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8] 추풍낙하(秋風落夏)

작성일
2016-08-21 15:05
조회
4255

[698] 추풍낙하(秋風落夏)


가을 바람에, 맹위의 기세가 떨어지는 여름.


 

얼레~~~!!

한담 쓴 지가 한 달이 되어버렸구먼요...... 뭐 한다고 한담을 쓸 꺼리가 없었나... 싶어서 잠시 생각에 잠겨 봅니다. 놀러 다니느라고 사진기행에 글도 쪼매 쓰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느라고 미쳐 한담을 돌보지 못했던가 싶습니다. 여하튼 무지무지하게 더웠던 병신년의 여름이 조금씩 밀려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계룡산 자락의 가뭄이 예삿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논바닥은 갈라 터지고 밭 작물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오그라 들고 있는 풍경들을 보면서 하늘이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과연 노력은 사람이 하지만 성패는 하늘에 달렸다는 고인들의 가르침이 헛되지 않았음을 생각해 봅니다.

올림픽도 심심찮게 볼만 했는데 그것도 내일 아침이면 막을 내리는 모양이네요. 정말로 필생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선수들의 결실에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결실을 거두지 못한 선수들에게는 위로를 드려야겠네요. 또한 노력은 사람이 하지만 결과는 하늘에 달렸다고 해야 하지 싶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가 한 길로 통한다는 만법귀일(萬法歸一)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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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도 나무에서 버티지 못하고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폭염에 어떻게 버티더니마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그야말로 맥 없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또 세상의 풍경이려니.... 싶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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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감을 나무는 그리워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스스로 떨어뜨린 것이려니 싶은 생각을 해 보면, 아무래도 떨어진 감에 대해서는 아쉬워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도 되지 싶습니다. 오죽하면 스스로 자기 자식을 버렸겠느냔 말이겠지요.

잠시 산보를 나가다가 마당가의 감나무 아래에 쏟아져서 뒹굴고 있는, 채 자리지 못한 감들의 모습에 눈길이 머물러 배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여름 내내 그렇게도 굳게 매달려서 영양분을 흡수할 적에는 모두가 가을에 탐스러운 붉은 감이 될 것으로 믿었더란 말이지요. 그런데 불과 얼마지 않아서 이렇게도 아낌없이 솎아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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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가물어서 물이라도 주면 좀 나으려나 싶어서 호스를 갖다가 틀어놓아 주기도 해 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빗물만 한 것은 없는 모양입니다.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누는 꼴 밖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지요......

잠시, 시선을 돌려 봅니다.

세상의 풍광도 감나무와 다를 바가 없겠단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문득 도덕경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자연은 어질지 않으니 만물로써 제물을 삼음이요,
지혜로운 이도 어질지 않으니 백성으로 재물을 삼음이니라. 

늘 떠오르는 몇 안 되는 구절 중에 하나 입니다. 추구(芻狗)라는 용어가 나와서 좀 헛갈리간 합니다만, 그냥 짚으로 만들어서 젯상에 놓는 인형과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개 구(狗)가 붙어 있는 것으로 봐서 개처럼 생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을 신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높은 단 위에 모셔 놓았다가 제사가 끝나면 길바닥에 팽개쳐 버린다지요.  자연은 그렇다는 것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봅니다. 과연 그럴까? 예, 과연 그렇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가뭄이 두어 달을 이어가고 있는 것만 봐도 능히 짐작하고 남음이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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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벼 포기들이 살아 있습니다만, 이것도 계속 가뭄이 이어진다면 장담을 할 수가 없지 싶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천지불인(天地不仁)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냔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중국의 후베이(湖北)에서는 또 홍수가 나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더군요. 과연.....

천지불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틈바구니에서 용케도 살아남아서 60평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네요. 벗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마도 동의하시리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일을 알 수가 없는 삶이니까 말이지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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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가 불인하듯이,
성인이 불인하듯이,
감나무도 불인합니다.

자신의 생존에 무리수가 따르겠다 싶으면 가차없이 열매를 내동댕이 쳐 버립니다. 가뭄이 깊어가면서 점점 더 심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귤나무는 좀더 지능적이로군요. 가뭄이 길어지면 열매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열매에게 공급했던 수분을 도로 가져간다지요? 참 놀라운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건 더 지독하네요. 자식의 머리에 빨대를 꼽다니요. 쯧쯧~!

귤나무인들 그러고 싶겠느냔 생각을 해야 하지 싶습니다. 자연에게서 배운 것이 그것이었겠지요. 감나무는 그냥 떨어뜨리버리니 그 속의 영양분을 도로 회수한다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던가 봅니다. 귤나무는 좀 특수한 경우라고 봐서 예외로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자식도 버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자연이지요.

문득,

떨어진 감의 입장을 생각해 봅니다. 자신이 이렇게 버림받을 줄을 어제만 해도 몰랐겠지요. 오늘 갑자기 툭~! 그리고는 끝입니다. 떨어진 감이야 아파 죽는다고 데굴데굴 굴러 봅니다만 어느 누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낭월도 그렇습니다. 조금 더 자라면 홍시를 만들어서 먹는다고라도 하겠는데 지금 떨어지는 감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겠더란 말이지요. 아마도 염색을 하는 사람이라면 혹 사용을 할 방법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생도 그런 것이겠거니..... 싶습니다. 가을의 문턱에서 잠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순간이 주어졌다는 것도 감사하네요. 어제까지도 멀쩡하던 사람이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옵니다. 그래서 이따가 문상을 가야 할 상황이 생겼습니다. 세상을 떠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만, 분명한 것은 다시는 호흡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오늘 이 순간을 느끼고 생각하고 즐길 수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더욱더 감사하고 다행스러울 따름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는 자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하는 말이 생겼으려니 싶습니다. '다행(多幸)'이 얼마나 복 받을 마음인지 말이지요.

그만하기 다행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참말로 다행이다~~!!

로또에 맞은 사람에게 다행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뭔가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해 주는 말이니까요. 누가 차를 긁고 연락처도 없이 사라졌더라도 그만하기 다행입니다. 들이 받아놓고 도망갔으면 또 어쩔뻔 했느냔 말이지요.

세상이 시끌시끌 한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컵의 물이 아직은 반이나 남았다'는 이야기도 아마 그 뜻이려니 싶습니다. 원망하고, 비난하고, 서운해봐야 무슨 이득이 돌아 오겠느냔 말이지요. 그래서 이 순간을 만끽(滿喫)하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과거심 불가득(過去心 不可得)]
내일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미래심 불가득(未來心 不可得)]
현재는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현재심 불가득(現在心 不可得)]

금강경의 한 구절을 인용해 봤습니다. 또한 자주 생각하는 경귀이기도 합니다. 과거에 매여서 고통받는 사람들..... 미래에 속아서 꿈 속을 방황하는 사람들.... 현재조차 진실한 것이 아닐 지니,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을 생생하게 느끼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가끔은 고인이 남긴 지혜의 글도 읽어 봅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제왕불인(帝王不仁)이 떠오르지요. 왕은 결코 어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목적에 부합되면 간과 쓸개를 내어 줄 것처럼 하다가도, 쓸모가 없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내팽개쳐 버리고, 그것도 불안하면 죄명을 붙여서 삼족을 멸하는 것이 다반사이니까요.

아, 들어 보셨던 혹은 읽어 보셨던 이야기지요? 「여담도군()」의 고사가 만들어지게 된 이야기이도 하네요. 간단히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혹 기억이 잘 나지 않으실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에는 참고 하시면 되겠습니다. 한비자(韓非子)가 쓴 설난편(說難篇)에 나오는 이야기라는데 한비자는 여도지죄(餘桃之罪)라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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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위(衛)나라에 미자하(彌子瑕)라는 소년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꽃미남이었던지라 왕이 그를 총애했다.
그런데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이들어 위독하자
미자하는 황급히 왕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에게 달려갔다.


나중에 다녀 와서 왕에게 그 말을 하고 황급해서 그랬다고 사죄했다.
당시 위나라의 법에는 수레를 훔쳐 탔을경우
그 범인의 발목을 자른다는 형벌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서, 왕이 그를 총애하여 벌을 주기는 고사하고,
효심이 지극하니 다른 대신들도 모범으로 삼으라고까지 했더란다.


또 어느날 미자하와 임금과 함께 복숨아 나무 곁을 거닐고 있다가 
복숭아 하나를 따서 먹어보니 그 맛이 너무 달고 향기로웠다.
그래서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한입 주었다.


왕이 그것을 받아 먹으면서 얼마나 자기를 위하면 먹던 것도 잊고서
나에게 줬겠느냐면서 그 충성심을 본 받으라고 대신들에게 말했다.


미자하의 미모도 세월은 빗겨갈 수가 없었던지라
미자하가 나이가 들면서 예전의 모습이 없어져서 보기가 싫어진 왕은
에전에  저놈이 먹던 복숭아를 내게 먹이는 욕을 보였고,
허락도 없이 수레까지 훔쳐탔구나 하면서 그를 처형하였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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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영공이 이러한 행위를 하게 된 배경에는 또 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름은 사추(史鰌)였다고 전합니다. 죽어서 시체가 되어서 영공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 노력이 눈물겹습니다. 전하는 이야기는 이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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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추(史鰌)는 춘추 시대의 위()나라 사람이니
미자하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다.대부()를 지냈다.
자는 자어()고, 사어()로도 불린다.
사관()을 지냈다. 영공()이 미자하()를 총애하자
여러 번 충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임종하는 자리에서 아들에게 시체를 창문 밖에 내놓고
염을 하지 말라고 명했는데,
영공이 문상()을 와서 보고 그 풍경이 하도 괴이해서 물었다.


아들이 “살아서 임금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으니
죽어서도 예를 갖출 필요가 없다.는 유언을 하셔서 염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영공이 비로소 자신의 미자하에 대한 편애에 대해서  깨닫고는
거백옥()을 등용하고 미자하에게 과거의 허물을 핑계로 내쫓았다.
이를 시체가 되어서 왕에게 간언한다는 말로 시간()이라 한다.
이러한 고사로 인해서 공자()로부터
직신()이라는 칭찬을 받았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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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또 공자가 어떻게 사추를 칭찬을 했는지도 궁금해서 자료를 뒤적여 봅니다. 네이버는 뒤지면 다 나옵니다. 나오지 않으면 야후 대만이라도 뒤져야지요. 거백옥까지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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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공자가 말하기를.
"강직하도다 사어여!
나라에 도가 있어도 화살같고 나라에 도가 없어도 화살같구나.



군자로다 거백옥이여!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살이를 하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걷어서 가슴속에 감추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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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야기도 전하는 것을 보면, 왕이 맘을 바꾼 것이 그냥 단순하게 미자하가 나이 들어서만은 아니고, 나이도 들고, 정도 시들하던 차에, 사추의 열정어린 충성심에 감동을 했을 것이라고 이해를 해 봐도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은 단순히 그 일로만 인해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사연이 있겠다는 이야기네요.


편의상 왕이라고 했습니다만, 당시에는 왕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영공(靈公)이라고 불렸던가 봅니다. 여하튼, 천지불인(天地不仁)과  무진대한(無盡大旱)과 낙하시자(落下枾子)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 봤습니다. 그래서 자연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순응하면서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이 군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으로 세상의 모습과 자신의 마음자리를 잠시 돌이켜 보는 순간을 가져 봅니다.


이렇게 허접한 생각이나마 떠오르는 것을 보면 가을 바람이 불기는 한 것이 맞지 싶습니다. 벗님의 가을은 더욱 풍요로운 결실로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6년 8월 2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