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 도피안(到彼岸) - 저 언덕에 도달하다

작성일
2015-07-06 21:34
조회
4780

[672] 도피안(到彼岸) - 저 언덕에 도달하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더위에 건강은 잘 관리하시는지요? 한담에 글을 올린지가 한 참 되었군요. 나름대로 사진기행도 올리고 해서 오래 된 느낌은 없지만, 그럼에도 한담의 이야기를 기대하시는 벗님께서는 아쉬움을 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이 미안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되는대로 중언부언 하기도 걸쩍찌근~해서 차일피일 하다가 보니 어느 사이에 7월이 되었군요. 그래서 오늘은 뭔가 전해 드릴 이야기가 될듯 싶은 이야깃꺼리를 찾아서 한 마음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하하~


1. 저 언덕으로 간다는 것.


불교에서 사용하는 말 중에 「저 언덕에 도달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쪽 언덕에서 저 쪽에 있는 언덕에 도달한다'는 뜻이군요. 무슨 뜻인가 싶은 벗님께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겠습니다. 언덕을 이야기 할 적에는 건너야 할 물이 있다는 것이 전제됩니다. 그러니까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건너가서 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물은 바다가 되겠고, 그것을 「고통의 바다」라고 합니다. 한자로는 고해(苦海)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고통바다를 건너서 편안한 저 언덕에 도달한다'는 이야기로군요.

벗님의 나날은 고해(苦海)이십니까? 아니면 환희(歡喜)이십니까? 어쩌면 고해와 환희가 적당하게 섞여서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음에 환경이 따라주면 환희가 되었다가도, 현실이 그렇지 못하면 고해가 되는 과정의 반복일테니 말이지요. 그리고 나날이 환희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벗님은 논외(論外)입니다. 이미 그 분은 저 언덕에 도달하셨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하~

사주공부를 하시는 벗님이라면... 아마도 고해에서 환희를 바라보면서 삶을 다듬어 가시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은 더 지혜로워질 것이고, 그만큼 기쁨의 순간들이 조금씩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잠시 함께 이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시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으로 생각되네요. 물론 낭월도 고해와 환희의 중간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철학자라고 생각해 봅니다.

 

2. 등대(燈臺) 섬


실은 며칠 전에 남해안으로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5일을 잡고 출발했는데 일행 여섯 명이서 별다른 사고 없이 잘 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언덕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소매물도를 일정에 넣어 봤습니다. 평소에 가보지 않은 섬이어서 궁금하기도 하고, 등대섬이라는 상징성이 있어서 바쁘지 않을 적에 한 번 가보자.... 했는데 마침 시간이 났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낭월은 항상 시간이 있는데 같이 동행할 일행들이 시간을 맘대로 사용하지 못한 까닭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나이도 들고 일거리도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당분간 쉬라는 통보를 받았다기에 얼씨구나~ 하고 일정을 잡았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의 불행이 낭월의 여행이 된 셈인가요? 하하~ 여하튼 그렇게 해서 일행 6명이 길을 나섰던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또 시간이 되는대로 사진기행으로 소개말씀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여기에서는 생략합니다. 여기에서 그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면 한담이 아니라 여행담이 되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지요. 각설하고.

등대(燈臺)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요? 어둠을 밝히는 것이고, 무명(無明)을 없애는 의미도 그 안에 포함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등대에 오르려고.... 아니, 등대 섬에 오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낭월도 그 등대섬을 가기 위해서 제법 거친 산길을 걸어서 끝까지 가게 되었던 것이기도 합니다. 희망이 없어서는 아닌데 그래도 뭔가 등대 섬에는 특별한 것이 있을 것만 같다는..... 느낌, 있잖아요.

참고로 사진이 너무 적어서 뭔지 잘 보이지 않으신다면 사진을 마우스로 클릭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잘 안 보이면 다시 또 클릭하셔도 됩니다. 그럼 사진이 점점 커지면서 시원한 남해의 청정수가 마음 속으로 스며들 것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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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언덕[此岸]


적어도 등대섬에 오르기 위해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보통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그냥 심심하고 지루하고 할 일이 없어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어영부영 하다가 보니까 여기까지 왔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조차도 수행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낭월입니다.

적어도 이 언덕에라도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속세의 실상을 파악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의 정신세계를 확장하기 위해서 음양오행을 공부하거나, 아니면 영적인 체험을 위해서 기도나 명상을 하는 것도 모두 같은 의미로 봅니다. 적어도 지금의 자신이 머물러 있는 상태에 대해서 불만족이라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보다 충만된 삶을 위해서 먼 길을 나섰다는 이야기니까요. 그래서 수행자(修行者)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보통은 그냥 선풍기 아래에서 뒹굴면서 리모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인데 이렇게 더운 날씨에 등대를 찾아서 길을 나섰다니요..... 이미 행복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여행자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나날을 이기고서 이 언덕[此岸]에 도달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저 언덕으로 가야 할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행자는 그렇게 방법을 몰라서 망연자실(茫然自失)한 채로 저 언덕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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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드림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하나 둘 길 찾는 나그네들이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그 중에 편재(偏財)의 성분이 있는 사람은 옷을 걷고서 발을 담가 봅니다. 그렇지만 물살이 너무 거세어서 위험을 느끼고는 다시 얼른 걸음을 되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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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후퇴와 전진의 반복


행여나~~ 앞선 사람이 길을 찾아내려나.... 싶었던 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주저 앉습니다.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바로 느꼈기 때문이지요. 자칫하다가는 여기까지 온 정성도 물거품이 된 채로 거센 물결에 휩쓸려 가버리고 만다면, 고단하고 긴 여정의 보람도 없이 끝나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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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하염없는 기다림


또 기다립니다. 그리고 기다림 외에는 달리 할 일도 없습니다. 물론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저 언덕으로 건널 수가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저마다 자신의 지혜와 경험을 동원해서 방법을 모색하겠제요. 혹자는 수학을 통해서 거리와 깊이와 물살의 세기를 측정하기도 할 것이고, 또 혹자는 자연학을 통해서 물이 어떻게 흘러오고 흘러갈 것인지를 계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꼭 그런 사람들이 있지요. 촛불을 켜 놓고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얼른 저 물이 없어지고 좌우로 갈라져서 마른 땅이 나타나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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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도를 닦아도 먹어야 한다.


암요~! 먹지 않고 도를 닦어서 부처가 되겠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실패를 할 확율이 99%입니다 왜냐하면 이 몸으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공양을 제공하기로 출생하는 순간에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몸이 목말라 하면 물을 공급해야 하고, 또 굼주려 하면 밥을 먹여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이내 쓰러지게 되면 독수리가 파먹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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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바심


그러는 중에도 여전히 조바심을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바다를 바라봅니다. 가능하다면 한시라도 급하게 저 바다를 건너서 언덕에 오르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또 바라보고 다시 바라봐도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의연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자연과 싸운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혹은 자신의 번뇌와 싸운다는 것도 이런 것은 아닐까요? 문득 그림자를 보고 칼을 뽑는 사람을 떠올려 봅니다. 차라리 견문발검(見蚊拔劍)을 하는 사람이 조금은 더 실속적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도 모기라고 하는 실체를 향해서 칼을 뽑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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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목우(牛) - 소를 기르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곽암화상의 심우도(尋牛圖)가 생각났습니다. 다섯 번째 그림이 소를 기르는 것인데 서두른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소가 풀을 뜯는 옆에서 피리를 불면서 소가 자라기를 기다리는 모습이 물빠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딱~! 연결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참고로 목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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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겁의 숙업(宿業)이 며칠 기다린다고 해서 사라질까? 그래서 천천히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느긋~하게 기다려야 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바심은 기다림을 허용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몇몇 나그네들은 왔던 길로 되돌아 갔습니다. 봐하니 볼 것도 없어 보이는 저 언덕이며, 그 위에 솟아있는 하얀 등대... 그것을 보기 위해서 여기에서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이 빡빡한 일정을 잡고 길을 나선 사람에게는 조바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하겠으니 이해가 되기는 했습니다.

더구나 누군가 다음 배가 11시 반에 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바로 그 배를 타러 돌아간 것이지요. 물론 그것도 탁월한 선택이 될지는 모를 일이기는 합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봤을 적엔 뭔가 하다가 말은 듯한 느낌이 일생을 두고 여운을 남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대가 그 곳에 있으니 올라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찾아서 불을 밝히겠다는 무의식(無意識)의 발로(發路)이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멀리 떠 있는 바다 위의 바위섬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홀로 바윗가에 앉아서 낚시를 드리우는 모습도 생각해 보고, 자신의 업장이 이렇게 기다리는 사이에 점점 녹아서 물이되어서 흘러가고 점점 맑고 밝은 실체가 드러나는 것 같은 환상에서 하늘도 보고 바다도 보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에서 일없는 노인이 뛰노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모습도 떠올려 봅니다.

문득, '길없는 길'이라는 말도 떠오릅니다. 지금이 또 그 순간과도 닮아 있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길이 없는데 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믿음때문입니다. 비록 길은 보이지 않지만 기다리고 있으면 길이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지요. 예전에 어느 학인이 방문해서 낭월에게 물었습니다.

학인: 선생님, 사주공부를 하면 일생이 보장될까요?
낭월: 그야 나도 모르지요.
학인: 그렇다면 뭘 믿고 저의 인생을 투자하겠습니까?
낭월: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학인: 그렇다면 저는 사주공부를 하지 않겠습니다.
낭월: 그야 마음대로 하시지요.
학인: 그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공부를 왜 하십니까?
낭월: 그냥 믿기 때문입니다.
학인: 믿다니요?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셨잖아요.
낭월: 믿을 것이 없다는 것은 확실한 물질적인 증명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인: 그렇다면 선생님이 믿으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낭월: 눈에는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지만요....
학인: 그럼 아무 것도 없는 것이짆아요?
낭월: 이 공부를 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질 것을 믿습니다.
학인: 그걸 누가 보증합니까?
낭월: 아무도 보증하지 않습니다. 그냥 믿는 것일 뿐.

그렇습니다. 조금 더 기다리면 길이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고, 조금 더 공부하면 답이 나올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이 둘은 서로 같은 선상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수행을 하다가 보면 부처가 될 것이라는 믿음, 기도를 하다가 보면 신을 만날 수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는 아무도 보증해 주지 않습니다. 지금 그러한 심경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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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견적(見跡) - 자취를 보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은 아닌데 자꾸 심우도와 겹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물론 순서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그냥 이 장면이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일 뿐입니다. 비로소 길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 기뻤습니다. 역시~~!!!

내가 틀리지 않았고, 그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음을 생각했을 적에 느끼는 희열감이라고나 할까요? 아직도 길이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파도 사이로 뭔가 길 같은 것을 본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발판으로 소를 찾아 나선 목동이 문득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것과 겹친 것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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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림자를 본다.


파도 사이로 어렴풋하게나마 길의 흔적을 발견했을 적에 비로소 저 언덕에 도달할 수가 있겠다는 확신이 스물스물 피어오릅니다. 어쩌면... 이번 생에서 마무리를 지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본 것이지요. 막연한 기다림에서 확실한 기다림으로 마음이 바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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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서두르지 말것~!


공부하신 분들이 항상 이르십니다. "서두르지 말거라~!"
늙은 쥐가 항아리를 뚫는 법이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고 했으니 그렇게 오늘 할 일을 부지런히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파도가 밀려간 사이로 돌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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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하나 둘 발심한 여행자들


어느 정도 확신이 선 것일까요? 다시 마음을 내어 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지금 건너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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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길이 다 나온 것 같다가도


이렇게 순식간에 길이 보입니다. 그럼 발을 내딛고 싶어서 안달이 나곤 하지요.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오래 묵은 습관은 그리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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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어느 순간에 몰아칠지 모르는....


방심(放心)하지 말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 것인가 봅니다. 거의 다 된 것처럼 보이는데도 간간히 몰아치는 파도의 소용돌이는 가히 위협적입니다. 이러한 것을 방심하고 길이 보인다고 해서 달려들었다가는 이끼가 잔뜩 낀 돌틈 사이로 발을 삘 수도 있고, 더 심하면 아직도 얼마든지 가냘픈 몸을 휩쓸고 갈 위력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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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거의 다 되어 가는 길


배가 고픈 아들이 엄마에게 묻습니다. 밥은 아직 덜 되었느냐고요. 그럼 엄마는 답하지요. "다 되어가, 뜸만 들면 돼~!"라고요. 딱 그런 느낌입니다. 점점 확실해 지고 있습니다. 이제 쌀은 아닌 거지요. 밥은 밥입니다. 다만 아직 먹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배가 너무 고파서 쓰러질 지경이라면 먹을 수도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길을 건너려고 나선 여행자들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는가 싶습니다. 뜸이 들기를 기다릴 수가 없었나 봅니다. 그래도 조심해야 합니다. 모진 파도에 오랜 세월을 씻긴 돌들은 맨들맨들하고 미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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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심성 많은 여행객도 도전~!!


설익은 밥이라도 퍼먹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서두른 바람에 얼른 배를 채울 수가 있었겠지요. 위험을 조금 감수하면서라도 얼른 저 언덕에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제서야 앉아서 관망하던 여유로운 여행객들도 주춤거리면서 걸음을 옮겨 봅니다. 뭔가 큰 위험은 넘어간 것 같다는 생각인가 봅니다.

참고로 이 장면의 사진은 몇 분 전에 찍은 것입니다. 혹시라도 정재가 있으신 벗님께서 살펴보고 앞에 출발한 사람이 왜 뒤에 있느냐고 할까봐. ㅋㅋ 물론 뒤에 있는 사람들의 사진도 있습니다. 다만 초상권이 신경쓰여서... 초상권을 주장하지 않을 얼굴로 대체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휘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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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그러나 아직도~~~~


그들이 주춤거리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내 길이 보였다가도 순식간에 하얀 파도에 숨어버리는 상황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웬만한 장정도 비틀거릴 수가 있는데 연약한 여인들은 그것을 너무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가보고, 그러다가 또 물러나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돌아 가겠다는 생각은 잊은지 오래입니다. 이제는 희망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이지요.

사실.....

공부는 여기까지가 어려운 것입니다. 일단 확신이 들기만 하면 누가 뭐래도 앞만 바라보고 정진하게 되어 있거든요. 이 단계를 남들은 '미쳤다'고 하고 자신은 '확신'이라고 합니다. 오행 공부를 해 보신 벗님은 알겠습니다만, 과연 어느 것이라도 하나를 통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과정의 반복이고 연속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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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젠 확실한 시기가 왔구나


그렇습니다. 누가 봐도 거의 안전해 보일 정도의 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편안하게 걸어가는 나그네도 있습니다. 그래서 큰 마음을 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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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숙업(宿業)의 위력(威力)


그러나, 자신의 눈만 믿고서 얕보면 안 됩니다. 다 된 것 같다가도 순식간에 집어 삼길듯이 몰아치는 파도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혹 경험이 있으신지요? 담배를 끊는다는 결심 말이지요. 올해 연초부터 담배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단연자(斷煙者)들이 속출했었지요......

그리고 반 년이 지난 지금.... 단연자의 결심은 간 곳이 없고, 복연자(復煙者)들이 비싼 담배를 사나른다는 사실.... 이것이 또한 숙업의 위력입니다. 겨우 수십 년을 익힌 업도 이러할진대 수억겁을 익힌 업장이야...... 더 말을 해서 뭘 하겠나 싶습니다. 더구나 처음으로 익히는 수행(修行)은 또 어떨까요? 아침에 생각했다가도 저녁이면 잊어버리는 나약한 마음으로 인해서 매일 발심하는 것이 또한 인간입니다. 그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네요.

파도가 밀려가면 길을 가고 싶고, 또 들이닥치면 물러나고 싶고... 요요현상인가요? 살을 뺀다고 굶다가..... 또 살이 조금 빠졌다고 먹다가...... 그렇게 끝없는 과정의 반복을 "살과의 전쟁"이라고 한다지요? 파도를 보면서 참 여러가지의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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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조심.... 또 조심....


도가 높으면 마귀가 날뛴다고 했던가요? 그래서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지요. 거의 다 되어 갈 적에 마음을 못 다스리면 한 방에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순서대로 나열한 것입니다. 결코 설명을 위해서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들조차도 이렇게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휩쓸리고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시기가 다가옵니다. 자리도 잡았고, 요령도 알았고, 이제 성공이 코앞인데 무슨머니에서 돈을 빌려준다는 문자가 띠리링~ 하고 도달했을 적에 마음은 요동을 치기 마련이지요. 더구나 초등학교 적에 라이벌이었던 동창 녀석의 사업이 잘 된다는 소릴 들었을 적에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때가 무서운 법입니다. 그야말로 '호박씨를 까서 한 입에 털어넣고 마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바다는 넓고 물은 맑습니다. 얼마나 시원하든지요. 엥? 웬 뜸금없는 헛소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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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이젠 더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계속해서 관망만 하던 여인들도 결심을 한 듯 싶습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다시 물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조바심도 조금은 있었겠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심을 해야 합니다. 기분이 들떠 있을 적에는 악마의 속삭임조차도 달콤하게 들리는 법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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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악마의 마지막 발악


참 재미있습니다. 파도를 바라보는 낭월에게 이러한 상황들이 한 줄로 엮어져서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어 지고 있었다는 사실. 남들은 등대섬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일 적에 낭월은 이렇게도 파도와 길과 도와 수행과 여행자의 사이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내 마음과 바깥의 경계의 느낌을 교류했다고 해도 될까 싶네요. 이젠 다 지나갔지 싶은 상황임에도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를 보면서 사람의 의지력을 이렇게도 집요하게 시험하고 있구나.... 싶은생각도 해 봅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도 파도는 알고 있지 싶습니다. 그냥 마지막으로 심통을 부리는 것이겠거니....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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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이미 지친 나그네에겐 위험한 파도


별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위력은 대단합니다. 바닥도 울퉁불퉁합니다. 문득 지나가던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우연히 앞뒤로 길을 가고 있었다는 그 인연만으로 손을 잡게 만듭니다. 이것이 인간의 의지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몸도 위태롭지만 더 위태로워 보이는 나이 든 여인의 손을 잡고 부축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자세는 이내 안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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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천신만고(千辛萬苦)


비로소 장애물은 대부분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거침없이 나이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발 아래는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은 지금 이때 써먹으면 딱! 제격이겠군요. 자칫하다가 미끄러지면 적게는 타박상이고 크게는 관절손상입니다. 그러니 항상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는 오로지 조심조심(操心操心), 조심이 최선이라고 하는 점을 또 강조하게 됩니다. 이렇게 인생의 길, 수행의 길은 어려움의 연속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주의만 한다면 해볼만 하다는 생각도 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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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역경을 이기는 사람들


이제 길은 완연합니다. 가운데를 두고서 왜 파도치는 옆으로 가고 있는지는 가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파도는 수시로 중심점이 바뀝니다. 그리고 파도보다 더 무서운 것이 바닥의 상태입니다.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습니다.

문득 제부도가 떠올랐습니다. 간단하게 레미콘 몇 대 퍼부어주면 이러한 위험이나 기다림이나 어려움이 없이 누구라도 쉽게 길을 갈 수가 있을텐데 말이지요. 그렇게 되면 아마도 이렇게 낭월같은 일할머리 없는 철학자는 카메라를 가방 깊숙이 쳐박아 버리고 멀뚱하게 바라보고만 있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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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두망로(回頭望路)


마지막으로 사자성어 하나 만들었습니다. '머리를 돌려서 지나 온 길을 되돌아 보다.'입니다. ㅎㅎㅎ

자신이 걸어온 길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할 수 있지 않겠나 싶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삶의 현장에서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다 집중해야만 돌파할 수가 있었던 나날들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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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화들짝 열린 길


지나간 길은 이렇게 쉬운 것입니다. 이젠 파도도 없고 위협도 사라졌습니다. 알고 있다는 것은 이렇게 안전할 수도 있음을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저언덕에 도달하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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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등대를 향하여~!!


이제 여정은 막바지입니다. 앞에 보이는 등대를 향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그리고 희망을 만납니다. 자유를 만납니다. 행복을 만납니다. 그리고.....

보다 큰 지혜를 만납니다.

[끝]
이렇게 등대섬을 가면서 나름대로 느낀 생각들을 엮어서 길 찾는 이야기로 만들어 봤습니다. 함께 동행하시게 된 이 길에 천지의 가호가 있으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5년 7월 7일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