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2] 1957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넋두리

작성일
2013-05-04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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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2화] 1957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넋두리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날씨가 하도 고르지 못하니 내일은 어떻겠다는 예측을 할 수가 없네요. 오늘은 또 안개가 자욱한 새벽입니다. 그래서 뒷산에 올라가보려고 생각했다가 포기하고 한담을 쓰고 있는 낭월입니다.
 
  요즘 뉴스를 보니까 정년을 연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런데 거기에도 단서가 붙는 것을 봤습니다. 이른바 '베이비붐의 세대(1957~1960)는 정년의 연장에서 제외한다는 이야기었나요? 그것을 보니 베이비붐으로 태어난 세대들은 참 씁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낭월도 바로 그 조건에 부합하는 1957년 생이잖아요. 그래서 동병상련이랄까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는 참 억울함이 많은 세대인 것 같습니다. 아래의 표는 서울신문에서 가져왔습니다.
 
                        
 
 
1. 본인들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태어난 세대들
 
  흔히 하는 말이 그렇지요. '누구는 베이비부머가 되고 싶어서 되었냐구요~!'라고 말하잖아요. 그렇습니다.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게 될 마음도 없었는데 왜 이러한 세대가 생겨나게 되었을까요? 하필이면 그 4~5년간 부모의 사랑이 특별히 간절해서 엄청난 출산율을 기록하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하늘에서 무슨 각본을 쓰고 있는데 그 계획에 따라서 그렇게 되었을 뿐일까요? 그도 아니라면 또 알 수 없는 무슨 시스템이 있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 곰곰 생각을 해 보니까 일단 6,25전쟁으로 생명을 잃은 고혼(孤魂)들이 구천을 떠돌다가 조화와 균형의 이치에 따른 신의 뜻에 의해서 일시적으로 왕창~~!! 태어나게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추리라는 것도 확인해 봤지요.
 
  동란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을 추정한 자료에 의하면, 남북한 합쳐서 약 400~500만명이 죽었고 외국인이 100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인원들이 모두 베이비부버로 태어난 것일까요? 그래서 다시 통계청의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그랬더니 서울경기에 약 300만명이고 지방이 약 100만명 정도로 나오네요. 그렇게 되면 400~500만명이 부활했다고 보면 거의 아귀가 들어맞는 것 같습니다. 그냥 생떼를 써보는 것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해도 되지 싶습니다.
 
  아, 태어난 사람이 더 적지 않느냐고 하고 싶으시다면, 그들이 50년을 살아오면서 산업재해로 각종 사고로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100만명이라고 하면 되지 싶네요. 여하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또 살아오는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을테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크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를 해 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원래 베이비부머는 미국에서 나온 말이라지요? 2차대전 후에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태어났는데[29%라나 뭐라나...] 그들을 베이비부머라고 부르게 되었다는군요. 그리고 이러한 생멸, 그러니까 죽음과 탄생의 연결고리를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와 같다면 우린 죽어봐야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의 비약도 가능하겠군요.     
 
  근거를 댈 수는 없지만 언젠가 그러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사내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조짐이고, 전쟁이 지나고 나면 출산율에서 사내아이들이 많이 태어난다는 이야기였지요. 당시에는 '뭘 그럴려고......'라고 했습니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의 이치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다시 삶을 이어가야 할 조건에 의해서 태어나게 된 것인데 그것도 한 나라에서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되니까 결국은 하나의 특성을 형성하게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베이비붐 세대'였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나요? 물론 하늘의 옥황상제께서 인구의 균형과 음양의 조절을 위해서 삼신할매를 시켜서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고 해도 또 그만이고요. 하하~
 
 
2. 그래서 또 걱정이 앞섭니다.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전쟁으로 인해서 죽었던 인연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없이 천수를 다 누리고 죽었더라면 시간을 두고 서서히 죽고 또 태어나고 하였다면 일정한 정상적인 궤도를 유지하고 태어나게 되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서 죽음도 맞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균형을 이루면서 인구가 유지되었을 것인데, 그렇게 되었다면 이렇게 기현상으로 일순간에 왕창 태어나는 특이한 사태는 없었겠지요.
 
  이로 미뤄서 생각해 보건대, '윤회는 반드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자연은 조화와 조절을 안배하고 있다는 말도 가능하지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도 절묘한 51대 49의 남녀 비율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남자는 중간에 위험에 노출되어 죽을 확율까지 고려하여 나온 계산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균형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니 또 걱정입니다. 이른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해서 딸이 태어나게 생겼으면 미리 삭제[마치 백스페이스로 원하지 않는 글자를 지우듯이....]를 하고, 원하는 아들이 태어날때까지 계속 기다리는 부모들이 존재하는 관계로 인해서 이 균형은 계속해서 기울어가고 있다네요. 그런데 왜 걱정이 되느냐고요? 아니 과거의 현상을 보고서도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사내아이들이 왕창 죽으면 또 왕창 태어난다는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아들들만 잔뜩 낳아놓은 결과는 결국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 아니고 뭐겠느냔 말이지요. 아 물론 전쟁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사람의 의지력만으로 되겠느냐는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신의 각본에 의해서 균형과 조절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면 말이지요. 참 무섭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생각을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간단합니다. 의학의 남용을 의지하지 말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면 됩니다. 아들이 생기면 아들을 낳고 또 딸이 생기면 딸을 낳으면 되는 것이지요. 여하튼 모든 자연의 질서에서 인위적으로 뭔가를 하면 그것은 바로 재앙이 될 조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네요. 결국 전쟁의 준비는 북한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세대들에서 그 빌미를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 30전 전부터 말이지요.
 
 
3. 여하튼 베이비부머들은 억울합니다.
 
  본인들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인연의 수레바퀴를 따라 돌다가 태어났을 뿐인데 한 꺼번에 많이 태어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안면도라는 어촌의 촌구석에서도 한 반에 70명에서 80명씩 콩나물처럼 박혀서 복작복작하면서 공부를 했지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30명 정도의 한 반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참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그러한 것은 아이들과는 무관하게 일어나는 상황이고 그래서 또한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나중에서야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그렇게 아이들은 많고 들어갈 중학교는 부족하니까 엄청난 입시경쟁을 다시 치뤄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중학교를 갈 생각도 하지 않고 기술의 전선으로 내몰리게 되었던 것도 또한 억울할 일이지요. 그래서 산업화는 더욱 빨리 이뤄졌을 것이고 그래서 또한 일만 죽자고 한 세대가 되어버린 이름을 또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만 그것이 별로 영광스러운 것은 아니지요? 다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 뭔가요? '가방 끝이 짧아서....'라는 자신감 없는 넋두리들.... 맞지요?
 
  산업의 역꾼이 되어서 경제부국을 만든 것은 뭐 잘 했다고 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문제라는 것이지요. 그들이 일을 할 수가 있는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부려먹기는 실컷 부려먹었는데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다른 곳에서는 쓸 방법이 없고 앞으로는 국세만 축내면서 의료비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벌써부터 정치입안자들의 뇌리 속을 복잡하게 하는가 봅니다. 거..... 참..... 이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여하튼 정작 당사자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위로는 늙어서 치매와 질병을 달고 살아가는 부모님을 봉양해야 합니다. 어려서 번 돈은 부모님들 경제에 보태느라고 자신들은 별로 써 보지도 못했지요. 그래도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을 그 서푼짜리 학교 교육에서 배운대로 열심히 송금을 했지요. 그래서 효자라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정작 자신들이 가정을 꾸릴 때가 되었을 적에는 수중에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 아닙니까? 아마도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벗님들도 꽤 계실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낭월학당에 인연하여 한담을 읽으실 정도의 세월을 살아오셨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공감이지요.
 
  그렇게 맨 주먹으로 가정을 이루고서는 열심히 살아서 집이라도 한 칸 마련하려면 다시 20년을 허둥지둥 뛰어야 합니다. 허리띠는 더 졸라 맬 것도 없지요. 이미 끊어지게 생겼는걸요. 그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으라는 의미로 학교에서는 또 근검절약을 가르쳤지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우야던둥 아끼고 절약하고 저축해야만 살아 남을 수가 있었던 현실이었으니 말이지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태어났고 또 아이들을 먹여야 하고, 또 가르쳐야 하는데 이것이 또 굴레가 되어서 압박을 하지요. 학비는 비싸고 경제활동은 몸으로 뛰어서 벌어오는 것이 한정되어 있으니 아무래도 않되겠다 싶어서 사업이라도 해서 가난을 면해 보려고 허둥댄 결과로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배운 것이 없으니 성공의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들 수 밖에 없는 일이니까 말이지요.
 
  이렇게 해서 50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돈을 더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을 조금 더 하게 해 달라는 것에서 조차도 제외가 되었습니다. 무슨 큰 구걸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다시 또 죽임을 당하는 베이비부버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억울하지 않은 해당자들은 분명히 전생에 큰 복을 지어서 전쟁터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제명을 누리고 죽은 다음에 부유한 부모를 만나서 태어나서 아쉬운 것이 없이 넉넉하게 살아온 사람들이겠습니다.
 
 
4.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느냔 말이다~                        
 
  앞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셨다면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의 세대[왜 갑자기 가슴이 찡~할까요.....]는 어차피 버리는 패들입니다. 태어나기 전에는 전쟁터에서 버려졌고, 태어나서는 세상에 버려졌고 성인이 되어서는 생존시장에 버려졌지요. 그리고 이제는 복지혜택에서도 버려졌네요...... 뭐 이것이 현실이라면 또 받아들여야지요. 참 착한 세대들이기도 하네요. 그렇게 짓밟히면서 살아왔지만 근성 하나는 끝내줍니다. 하하하하하.......
 
  얼마 전에 봤던 영화가 생각나네요. 제목은 잊어버렸습니다만, 자신의 어린 딸을 성폭행한 백인이 무혐의로 풀려날 것을 미리 판단한 흑인 아버지가 총을 들고 준비했다가 그들이 희희덕거리면서 법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려서 쏴죽여버리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던 것은 또 왜일까요?
 
  그러니까 베이비부머들은 태생적으로 정부를 믿지 않는 기틀이 잡혀있는 것은 아닐까요? 사실실 낭월도 그렇습니다. 뭘 수입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이내 그것은 수입이 되고 있는 중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농협이 농민을 위한다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던 수천만의 농민들은 농협의 농간에 놀아났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지요. 뭐 항상 그렇게 살아온 우리 세대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누굴 믿으라니요. 오로지 믿을 것은 나 자신 밖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50년간 체험하면서 살아왔는데 말이지요.
 
  그러니까 정부에서 정년 연장의 시책에서도 제외된 1957년에서 1961년의 세대들은 또 그대로 받아 들일 것입니다. 그것은 애초에 정부의 시책과는 무관한 세대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생각들이 뿌리에 깔려있기 때문에 '그러려니........'하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이 들겠네요.
 
'지들이...... 언제는...... 우릴............ 도와 줬나....?'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네요. 일터에서도 짤리고, 배운 기술은 써먹을 곳이 없으니 이제 어떻한다지요? 아직도 취업준비생인 자식들은 아비의 손끝만 쳐다보고 있는 경우도 허다할 것이고 그러니 전생에 빚을 참으로 많이 짊어지고  태어난 세대들인가 싶기도 합니다. 사업은 그만두고 장사라도 해야 할텐데 장사도 밑천이 있어야 하지요. 여기저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식당이며 커피숍을 보면 자신들이 해 볼만 한 것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네요. 뭘 해야 할지가 참.......................
 
 
5. 그래도 어쩝니까? 살기는 살아봐야지요.
 
  사실 정부에 대해서 기대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요. 그냥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정도일 뿐입니다. 낭월도 각시가 생기면서 절에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궁리하다가 약초재배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더덕, 도라지, 당귀...... 그래서 경동시장과 약초재배법을 배우면서 시장조사를 했었지요. 그런데 시작을 하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가격이 불안정한 것이었습니다. 쌀이나 콩은 식재료이기 때문에 일정한 가격을 보장받을 수가 있었습니다만 약초는 물량이 부족하면 폭등을 하고 물량이 넘치면 폭락을 합니다. 무우나 배추만 해도 그러하니 약초는 오죽했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시면 짐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식용과 약용을 겸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만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던 것은 이미 수입산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였습니다.
 
  그래서 아시는 벗님은 알고 계시겠습니다만, 이것저것 배운 것 없이 할 수가 있는 일들을 해 봤습니다만 결국은 파계승이 되는 것으로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가닥을 잡았던 것이지요. '뭐, 사전에 파계승(破戒僧)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파계승이 있는 것도 자연의 이치겠거니'했습니다. 그야말로 그 당시에는 자기합리화였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런데 인연법에 따라서 오행의 이치를 배우면서 그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자연법에서 본다면, '일음일양(一陰一陽)은 위도(謂道)니라'라는 구절을 주역에서 발견하면서 비로소 그 이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부처는 혼자 살면서 수행하라고 했지만 더 위에 있는 자연법에서는 음양의 조화는 죄가 아니라는 이치를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그 후로부터는 이렇게도 당당한 파계승, 아니 대처승(帶妻僧)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이 없었다면 자신을 그렇게 털어버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그냥 명리학자로만 살아가면 될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해 봤지요. 그렇지만 이미 몸에 밴 절간의 습관은 세속의 모든 것이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지금의 이 모양이 되었네요. 하하~ 낭월도 베이비부머이기에 이러한 넋두리를 해 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약간의 자부심이랄지..... 그런 것도 없진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고보니까 김국환씨의 노랫말이 생각나네요. 딱! 우리들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맨 손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으하하하~~'   
 
  후에 도반들[청정비구로 살아가던 시절의]을 만났을 적에 아직도 조계종에 승적이 살아있으니 이혼하고 들어오라고 하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참 고마운 도반들이지요. 그렇지만 낭월의 자연론에는 그들도 답변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지요. '만약에 내가 물은 이치에 답변을 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살아갈란다.'라고요. 물론 도반들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더 행복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누구에게나 살아가는 과정에서 삶의 전환점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리고 정년연장을 걱정해야 한다면 그 전환점이 이제서야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싶습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애초에 그러한 혜택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또 맘은 편할 것이니까 말이지요. 그냥 어제도 그렇게 눌리고 치받히면서 살아왔듯이 그렇게 살면 되지요뭐.
 
  그래도 권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허둥대면서 살아오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연의 이치에 대한 책이라도 한두 권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밖으로 시선을 두면 불평불만이 많지만 내면으로 전환하면 그래도 오늘을 살아서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하거든요. 그리고 이 아침에 아름답게 피어있는 꽃들을 생생하게 볼 수가 있다는 것도 말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여하튼 오늘을 잘 살아갈 수 있는 법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아무도 돕지 않았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베이비부머 만세~~~!!!"
 
 
  이렇게 외치고 하루를 시작하십시다. 그리고 이것도 또한 천지신명의 각본이려니 생각하고 경봉스승님의 말씀대로 '연극 한바탕 잘 하고 가거라'라는 의미를 또 생각해 봅니다. 배우라면 각본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낭월은 운명학자의 각본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궁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명배우가 될 테니까 말이지요. 때로는 잠시 일손을 놓고 삶과 인생과 자연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쉬어가는 것도 좋지 싶습니다.
 

 
                         2013년 5월 4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