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2. 신출귀몰의 기문둔갑(奇門遁甲)

작성일
2017-01-0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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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2. 신출귀몰의 기문둔갑(奇門遁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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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서도 운산과 낙안의 대화는 끊일 줄을 몰랐다. 안내하는 도사가 와서 문을 두드리고는 두 사람을 위한 숙소가 마련되었다는 전갈을 받고서야 운산과 헤어져서 잠자리로 옮겼다. 약간 따로 떨어진 건물이었는데 다른 객은 없는지 조용한 곳에 두 사람만 자리를 잡았다. 우창은 어쩌면 운산의 배려로 특별히 마련해 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부터 궁금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우창이 둘이서만 자리를 하게 되자 낙안에게 쏟아냈다. 낙안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로 화답(和答)했다.

“형님, 오늘은 세상은 넓고 지혜로운 기인은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까 도면을 보면서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궁금해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놓고 나눈 이야기였는지요? 분위기로 봐서는 전쟁과 연관이 된 이야기라고 생각은 되는데 방법이나 걱정하는 모습들은 무엇 때문인지를 모르니까 답답하기만 했습니다.”

“그럴 만도 했을 것이네. 하하~!”

“형님은 이치를 아시니까 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셨을 것입니다만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동안 배웠던 팔괘나 오행만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가 없는 차원이니 도대체 어디까지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너무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고,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네. 흐름에 따라서 단계적으로 공부하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을 깨닫게 될 날이 올 것이니 말이지.”

“무리인 줄은 압니다만 대략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만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치를 곧바로 알 수는 없겠지만 토론한 이야기의 바탕은 무엇인지 정도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럼세. 기본적인 이야기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될 것이네.”

“형님이 누굽니까? 하수를 길들이는 선수가 아닙니까. 하하~!”

설명을 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는 금세 신이 나서 너스레를 떨면서 장단을 쳤다. 그렇게 알고자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낙안은 자신이 공부하려고 했던 시절의 마음을 보는 듯했다.

“오늘 운산선생과 나눈 이야기는 주로 「기문둔갑(奇門遁甲)」에 대한 이야기였다네.”

“기문둔갑이라면 전에 잠시 이름만 들었던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백지(白紙)와 같습니다. 정말로 매우 기초적인 이야기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문둔갑의 기문(奇門)이라는 것은 삼기팔문(三奇八門)을 줄여서 말하는 것이라네.”

“삼기는 무엇이고 팔문은 무엇입니까?”

“삼기는 을병정(乙丙丁)을 말한다네. 그리고 바탕은 구궁(九宮)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니 구궁의 기본은 아우도 알고 있지?”

낙안의 구궁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뚫리는 것 같은 우창이었다. 구궁팔괘에서 만난 마방진(魔方陣)에 대해서 배웠던 적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어 봤습니다. 그렇다면 구궁을 배우는 것도 기문둔갑을 익히는 기초가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군요. 마방진의 진도 진법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 학문은 서로 거미줄 같은 연결망이 되어 있어서 무엇을 배우든 어딘가에서는 만나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그나마도 조금씩 알아 둔 것이 이렇게 유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다음으로 팔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생문, 사문 등등의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네. 여덟 개의 문이 있기 때문에 팔문이지. 그건 간단하지?”

“물론입니다. 그 문은 어떤 문들입니까?”

“이건 가능하면 외워둬도 되겠네. 휴생상두경사경개(休生傷杜景死驚開)라네. 여기에 문(門)을 붙이면 되는 것이라네.”

“그 정도는 외울 수 있겠습니다.”

“이것을 운용(運用)하는 것을 팔진(八陣)이라고도 한다네.”

“진법(陣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군병(軍兵)들로 하여금 적을 무찌르기 위해서 전장(戰場)에서 용병(用兵)하는 방법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팍팍 들어옵니다.”

“그렇지. 이러한 것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으면 억울하게 군졸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을 수가 있기 때문에 단 일호(一毫)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네.”

“과연, 한 사람의 길흉을 보는 명학(命學)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라고 하겠습니다. 형님께서 여기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다만, 어느 것이 더 중(重)하고 경(輕)하다는 말은 할 수가 없다네. 싸울 때는 다수의 인명을 논하게 되므로 개인의 명을 무시하게 되지만 평화 시에는 반대로 다수의 인명보다는 개인의 명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인 까닭이지.”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학문은 모두가 그만큼의 존재가치가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제가 경박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하나는 다수에 비해서 가치가 작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자칫하면 숫자의 오류를 범할 뻔했습니다. 하하~!”

“풀 한 포기도 하늘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한다네.”

“명심하겠습니다.”

“기문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셨는가?”

“팔문의 이름이 갖고 있는 뜻은 또 다음에 설명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다음은 둔갑(遁甲)이라는 것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둔갑(遁甲)은 갑(甲)을 감춘다[遁]는 뜻이라네.”

“갑을 왜 감추는 것입니까?”

“갑은 제왕(帝王)이고 황제(皇帝)이기 때문이라네.”

“예? 왜 그렇습니까?”

“천간의 으뜸을 갑(甲)으로 보기 때문이지.”

“갑은 오행에서 목(木)이고, 음양에서 양(陽)이므로 양목(陽木)이며 이것은 다른 아홉의 천간과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요?”

“기문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그래서 제왕학(帝王學)이라고도 일컫는다네.”

“그런 뜻이 있었군요.”

“싸움터에서 왕이 죽어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럼 끝난 것이 아닙니까?”

“맞아, 그래서 둔갑을 하는 것이지.”

“둔갑하는 이유가 그래서이군요. 손오공(孫悟空)처럼 때론 나비로, 때론 두꺼비로 변신을 한다는 것이지요?”

“엉? 하하하~!”

“제가 틀린 생각을 했습니까? 보통 둔갑이라고 하면 그렇게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기문둔갑 중에서 장신술(藏身術)이라고 하는 또 다른 기술(奇術)이라네.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하면 되네.”

“숨는다면 어디에 숨는단 말입니까? 바위나 땅속에 숨습니까?”

“무기경신임계(戊己庚辛壬癸)의 뒤에 숨는다네.”

“글자로 글자에 숨는단 말씀이십니까?”

“그러니까 상황에 따라서 숨을 자리가 정해진다네. 그래서 숨기려는 자와 숨은 곳을 찾아내려는 자의 지략(智略)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는 것이라네.”

“그렇습니까? 정말 기존의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럴 것이네. 그래서 아직은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말부터 하고 이야기를 해주려고 하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일단 못 알아듣더라도 이야기를 꼭 듣고 싶으니 말씀을 듣겠습니다.”

“이름부터가 심상치 않지?”

“당연하지요.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면 귀담아듣겠습니다.”

“그럼 궁금한 점을 물어보게.”

“우선, 삼기(三奇)가 왜 을병(乙丙)정인지부터 말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천간(天干)이 아닙니까?”

“자세한 뜻은 모르더라도 글자는 이미 봐서 알 것이네. 갑기자오9도 배웠으니까 말이지. 하하~!”

“맞습니다. 글자만 아는 것이지요.”

“기문(奇門)은 다른 말로 하면 ‘삼기(三奇)가 팔문(八門)으로 돌아 다닌다.’고 할 수도 있다네.”

“삼기란 세 가지의 기이한 것이라는 뜻인가요?”

“글자만 봐서는 그런 뜻이지.”

“왜 하필이면 열 개의 천간에서 유독 을병정만 기이한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갑(甲)이 뭐라고 했나?”

“황제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네. 그리고 갑이 가장 무서워하는 글자는 뭔지를 알아야 하는데 아직 천간의 공부가 부족하니 여기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기회로 미루도록 하지. 대신에 을병정(乙丙丁)은 갑의 호위무사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그렇게 말씀하시니 느낌이 확! 옵니다.”

“이제 기문둔갑(奇門遁甲)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약간이나마 이해가 되었다고 볼까?”

“적어도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다만 알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합니다. 조금만 더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문둔갑은 줄여서 보통 기문이라고 하네. 그러니 나도 그렇게 말하지.”

“그게 좋겠습니다. 훨씬 있어 보입니다. 하하~!”

“기문은 네 개의 기문반(奇門盤)을 쓴다네.”

“처음 듣는 말씀이네요. 쟁반과 같은 것인가요?”

“기반(碁盤)은 들어봤는가?”

“그야 바둑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바둑판은 몇 가지나 되는가?”

“그야 한 가지뿐이지 않나요? 또 다른 것이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습니다.”

“그렇다네, 나반(羅盤)이라고는 들어봤는가?”

“그것은 풍수지리를 하시는 지사(地師)가 소지하는 필수품이라는 것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문에서는 기문반을 쓴다네. 그런데 그것이 네 종류가 있다는 것이지.”

“역시 규모가 대단합니다. 하나의 바둑판에서도 천변만화가 전개된다고 하는데 네 개라면 얼마나 많은 조화가 그 속에서 일어날 것인지를 짐작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역시, 말귀 하나는 기차게 잘 알아듣는단 말이지. 하하~!”

“공부가 부족하니 귀라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지 않겠나 싶어서 청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하~!”

“우선 이것을 살펴보게.”

이렇게 말하면서 객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듯한 벼루에서 먹을 찍어서 백지(白紙)에 그림을 그리고는 아홉의 숫자를 각각 써넣었다.

 

 

“자, 여기 왼손이 있네. 물론 손가락이지.”

“누가 봐도 손가락 같이 생겼습니다. 하하~!”

“이렇게 아홉의 숫자를 써 넣으면 되네.”

“아니, 그것은 마방진(魔方陣)의 구궁도(九宮圖)가 아닙니까?”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간단한 말씀을 손가락에다가 하시기에 별다른 이야기인 줄만 알았지 않습니까? 이것이네요.”

 

四 九 二

三 五 七

八 一 六

 

“이것을 손가락의 아홉 마디에다가 붙인 것이로군요. 여하튼 잘 이해했습니다. 하하~!”

“이것을 장상구궁도(掌上九宮圖)라고 한다네. 손바닥 위에다가 구궁도를 나타내는 것이지.”

“그런데 왜 손가락에다가 숫자를 부여한 것입니까?”

“아니, 싸움이 벌어진 전장에서 변화를 찾기 위해서 지필묵(紙筆墨)을 꺼낸다고 해서야 전쟁의 승리는 그만두고라도 어디 살아남을 수나 있겠는가?”

“그건 매우 위험하겠습니다.”

“그래서 신이 주신 손바닥에다가 구궁팔괘를 올려놓고 상황에 따라서 변화를 읽어 내야 한다네.”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스승님께서 문득 뭔가를 생각하시다가 손가락을 곱작거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생각하시느라고 버릇처럼 손가락 장난을 하시나보다 했지요. 그 속에 이러한 엄청난 천지의 이치가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습니다.”

“그러셨을 것이네. 하하~!”

“저도 이 방법을 익혀놔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기문에 쓰인단 말이지요?”

“그렇다네. 오(五)는 중궁(中宮)이라고 한다네.”

“그야 가운데 있으니까 중궁이라고 하는 말이 일리가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도 다 궁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까?”

“물론 모두가 궁이라네. 중앙을 뺀 나머지는 모두 몇 개가 되는가?”

“그야 여덟 개가 아닙니까?”

“여덟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가?”

“당연히 팔괘(八卦)지요.”

“맞았네.”

“예? 맞았다고요? 그렇다며 기문도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겠습니다. 이미 제가 아는 것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렇게 대견한 표정을 짓지 말게. 너무 유치해 보이지 않는가? 하하~!”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사실 아까 운산선생과 형님의 대화 속에서는 전혀 끼어들 곳이 없어서 너무나 답답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과 이야기를 나누니 나름 뭔가 좀 알고 있는 것도 있다는 생각에 그만~!”

“이해하네. 하하~!”

“그건 그렇고, 이 구궁도가 어떻게 쓰입니까?”

“원, 급하기도 하군. 날개도 없으면서 날겠다고?”

“예?”

“아니, 구궁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쓰이는 것이냐고 물으니 내가 기가 막히지 않은가 말일세. 하하~!”

“제가 좀 그렇지요? 하하~!”

유쾌하게 웃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깊어가는 노산의 밤 속으로 여운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