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1. 수(水)의 응집력(凝集力)

작성일
2017-01-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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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제4장 술수종횡(術數縱橫) 


21. 수(水)의 응집력(凝集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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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안에 대한 존경심을 가슴속에 품고서 자시 자신의 생각을 꺼내 놓는 우창.

“따지고 보면 인간을 이끄는 것은 두뇌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수가 주인인 것도 같습니다.”

“그럴 리가 있는가? 다만 기억을 담당한다는 것이지.”

“하긴, 어느 특별한 부위만으로 인간의 대표로 삼는 것은 편견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당연하지.”

“말하자면, 대지가 비를 만나지 못하면 모두 죽어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빗물을 대지의 으뜸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지요?”

“제대로 이해를 했네. 자연에도 오행은 골고루 각자의 몫이 있는 것이니까 저마다 본분에 따라서 행사(行事)를 하는 것이지.”

“화(火)의 따뜻한 기운이 없다면 초목은 병들어서 자랄 수가 없을 것이고, 수(水)의 촉촉한 기운이 없다면 초목은 말라 죽어서 자랄 수가 없으니 이러한 상황을 본다면 수화(水火)가 작용하는 경중을 어찌 논할 수가 있단 말인가?”

“맞습니다. 그렇다면 오행이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다는 말씀도 모두 공감이 됩니다. 그야말로 ‘근취저신원취저물(近取諸身遠取諸物)’이 틀림없군요. 이렇게도 궁리할 것이 많으니 만한전석(滿漢全席)을 받은 것만큼이나 행복합니다.”

“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화수미제(火水未濟)에 대해서나 조금 생각해 볼까?”

“예, 수화기제에 대해서 말씀이지요?”

“아니, 화수미제에 대해서.”

“먼저 말씀하신 것으로는 수화기제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랬지.”

“그런데 또 화수미제라고 하시니까 혹 형님께서 헷갈리셨나 하고요.”

“원, 그럴 리가 있는가. 하하~!”

“그러니까 수화기제는 상괘가 감괘(坎卦☵)이고 하괘가 리괘(離卦☲)라고 하셨으니까, 이번에는 상하가 바뀌어서 상괘가 리괘이고 하괘가 감괘라는 말씀인가요?”

“맞네.”

“비슷한 것 같은데 뜻은 미제(未濟)입니까?”

“그렇다네.”

“미제는 뭔가 제대로 되지 못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단지 위아래가 바뀌었을 뿐인데 뜻이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까? 너무 극에서 극으로 달리는 것 같지 않습니까?”

“비슷한 것은 같은 것이 아니라네. 그래서 겉으로 언뜻 보고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학문의 발전도 끝이라고 해야지. 그 미세한 차이를 뚫고 천지자연의 이치를 관조(觀照)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거든.”

“그런데 왜 미제입니까?”

“생각을 해보시게. 머리가 뜨겁고 발이 차갑다면 그 사람의 몸은 건강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건강이 다 뭡니까? 이미 병이 깊어도 한참 깊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몸으로 무엇을 할 수가 있을까?”

“당장 몸이 아프고 머리는 뜨겁고 쿡쿡 쑤시는데 무슨 생각이 나겠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두통보다 더 심한 고통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 기제일까 미제일까?”

“아하~! 그래서 미제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것입니까? 형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명료하게 이해가 됩니다.”

“주역의 마지막 괘인 64번째 괘이기도 하지.”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면 변화를 제일의(第一義)로 놓고 있는 주역에서는 흉한 형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자연에서도 마찬가지라네. 불이 위에 있고 물이 아래에 있다면 이 둘은 어떻게 될까?”

“그야, 불은 위로 올라가고 물은 아래로 내려가게 될 것이니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또 미제라네. 아마도 주역을 만든 문왕(文王)은 인체보다는 자연을 관찰해서 64괘를 설정했을 것으로 생각이 되기도 하네. 그러니까 이러한 관점이 더 근본에 가깝다는 이야기가 되네.”

“그렇다면 머리를 수로 보는 것은 누구의 관점입니까?”

“그야 송무(宋無)의 관점이지.”

“송무는 또 어떤 고인이십니까?”

“하하~!”

낙안은 그렇게 웃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그 순간 우창은 낙안의 이름이 송무라는 것을 떠올렸다. 아호(雅號)만 사용하다가 보니 이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면쩍게 웃었다.

“하하~! 이런, 정신머리 하고는 형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서~!”

“아니네. 당연하지. 이름은 사용하지 않으니 그런 것이지. 하하~!”

“그러니까 형님께서 생각해 낸 것이로군요.”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보면 고인의 가르침에서 우려먹을 영양분들이 가득하거든. 그래서 조금 빌려다가 다른 그릇에 담아 본 것이라네.”

“이미 다른 그릇에 담기면 다른 이론이 되는 것 아닙니까?”

“쓸 때는 그렇지. 같은 물도 대야에 담으면 세수를 하는 물이 되고, 차호에 담으면 찻물이 되는 거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런 궁리를 하면서 학문은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는 것이로군요. 저의 미력(微力)도 학문의 발전에 일조(一助)할 날이 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우도 이미 학문의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부지런히 좇아가기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요.”

“그러니까 학문의 발전에 일조(一助)한다고 하지.”

“어? 그냥 위로하시는 말씀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그냥 위로가 어디 있는가. 틀림없는 이야기만 해도 아까운 시간에.”

“왜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아우가 이렇게 물어주지 않으면 나도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새로운 방법이 만들어질 일도 없으니 발전은 그만큼 더뎌질 텐데 자꾸만 물어서 문제를 확장시키게 되니 더불어서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어지는 것이라네. 하하~!”

“아,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뭔가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하~!”

“송아지가 어미의 젖을 빨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렇게 되면 젖은 말라버릴 것입니다. 자꾸 빠니까 계속해서 젖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어미 소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단 말이네.”

“이제서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답변도 학문이고 질문도 학문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학문(學問)이라고 하지 않는가. 배우고 묻는 것으로 학문을 계속해서 살아 움직인다네.”

“학문이 살아 있다고요?”

“당연하지 않은가? 옛적의 고인이 시작해 놓은 작은 깨침을 후학이 다시 계승(繼承)하여 발전하게 되니 마치 어린 나무를 할아버지가 심어놓고 돌아가셨지만 아들과 손자들이 대대로 물을 주어서 키우게 되니 이것이 학문의 발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맞습니다. 학문의 의미까지도 이제야 제대로 깨닫습니다.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니 이미 하늘천 따지를 배우는 순간부터 학문의 발전에 기여한단 말이네.”

“하늘천(天)이고 땅지(地)가 아닙니까? 왜 따지라고 하시는지요? 형님이 배우신 훈장님은 혀가 짧으셨나 봅니다.”

“엉?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누가 따지를 땅지라고 하는가?”

“제가 배운 훈장님은 땅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 그 ‘땅’과 그 ‘따’는 서로 같다고 생각한 것이로군.”

“그럼 서로 다른 것입니까. 대지(大地)라고 할 적에는 큰 땅이라고 해석하지 않습니까?”

“아마도 주홍사(周興嗣)선생이 천자문을 만들었을 적에는 그 땅을 말한 것만은 아닐 것이네.”

“천자문을 만드신 분이 주홍사셨습니까? 그것도 몰랐습니다.”

“뭘 모르면 어떤가. 내용이나 제대로 이해하면 주홍사선생도 좋아할 것이네 하하~!”

“그럼 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세상의 모든 음적(陰的)인 존재를 포함해서 말을 한 것이라네. 단순하게 우리가 딛고 다니는 땅만 말했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좁은 소견이지.”

“얼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늘의 신을 어떻게 부르는가?”

“하늘의 신은 ‘하느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럼 땅의 신은?”

“땅....님.... 아니, 뭔가 이상합니다.”

“당연하지. ‘따님’이라고 하니까.”

“예? 따님요? 그것은 남의 집 여식에게 붙여주는 호칭이 아닙니까?”

“하느님과 따님이 보우(保佑)하시니 인간도 만물도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땅이라고 하는 것은 틀린 것이로군요?”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올바른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하겠지. 이러한 것을 학문의 퇴보(退步)라고 한다네.”

“오해와 편견으로 속단(速斷)하면 이러한 일이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 천자문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글공부를 했다고 하니 스스로가 부끄러워집니다.”

“그게 아우 탓은 아니잖은가? 훈장이 그렇게 가르쳤다며?”

“그렇긴 합니다. 그러니 지금 같으면 훈장님에게 가르쳤을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고 말이지요.”

“이미 아우는 그 오류를 바로잡았으니 되었네. 훈장도 제자가 말을 해주면 수용하지만 대부분은 역정(逆情)이나 내기 십상이니 그것도 봐가면서 해야 한다네. 하하~!”

“그렇기는 하겠습니다. 그나마 형님을 만났으니 다행입니다.”

“천지(天地)는 음양(陰陽)이라고 해도 되겠는가?”

“당연하지요.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주홍사선생도 천자문의 맨 처음에 음양을 놓았다는 것이지. 참으로 지혜로운 학자셨다고 봐도 되겠네.”

“아하~! 그게 또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과연 형님은 천자문을 제대로 읽으신 것 같습니다. 전 뭘 배웠나 싶습니다.”

“천자문은 우주론(宇宙論)으로 시작하는 경이라네. 그래서 천자경(千字經)이라고도 한다네.”

“정말 그런 뜻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냥 어려서 한자를 배우는 책이겠거니 생각만 했지요.”

“생각해 보게. 7~8세의 어린아이에게 우주론을 가르치려고 한 주선생의 탁견(卓見)이 얼마나 존경스러운가 말이지. 천지현황(天地玄黃)하고, 우주홍황(宇宙洪荒)하니라”

“하물며 외우기까지 하셨습니까?”

“스승이 알려주시는 것은 어느 것 하나라도 허투루 할 수가 없어서 모조리 외웠었네. 하하~!”

“시쳇말로 ‘범생(範生)’이십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

“요즘 학동(學童)들 간에 주고받는 속어(俗語)이니 마음 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하~!”

“헛소리는 그만하고 뜻이나 풀어 보게.”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는 넓고, 주는 거칠다.”

“그렇게 알고 있은들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하~!”

“아무래도 형님의 뜻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천자문을 배우자는 것은 아니니까 그 정도로 하고 넘어가겠네. 그나저나 화수미제에 대해서는 이해했는가?”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수화가 서로 만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사계절을 바탕으로 삼은 목화금수의 본질과 작용에 대해서는 정리가 잘 되었다고 봐도 되겠군.”

“여태까지 설명을 들은 것으로 봐서 토(土)는 별도의 할 일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 사상의 이치로도 자연의 변화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주역의 관점이라네. 금목수화인 것이지.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탠 것이 토가 되는 것이라네. 그런데 토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행검법(五行劍法)을 제대로 익혔다고 하기는 어려울 걸세.”

“그렇다면 또 궁리한 다음에 토에 대한 말씀을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렴 여부가 있겠는가.”

우창은 오늘 배운 수에 대한 이치까지 종합하면 대략 천지자연의 밑그림을 그릴 수가 있을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우선 이것들에 대해서 정리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낙안을 전송하고는 책상에 붙어 앉아서 먹을 갈았다.

 

먹물은 수라는 생각이 들자. 붓은 목이고 벼루는 금이고 먹은 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화들짝 놀랐다. 이미 배운 것이 실생활에서 그대로 적용이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