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4]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1. 유운산(劉雲山)의 팔괘진(八卦陳)

작성일
2017-01-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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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4] 제5장 노산(嶗山)의 인연(因緣) 


1. 유운산(劉雲山)의 팔괘진(八卦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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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이 담당 도사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방문하게 된 목적을 말했다.

“도관의 인연이 있는 분을 뵈러 왔습니다.”

지객도사는 낙안의 인사에 화답했다.

“찾으시는 분의 도호(道號)는 어찌 되시는지요?

“운산선생이라고 합니다. 듣자니 상청궁(上淸宮)에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사는 열심히 명단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상청궁에 계신 것이 맞습니다. 방문하신 선생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태산(泰山)에서 낙안이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기재하겠습니다. 편안하신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도사가 포권을 하자 낙안도 마주 인사하고는 우창을 봤다. 아직도 우창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절경과 오가는 도사들을 보느라고 바빴다.

“그만하고 올라가세.”

“아, 형님께서 뵐 분은 높은 곳에 계시나 봅니다?”

“그렇다더군. 대략 한 시진(時辰:2시간)만 오르면 될 테니 어여 가 보세.”

두 사람은 상청궁(上淸宮)의 입구인 심진문(尋眞門)을 지나서 등에 땀이 배일만큼의 석벽을 끼고 오른 다음에서야 비로소 상청궁에 다다랐다.

안내하는 도사를 따라서 어느 방 앞으로 갔다.

“운산선생님 객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말에 안에서는 인기척이 나더니 문이 열리면서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낙안을 보고서는 반가워하면서 들어오라고 한다. 안내하는 도사가 돌아가고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도체만강(道體萬康)하신지요.”

“반갑네, 손제(孫弟)! 먼 길에 노고가 많으셨군. 오랜만에 보니 더욱 도안(道眼)이 높아지셨는걸. 하하하!”

“선생님의 고견을 접한 지가 하도 오래여서 약간의 공부도 다 흩어지게 생겼습니다. 노산에 머무르신다는 전달을 받고서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잘 오셨네. 그리고 이 젊은 친구는?”

“아, 태산에서 같이 공부하는 도우(道友)입니다. 인사드리시게 아우.”

“처음 뵙습니다. 소생은 진하경(陳河鏡)으로 우창(友暢)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이렇게 넙죽 절을 올리자 상대도 마주 절을 하면서 말했다.

“아, 원래 진형이셨구려. 누추한 곳까지 오느라고 노고가 많으셨소이다. 편안하게 쉬도록 하시오.”

“고맙습니다.”

이렇게 주객의 인사가 소란스럽게 오간 다음에서야 차를 권하는 운산이었다.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 우창. 책 몇 권과 알 수 없는 도형들이 그려진 천이 벽에 걸려 있었다.

“자, 목이 마르셨을 텐데 차부터 드시고~!”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운산이 말을 꺼냈다.

“그래, 아우는 요즘 어디에서 수학하시는가?”

“여전히 수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하~!”

“진형은?”

“아, 소생도 수학의 말석에서 머뭇거리고만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창아우에게 말씀을 하대하시지요. 그래야 앉은 자리가 편안할 것 같습니다. 하하~!”

“오, 그럴까? 그럼 그러지. 그래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선생님. 많이 배우겠습니다.”

소탈해 보이는 모습과 말을 들으면서 우창은 마음이 편안해 졌다. 훌륭한 선생을 만났다기보다는 어려서 뵙던 마을의 훈장을 만난 듯한 기분도 들었다.

“원래 수학의 세계는 끝이 없다네, 한 만큼 또 다른 세계가 보이고 그것을 익혔는가 싶은 순간 또 다른 세계가 확 달려들지. 허허~!”

“맞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공부가 되는지 마는지도 모르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늘 연마하시던 기문(奇門)은 큰 진전이 있으셨겠지요?”

“아닐세, 천성이 하도 우둔하여 진전은 고사하고 퇴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월만 보내고 있다네. 허허~!”

“저도 반드시 선생님께 그 비전(秘傳)을 얻어야 하겠다는 마음만 먹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릇이 되면 전수해 주시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직도 백성을 구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지 않았군?”

“어떻게 버릴 수가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왕의 업을 이루려고 하시는 것을 버리지 않는 한 저도 버리지 못합니다.”

우창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뭔가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렇게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품고 있는 낙안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새삼 뿌듯한 마음도 생겼다. 그리고 운산으로 불리는 사람의 공부는 또 어떤 것인지도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러나 감히 끼어들 엄두는 감히 내지도 못하고 그냥 나누는 이야기라도 하나하나 새겨들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의 견문이 쌓이고 있는 것이었다.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지금의 천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까? 산속에서 책만 읽다 보니 세상의 풍경이 깜깜입니다.”

“음극(陰極)이네~!”

“백성의 삶이 바닥을 누비고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미 양생(陽生)이 시작된 것입니까?”

낙안이 그렇게 말하자 운산은 벽을 가리켰다. 그것은 천에 그려진 하나의 진형(陣形)이었다.

“저것 좀 가져와 보게.”

그 말을 듣고는 재빠르게 우창이 일어나서 줄에 걸려 있는 족자(簇子)를 가져다가 두 사람 사이에 펼쳐 놓았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맨 위에 적인 이름은 「팔괘진(八卦陣)」이라고 쓰여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던 낙안이 놀라면서 운산을 바라본다.

“아니, 선생님! 팔괘에다가 기문을 접목시킨 것이 아닙니까?”

“허허허~! 역시 눈이 무뎌지지는 않으셨군. 맞네.”

“변화가 무쌍하겠습니다. 이렇게 진법을 구사(驅使)한다면 가히 백전불태(百戰不殆)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놀랍습니다.”

“아직도 부족하네.”

“무엇이 말입니까?”

“공격할 적에는 천하무적이라고 할 만하다지만, 수세(守勢)에 몰리게 된다면 이때가 문제이네.”

“어느 누가 감히 이러한 진법을 운용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괜한 걱정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태평스러운 마음으로 어찌 병법가가 된단 말인가? 천만 분의 일이라도 생길 가능성이 있다면 대비를 해야 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수비를 할 적에는 무엇이 문제란 말씀입니까?”

“시방(十方)의 적은 어떻게 막아본다고 하겠지만 하늘의 적에 대해서는 무방비(無防備)란 말이네.”

“아, 그런 것까지 생각하고 전장(戰場)에 나가야 하는 것이로군요. 과연 선생님의 심모원려(深謀遠慮)는 제가 맨발로 평생을 쫓아가도 불가능한 경지이십니다.”

“너무 그러실 것 없네. 허허~!”

“그런데, 적이 하늘에서도 공격을 합니까? 그런 법이 있다는 말은 절벽 위에서 활을 쏘거나 암석을 굴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런가? 3년 전에 개봉의 근처에서 전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 불을 피워서 하늘에 뜨는 천공선(天攻船)으로 공격하자 손도 변변히 써보지 못하고 바로 패했던 적이 있었다네. 이렇게 천공선으로 공격을 한다면 이 팔괘진으로는 속수무책이라서 그 답을 궁리하고 있는데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군.”

“그런 것도 있었습니까? 어떻게 불을 피워서 하늘에 배를 뜨게 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과연 기묘한 무기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아마도 서양에서 들여온 신무기일 것으로 생각이 되네. 그래서 천공선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네.”

그러면서 운산은 다시 두루마리 하나를 펼쳤다. 그곳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위는 둥근 자루와 같은 형태로 되어있고, 그 아래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바구니와 자루의 사이에는 장작으로 보이는 연료가 불이 붙어있는 그림이었다.

“이것은 또 무슨 원리로 작용하는 것입니까?”

“하늘의 형상을 본떠서 만들어서 둥글게 생겼다네. 그리고 아래에 매달린 바구니와 같은 것은 땅을 본떠서 각이 지도록 생겼지. 여기에서 중간에는 사람이 들어가서 불로 공기를 데우면 더운 바람이 자루를 부풀리게 한 다음에 하늘에 떠오르게 된다네. 다만 해결해야 할 점은 아직도 태산이라서 실전(實戰)에 투입하려면 멀었네.”

“이야~!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 틀림없겠습니다. 과연 놀라운 기술입니다. 어서 그것이 완성되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론은 그럴싸한가?”

“물론입니다. 더구나 천지인(天地人)의 이치에도 부합하도록 제작된다는 것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가 있습니까? 바로 띄우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겠는데 말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화력(火力)이라네. 오행에서 득화(得火)하는 방법은 목생화(木生火)인데, 그 목을 나무에서 얻으려니까 매우 큰 분량을 감당해야 하고, 그 무게로 인해서 천공선은 더욱 커져야 하는 것이 문제라네. 그렇게 되면 높이 날아오르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게 되는 까닭이라네.”

“그렇다면 화력이 가장 좋은 자작나무나 소나무의 관솔을 이용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생각해 보고 있네. 그리고 또 하나는 방향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는 것이네. 그래서 만약에 어렵사리 하늘에 띄웠는데 바람이 바뀌게 되는 날이면 아무런 쓸모가 없는 물건이 되어버리는 것도 풀리지 않는 숙제라네.”

“듣고 보니 쉽지 않은 문제이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실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낙안이 감탄을 하면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서 우창은 신기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면서 뭔가 이해가 될 것도 같은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낙안의 말이 이어졌다.

“그러니까, 적을 몰아넣을 적에는 팔문(八門)을 이렇게 변형을 시키면 수천의 적들도 모두 항아리 속의 쥐가 되고 마는군요. 어떻게 이런 착안을 하셨습니까? 참으로 기발한 병법(兵法)입니다. 감탄했습니다.”

“간단하네. 경문(驚門)으로 막고 두문(杜門)으로 출구를 없애버리면 갈 곳을 잃게 되는 것이지.”

“아무리 기문(奇門)에 밝은 사람이라도 이 진법에 갇히게 된다면 생문(生門)을 찾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좀 혼란스럽겠지. 그래서 나도 그 안에 들어가서 생문을 찾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네. 누군가 이와 같은 진을 만들었다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빤히 눈을 뜬 채로 당한다면 그게 무슨 꼴인가 말이지. 허허허~!”

“어련하시겠습니까. 이미 해결책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을 좀 알려 주시면 먼 걸음을 한 것은 조금도 아깝지 않을뿐더러 금은보화를 가득 얻은 것이나 진배없겠습니다.”

“사문(死門)!”

간단하게 한마디를 하고는 조용해졌다.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러한 적막감을 우창은 처음 느껴 봤다. 사문이라니.... 죽음의 문이란 뜻인가? 그런데 그 답이 왜 낙안을 침묵하게 만들었을까. 영문을 모르는 우창은 그냥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팔괘진에 눈길을 주고 있던 낙안이 고개를 번쩍 들고서 말했다.

“사즉생(死卽生)이었군요! 놀랍습니다.”

“그 길이 유일하게 살아나는 길이라네. 그런데 죽음의 공포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쉽사리 사문에서 생문을 발견하기는 어렵지.”

“심리전(心理戰)이로군요.”

“전쟁하기 전에 마음으로 먼저 이겨야 하는 것이니 결국 승패는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하~!”

“놀랍습니다. 그런데 아예 생문을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병법가들이 왜 그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왜 안 됩니까?”

“토!”

“토로 인해서 안 되는 것입니까?”

문득 멍하게 있든 우창의 귓가를 울리는 한 마디였다. 토, 그래서 정신이 화들짝 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운산을 바라봤다.

“토의 중용으로 인해서 그 문을 없앨 수가 없다네.”

“정말 자연의 이치는 한쪽 편을 드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싸움에서 질 수는 없는 일이니 이렇게라도 위계(僞計)를 써서 심리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최상책이라네.”

“정신만 차리면 죽으란 법은 없단 말씀이지요?”

“그렇다네. 이러한 상황에서 생문을 발견할 사람은 아마도 당금(當今)의 전략가 중에서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겠네. 아마도 수년 후가 되면 아우도 그중에 하나가 되겠지.”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노력하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능히 도달하고 말 것이네. 허허허~!”

“그런데 왜 생문에다가 감괘(坎卦)를 놓으셨습니까? 살아나려다가 물에 빠져서 익사(溺死)하는 형상이 아닙니까?”

“두문에 리괘(離卦)를 놓은 뜻은 알겠는가?”

“그야 불길로 인해서 길이 막힌 것처럼 보이려고 한 뜻이지 않습니까?”

“맞네. 그것을 벗어나려면 감괘를 타야 하는데 이번에는 사문이 버티고 있단 말이지. 그러니 짧은 순간에 그런 궁리를 한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쉽지 않을 것이네.”

“아하~! 이제 대략 짐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익사(溺死)의 두려운 마음에 생문으로 감히 다가갈 수가 없도록 한 것이군요.”

“이제야 그 의미를 깨달으셨으니 이미 그대는 팔괘진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셨네.”

“소중한 가르침을 뼈에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도무지 무슨 수작(酬酌)을 하는지 얼떨떨하시겠군. 우리만 아는 이야기를 해서 어쩐다.”

운산이 비로소 우창을 의식하고 인사치레를 하자 얼른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닙니다. 선생님과 형님의 이야기에 빠져서 넋을 놓고 있습니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느낌은 대략 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화중에 한 마디 정도는 알아들을 수도 있어서 그것도 신기합니다.”

“아!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게 뭔가?”

“토의 중용입니다. 겨우 며칠 전에 배웠는데 오늘 바로 그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학문은 서로 통하는 길이 있으니까 당연하지.”

“그래서 희망이 생깁니다. 토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사지(死地)로 몰아넣으려고 해도 토의 작용으로 삶의 길이 마련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옳거니~! 상당히 총명하시군.”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데 낙안이 끼어들었다.

“저도 우창에게 약간의 지도(指導)를 하면서 가끔 숨이 턱턱 막힙니다. 어찌나 집요하게 질문을 하던지 말이지요. 하하~!”

“그렇겠는걸. 아우도 막힐 때가 있겠어. 허허허~!”

“아닙니다. 과찬일 따름이지요. 항상 허둥대느라고 어디에 떨어지는 말인지도 모르고 천지사방으로 헤매기만 하는걸요.”

이렇게 세 사람이 웃음꽃을 피우는 사이에 저녁이 마련되었다면서 상이 들어왔다. 노산에서는 공부가 된 선생 급의 도사에게는 직접 상을 가져다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반주를 곁들여서 정갈한 저녁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