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제1장 화산의 노도인/ 11. 달마대사(達磨大師)의 한 소식

작성일
2017-01-04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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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제1장 화산(華山)의 노도인(老道人)

 

11. 달마(達磨)의 한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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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산(崇山) 소림사(小林寺)

자고이래로 불교(佛敎)를 두 갈래의 큰 흐름으로 삼았을 적에 부처의 가르침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배우고 익히면서 수행하는 교종(敎宗)과, 참선(參禪)과 깨달음을 목표로 삼고 부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선종(禪宗)이 있는데, 바로 이 선종의 대본찰로써 그 명성을 쟁쟁하게 날리고 있는 중국 불교의 본산이 소림사이다.

그리고 천축(天竺)의 향지국에서 왕자로 태어나서 출가하여 수행을 한 사람으로 달마(達磨)가 있다. 그는 한 번 앉으면 날이 새는지 밤이 되는지도 모르고 오로지 명상에만 몰입하였더니 스승인 제27조 반야다라(般若多羅)를 만나 깨달음을 인가(認可)받고 불조(佛祖)의 혈맥(穴脈)을 이은 다음에 중국으로 건너와서 소림사에서 머문 후로는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대찰(大刹)이기도 하다.

모든 불교의 신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마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려고 모두 소림사를 찾게 되었고, 그 바람에 소림사의 아래에는 커다란 도읍이 생길 정도였다. 원래 사람이 모이면 장사꾼도 생기고 음식점도 생기는 법이다. 조용하던 소림사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성시(城市)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거나 말거나 그냥 소림사의 석굴에서 조용하게 명상수련만을 하고 있었다. 이미 5년 전에 불조(佛祖)로부터 전해 받은 의발(衣鉢)을 29대인 혜가(慧可)에게 전해 주고는 자신은 홀가분하게 정진을 하고 있었다. 이미 불도(佛道)를 깨달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더욱 깊이 궁구할 무엇이 있어서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래에는 자신의 공부가 불타의 교법에 구애를 받지 않고서 자연의 삼라만상에까지 두루 포함이 된다는 것에 대해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불타의 가르침이 자연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달마는 그렇게 궁구를 해가던 와중에 왕이 달마를 부른다는 전갈을 받았다. 달마가 왕을 만나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렇게 만난 왕은 달마에게 물었다.

“짐이 스님들이 공부하도록 500개의 절을 짓고, 3만 명의 사람을 출가시켜서 스님이 되도록 했고, 또 수없이 많은 시주를 했는데 이 공덕이 얼마나 되겠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왕의 말을 들은 달마는 이 황제가 거짓된 모습에 현혹이 되어서는 한갓 그 마음에 헛된 집착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서는 불쑥 말했다.

“실로 황제의 공덕은 한 푼도 없소.”

‘공덕이 태산 같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뜻밖의 말을 들은 황제는 진노(震怒)해서 달마에게 푸대접을 했고, 달마는 황제의 그러한 꼴을 보고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 조용하게 소림사로 들어와서 수행에만 힘쓰기를 9년, 세인들은 이를 일러서 ‘소림가풍’이라느니 ‘9년 면벽’이라느니 하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하고 있었지만, 달마는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았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다시 황제가 자신을 부른다는 말을 듣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황제가 나를 찾는다면 필시 없애버리고 싶은 까닭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냥 여기에서 버티면 소림사가 화를 당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나면 순교(殉敎)가 되므로 사람들도 더욱 불타(佛陀)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있을 게 아니라 황제를 만나고 사약을 받는 것이 유익하겠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한 후에 황제를 만나기로 했던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소림사의 제자들이 말리고 잡아도 그냥 뿌리치고 나아갈밖에.

 

황궁에 도착한 달마대사는 황제를 배알(拜謁)했다. 천자는 신하들에게 둘러싸여서 달마를 맞이했는데 이미 그 현장에는 형벌을 집행할 준비가 다 갖춰져 있었다. 달마에게 내려진 죄목은 역적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원래 당시에는 항상 현인을 가두고 핍박하는 죄목으로 등장하는 단골 죄목이었다. 달마도 이미 예견하고 있던 바였다. 황제를 모독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대적인 분위기에서도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여봐라. 역적을 도모한 자에게는 어떠한 벌이 내려지는가?”

“예. 역적에게는 사약을 내리고 삼족을 멸하는 형벌이 내려집니다.”

“그렇다면 사약을 내리도록 하라.”

달마는 변명할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하게 앉아서 사약이 든 약사발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이 데리고 온 시자에게 한번 눈웃음을 찡긋하고는 약사발을 후루룩 마셔버렸다. 잠시 후, 얼굴빛을 하얗게 바꾸면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시종들이 거듭 달마의 숨이 끊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 관에 모시고서 장례의 절차를 밟았다.

그래도 겉으로는 불심천자(佛心天子)였기 때문에 대사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서 장례만이라도 후하게 치러준 것이다. 그리고서 모두는 달마의 장례가 끝나기를 기다려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머지않아서 달마대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죽어간 것에 대해서 소림사기에만 몇 줄 기록이 될 것이다. 이것이 역사요 삶인 것이다.

당시에 서역으로 보내졌던 사신 동완(董琬)이 있었는데 평소에 독실(篤實)한 불교의 신봉자로 달마를 만나서 법문(法門)을 청해 듣곤 하던 사람이었다. 천축에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서 귀국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총령(葱嶺)에서 잠시 쉬고 있다가 멀리서 다가오는 노승을 만났다.

평소에도 항상 불교를 좋아했던 동완은 그가 달마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봤다. 달마의 특이한 형상은 10리 밖에서 봐도 알아볼 수가 있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림에서 여러 차례 만나서 좋은 말씀을 들었던 것을 당연히 또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여기를 지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던지라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아니 대사님 어쩐 일로 여기를 지나가십니까?”

“아, 누군가 했더니 동완 거사였구나. 껄껄껄~ 먼 길에 별일 없으시고?”

“소림에 계시지 않으시고 웬 만행(萬行) 길에 나서셨습니까?”

“그래, 이제 이 땅에도 인연이 다 된 것 같아서 돌아가는 중이라네. 수행 잘하여 성불(成佛)하시게. 껄껄껄.”

언제나처럼 그렇게 너털웃음을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다시 묻고 싶었지만 이미 웃음소리와 함께 달마는 주장자에 짚신을 한 짝 꿰어 매달고는 맨발로 성큼성큼 저만치 사라져가고 있었다. 합장하고는 손을 흔들면서 멀어져 가는 달마를 작별했다.

이윽고 장안으로 돌아온 동완은 황제를 뵙고는 물러 나왔는데 대신들이 수군거린다. 달마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동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며칠 전에 총령에서 만났던 달마가 사약을 받고 돌아가셨다니 이상했다. 그래서 조용하게 밤이 되기를 기다려서 달마대사를 장사 지냈다는 무덤을 파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관속은 비어있었고, 짚신만 한 짝 덜렁하니 들어있었다.

그 모습을 본 동완은 혼자서만 고개를 끄덕였다. ‘황제가 성화를 해대니까 이렇게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구나.’하는 생각을 하고서는 다시 원래대로 무덤을 손질해놓고서 자신도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렇게 조용히 있어 주는 것이 달마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 다시는 달마를 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건곤대나이의 절묘한 수법으로 임시로 죽었다가 살아난 달마는 이렇게 총령고개를 지나서 다른 고을로 가다가 문득 옛 친구인 혜암(慧岩)과 만나기로 약속한 기일이 생각나자 문득 발걸음을 돌려서 그 길로 화산으로 향했다.

화산은 험난했지만, 달마대사에게는 별로 힘이 든 길이 아니었다. 이미 고도의 내공으로 단련이 된 달마에게는 평지나 다름이 없었고, 높은 안력(眼力)은 사람이 살고 있을 만한 석벽을 찾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문득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빈승 달마가 혜암도인에게 문안드리오~!”

“아니, 달마라면 숭산의 그 달마존자시오?”

“그렇소. 하늘 아래에 하나의 진리가 있듯이 달마는 숭산의 그 달마뿐이라오.”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초면에 서로 만났지만 마음은 이미 서로 백년지기(百年知己)가 된 듯이 상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원래 정신세계가 최상승(最上昇)의 경지가 되면 언어 이전에 소통이 되고, 눈빛으로도 무진설법(無盡說法)이 가능한 법인가 보다.

“이 세상에 진리가 아닌 것이 없을진대 불학(佛學)이던 역학(易學)이든 무슨 차이가 있으오리까. 그래서 제자들이 들고 온 역경(易經)을 잠시 보았더니 비록 천축에서는 보지 못했던 경전이었지만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을 소상하게 담고 있어서 마음을 갖고 약간의 궁리를 해 봤소이다.”

“참으로 대단한 법력이십니다.”

“대단은 무슨. 내가 보기에는 혜암도인이야말로 참으로 대단한 도력을 갖고 계신 분이시오.”

“그나저나 뭔가 가르침을 주시려고 이 누추한 곳에 왕림하였으리라고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만, 귀중한 소식의 한 자락을 들려주시기 고대합니다.”

“빈도는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공(空)이나 무(無)와 같은 것들에게서 도를 찾았습니다만, 근래에는 눈에 보이는 사소한 것들에게서도 얼마든지 도를 찾을 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를 하고 있던 중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고견을 경청하리다.”

이렇게 말하면서 품속에서 두루마리를 내밀었다. 그 천에는 거칠게 쓴 글씨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었다.

“그럼 천견(淺見)이나마 궁금하니 살펴봅시다.”

두루마리의 첫 구절에는 ‘일체의 형상에는 그만한 마음이 들어 있다.’고 쓰여 있었다.

“흠...”

“무심(無心)과 직관(直觀)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수행을 했으나 언제부턴가 유형(有形)의 물질(物質)에 속해있는 형이하학(形而下學)에서도 얼마든지 진리가 드러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소이다. 마음에 따라서 물질이 생긴다는 말도 옳고, 물질에 따라서 마음이 생긴다고 해도 맞는 말이라는 생각을 했소이다.”

달마의 이 말에 진상도는 손뼉을 치면서 동의를 표했다. 원래 절정(絶頂)의 고수들은 단순한 한 마디의 글에서도 서로의 폐부(肺腑)를 꿰뚫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마음 한편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하긴 그들의 선후를 구별한다는 것은 계란과 닭의 시비를 보는 것과 같을 것이외다. 지당하신 말씀이오.”

“박복(薄福)한 달마가 이제야 모처럼 마음이 통하는 지기를 만난 듯하오. 바로 알아들으실 줄은 짐작했으나, 이렇게 동의를 해 주시니 제대로 인연이 된 듯하오.”

“그러니까 물형심법(物形心法)이라고 이름을 붙이신 것이오? 이러한 이름도 물론 타당합니다만, 후세의 학자들은 달마심법(達磨心法)이라고 불러 줄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야 아무렴 어떻겠소이까. 산중에서 뛰놀고 싸우는 동물들의 형상을 빌려서 그 마음을 관조(觀照)한 것이니 세상의 넓은 견식(見識)을 갖고 계신 혜암도인께서 본다면 우습게 보일 수도 있을까 싶소. 껄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