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6] 밝은 눈으로 보면 젓가락 속에도 있는 도(道)

작성일
2013-06-0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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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화] 밝은 눈으로 보면 젓가락 속에도 있는 도(道)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근 일 년이 걸려서야 《用神》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六甲》이 나온지도 어느 사이에 1년이 다 되었네요. 이번에 정리한 책은 사주공부를 하시면서 용신 때문에 하도 속을 많이 썩고 계시는 벗님들에게 약간의 길잡이가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설하고.
 
  요즘 한가롭게 주역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낭월이라는 것은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안 외워지던 괘의 명칭도 이제 어느 정도 생각을 하면 떠오르는 정도는 되었습니다. 그래도 잠시 방심하면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한 달 잡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것이 이렇게 애를 먹일 줄이야 미쳐 몰랐습니다. 하하~
 
 
  오늘은 젓가락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끼니때마다 접하는 젓가락인데 그것도 다시 생각을 해 보니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오묘한 이치가 그 속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힌트는 증사강 선생이 제공했는데 과연 생각할수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를 해 봤습니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수저입니다. 항상 밥상머리에서 만나는 도구네요. 특히 우주에서 쇠로 된 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은 한국인 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외국 여행을 많이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여하튼 쇠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한국인들 말고는 흔치 않은 모양입니다.
 
  젓가락질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은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하겠으므로 전혀 근거가 없는 말이라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만 특별히 젓가락을 사용해서 뛰어나다고는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크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노벨상을 많이 받는 것을 보면 객관적인 설득력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이렇게 숟가락 하나와 젓가락 한벌이 한세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음양학자의 눈으로 본다면 음양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려울 일이 아니겠습니다. 하나는 양(陽)이 되고 또 다른 하나는 음(陰)이 된다면 홀수는 양이므로 숟가락은 양이라고 하겠고 젓가락은 음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너무 쉽나요? 좀 그런 것 같네요........... 싱겁네요. 그럼 젓가락을 놓고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젓가락은 두 개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음의 역할이 된다고 보는 것에는 무리가 없겠습니다. 그리고 숟가락을 보조한다는 의미에서도 그 역할이 음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한짝만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는 물건입니다. 아니, 전혀 쓸모가 없진 않을 것 같습니다. 감자를 찍어 먹을 적에는 그대로 유효한 점이 있다고 하겠으니 말입니다. 어쩌면 젓가락의 원형이 아마도 이렇게 외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불편한 점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이것을 둘로 나눴을 것이라는 추리를 해 봅니다.
 
 
  손의 협찬은 딸래미 입니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찬을 했기 때문에 약속을 져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젓가락 이야기에 구태여 얼굴이 필요한 것은 아니므로 그리 중요한 일도 아니라고 봐서 손만 출현시켰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생긴 것을 보니 아무래도 땅파먹고 살 손가락은 아닌 것 같지요? 그래서 자꾸 주역을 배우자고 꼬드기고 있는 중입니다. 오늘 겨우 명칭이라도 외워보겠다고 했습니다. 자꾸 바람을 넣어야지요. 흐~
 
  딸이라고 하나 있는 것이 어느 사이에 제법 나이를 먹어서 올해 스물 네 살이나 되었습니다. 그리니까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가 있어서 자연의 이치와 조금은 친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유익한 점에 대해서만 말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흥정은 붙여야 한다니까 말이지요. 행여라도 배워봐도 결국은 눈이 열리지 못하면 써먹지도 못한다는 둥의 김새는 이야기는 하지 않아야 할 것 같지요? 하하~ 
 
   이야기가 옆길로 샜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젓가락 두 개를 붙여서 원래 하나가 둘로 나눠졌다는 느낌을 가져봤으면 싶었습니다. 원래 검객은 젓가락 하나만 주면 칼로 두쪽을 내어서 먹는다잖아요. 옛날에 김기태씨 만화에서 봤던 기억이 문득 나네요. 마달이라고 대단한 외눈검객이 있었는데 항상 주인공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지요. 혹 만화를 좋아하셨던 베이비부머시라면 생각이 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통 젓가락을 잡는 모습이지요? 저렇게 잡아야 한다고 좀 가르치기도 했습니다만 이제 제대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는 음의 상태일까요? 아니면 양의 상태일까요? 물론 음양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이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유만 분명하면 그것으로 정답을 삼으면 될 것입니다.
 
  낭월이 보기에는 이 상태는 양의 상태라고 봐야 하겠다는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목적한 일을 하고 있는 상태의 모습이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음은 준비하는 것이고 양은 실행하는 것으로 본다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두 젓가락이 하나()가 되었잖아요? 연결이 되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몇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 봤을 적에 양(陽)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지요. 오므린 젓가락은 벌려야만 다음 일을 할 수가 있는 준비가 되는 법입니다. 이 상태는 뭔가를 집으러 가는 모습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떨어진 모습에서 두 개(⚋)가 된 것도 틀림이 없으니 또한 음(陰)으로 봅니다. 그래서 젓가락이 붙었다가 떨어졌다가를 반복하면서 음양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증선생이 이것을 알려줬는데 그것을 보는 순간, 아~! 멍청하게 그런 생각도 못했군~! 이라고 중얼거렸지요. 여기에서 음양의 진리를 바라보는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음양은 하나이면서도 하나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외로운 수컷은 홀아비라고 해서 아무 것도 생성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런가 하면 암컷도 마찬가지로 과부라고 하여 생산을 할 수가 없는 것은 다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음양은 하나로 결합을 해야만 변화를 일으킬 수가 있는데 남녀가 만나서 자녀를 생산하는 것이나 젓가락이 두 개가 모여서 음식을 집는 것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생각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떠오르는 문구는 '불가불리(不可不離)니라'라는 것입니다. 서로 떨어져서는 일이 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또 '불일불이(不一不二)니라'도 같은 말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젓가락 두 짝이 도(道)의 모습을 밥상 머리에서 항상 보여주고 있었건만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집어다가 퍼넣느라고만 바빳으니 식충이 따로 없습니다. 그렇게도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도가 아님이 없다고 선지식들께서 간절하게 알려주셨건만 눈이 어두운 장님은 쥐어줘도 모르니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쯧쯧~!
 
  어떠신지요? 조금은 생각해 볼 점이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감탄을 하면서 태극의 이치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주역에서는 늘 태극을 말하지요. 태극은 항상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비록 그 모양이 음양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절반이 나뉜() 모습이어서는 죽어있는 모습으로 밖에 볼 수가 없고, 오로지 움직이는() 모습으로만 태극으로 인정을 해 줍니다. 그러니까 태극은 무궁동(無窮動)이라고 하는 것인가 봅니다. 무궁동은 다함이 없이 계속해서 움직이는 것을 말하니까요. 오늘 저녁에는 특히 젓가락을 들고서 음식들을 집어 나르면서도 이러한 생각을 해 봤습니다.

 
 
  젓가락 이야기만 한다고 숟가락이 섭섭다는군요. 숟가락도 생각해 봅니다. 우선 그 자체로 음양이 결합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요? 둥근 것은 음이고 긴 것은 양이라는 것은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음은 포용하는 성분이라고 하겠고 양은 운반하는 수단이라고 한다면 이유가 타당하다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젓가락이 설하는 법문보다는 차원이 좀 떨어집니다. 그렇지요? 왜냐하면 변화의 여지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젓가락에서 배울 법문(法門)과는 비교가 되지 않네요.
 
  그래서 숟가락은 젓가락질을 못하는 유아들이 사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런가 하면 중국인들은 죽을 먹어도 젓가락으로 먹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죽을 먹을 적에는 죽공기를 입에 대고서 긁어넣는 형태가 되므로 점잖은 선비국에서는 별로 따라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만, 그것도 어쩌면 도의 의미를 실행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하면 오버하지 말라고 하시겠지요? 하하~ 맞습니다. 조금 너스레를 떨어 봤습니다. 여하튼 앞으로 젓가락을 사용하시실 적에는 특별히 젓가락도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셔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에서 이러한 소식을 들어봤습니다. 지나는 길에 한 번 생각해 볼 정도는 되셨는지요?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많이 사용하셔서 건강한 음식 많이 드시고 오래도록 활기에 넘치는 수행(修行)의 나날이 되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13년 6월 5일 저녁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