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2. 오행검법(五行劍法) 제오초(第五招)

작성일
2017-01-0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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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2. 오행검법(五行劍法) 제오초(第五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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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이 처음에는 다음번에 낙안을 만날 날이 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의외로 사행(四行)에 대해서 궁리가 잘 정리되는 바람에 빨리 찾아가서 토의 이야기를 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별로 존재감도 없어 보이는 토에 대해서 어떤 감동적인 가르침을 줄 것인지가 알고 싶어진 것이다. 그래서 낙안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은 지 3일도 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급해져서는 자신도 모르게 낙안의 처소(處所)를 찾았다.

낙안은 어딘가로 외출을 하려는지 채비를 갖추고 댓돌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아마도 오늘은 이야기를 나눌 일진이 아닌 것으로 생각이 되었는데 낙안이 먼저 말을 건넸다.

“아, 마침 아우가 오는군. 연구는 순일하시지?”

“당연하지요. 그러다가 이제 또 갑자가 관격(關格)에 걸린 듯이 콱 막혀서 병든 환자가 급하게 의원을 찾듯이 형님 생각이 간절하여 걸음을 했는데 아마도 헛걸음을 했지 싶습니다. 어디로 나들이하십니까?”

“지인이 좀 만날 수가 있겠느냐고 해서 나서는 중이라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괜찮으면 동행하려나?”

“예? 그래도 됩니까? 무방하다면 폐를 끼치지 않고 조용히 옆에서 있는 것을 조건으로 하고 동행하고 싶습니다.”

“이미 마음이 동했는데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럼 바깥바람도 쐴 겸 해서 나들이해 보세.”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원족(遠足)가는 마음으로 따르겠습니다. 하하~!”

“어디 가보세. 어쩌면 아우에게도 즐거운 나들이가 될지도 모르겠네.”

낙안은 출입관리처에 외출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우창도 동행한다고 알렸다. 심곡문에서는 수행하는 도사들의 출입기록을 일일이 남기도록 규정이 되어있었다. 다만 출입만 기록하고 어디로 무슨 일로 오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간여하지 않았다.

산문(山門)을 벗어나자 모처럼 새로운 풍경들이 신선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진 우창은 마음이 살짝 들뜨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속에서는 구름이라도 탄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이 빠른 낙안의 뒤를 쫓았다.

“그런데 가시는 곳이 어디인지는 여쭈어봐도 될까요?”

“아우도 그게 궁금하겠군.”

“아무래도 좋고 어디라도 좋으나 목적지는 어디인지요?”

“한 사람의 기인(奇人)을 만나려고 한다네.”

“말씀을 그렇게 하시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물론 저는 모르는 고인이시겠습니다. 형님이 찾아뵐 정도라면 그분의 지혜는 얼마나 뛰어나실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마 아우는 듣지 못했을 수도 있네. 그분의 이름은 왕개(王介)라고 하네. 호는 운산(雲山)이라서 보통 운산선생이라고 부르지. 원래는 절강성(浙江省)의 청전현(靑田縣)에 거주하는데, 몇 년 전부터 청도(靑島)에 있는 노산(嶗山)에서 수행하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네. 그래서 마침 태산에서 가까운 곳인지라 서둘러서 길을 나서게 되었다네.”

“저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어떤 분이신지요?”

“초야(草野)에서 원대한 포부(抱負)를 갖고 있으면서 강호의 의협(義俠)들과 교류를 하는 지사(志士)라네.”

“그런 인물이라면 형님과 반드시 교류해야 하겠습니다. 형님과 합의(合議)한다면 천하를 평정하는데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것보다 더 나을 테니까요.”

“아우가 뭘 안다고 그러시나. 하하~!”

싫지는 않은 표정으로 말을 받으면서 웃었다. 우창도 이러한 인연에 동행하게 된 것이 마냥 기뻤다.

“그래도 빠른 걸음을 걸어도 천리 길이니 열흘은 잡아야 하겠군. 지나다가 마차라도 만나면 얻어 타면서 가도록 하세.”

“예, 저야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냥 즐거울 따름이지요. 하하~!”

그렇게 태산을 빠져나가자 드넓은 산동(山東)의 평야(平野)가 드러난다. 초여름의 따사로운 기운을 받고 들에서는 곡식들이 자라고 있는 풍경이 싱그러웠다. 그것을 보면서 우창이 입을 열었다.

“형님께 배운 것을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들판은 토(土)가 되고 토에 심어진 씨앗은 지난겨울의 혹독한 수(水)를 받아서 힘차게 발아(發芽)하고 있으니 이것은 목(木)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따사로운 햇살은 화(火)가 되는데 금(金)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자연의 풍경도 오행으로 보이는 기이한 현상이니 이것은 병이라고 해야 할까요?”

“왜 금이 보이지 않을까?”

“글쎄요. 제가 아직도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까닭이겠지요?”

“아니지. 이미 제대로 알고 있어서 금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네. 계절로 금은 언제라고 했던가?”

“그야 가을이 아닙니까? 아하~! 가을의 일은 봄에 전개될 일이 아니라고 해야 하겠군요.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금(金)이 보이겠습니다. 맞습니까?”

“틀림없겠군. 그렇게 정리하면 되겠네.”

“그런데 사실은 오늘 형님을 찾아뵌 것은 토를 공부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렇게 계획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그야 뭔 상관인가? 아우가 있고 내가 있으면 그곳이 공부방이 되는 것을 말이네. 하하~!”

“하긴, 그렇습니다. 그럼 길을 가는 시간도 무료하니 토 이야기를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우선 아우가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해보는 것이 순서란 건 잘 알고 있겠지?”

“당연합니다. 그냥 묻는다고 해서 모두 말씀하실 형님이 아니신 줄은 알고 있으니까요. 하하~!”

“그럼 내가 묻겠네. 토는 무엇인가?”

“토는 배꼽입니다.”

“엉? 그건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

“그래도 조금 다릅니다. 사실 하늘 아래에 새로운 이론이나 학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모두는 복제하고 확장하여 다시 생산되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하긴 그렇군. 그렇다면 어디 말을 해보게 왜 토가 배꼽인가?”

“배꼽은 토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와 이어졌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땅이고 대지이고 인간의 고향인 까닭이지요. 그래서 글자도 제(臍)라고 하지 않습니까? 가지런하다는 뜻이 있는 것을 보면 대대손손(代代孫孫)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봐서 토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차! 내가 아우를 과소평가했네. 미안하이~!”

“형님께서 인정을 해주신다면 이것이야말로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혹시나 말이 되기나 할까 싶었는데 그래도 전혀 엉터리는 아닌 것으로 봐도 되겠습니다.”

“배꼽은 무슨 흔적인가?”

“그야 탯줄의 흔적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네, 그러니까 왜 그것을 태(胎)라고 할까?”

“글자의 의미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군요. 그렇지만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태(胎)는 태(台)에서 왔다네. 앞의 고기육달월(月)은 몸의 일부분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은 알 테고.”

“그렇다면 태(台)는 무슨 뜻입니까?”

“천상(天上)의 별에 대한 이름이라네. 자미성(紫微星)을 수호하는 별로 삼태성(三台星)이라고 있지. 그 별의 이름을 딴 것이라네.”

“옛? 배꼽에 별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토(土)의 비밀이라네.”

“아, 토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지요? 형님의 이야기에 빠지다가 보면 무엇을 공부하는 것인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하하~!”

“뱃속에서부터 외부와 연결이 된 것이 배꼽이고, 배꼽은 다시 우주와 연결이 되어있다고 해서 태(胎)라고 한 것이었다네.”

“인간의 조상이 무엇이라고 하던가?”

“신화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상은 웅녀(熊女)가 아닙니까? 곰이 여인으로 변해서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것은 조선(朝鮮)의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신화라네.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가?”

“예전에 스승님께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그 곁에서 얻어들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아무래도 좋네. 인간의 조상설화(祖上說話)에 곰이 등장하는 것은 여러 종족들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설화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그 곰과 연결된 이야기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자미성을 지키는 삼태성이 소속된 성좌(星座)가 대웅성좌(大熊星座)라네.”

“옛? 큰 곰의 별자리에 있는 것이 삼태성이라고요?”

“그래서 인간의 조상이 큰 곰의 기운을 받고 삼태성(三台星)의 도움으로 잉태(孕胎)를 하였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라네. 신화는 어디까지나 사실적인 배경에서 생겨난 이야기들이지.”

“곰과 탯줄이 그렇게 연결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토가 얼마나 대단한가 말이지.”

“그렇습니다. 생명창조의 근원에 존재하는 것이 토라는 것을 느끼게 되니까 다른 사행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특별함이 느껴집니다.”

“이 땅을 일러서 대지(大地)라고 하지 않는가?”

“그렇지요. 대지입니다.”

“대지는 어머니의 땅이라고도 한다네. 그래서 육신의 고향이라고도 하지. 삶을 마칠 적에 땅으로 돌아가서 묻히는 것을 어머니 품에 묻힌다고도 하니까 이것은 정서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라네.”

“그래서 토는 특별한 것이었습니까?”

“맞아, 또는 삶의 시작이고 또 삶의 끝이지.”

“그것을 토(土)로 표시하였군요. 도(十)가 중간에 있다는 뜻이지요?”

“그런 뜻도 되지만 도가 완성되었다는 뜻도 된다네. 독립적으로 우뚝하게 서 있으니 말이지.”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도(十)의 아래에 있는 일(一)은 무슨 뜻일까요?”

“그야 대지를 의미하는 것이고, 목(木)에서의 인(人)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지. 부모는 바탕이 되고 그 위에 도를 완성시키는 것이기도 하니까.”

“인(人)이 일(一)로 되었다는 것은....?”

“아, 이해가 되지 않았군. 토의 아래에 있는 일(一)은 일이 아니라 중간을 나눠서 왼쪽은 별(丿)이고 오른쪽은 불(乀)이라네. 이것이 서로 합쳐서 도의 바탕이 되어준 것이지. 바탕이 없이는 도(十)도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 것이기도 하네.”

“그렇다면 도(十)라고만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냥 도라고 하면 음양(陰陽)도 오행(五行)도 다 포함한 것이지만, 토(土)라고 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드러난 도를 말하는 것이라네. 추상적인 개념의 도와 구체적으로 드러난 도는 같은 뿌리의 다른 형상이라고 할 수 있거든.”

“어쩌면 무형(無形)의 도와 유형의 토로 이해를 해도 되지 싶습니다.”

“원래 도와 토는 같은 어원이라네. 도를 강하게 발음하면 토가 되는 것이잖은가?”

“그게 또 그렇게도 되네요. 도와 토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뿌리는 같은 것이었군요.”

“알고 보면 이러한 것을 통해서 발견하게 되는 진리가 수두룩하다네. 그래서 글자를 통해서 명상하는 경우도 흔하다네.”

“과연 공부거리는 어디에나 지천으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볼 줄만 안다면 공부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멀리 객잔(客棧)의 깃발이 보였다. 객잔을 보자 시장기가 든 우창이 요기도 하고 쉬어서 가자는 말을 꺼냈다. 낙안도 그렇게 하자고 하여 두 사람은 객잔에 들고 보니 이름은 남호객잔(南湖客棧)이었다. 주변의 강과 함께 호수가 어우러져서 풍광도 볼만했다. 더구나 버드나무의 새순들이 연둣빛으로 하늘거리는 풍경을 보니 운치가 그윽했다.

늘 산속의 바위와 초목만 보다가 드넓은 호수와 어부들의 고깃배를 보노라니 풍경이 아름다워서 창가에 앉아서 잠시 말을 잊고 감상을 했다. 예전에 스승님과 동행할 적에는 이런 풍경도 많이 봤지만 지금 바라보는 풍경은 그때의 느낌과도 사뭇 달라서 숙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