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 '어찌 할까요?'와 '어찌 될까요?'의 차이

작성일
2012-12-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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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6 화] '어찌 할까요?'와 '어찌 될까요?'의 차이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제법 많이 차가워진 날씨네요. 아침에는 물이 얼었고 엇 저녁에는 눈발이 날렸으니 초겨울의 분위기를 물씬 풍겨주고 있는 것 같은 12월 1일입니다. 감기에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한담을 써 봅니다. 김장을 한다면서 동네에 맞춰놓은 배추가 있었는데 날은 추워지는데 뽑아가지 않으니까 주인이 다른 곳에 팔아버렸다는 연락을 받았다는군요. 그래서 부득이 논산의 시장으로 배추를 사러 갔는데 그 사이에 틈이 살짝 나기에 한담이나 한 편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요 며칠간 첨시해에 대한 설명서를 작성했습니다. 24첨시와 60첨시를 정리하고 지금은 64첨시 즉 주역의 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만 주역관련해서 자료를 찾다가 대만의 어느 학자가 설명하는 주역의 이야기에 대한 동영상이 유튜브에 있어서 잠시 들여다 보기도 했습니다. 설명이 자상해서 다 알아듣지는 못해도 대략 자막과 이야기를 겸해서 짐작을 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아서 지혜만담에 15편을 찾아 올렸으니 혹 관심이 있으시면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오쇼젠 타로카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생각이 드는 부분을 정리해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타로카드는 없지만 점괘를 보고 싶을 벗님을 생각해서 '점 보기'도 마련했으니까 필요하실 적에 적절하게 활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질문의 유형은 단 세 가지로만 했습니다만 그 정도라도 충분히 필요한 답을 얻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고 간절함이 아닌가 싶은 생각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주역에 대해서 정리하려고 자료를 찾아 봣습니다. 아무리 막대기를 뽑아서 읽어보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황당무계한 풀이를 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낭월의 전공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오쇼타로나 주역이나 같은 맥락을 갖고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그러한 관점에서 서로 연결이 되는 것 같은 부분이 있을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다만 주역도 해설서가 아니고 점괘를 이해하기 위한 용도로 정리를 하기 때문에 점대를 뽑아서 읽어보는 용도가 될 것 같습니다. 주역을 이해하는 공부는 또 별도로 해야 할 것 같네요. 그렇지만 재미있는 맛이 어디에선가 살며시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은 전해 받은 것 같습니다.
 
 
1. 상담 의뢰자의 마음 상태
 
  주역강의를 잠시 보는 중에 그 노학자께서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점복(占卜)이 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어떤 마음으로 점괘를 뽑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마음가짐의 설명이었던 것 같습니다만 참으로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던가 봅니다. 메모는 해 놓고서 짬을 보다가 이제 그 틈을 얻어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우선 점괘를 뽑을 마음 가짐이 되어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역은 점괘를 뽑은 사람이 원하는 내용에 대해서 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틀림이 없는데, 어떤 마음으로 뽑았느냐에 따라서 맞기도 하고 혹은 틀리기도 할 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러한 말을 들으면서 점기(占幾)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점자(問占者)의 마음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봤습니다.
 
  역시 문제는 점괘가 아니라 그 점괘를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일로 두 번 득괘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자신의 생각을 추켜주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른 점괘를 찾거든요. 그래서 원하는 답을 해 주는 결과가 나온 것을 믿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점신께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다고 해 달라는 강요와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주괘에서도 그대로 통용이 되는 이야기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질문은 누구나 할 수가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수용할 수 있느지에 대한 것은 그 사람의 몫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점괘를 해석해 주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관점을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풀이한는 답이 달라질 가능성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때론 상담실에서 질문을 받으면서 느낌이 듭니다. 이번의 질문에 대해서는 해답이 좋게 나올 것 같다는 느낌과 같은 것이지요. 즉 뽑기 전에 점괘가 보인다고 하면 너무 앞서 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그러한 생각이 그대로 적중하는 것을 보면서 막연하게 해 본 선입견 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2.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요?"
 
  이렇게 묻는 방문자가 있습니다. 자신이 뭔가를 할 생각을 했는데 그것을 추진해서 이루기 위해서는 혼자서 단독으로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주변의 지인과 동업으로 해야 할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은 때가 아니라면 잠시 보류해야 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 알고 싶어서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할 적에는 그 속에 들어있는 마음이 같이 묻어 나온다는 것이 참 재미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점괘로 길을 물어보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길로 가면 순탄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길로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조언을 듣고 싶은 것이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보겠습니다. 스스로 이미 그에 대한 준비를 충분히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대로 추진을 할 것입니다만 그럼에도 혹시 몰라서 조언을 받을 것이 없는지 물어보는 마음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이 없겠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받게 되면 답을 하기도 참 수월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방향에서 1안과 2안과 3안을 제시하면 스스로 그 중에서 자신에게 부합이 되는 것을 찾아서 방향을 잡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과정에서 점괘는 배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상담실에서도 가장 맘에 드는 방문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번에는 조금, 아주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두 가지의 질문 사이에는 엄청난 큰 강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하는 방문자는 98% 자신의 계획은 실패를 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물론 남들은 다 아는데 자신만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하~
 
  과정을 묻는 사람이 있고 결과를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묻는 것은 바로 그 결과에 마음이 가 있다는 것이란 점을 감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야말로 조언(助言)이 아닌, 예언(豫言)을 듣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중심이 덜 잡혀있는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아무 것도 확신이 서 있지 않은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뭘 묻고 있는지도 모르고 질문한 것일 가능성조차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간발의 차이에서 천리의 간격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드네요. 

 
  예를 들어서, 중개인의 시험을 보는데 합격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는 것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하는데 신청만 해 놓고서 시험에 붙을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질문인지를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노력을 많이 했는지를 다시 물어보게 되는 일도 왕왕 있습니다. 정말 노력을 하지 않고 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가 봅니다.

  그 주역학자가 하신 말씀이 이렇습니다. 세상에는 정해진 결과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구태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이라고 하네요. 그 외에는 모두가 유동적(有動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역으로 점괘를 물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물어야지 어떻게 되겠는지를 묻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문점자(問占者)라는 것인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공감이 저절로 되는 이야기였으니 말이지요.
 
  이러한 차이에서 점괘는 달라지는 것인가 봅니다. 그리고 결과에 대해서 맘에 들지 않으면 또 다시 득괘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주역에게, 혹은 오주괘에게 그 답을 물을 자격이 없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점신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데 물은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답을 원하고 있으니 이미 서로 간에 핀트는 빗나가고 있는 것이니 말이지요.

 
  방문자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미래를 묻습니다. 그리고 더러는 만족한 답을 얻어서 돌아가고 또 더러는 실망감을 갖고 돌아가기도 합니다. 모두를 만족시켜 줄 답은 사탕밖에 없으니까 말이지요.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점괘를 이용하는 것과 어리석은 사람이 점괘를 이용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조언과 예언의 차이로 구분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 사주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역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사주를 풀이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또 타로카드를 뽑거나 점대를 뽑더라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라고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구는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니까요. 결국은 최종적으로 어떤 답을 얻게 되느냐는 것은 그 답을 얻고자 하는 주인공의 마음과 만나서 해결을 봐야 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사주를 봐 달라고 하면 사주를 풀이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사람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을 보면서 또한 같은 의미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자신이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결실을 거둘 수가 있을 것인지를 묻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각적으로 방법을 강구하게 되지요. 우선 적성이 인성적인지 관살적인지 아니면 식상적인지를 봐서 방향을 잡아주게 됩니다. 그리고 시기를 봐서 유지를 하는 것이 좋을지 확장을 해도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조언을 하게 되고 이러한 경우에는 대부분 만족스런 답을 얻고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조언에 대해서조차 이해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말을 할 적에는 참으로 난감함을 넘어서 한심스럽기조차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존감이 없어서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이룰 수가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운이 좋으면 저절로 로또에 당첨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그것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운이 나빠도 그것도 또한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되어야 학문이겠지요. 그러데 자신의 노력에 대한 질문을 할 줄은 모르고 결과적으로 부자가 될 것인지만 알고 싶은 것이지요. 그러니 가끔은 허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저절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팔자미신(八字迷信)에 빠지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미신은 팔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믿고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구분할 능력이 되지 않으므로 이름만으로 판단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가령 불교나 천주교를 믿는다고 하면 미신을 믿는 것이 아니고 굿당을 다닌다고 하면 미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완전히 같은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불교를 빙자한 사기꾼도 많고 천주교 혹은 기독교를 빙자한 사기꾼이 그래서 먹고 살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모쪼록 이름에 매이지 말라는 말을 아무리 목에 힘을 주고 하더라도 듣지 않는 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게 되어서 이젠 힘들여 말을 하지도 않게 되네요. 알아서 들으면 좋고 안 들으면 또한 그뿐이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주역학자(曾仕强)의 이야기에 이목을 모으게 되는 것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할까요?'를 묻는 점괘와 '될까요?'를 묻는 점괘의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바람에 잠시나마 귀와 눈이 시원해 지는 느낌을 받았던가 봅니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를 자막으로 번역할 형편이 되지 않아서 아쉽네요. 나중에라도 그러한 여유가 된다면 또한 마음을 일으켜 봐야 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영상을 다운로드 받아서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저작권이나 그런 것들도 있을 것으로 해서 마음만 가져 봤습니다. 그렇지만 대만의 책들을 읽으실 정도의 수준이 되시는 벗님이라면 어느 정도 도움의 참고말씀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주역에 대한 풀이를 하면서 《주역선해》라는 책을 읽어보니까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도서출판 한강수라는 곳에서 만든 것입니다. 명나라의 지욱 선사란 분이 풀이를 한 것인데 번역을 잘 해서인지 매끄럽게 잘 설명되어서 괘사에 대한 풀이만으로도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벗님께서는 혹여 점괘를 얻으시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얻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를 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지요. 오늘 하루도 즐거운 나날로 기억이 되시기를 바라면서 이만 줄입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12월 1일 아침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