해석이 되고, 기담(奇談)은 기이한 이야기라는 말이지 일상적인 논리가 아니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네.”

“오, 듣고 보니 과연 그럴싸한걸.”

“더구나 적천수라는 것은 ‘한 방울의 물에 천하의 골수를 담았다.’라고 해석을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군.”

“아무래도 이 책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그대인가 싶구나.”

“한 방울의 물과 대해의 물이 서로 다를까?”

“그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야?”

“적수(滴水)와 대해수(大海水)가 근본적으로 다르겠냔 말이지.”

“그야 다를 이치가 있는가, 다 같은 물인데.”

“물 한 방울에, 천지자연의 이치 중에서도 골수(骨髓)에 해당하는 것만을 담았다면 그러한 제목을 쓴 사람의 심정은 어쩌면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썼을 수도 있겠다는 공감이 된단 말이야.”

“듣고 보니 나도 흥미가 동하는걸.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텐데 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 책을 갖고 운산선생님께 가서 경위(經緯)를 여쭤보는 것이 어떤가?”

“좋지~!”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 낡은 책을 들고는 운산의 처소를 찾았다. 마침 낙안은 어디로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고, 혼자서 예의 그 진법도를 보면서 골몰하다가 들어오라고 했다.

“그래, 머물기에 불편한 점은 없고?”

“예, 덕분으로 멋진 벗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고 즐겁게 지냅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 다 자네 인연이지.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나?”

“스승님께 궁금한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바쁘지 않으신지요?”

“바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뭔데?”

고월은 들고 온 책을 앞에 내어놓았다.

“스승님께서 주신 이 책을 보다가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이 글을 지은 분이 스승님이신지요?”

“아니~!”

“그럼 어떻게 입수하시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실은 제자보다도 저 우창이 더 궁금하다고 해서 여쭙자고 했습니다.”

“아, 그랬는가? 나도 전해 받은 것이라서 정확하게 누가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네. 다만 경도라는 이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초야(草野)에서 오행의 이치를 궁리하던 무명도인께서 쓴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해 봤지.”

“역시 그랬습니까. 저희들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렇다면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살펴보셨는지요?”

“내용이 좀 어렵지? 살펴봤지만 기문과는 거리가 있어서 덮어 뒀던 것이라네. 다만 내용은 매우 훌륭한 부분이 너무 많아서 이동할 적에도 그것만큼은 버리지 않고 지니게 되었던 것이라네.”

“그렇게 소중한 책을 제자에게 주셨습니까?”

“책도 인연이 있는 법이라서 우선 그대를 보고는 이것을 한 3년 궁리해 보면 깨달을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지. 그런데 재미가 없던가?”

“아닙니다.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 것인지가 막연해서 본격적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좀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지대한 관심을 보여서 다시 들여다보니 의문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게 도반(道伴)이라네. 좋은 벗이 생겼으니 같이 기거하면서 궁리해 보면 좋겠군.”

그 말에 우창은 내심으로 무척 기뻤다. 그러나 심곡에서의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그게 맘에 걸렸다. 그러한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운산이 말을 이었다.

“심곡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이니 마음을 쓸 것이 없다네. 실은 그대의 공부를 도와주던 낙안도 이제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누구에게 지도를 받아도 크게 흔들림은 없을 것이라면서 명학에 대해서 지도를 할 스승이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네. 그러니 걱정 말고 노산에서 머물면서 탁마(琢磨)하게나.”

“그리 말씀해 주시니 마음속의 근심이 봄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리하도록 분부 받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오히려 고월에게도 좋은 벗이 생겼으니 학문이 일취월장하겠구먼. 실은 혼자서 하는 공부보다는 둘이 하는 것이 효과는 네 배가 되는 법이거든. 잘 되었지. 허허허~!”

유쾌하게 웃는 운산의 모습을 보면서 우창은 노산에서 머물기로 작정을 했다. 무엇보다도 명학에 대해서 좀 더 파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같은 또래의 고월이 있어서 더욱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지혜의 깊이가 측량할 수가 없는 낙안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지만 일방적으로 전수(傳受)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므로 자유로움에 대해서는 다소 부족했던 까닭도 있었다.

“그럼 가서 토론하게. 산중명부에는 자네 이름을 올려놓으라고 해 둘 테니 조금 있으면 별도의 처소를 마련해 줄 것이네.”

“스승님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물러갑니다.”

운산의 처소에서 물러난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서로를 축하했다. 비록 하룻밤을 보낸 사이였지만 그 짧은 사이에 십년지기를 만난 듯이 마음이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래서 헤어지게 되면 서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기꺼이 허락을 받고 보니 또한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져서 즐거운 마음으로 경내를 한 바퀴 돌면서 바람을 쐬고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참 잘 되었네, 잘 되었어. 하하하~!”

“내가 할 말이네. 명산에서 지기와 더불어 도를 배우게 되다니 아무래도 과분한 것 같단 말이야. 하하~!”

“그래, 그동안 심곡에서는 무엇을 수학하셨는가.”

“수학에서 기본적인 공부만 조금 했지. 그래서 실은 깊이가 없다네.”

“그래? 깊이야 터만 잘 잡고 나면 파고 들어가야지. 하하~!”

“앞으로 많은 도움을 부탁하네.”

“내가 할 말을 그대가 하면 어쩌나. 하하~!”

“서두르지 말고 꾸준하게 하다가 보면 무언가 얻을 것이 있을 것이고, 공부하다가 막히면 또 여쭤볼 곳이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더 이상 갖춰야 할 것이 없겠군.”

고월은 우창을 만나서 공부하게 된 것이 기뻤다. 혼자서만 궁리해봐야 늘 제자리걸음만 할 뿐 진전이 없었던 까닭이다.

“내가 할 말이네. 나도 학문은 좋아하지만 몰입해서 파고 들어가는 것은 도대체가 힘들단 말이야. 여하튼 우창의 도움으로 뭔가 탈태환골(脫胎換骨)이라도 해 봤으면 싶은걸.”

“어디 한 바탕 열정을 불태워보도록 하세. 그럼 우선 첫날의 공부를 시작해 볼까?”

“에구~! 급하긴 우물에서 숭늉 달라겠군.”

“내가 좀 그렇긴 하지? 하하하~!”

“아닐세, 그러한 것이 부럽단 말이었네. 난 늘 꿈지럭대다가 뒷북을 치기 일쑤거든.”

“보자.... 아, 시의 제목이 있었네? 통신론(通神論)이라, 이게 무슨 말인가? 신령(神靈)과 소통(疏通)하는 것을 논(論)한다?”

우창의 말에 고월도 같이 살펴본다.

“시작부터 거창한걸. 신과 통하는 것을 논한다는 말이잖은가? 무당이 신령과 통한다는 말처럼 보이기도 하는걸.”

학문의 서두에 귀신과 소통하는 것을 칭송(稱頌)할 까닭은 없을 것이니 아마도 천지자연의 이치에 대해서 통하게 될 것을 미리 기린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정리하고 다음 구절로 눈길을 옮겼다.

“천도(天道)라는 것을 보니, 첫 번째로 나오는 두 구절은 천도에 대한 이야기라는 뜻인가 보네. 자못 엄숙하기까지 한걸.”

우창은 다시 내용을 들여다봤다.

 

「欲識三元萬法宗(욕식삼원만법종)」

삼원이 만법의 근본임을 알고자 한다면

 

“드디어 시작인가? 어디 해석을 해 봐.”

“우선 욕식(欲識)의 두 글자는 ‘알고자 하거든’이라는 뜻이겠지?”

“왜 아니겠나. 바로 그 말이지 싶네.”

“책의 첫머리에 ‘알고자 하거든’이라니 참으로 글에 대해서 도가 튼 분이 쓴 책이란 것을 바로 알겠구나.”

“왜? 그것만을 보고 어떻게 알아?”

“보통은 ‘본서(本書)는 어쩌고’하고 시작하는데 얼마나 당당한 자부심이 강한 분이 글을 썼으면 ‘알고자 한다면’이라고 한단 말이지. 안 그런가?”

“듣고 보니 과연 그런 걸. 참으로 글을 보는 것이 나와는 차원을 달리하는군. 그러니까 ‘알고자 한다면 이 책을 봐라, 그대가 궁금해 하는 것은 이 안에 다 있을 것이니~!’ 라는 뜻이란 말이지?”

우창은 첫 구절부터 매력적인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아보지 않고서는 잠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러한 우창을 바라보는 고월도 뭔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벗을 만난 것 같아서 설레는 마음이 일어났다. 그렇게 두 사람의 궁리는 계속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