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9. 신통한 점괘(占卦)

작성일
2017-01-04 15:03
조회
1987

[022] 제2장 태산으로 가는 길 


9. 신통한 점괘(占卦) 


======================

백발도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서 자신에게 도움이 조금이라도 될 사람이 없는지를 찾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우창이 제안한 것에 대해서 공평하다는 듯이 다들 동조하는 모습이었다. 우창이 또 한 번 확인을 시켰다.

“여러분들께서 동의를 해 주시니 어서 백발도사님께서 적당한 사람을 물색하는 동안 기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사실 백발도사를 독촉하는 의미도 있었다. 드디어 백발도사에게 마땅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이웃에 살고 있는 여인이었다. 백발도사가 그 여인을 가리키자, 그 여인은 쭈뼛거리면서 앞으로 나왔는데 마침 손에는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시장을 다녀오는 것 같았다. 그 여인의 붉은빛의 겉옷을 입은 것을 보고 우창은 즉시로 무아지경의 점괘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번에는 조금밖에 배우지 못했지만, 주역(周易)으로 풀어보자. 단시는 참으로 단순하지만 대단한 위력이 있는 점술이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같은 문제로 풀이를 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결론이 같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차(再次) 사용하기에 불가능하다는 점이 문제로구나.

그러니까 이번에는 주역을 가지고서 한번 접근을 해보자. 사부님이 말씀하시기를 ‘무슨 점으로 해석을 하던지 그 마음에 부합되기만 한다면 결과는 같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니까 단시로 나오는 답이라면 주역으로도 나올 것이다. 다만 아직 익숙하지는 못하므로 기본적인 것만 갖고서 시도를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누구는 처음부터 잘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자 아랫배의 단전에서부터 자신감이 배어 나왔다. 더구나 이미 한 판은 이겼기 때문에 진다고 해도 답답할 것이 없다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

보자..... 지금 저 여인은 나이가 대략 60세는 넘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미 늙은 여인이고, 늙은 여인은 노음(老陰)이다. 이것은 팔괘로 본다면 곤위지(坤爲地)에 해당한다. 그러면 하괘는 곤괘로 하자. 상괘는 여인이 겉옷으로 걸치고 있는 것이 붉은색이다. 이것은 불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괘로는 리위화(離爲火)가 된다. 그렇다면 위는 화(火), 아래는 지(地)가 되는데, 이 둘이 합하여 괘의 이름은 화지진(火地晉)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이것이 어떻게 해석되는 것인지는 아직 공부를 못 했으니 어쩔 수가 없다. 다만 이것만으로 풀이를 해보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땅 위에 불이 있다면 그것은 태양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저 바구니 안에는 내일 아침에 먹으려고 준비한 것이 있다는 말이 되는구나. 또 하괘(下卦)는 안쪽이 되고 상괘(上卦)는 바깥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안으로는 유순하고 밖으로는 붉은 것이니까 속은 부드럽고 색은 붉은 것이 되겠다.

그리고 붉은 것이 3개가 있다는 이야기는 화(火)의 수(數)가 삼리화(三離火)로 3이기 때문이다. 리괘는 양음양(陽陰陽)의 구조로 되어있으니까 겉은 단단하고 속은 부드러운 것으로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면 속이 부드럽고 겉은 붉은 것이 3개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근데 그 물건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창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과연 그렇게 생긴 것이 무엇일까?

우선 반찬거리를 생각해봤다. 붉은색의 음식 재료에는 당근과 고구마, 감자가 있는데 이것들은 속이 단단하다. 가만 반드시 반찬거리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냥 아침과 태양의 의미가 있는 과일도 좋다. 그렇다면 뭐가 있는가를 보자.

지금이 늦가을이다. 이 시기에는 사과가 있다. 사과는 색이 붉고 속은 부드럽다. 그리고 또 석류가 있는데, 사과는 저렴하고 석류는 귀하기 때문에 비싸다. 저 여인의 행색으로 봐서 주식이 아니라 주전부리에 해당하는 석류를 살 것 같지는 않고... 그렇다면 사과일 가능성이 많겠구나.

다시 정리하자. 저 장바구니 속에는 사과가 3개 들어있다. 그리고 그 사과는 내일 아침에 식사를 마친 후에 먹으려고 산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놓고 보니까 그럴싸했다. 이제 맞고 틀리고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우창은 눈을 뜨고서 백발도사를 바라봤다. 그는 땀을 흘리면서 궁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까는 용케도 핑계를 대어서 위기를 모면했으나 이번에는 아마도 핑계를 대고서 넘어가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우창은 여유 있게 잠시 시간을 주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도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은 일찍이 해본 적이 없었는지라 모두 침을 삼키면서 구경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이런 기회에 이렇게 안하무인인 사기꾼을 단단히 혼내주고 역학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심오한 자연의 이치이면서도 또한 예지학(豫知學)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이런 생각을 한 다음에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백발도사에게로 다가갔다.

“자, 도사님 이제 말씀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부디 올바른 답이 나오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말씀을 하시지요.”

“이번에는 그대가 먼저 말하시오. 아까는 내가 먼저 말했으니까 말이오. 그래야 공평하지 않겠소?”

“역시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럼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그런데 미리 말씀해둘 것이 있는데, 만약에 같은 답이 나온다면 다음에는 그 개수로써 승부를 가리겠습니다. 물론 그 개수는 뒤로 돌아서서 손가락으로 표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 눈치로 답을 알아채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어서입니다. 여러분도 이의가 없으시겠지요?”

우창은 이미 이 작자가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서 이렇게 미리 도망갈 구멍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대단히 실망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럼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저 속에는 사과가 있습니다. 아주 빨갛고 잘 익은 사과로군요. 몇 개인지는 지금 말씀을 드릴 수도 있으나, 이 도사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실는지 몰라서 일단 양보를 하겠습니다. 그럼 도사님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내 답도 그 속에 사과가 들어있다는 것이오.”

그러자 그 여자는 신기하다는 표정과 함께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도사의 얼굴을 보니까 매우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우창은 회심의 미소를 머금고서 둘이 등을 맞대고 돌아섰다. 그리고서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동시에 손가락을 펴기로 했다. 오히려 구경꾼들이 더 적극적이었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하나, 둘, 셋!”

이렇게 외치면서 우창은 손가락을 셋 폈다. 그리고 도사는 우창이 팔을 들어 올리자, 자신도 팔을 들어 올린 다음에 손가락을 전부 폈다. 그리고서 자신도 모르게 우창의 손가락을 보았다. 사람들도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눈길은 일제히 여자의 바구니로 향했다.

여자는 난감한 듯이 잠시 주저하였으나, 사람들이 채근하므로 속에 들어있는 것을 땅에다가 꺼내 놓았다. 그런데 역시 우창이 예견한 대로 빨간 사과가 세 알이 나왔다. 아무리 털어도 다섯 개는 아니었다. 우창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인해서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백발도사는 할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미묘하게 변했다. 놀라움과 창피스러움이 얽힌 표정으로 즉시 우창에게 다가와서는 세 번 머리를 조아렸다. 시원시원하기는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진짜 도사님을 몰라 뵙고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습니다. 부디 제자로 거두어서 사람을 만들어 주시면 분골쇄신으로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이 어리석은 촌부가 우물 안 개구리를 면하고 참으로 높은 학식의 위력을 그대로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원래 역학은 이런 것이겠거니 하고서 살아왔습니다만, 오늘 참으로 스승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진심으로 드리는 부탁이오니 부디 져버리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이렇게 나오자 오히려 우창이 어색해졌다. 실은 단단히 호통과 망신을 주려고 이렇게 모험을 했는데 이 사람이 미리 알아서 스스로 머리를 숙이니 다시 뭐라고 냉혹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그의 말이 일리가 없다고도 못 하겠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마음을 다시 고쳐먹었다. 그래서 주변에다가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지켜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시합을 했으니 그만 돌아가셔도 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사람들이 우창에게 축하의 박수를 쳐주고 제각기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창은 그 백발도사를 데리고서 다시 도사의 집으로 들어갔다.

도사는 방에 들어오자,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인지 거듭 사죄를 하고서는 자신의 과오를 용서해 달라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원래가 천성이 모질지 못한 우창은 그만 독한 마음이 봄눈처럼 녹아버렸다. 그렇게 애원하는 것을 보니 딱하기도 했다.

“자, 그만합시다. 이제 역학의 위력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알게 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저는 그만 갈 길이 급하여 일어나도록 하겠으니 이 일은 즉시로 치우고서 평범하게 살기 바랍니다.”

“아니, 그냥 가실 수는 없습니다. 소생은 이제야 뭘 공부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제가 배운 선생이 가르친 대로 했을 뿐인지라 그것이 역학의 모든 것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이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았습니다. 저는 당장 스승님을 따라나서도록 할 참입니다. 그러니 우선 오늘 밤은 여기에서 주무시고 내일 저를 데리고 가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절대로 귀찮게는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 마음이야 알겠지만 저는 지금 제 한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처지입니다. 그리고 또 태산으로 역학을 배우러 가는 중입니다. 어찌 그러한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옛? 이미 도를 통하신 도사님이 무엇을 더 얻으시려고 공부하십니까?”

세상에서 제일 신통한 도사인 줄로 알고 있다가 공부하러 간다는 말을 듣자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또 뭘 배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가 막힌 모양인지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 줄도 몰랐다. 그 표정을 보면서 우창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의 사부님은 저보다 수백 배의 도력이 있으신 분인데도, 아직도 연구하고 계시는걸요.”

“그분이 누구시라고 하셨지요?”

“혜암도인 진상도라고 하십니다.”

“저도 혜암도인이라는 분에 대해서는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신선의 제자이시니 이렇게 대단한 수법을 갖고 계시지요. 저는 절대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설사 지옥으로 가신다고 할지언정 저를 데리고 가주셔야 하겠습니다.”

우창은 난감했다. 뭐 하러 괜스레 인연을 만들어서는 이렇게 짐을 떠맡게 되었나 싶기도 하고, 또 이것도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3년 전에 자신이 진상도에게 공부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을 적에 만약 그대로 뿌리쳐버렸다면 또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을는지를 생각해보니, 차마 그냥 뿌리치고 갈 수만도 없어서 난처했다.

그러나 한편 생각을 해보면 이것도 인연이니 태산으로 데리고 가서 공부하도록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이렇게 백발도사라는 간판을 달고서 예언을 하던 사람이라면 이 방면에 공부할 인연을 만나지 못한 것이지 실제로 인연만 주어진다면 오히려 더 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래서 과연 공부할 그릇은 되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관상을 뜯어봤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마가 그런대로 도톰하고 천이궁에는 이동하게 되는 찰색(察色)이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천성이 본래부터 사기꾼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그래서 우선 태산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다음에는 또한 그 후의 인연에 맡기기로 하고서 떼어놓고 갈 수가 없는 것이 인연이라고 결정을 내리고서 허락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