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 설날 아침에 생각해 보는 복(福)과 덕(德)

작성일
2015-02-19 07:31
조회
4295

[664] 설날 아침에 생각해 보는 복(福)과 덕(德)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은 을미년 정월 초하루네요. 우리말로는 '설날'이고, 일본말로는 '구정'인가요? 그리고 한자로는 원단(元旦)입니다만 결국은 같은 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공식적인 시작이고, 음력 1월 1일은 민속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여하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한 해를 잘 살아 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또 한 해도 잘 살기를 바라는 문서들이 오가는 훈훈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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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고, 오로지 마음에 희비애락(喜悲哀樂)만 존재한다고 봤을 적에는 설날이라고 해서 벌반 다를 것도 없겠습니다. 그냥 약속을 했으니 조상님들께 밥 한 그릇 올리거나, 제각기 사느라고 바빠서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를 인식하고 기뻐하는 극히 인간적인 모습이 아름다울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원래 철학자는 이렇게 멋대가리가 없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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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되면 다들 입에 달고 다니는 덕담(德談)이 있지요?

건강하세요~!
더욱, 건강하세요~!
복 받으세요~!
돈 많이 버세요~!
부자~ 되세요~!
결혼하세요~!
취직하세요~!
대박나세요~!


다들 저마다 가장 필요하고 간구하는 것에 대해서 그 바람이 이뤄지기를 마음으로 빌어주는 기도문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마음이고 훈훈한 말입니다. 어쩌면 그만큼 세상에서는 필요로 하는 것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라는 바를 이루세요'가 되겠네요. 그리고 복을 받으라는 말을 생각해 보다가 왜 덕을 받으라는 말은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복 받으라고 말하는 것을 왜 복담(福談)이라고 하지 않고 덕담(德談)이라고 하는지도 생각해 보면서 차 한 잔 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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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복 받으라고 하는 말은 복담이고, 덕 받으라고 하는 말은 덕담이잖아요? 이게 뭔 의미인지 생각해 보셨어요?

"살아가기도 바쁜데 그딴 것을 왜 생각혀? 낭월같이 한가로운 화상이나 일할 머리없이 생각하고 정리해 놓으면 잠시 틈이 나면 읽어주기는 할껴~~!!"
예! 하하~ 맞습니다. 그러셔도 충분합니다. 원래 철학자는 그렇게 일할 머리가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또 이렇게 쓸데 없어 보이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봅니다.

1. 복(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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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에 대한 한자를 살펴봅니다. 무슨 의미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한자분해법보다 더 간단한 것이 없겠더란 말씀이지요. 이 글자를 뜯어보고 분해하면 그 안에서 또 새로운 소식이 들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분해합니다.

복분해를 해 보니까 보일시(示)와 가득할복(畐)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니까 소리가 복인 것은 가득할복에서 따온 것이겠고, 의미가 되는 것으로는 눈에 보인다는 것이니 이것을 확대해서 부귀영화가 가득하라는 의미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봐도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示에는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의미도 있으니 신(神)에 있는 示와도 서로 연관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조상에게 공을 드리니 주변에 금은보화가 가득하다는 의미가 되겠군요. 그리고 畐은 다시 세 글자가 조합하여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맨 위의 일(一)은 하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아래라는 뜻이 되겠네요. 왜냐하면 하늘 아래에 글자들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여기에서 또 그게 왜 하늘이냐는 궁금이에게는 天자를 생각해 봅면 알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큰 것 위에 있는 것은 하늘이지 하나[一]라고 하면 좀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ㅎㅎㅎ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입구(口)입니다. 세상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을까요? 당연히 잘 먹고 잘 산다는 이야기로 해석을 하는데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입 안에 나무가 자라기라도 한다면[困] 이것은 참으로 큰일입니다. 그러니까 입 안은 비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뭐 굳이 입 안에 뭔가 들어가서 좋을 것이 없느냐고 하신다면.... 도[十]라고 말하겠어요. 하하~

마지막으로 맨 아래에 있는 글자를 보면 바로 알겠네요. 밭전(田)이잖아요. 밭은 땅을 이랑지어서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해도 그만입니다만, 입 안에 도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더 멋져 보이지 않을까요? 왜 도가 十이냐고 따져 물으신다면....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니까요. 그러니까 十은 가로음[一]과 세로양[丨]의 합체니까 일음일양이고 그래서 도인 거지요.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못하시겠지요?

그러니까 하늘 아래에서, 물론 하늘을 여기에서는 신(神)의 존재로 봐도 되지 싶네요. 그렇게 되면 일(一)의 해석은  '신의 보살핌으로'가 되겠습니다. 입이 풍요롭네요. 밭에서 오곡백과가 산출되어서 그것을 먹으니까요. 그래서 가득하다는 뜻의 복(畐)이 되었다고 보면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러니까 가득하게 보이는 것이 복(福)이로군요. 여기에서 가득은 근심걱정이 아니라 금은옥백(金銀玉帛)을 말하는 것은 두 말을 할 나위가 없겠습니다. 금은옥백이 가득하여 넉넉한 것이 복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겠네요. 얼마나 좋을까요. 하하~

그럼 복은 찾아 먹는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를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물복, 벼슬복, 남편복, 아내복, 자식복, 글복, 땅복, 돈복, 복이 붙으면 다 좋은 의미로 해석이 되는 군요. 그래서 오복(五福)을 타고 나면 좋다고 했던가요. 여기에서 돌발퀴즈~ '오복은 뭘까요?'

다섯 가지의 복이라고 하는 글자의 뜻은 알겠는데 그 다섯가지를 고인들은 어떤 것으로 생각했을지 궁금해 지네요. 그리고 벗님이 생각하는 다섯 가지의 복은 또 무엇일까요? 이것은 예전의 소망과 요즘의 소망이 다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럼 생각해 보셨는지요? 생각하셨다면 옛 사람이 생각한 것과 자신이 바라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오복(五福)


다섯 가지의 소원이 이뤄지면 오복을 갖췄다고 하겠습니다. 그 다섯가지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군요. 언제부터 인간이 오복을 소망했는지는 문헌에 나온 자료를 보고 참고할 수가 있겠는데, 서경(書經)의 홍범편에 나온다고 하니까 어쩌면 인류의 삶과 같이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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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수복(壽福) 오래 살기를 바란다.
② 재복(財福) : 재물이 넉넉하기를 바란다.
③ 건강복(健康福) : 살아있는 동안 병이 없기를바란다.[강령복(康寧福]
④ 유호덕복(攸好德福) : 인격을 갖추고 살기를 바란다.
⑤ 고종명복(考終命福) :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기를 바란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복을 이야기 했습니다. 1, 2, 3번은 누구나 바라는 것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이견이 없겠습니다만, 인격을 갖추고 남에게 베풀면서 살기를 바랬다는 것은 품격이 느껴지네요. 역시 가진 자가 남을 배려하고 베푸는 것도 복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죽을 적에 편안하게 삶을 마치는 것도 복이라는 것에는 옛 사람들이 바램이 소박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보통 임종이라고도 하지요. 건강하게 살다가 병없이 3일만 아프고 죽는 것을 바란다고도 하잖아요. 역시 죽음의 과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했다는 것을 이해 할 수가 있겠습니다.

어떤가요? 벗님이 생각하신 것과 차이가 좀 나는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오복을 분류하면서, 처복도 넣고, 치아복도 넣기는 합니다만 그러한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앞의 다섯 가지 안에 다 포함된다고 해도 되겠기에 군더더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외합니다.

그렇다면 다섯 가지 복 중에서 몇 가지를 가지셨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네요. 나이가 70세를 넘겼다면 수복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직 그 나이에 도달하지 못한 벗님은 두고 봐야 하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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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반드시 70년을 넘겨 살아야 수복이라고 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을 살면서 삶의 충만함에 가득하게 잠길 수가 있다면 이미 수복을 타고 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삶이 행복하지 않아면 70년을 살아본들 뭘 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면 역시 중요한 것은 오늘입니다. 이 순간에 수명이 붙어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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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인 재복은 어떤가요? 항상 상담실에 찾아와서도 반드시 빠뜨리지 않고 물어보는 것이 자신이 타고 난 재물복이지요.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수품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사주에 따라서 재복이 있는 사람도 있고 부족한 사람도 있지요. 그래서 어느 정도가 되어야 복이 있는 것인지를 가늠하기도 어럽겠습니다만 낭월의 소견으로는 남에게 끼니를 구걸하지 않을 정도라면 재복이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지요. 너무 소박한가요?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면 그정도의 소원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실 수가 있을 겁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너무나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리 쌓고 모아도 여전히 부족해 보이는 현상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 99섬을 지닌 사람이 겨우 1섬을 가진 사람에게 빌려달라고 한다는 웃지 못할 속담도 만들어진 것이겠지요. 100섬을 채우면 뭐가 달라지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도 숫자에 연연해서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라고한다면 비록 통장에 100억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는 재복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복은 만족도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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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건강복이네요. 이것은 참으로 소중합니다. 이미 아픈 곳이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한 것이지요. 오늘 아침에 불전에 떡국을 올리려고 쟁반에 담아 들고 가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성한 몸으로 공양을 받쳐들고 갈 수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내년 설에도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것이지요. 이몸이 내 맘대로 움직여 준다면 그보다 더 고마울 데가 없지요. 그래서 건강복이라고 하는가 싶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그렇게 건강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깎고 세우고 긁어내고 하는가 봅니다. 그러느라고 돈도 마구 들어가겠습니다만 건강복의 의미를 안다면 저랟로 그러한 일은 하지 않겠지요. 그럼에도 남들의 눈만 의식해서인지 눈섭이네, 턱, 배, 가슴, 눈, 코 등등 멀쩡한 몸에 생채기를 내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물론 활동에 이상이 있어서 고치는 것은 논외로 합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전혀 불편하지 않음에도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안타까운 것입니다.

벗님께서는 부디 이러한 일은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칼을 한 번 대면 경락도 끊어지고, 근육조직도 망가져서 자연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그럴 수는 없는 것이지요. 여하튼 건강하시고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준다면 그것보다 더 한 복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생각한 것을 적는데 문제가 없도록 움직여 주는 손가락에 대해서도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되고, 그러니까 오히려 건강복을 만끽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재물복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건강도 또한 스스로 느끼고 행복해 하지 않으면 복이 없는 걸로 간주하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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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오랫동안 좋은 덕이 있기를 바라는 것인가요? 물론 이것은 인간이기에 바라는 것이겠지요. 동물도 수(壽), 물(物), 강(康)이야 다 바라는 바입니다만 덕을 바라는 것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덕목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물론 장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떽끼놈~~! 하시겠지만.. 그럴 리는 없다고 봐서... ㅎㅎㅎ

요즘 말로 하면, '나눔의 행복'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내 것을 나누면서 즐거워하는 것이겠네요. 그래서 지식도 나누고 재물도 나누고 건강도 나누면서 행복해 하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나의 노력이 다른 이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이 네 번째의 복이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정도가 된다면 이미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경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진정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그러한 복은 욕심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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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죽음복이군요. 다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갖고 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찾아올 저승사자를 맞이할 적에 병없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할 것이고, 이것은 연령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같은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벽에 똥칠을 하면서도 살기만을 간구하는 경우도 있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삶에 대해서 이치를 깨닫고 나면 다시 새로운 봄을 준비하기 위해서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여유는 있을 것으로 봐서 죽을 적에 멋있는 모습이기를 바라는 희망.....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죄를 짓고서 숨어다니다가 산 속에서 홀로 죽어가는 모습도 봤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한답시고 가슴에 폭탄을 안고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죽어가는 모습도 봅니다만 그 모두는 다섯 번째의 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조용히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신진화멸(如薪盡火滅)처럼..... 법화경에 나오는 이야긴데 참 멋있는 구절이어서 가끔 생각하곤 합니다. 마치 볏짚이 다 타고 불이 꺼지면 서서히 식어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소란스럽게 뻥뻥 터지면서 타오르는 대나무와는 다른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하고 싶은 것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옛 사람이 희망하던 것이 요즘 사람이 바라는 것과 크게 다르진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그러한 것이 자신에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행복해 한다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오래 살고, 부유하고, 건강하고, 나눌 것이 많아도 그것을 즐기지 못한다면 결국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웬만하면 팔자타령 하지 말고 지혜롭게 오늘을 살아갈 방법을 깨닫는 자야말로 진정한 도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상 복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봤습니다. 다음은 덕입니다.

4. 덕(德)


어쩐 일인지 성현들께서는 복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덕에 대해서 말하셨던가 싶습니다. 부처는 공덕(功德)을 말하고, 노자는 도덕(道德)을 말 했는데 기실 모두 덕을 쌓는 이야기라고 본다면 복을 받아 먹는 것은 성현이 안내하지 않아도 저절로 앞에 다다를 것이기 때문에 말을 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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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선생님께서 낭월에게 물으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처복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처덕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복과 덕의 차이를 생각해 보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하고 아직까지도 잊지 않고 생각합니다만 대략 정리해 보니 그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을 살아온 지혜로도 이 정도 밖에는 깨닫지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더 생각해야 할 것이므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고만 말씀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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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니 이렇게 생겼습니다. 이것은 또 무슨 뜻이 그 속에 들어있을지 궁금해서 분석을 해 봅니다. 우선 덕이라는 소리는 오른쪽의 큰덕(㥁)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리고 뜻은 앞의 글자인 조금걸을척(彳)에서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덕이란 조금씩 걸어가는 것이라는 의미는 얼른 연결이 되지 않는 느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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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림이 있어서 가져 왔습니다. 누군가 낭월처럼 일할머리 없는 학자이신 것으로 보이는데, 德자를 상당히 재미있게 풀어 놓았고 그럴싸~ 합니다. 다만 너무 깊이 있게 분석하는 바람에 좀 어려워지긴 했네요. 한문이라고 걱정하실까봐 한글로 바꿔 봤습니다. 단언컨대, 이 풀이를 하신 선생은 수학자의 기질이 있으셨다고 봅니다. 낭월의 풀이를 보시면 차이가 느껴지겠습니다만, 비교해 보자면 낭월은 상징적이고 직관적인 풀이 형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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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가듯이 주변을 살피면서 남에게 뭔가를 베풀 수가 있는 것에 대한 의미로 해석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허둥지둥하지 말라는 의미는 분명하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항상 기다리고 생각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되는 것으로 연결을 시켜보니까 어느 정도 그림이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하튼 뭔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진행하듯이 하라는 의미로 정리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덕(㥁)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맨 위의 십(十)은 뭔지 아시겠지요. 열 개라고 생각해도 틀렸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섭섭하다고 할 참입니다. 앞에 설명한 글을 제대로 안 읽으셨다는 증거니까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도[十]를 최선(最先), 최상(最上)으로 삼으라는 의미로 이해를 합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걸어가면서 항상 생각은 도를 맨 꼭데기에 두라는 이야기였군요. 오호~ (끄덕 끄덕~~~)

그렇다면 복(福)의 하늘[一)은 음이지만, 덕(德)에서는 처음부터 하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인 도[十]를 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좀 호들갑 스럽나요? 하하~ 괜찮습니다. 원래 호들갑을 빼면 남는 것이 없는 낭월이잖아요.

다음으로 도의 아래에 있는 것은 그릇명(皿)이네요. 그릇이란 마음의 그릇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하늘의 도를 마음의 그릇에 담아야 한다? 참 멋진 말이로군요. 자연에 가득한 도를 너의 마음 자리에 담지 못한다면 또한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가르침이 아니고 무엇이겠냔 말이지요. 멋집니다. 굿~~~!!!!

그러니까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도를 향해서 걸어가면서 자연의 이치로 마음의 그릇을 가득 채우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의 이치를 담은 그릇이 아니고서는 남에게 덕을 베푼다고 해도 그것은 덕이 아닐 수가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남들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오직 자신만이 아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부처의 말을 빌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되겠습니다. 생각에 머물지 말고, 댓가를 바라지 말고 베푸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들 이렇게 멋진 말들만 하시는지요.....

그 다음으로 아래에 있는 것은 한일(一)이네요. 이것은 하늘일까요? 땡~! 하늘이 아닙니다. 한결같음을 의미합니다. 하늘 위에 무엇이 있으면 그것은 하늘이 아니라는 눈치 정도는 있어야지요. 하하~ "아니, 지가 쫌전에 그래놓고서는 또 딴소리 하고 자빠졌네... 으~ 열나~~!!" 라고 억울해 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서 위 다르고 아래 다르다는 이치를 깨달으시라고 하고 또 키득키득 웃는 낭월입니다. ㅎㅎㅎ

그러니까 그릇에 도를 담는 것을 한두 번 하고 말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속시키라는 의미이겠지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미 고인들은 알고 계셨던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결같이 오래도록 하는 것, 즉 일구월심(日久月深)으로 하라는 이야기겠습니다. 이제 왜 하늘이 아니고 한결같음인지를 이해하셨지요?

마지막으로 있는 것은 마음심(心)입니다. 이것은 없어도 되는 것이 괜히 붙어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서 정확하게 어떻게 해야 덕이 되는지를 설명했는데 또 마음이 붙어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참으로 자상하신 스승님들이라는 이야기지요. 이렇게 항상 감동하면서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으냔 것이지요. 스스로 즐기는 것이 알고 있는 것보다 낫다잖아요. 하하~

글을 만드신 분의 마음을 살짝 들바다 보면, 아마도 위의 그릇이 마음을 담는 그릇으로 표시를 한 것인데 미련한 후인들이 돈을 담는 그릇으로 착각을 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 나머지 이렇게 마음의 그릇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심(心)자를 박아놓은 것입니다. 그래놓고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는 것이지요. 원래 어리석으면 쥐어줘도 모른다잖아요. 그랬을 것으로 상상을 해 보는 낭월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뜻을 종합한 것이 덕(德)이라는 것인데 어디를 봐도 찾아먹을 밭[田]이 보이지 않습니다. 즉 덕은 찾아 먹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복은 찾아먹는 것이라면 덕은 마음의 그릇을 채우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본질의 뜻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덕에도 오덕(五德)이 있나 찾아 볼까요?

5. 오덕(五德)


오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대표적인 유가의 덕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① 온화(溫和) : 따뜻하고 화평한 것.
② 양순(良順) : 착하고 온순한 것.
③ 공손(恭遜) : 공손하고 겸손한 것.
④ 검박(儉朴) : 검소하고 꾸밈이 없는 것.
⑤ 겸양(謙讓) : 겸손하고 사양하는 것.


이렇게 되어 있는데 모두가 남들 배려하고 자신을 낮추라는 의미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남과 싸우지 말고, 겸손하고 양보하면 덕인(德人)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자만 봐서는 과히 어렵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막상 실행을 하려고 하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야말로 요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는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보로 보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지요. 덕으 닦는 것이고 복은 누리는 것이라는 말이 공감되는 이야기로 다가오네요.

그런데 유가의 오덕을 생각하다가 문득 도둑의 오덕도 떠오릅니다. 지나가는 길에 이러한 것도 생각해 보는 것이 나쁘진 않을 것 같으니 간단하게 소개해 드립니다. 이것은 장자(莊子)의 도척편에서 도척이 공자에게 설교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① 성(聖) : 훔치러 들어가기 전에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
② 용(勇) : 훔치러 들어갈 때 남보다 제일 먼저 들어가는 것.
③ 의(義) : 훔치고 나올 적에 맨 나중에 나오는 것.
④ 지(知) : 도둑질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 지를 판단하는 것.
⑤ 인(仁) : 훔친 재물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


참 재미있네요. 이것도 오덕이랍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입니다만 요즘 IS에서 폭탄을 가슴에 품고 사람 속으로 뛰어다는 것을 보면서 도척의 용(勇)이 겹치는 것은 왜일까요?

이렇게 여러 가지 덕이 있지만 그래도 유가의 오덕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 하겠습니다. 일단 덕은 닦는 것이니 수덕(修德)이라고 하겠고, 그러한 절은 수덕사가 되겠네요. (뭔 소리 하는 겨... ㅋㅋㅋ)

6. 덕(德)은 적금통장, 복(福)은 예금통장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다들 통장을 갖고 계시잖아요? 물론 통장도 여러 가지입니다만, 크게 나누면 예금통장과 대출통장으로 나눌 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다가 복덕을 넣어보니까 덕은 먼 미래를 위해서 저축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고, 언젠가 만기가 되면 찾아먹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를 해 봅니다. 그리고 복은 적금이 만기 되어서 예금통장으로 전환이 된 다음에 언제라도 찾아먹을 수가 있는 상태라고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말이지요.

벗님의 통장을 들바다 보시지요. 적금통장에 적금은 얼마나 들어있으신지요? 그리고 찾아 먹을 수가 있는 예금통장에는 또 얼마나 들어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적금은 부어 넣지도 않고서 돈만 찾아먹으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자들이 구걸하러 다니는 것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놓고서는 자신이 찾아먹을 복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려고 사주쟁이나 찾아 다니는 것이지요. 그리고 대부분의 방문자들은 복에 대해서만 묻지 덕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것이 또 슬픈 현실이지요. 모쪼록 어떻게 하면 덕을 쌓을 수가 있는지를 물어보는 방문자가 을미년에는 훨씬 많아져서 지혜로운 삶을 인도하는 역할을 할 수가 있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것이 낭월의 을미년 꿈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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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만약 이 글이 약간이나마 느낌을 남긴다면 분명히 벗님의 을미년도 작년의 갑오년보다는 훨씬 행복한 나날이 되실 것이 틀림 없으니 이러한 것으로 설날의 덕담을 드리겠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015년 2월 1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