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8] '그런가....보다' 와 '그렇구나!'의 차이

작성일
2012-12-11 07:45
조회
4630
 
[제578화] '그런가....보다' 와 '그렇구나!'의 차이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날이 많이 춥지요? 계룡산에도 온 천지가 눈으로 덮여 있어서 대설분위기는 제대로입니다. 조용한 아침의 분위기는 항상 새로운 편안함을 가져다 주는 것 같습니다. 차를 마시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정리를 해 봅니다.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것들이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만 때로는 명료하게 알 것도 있고 또 때로는 어렴풋하게 알아지는 것도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 봅니다.
 
 
1. '그런가....보다.....' 했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설명을 들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달리 방법이 없으니 그냥 강제로 자신을 설득시켜야지요. 그래서 그런가보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지만 정확하게 뜻은 모르겠는 경우에 이러한 반응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목극금(木剋金)이라고 알려주면 공부하는 학생은 두 가지의 반응이 나옵니다. '선생이 말을 하니까 뭔가 맞는 의미가 있겠거니...' 하는 사람이 있고, '그게 말이 돼?'라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반응이지요.
 
  물론 다시 설명과 비유를 통해서 이해를 시킨 다음에서야 비로소 '아하~! 그렇게 되는 것이어서 목극금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가 되어야만 만족을 하는 낭월입니다. 이것은 강제로 받아들이는 것과 완전하게 이해가 된 것의 차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만 여하튼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경험은 항상 있는 일이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네요.
 
  문득 전에 중국어 학원에서 공부하던 생각이 났습니다. 한 대목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신공략중국어라는 교재인데 고급편이어서인지 내용도 제법 고급스럽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선생도 쓰여진 뜻만 설명해 줄 뿐이고 왜 그러한 말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연유(然由)는 설명을 해 주지 않으니까 조금은 덜 소화가 되는 채로 넘어가는 경우도 가끔 있게 됩니다만. 뭐,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원문을 봅니다.

 
'如果小保姆憧規, 不消極怠工,
 
沒有惡習, 不和外面不三不四的人來往, 我就滿足.'
 

   이러한 내용입니다. 간단하게 풀이를 한다면, '만약에 가정부가 (집 안의)규칙을 잘 알고, 일을 하는데 소극적이지 않으며, 나쁜 버릇(술이나 담배)이 없고 밖에 나가서 마땅치 않은 사람들과 만나거나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면 나는 바로 만족합니다.'라는 정도의풀이가 되겠습니다. 아마도 가정부에 대해서 고용을 하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이겠고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중간에 파란 색으로 표시를 한 네 개의 글자가 있습니다. 이 뜻이 무엇인지를 선생님께 물었더니 '나쁜 사람들' 혹은 '질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설명을 해 줬습니다. 그런데 왜 불삼불사라고 하느냐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여기에 대한 답은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교재에 설명이 되어 있으니까 참고하라고 하는 말만 돌아왔습니다. 사실 그 글자에 대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독(正讀)을 했지요.
 
⑥ 不三不四란,
품행이 불성실하거나 단정치 못함, 혹은 맵시가 안 나거나 보기 좋지 않음을 가리킨다.

 
 
  설명을 보니까 대략 무슨 뜻인지는 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이면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닌 것'이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은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족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전혀 뜻 밖의 곳에서 이에 대한 의미를 찾았을 적에 그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참 소소하긴 합니다만 또한 적지 않은 즐거움이기도합니다. 그야말로 막혔던 통로과 확~! 뚫리는 상쾌함이 있으니 말이지요.

 
2. '아하~! 그렇게 된 것이었구나~~!!'
 
  아시다시피 요즘 증사강(曾仕强) 선생의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서 보게 되니까 짬짬이 한 편씩 보게 되지만 그렇게 봐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마음이 내키는 대로, 오늘은 태괘(泰卦), 내일은 대과괘(大過卦)로 유람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다가 다음과 같은 그림을 보게 된 것이지요.
 

 

 

 
  건괘(乾卦)를 놓고서 설명하는 장면이었는데, 다 같은 양효(陽爻)가 여섯 개 이지만 각각 뜻이 다른 이유는 그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각각 자신이 의미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해석도 달라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되니까 생략하겠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면 강의를 보는 과정에서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니까, 이 설명을 보다가 문득 무릎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왜 불삼불사(不三不四)라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떠세요? 그 의미가 보이시는지요? 물론 눈치가 빠른 벗님은 벌써 감을 잡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셨을 것입니다. 하하~
 
  맨 아래의 초구(初九)는 지양(地陽)이고 그 다음의 두 번째에 있는 구이(九二)는 지음(地陰)입니다. 그렇게 올라가면서 인양(人陽), 인음(人陰), 천양(天陽), 천음(天陰)이 되는것이지요. 해당하는 위치의 효가 음이든 양이든 이렇게 본래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연간(年干)은 편재궁, 연지(年支)는 정인궁 하듯이 말이지요. 이것을 정위(定位)라고 해서 제 자리로 이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괘가 나왔을 적에 5효나 6효가 동하게 되면 밖의 일이거나 나라의 일이라고 해석을 하는 것도 이러한 정위의 개념에서 바라보니 바로 이해가 되네요. 음, 또 사설이 길어지는군요. 여하튼 이렇게 정위가 있음을 정확하게 이해 하셨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설명이 된 것으로 보겠습니다.
 
3. 그러니까 불삼불사는 3효와 4효에 해당하는 문제였습니다.
 
  육효(六爻)의 정위에서 사람에 해당하는 것은 3효와 4효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개의 효는 사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라는 이야기겠습니다. 이것만으로 이미 해답은 나왔네요. 그렇지요? 다시 문제의 불삼불사(不三不四)를 보겠습니다. 이것을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3도 아니고 4도 아니다.'라는 말이 명백합니다. 그 말을 다시 풀이하면, '사람같지 않다.'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다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不三'은 남자가 아닌 사람이 되고, '不四'는 여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 다시 원문에서 의미하는 바를 총 정리 해 봅니다. '남자같지 않은 남자나 여자같지 않은 여자들과 교류하고 집에 들락거리는 것은 하지 말라'는 말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여기에서 어떤 사람이 남자같지 않고 여자같지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하나 제대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우연히 알아지기도 하고 애를 써서 알아지기도 합니다만 그 즐거움은 모두 같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그 속담에 깃든 의미를 알게 되면서 중국인들은 확실히 우리나라 보다 주역의 관념이 일상생활에 깊숙히 들어가 있다는 것도 겸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식의 서양교육을 받은 젊은 사람이 왜 불삼불사인지에 대한 의미 까지는 모르더라도 그렇게 전해지는 가운데에서 역경(易經)의 도리는 끊임없이 이어 진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이렇게 뿌리까지 파헤쳐야 속이 시원한 낭월같은 사람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감동하고 즐거워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하하~
 
4. 겯다리로 얻게 된 소득, '장삼이사(張三李四)' 

   불삼불사에 대해서 생각을 하다가 보니까 비슷한 구절이 또 떠오릅니다. 그것은 장삼이사지요. 한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만 중국 책에서는 수시로 등장하는 구절이기 때문에 대략 뜻으로 짐작을 해서 '아무개'정도로 이해를 하고 있었습니다만 불삼불사(不三不四)가 해결되고 보니까 겯다리로 장삼이사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의미를 풀어보면, 장삼(張三)은 장씨 성을 가진 남자를 말하고, 이사(李四)는 이씨 성을 가진 여자를 말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말하는 김이박(金李朴)과 같이 중국인들에게서 많은 성씨들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불특정의 남녀를 말할 적에 사용하는 정도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여전히 삼사(三四)는 인간(人間)을 논하고 있다는 의미는 정리가 되네요.

  인연이 있어서 공부하러 오는 제자와 마주 앉아서도 항상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반응이 시큰둥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아하~ 그렇구나!'가 나올 때까지 다그치곤 하는가 봅니다. 이렇게 사소해 보이는 차이가 나중에 10년이 지난 다음에는 분명히 큰 차이로 다가옴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배울 적에 제대로 이해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그런가 보다와 그렇구나의 차이는 눈에 빛이 나느냐 그렇지 않으냐로 구분을 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구나'라고 말하는 사람은 눈에서 광채가 나고 '그런가보다'라고 하는 하는 사람은 눈빛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은 그 마음에 딱~! 부딪치는 그 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싯돌이 서로 부딪쳐야 비로소 불이 튀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결론을 내려도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또 새로운 배움의 나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1%만이라도 제대로 이해를 하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면 또한 행복한 하루가 될 것은 틀림 없다는 생각으로 이목을 모으곤 합니다. 벗님의 오늘도 수확이 풍요로운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12월 11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