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 더 열심히 살라는 정유년의 선물

작성일
2017-01-01 09:29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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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더 열심히 살라는 정유년의 선물.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기다리든 말든 세월은 흘러갑니다. 그리고 연도의 숫자를 바꿔서 또 한 해를 살아보자는 벽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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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 봤습니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메시지를 가득 담고서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숫자들.......

정유년(丁酉年)입니다.

벗님의 2016년은 어떠하셨는지요?

즐거움만 가득하셨는지요?

아니면, 고뇌의 나날을 주체하지 못하고 맞이한 새 해인지요?

어떤 행로를 겪어 오셨더라도 새 날에 도달하는 것은 같은가 봅니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2017'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또 희망을 갖고서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자기 암시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바램이 다시 정유년의 마지막 날에 흐뭇한 미소와 뿌듯한 충만감으로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낭월도 그러고 싶은 까닭입니다.

여기까지는 신년인사입니다. 하하~!

그리고 이제부터는 자랑질 겸,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이라고 하겠습니다.

 

1. 날아온 책 한 권.


어제는 책이 한 권 배달되었습니다.

아는 사람의 이름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 무슨 책을 보냈을까.... 싶은 마음에 포장지를 열었습니다.

"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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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짐작이나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이 정신나간 땡땡이 화상아, 운명이니, 팔자니, 오행이니 하는 개소리를 그만 하고 니 자신이나 잘 들여다 봐라~!"

어떠십니까? 이러한 생각이 든다는 것에 공감이 되시는지요? 나름대로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접수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드는 생각이랍니다. 찬사가 5라면 비난도 5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낭월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음양의 이치이니 아무리 만들려고 해도 억지로 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또한 자연의 이치려니 싶은 마음으로 담담히 임하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애초에 세운 계획은 잘 이뤄지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무슨 계획을 세웠느냐고요? 10%, 그러니까 9가 비난을 하더라도  1만 동의해 준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이라는 계획입니다. 하하~!

그에 비하면 절반의 비난은 감수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지요. 그렇거나 말거나 책의 제목을 본 순간, '뜨앗~!'했습니다. 얼마나 뜬금없습니까? '개소리'라뇨. 낭월은 닭소리를 하고 싶은데 어떤 사람에게는 개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닭소리나 개소리나 그게 그것이 아니냐고요? 어허~! 이러심 안 됩니다. 하하~!

 

2. 개 소리


자, 우선 개 소리에 대해서 부터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개가 멍멍 짖습니다. 한 마리가 짖으면 덩달아서 온 동네의 개들이 짖습니다. 개념도 없습니다. 남들이 하니까, 자신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냥 왈왈거립니다.

그래서 늦은 시간에 마실을 가는 것은 꺼려집니다. 동네 사람들 주무시는데 방해가 될까봐서이지요. 그래서 옆에서 실없는 소리를 하면 뭐라고 합니까?

"시끄러~! 개 소리 좀 작작혀~!"

이러지요? 그런 소리는 금시초문이라고요? 그렇다면 분명히 벗님께서는 항상 옳은 말씀만 하고 살아오셨다는 것에 대한 증명입니다. 허구헌날 개 소리만 하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냔 말이지요.

"왈왈~모릅니다."
"왈왈~모릅니다. 본 적도 없습니다."
"왈왈~그런 사람 모릅니다."

하나같이 왈왈거리는 것을 우리는 두어 달 사이에 너무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다들 알지요. '또 개소리 하고 자빠졌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지켜보곤 하셨으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그렇게 사는 인간은 개 소리 밖에 못 합니다.

개로 태어나서 개로 살면서 개 소리만 하다가 가는 것은 자연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서 개 처럼 갖은 아양을 떨다가 개처럼 죽어가는 모습은 뭘까요?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것이지요. 아, 이럼 안 되는데..... 신년 벽두부터 이럴려고 한담을 시작했나... 자괴감이 듭니다. 하하~!

아,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사람이 개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일 뿐. 결코 개에 대한 것과는 전혀, 완전히, 일체 무관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예전에는 매우 못마땅한 사람을 향해서 하는 욕이...

"이 개 같은 놈아~!"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개는 천차만별이기는 하겠습니다만, 웬만한 인간보다도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들 한둘이 아닌 것을 벗님도 아실 겁니다. 그래서 더 심한 욕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개만도 못한 놈아~!"

그렇죠? 물론 이렇게 욕을 한다고 해도 개들이 좋아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개를 조금은 높인 만큼 그 욕의 대상이 되는 인간은 더욱 허접해 보인다는 것에 대한 효과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왜 꼭 동물 중에서도 개를 끌고 나올까요? 특히 개의 다양한 능력 중에서도 유독 '왈왈'대는 개의 소리를 비하하여 인간에게 적용시킨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개코'는 냄새를 기똥차게 잘 맡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훈장이잖아요? 그리고 '개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잘 듣는 자에게 붙여주는 영광이죠.

다만 개의 본분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짖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것 같으니 말이지요. 더구나 대 놓고 사람에게 그 말을 사용했다가는 명예훼손이니, 인격모독이니 하면서 노발대발 할 겁니다. 개코라고 하면 좋아하던 사람도 개소리라고 하면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면 이것은 인간에게 공통된 비유라고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누군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낭월에게 '개소리'라는 뜻의 '견담(犬談)'이라는 책을 떡~ 하니 보냈을 적에 그것을 받은 낭월의 심사는 천갈래 만갈래로 복잡해지기 마련이죠. 낭월도 참 여린 심성의 소유자이거든요. 참말이예요. 호호호~!

 

3. 닭 소리


그게 그거 같습니다만, 개와 닭은 좀 다릅니다. 닭에 대한 속담 중에.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는 것이 있던가요? 철권통치자의 모습을 보면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기에서는 닭의 의미가 사뭇 비장하기조차 합니다.

물론 닭에 대해서도 비하하는 의미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계두(鷄頭)'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칭찬으로 들리기는 어렵겠지요? 너무 유식하게 썼다고요? 에구, 미안합니다. '닭 대가리'입니다. 하하~!

참 신기하기도 하지요. 같은 동물, 가축의 소리인데, 하나는 천박한 대상에게 비유하고, 또 하나는 선각자에게 붙여주니 말이지요. 닭의 소리는 그렇게 어둠을 몰아내는 밝음의 소리로 비유가 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협지사가 몽매한 군중을 리드할 적에 내는 소리를 계명성(鷄鳴聲)이라고도 하지요. 닭이 소리를 내면 어둠이 도망간다는 이야기잖아요. 아,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닭은 장닭을 말합니다. 묘하게도 여기에서도 여성비하가 잔존하는 군요. 하하~!

이른 새벽에 어둠을 뚫고 들려오는 장닭의 힘찬 '꼬끼요~!'는 하루를 시작하는데 자명종이었습니다. 어려서 하루는 새벽에 날이 훤히 밝았는데 부친께서 일어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우예 닭도 안 우노..."

그리고는 닭장에 가 보시고는 허탈해 하셨습니다. 간 밤에 족제비가 다녀갔었던 모양입니다. 적어도 닭에 대한 신뢰감은 이 정도였음을 짐작할 수가 있는 한 마디였음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래서 소리라고 해서 다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다가 보니 그 차이도 이렇다는 것도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천하게 살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야단스럽게 살고 싶지도 않은 은일사(隱逸士)는 닭소리도 개소리도 안 들리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만, 속세란 닭소리 개소리가 들려야 제 맛이죠?

여하튼, 개는 저녁에 시끄럽고 닭은 새벽을 일깨웁니다. 그래서 선비는 개소리는 싫어하고 닭소리는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잠을 쫓아주고 새로운 하루를 일찍 시작하게 해 주니까 말이지요. 그냥 낭월의 생각입니다. 동의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AI땜에 걱정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무수히 많은 닭들이 매몰되고 있는 것을 보면 언젠간 죽을 목숨이라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인가 싶습니다. 어서 안정이 되어서 천지사방으로 닭소리가 울려 퍼질 날을 기대해 봅니다.

 

4. 책에 끼워진 편지 한 장.


이야기가 길어졌지요? 여하튼 그랬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는 책을 휘리릭~ 넘겨보다가 편지가 끼워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또 낭월의 닭가슴, 아니 새가슴이 '덜컥'합니다. 드디어 호된 가르침을 접하는가 보다.....

스스로는 아무리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혼자의 생각일 뿐입니다. 분명히 누군가에게는 개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모두를 만족하게 할 글과 이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분노의 촛불' 옆에 '모여있는 태극기'를 보면 알 일이잖아요.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여하튼 동조하는자는 동행하고, 반대하는 자는 헤어지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편지...... 일부분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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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몇 줄 읽고서야. 개소리가 그 개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을 놀래키는 독자도 있었습니다. 나~참~!

엉? 책에 낭월의 이름을 넣었다고....? 그것도 "존경하는 사람"에다가....? 이건 또 뭔 말이람... 그래서 휘리릭 338쪽을 펼쳤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에 포함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곳에 행여 황**총리, 박**대통령, 최**회장 등과 같이 있으면..... 찝찝하잖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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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엇~! 꽤 괜찮은 인물들과 함께 있는 다섯 글자네.... 흐뭇~흐뭇~! 에구 중생심~!!

비로소 책을 보낸 사람의 마음 정도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왕이면 살아가면서 낭월의 허튼 소리들이 약간이나마 울림이 있었다면 이보다 더 고마운 말씀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그래서 감사한 마음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책의 이름을 요따구로 썼는지도 궁금해졌지요. 그리고 머릿말에서 그 의미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전략) 그런데, 막상 제목을 붙이자니 세상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칼럼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가끔 웃기자고 쓴 글이 있긴 했지만 뭉뚱그려 유머글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그때그때 자전적인 글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읽어 본 소감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였다. 순간 책을 내도 될까 하는 고심에 빠졌지만 내 수준에 걸맞게 그놈의 품위를 배려하여 '犬談'으로 제목을 붙이고 나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고, 읽는 분들에게 욕을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후략)

 

이 한 대목에 어쩌면 그렇게도 공감이 되었던지.....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이 여기에서 모두 다 드러나는 듯 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너무나 진솔한 글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겨봅니다. 그리고는 몇 대목을 읽었습니다.

저자의 나이는 정유년입니다. 낭월과 같은 해에 태어났네요. 그렇다면 같은 시대를 서로 다른 공간에서 공유하면서 함께 한 인연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분 같고, 그로 인해서 주변의 삶도 존중해 주는 소박한 모습이 느껴졌습니다.

손석희의 뉴스룸도 재미는 있습니다만, 오히려 이렇게 한 세상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에서 깨달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이 나에게는 더 유익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그러니까 낭월에게는 60개의 간지를 모두 다 보내고 다시 맞이하는 정유년의 첫날에 이 이야기로 한 해의 다짐을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했던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약간의 감동이 되기도 했겠다는 위로가 물결처럼 가슴을 울렁였습니다. 그래서 오늘 한담으로 이 이바구나 해볼까 싶어서 편지에 적힌 전화번호로 톡을 날렸지요. 그리고 30분 후에 회신이 왔습니다.

문상훈

 

요즘 본의아니게 청문회에서 이러한 형식의 그림을 자주 보게 되시죠? 물론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누구를 곤란하게 하거나, 행여 모를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방비하기 위해서 캡쳐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냥 독자와 저자의 대화입니다. 하하~!

그래서 정유년도 행복한 마음으로 출발하지 싶습니다. 조짐이라고 하잖아요? 아마도 길조(吉兆)임에 틀림 없다고 우겨 볼랍니다. 뭐 그래도 되지 싶습니다. 벗님의 새로운 한 해는 어떠실까요? 길조로 가득한 출발이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실어봅니다.

낭월에게 보내주신 감사의 마음을 이렇게 한담 한 편에다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낭월의 독자 모든 분들이 이와 같은 행복에 동참하셨으면 하는 바램도 있습니다. 오행의 변화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으셔서 이해가 되신다면, 그리고 삶에 활용이 되어서 더욱 풍요로운 오늘이 되신다면......

 

2017년 1월 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