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0] '신강신약'의 이름을 바꿉시다.

작성일
2011-12-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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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신강신약'의 이름을 바꿉시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벼르고 별러서 고향나들이를 했습니다. 당일치기로 청도랑 창원이랑 둘러서 오느라고 일찍 나갔다가 밤중에 돌아왔더니 어제는 종일 힘들어서 쉬었네요. 운전하느라고 화인도 고생을 좀 했던 모양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는 속도가 평일같지 않았던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래도 오랫만에 묵은 숙제를 한 것 같아서 개운한 맛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감과 동시에 서로의 안부도 달라지네요. 오로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건강 뿐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간단한 주말의 경과보고를 드렸습니다.


 


1. 신강신약의 명칭과 오해


  자평법의 용신을 가리는 기준은 신강(身强)과 신약(身弱)이라는 것은 중급자의 수준이 되신 벗님들이라면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낭월도 그냥 무심하게 그대로 사용해 온 명칭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의견을 나누는데 아무런 이의도 달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지요. 그런데 '용신'편을 쓰면서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들면 바로 의견을 올려야만 근질거리는 손가락동요증을 잠재울 수가 있거든요. 이것이 책으로 나오려면 또 내년 봄을 기다려야 할텐데 그때까지 이 글들이 파일 속에서 얼마나 좀이 쑤시겠느냐는 것이지요. 하하~



  우리끼리 나누는 이야기로는 별 문제가 없는 말도 일반인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문제점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각종 신살이 그렇지요. 말하는 사람은 그냥 무심코 말을 하지만, 듣는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받기도 하니까 말이지요. 그런데 신강신약에 대해서도 문제는 있다는 것을 왜 미쳐 생각하지 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사주는 신강합니다.'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좋아하는 기색이 떠오릅니다. 이러한 것을 보면서 전문가는 본능적으로 느낌이 '팍!'오지요. '아하~! 이 사람이 뭔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하고 말입니다. 물론 무슨 오해를 한 것인지는 이해가 되시겠지요? 신강하다는 것은 힘이 넘쳐서 무슨 일이라도 할 수가 있을 것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지 뭐겠느냐는 말씀이지요.


  그야 뭐..... 좋다고 하겠습니다. 문제는 '사주가 참 신약하네요.'라고 했을 경우입니다. 현장에서 사주상담을 하신 벗님들께서는 이미 경험을 해 보셨기 때문에 그 반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바로 공감이 될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어딘가에 큰 병이라도 들겠네요?'라는 표정으로 애처롭게 바라볼 때에는 참으로 민망하기조차 한 경험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첫인상에서 느낌을 쉽사리 없애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그러면서도 그냥 그렇겠거니.... 하면서 여태까지 흘러왔다는 것이지요. 참 무사안일이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2. 개명신청


  이름에서 혼란의 여지가 있다면 바꿀 수가 있는지도 살펴봐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말이지요.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오랜 시간을 두고 궁리를 한 끝에 나오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은 어느 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다시 정리를 하면 이렇습니다. '신강(身强)이란, 일간과 같은 오행이나 일간을 생조하는 오행이 평균 이상으로 많을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라고 정의를 내릴 수가 있겠습니다. 물론 반대로 '신약(身弱)이란, 일간과 같은 오행이나 일간을 생조하는 오행이 평균 이하일 경우에 사용하는 말이다.'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사용되고 있는 몸신(身)은 과연 어디서 온 글자냐는 것이지요. 온 곳이 없이 왔으니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보십시다. 다시 백지의 상태라고 생각하고 질문을 던져봅니다. '신강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면, '일간이 강하다는 뜻'이라고 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겠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내용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 봐야 하겠습니다. 습관적으로 넘어갔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에 목에 턱 걸리게 되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 일이지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신강(身强)은 일강(日强)으로 봐야 맞다'는 것이 그 결론입니다. 좀 생소하긴 하겠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 될 테니까요. 그렇지만 의미는 바로 전달이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일강(日强)은 일간(日干)이 강(强)하다는 말의 줄임'이라는 주석을 붙일 필요도 없겠네요.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신약(身弱)에는 일약(日弱)이라고 하면 되겠다는 것은 당연히 얻을 수 있는 답이겠고 말이지요.


  이렇게 생각이 들자, 원고에 적어 놓고서는 화인과 금휘에게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금휘가 그러네요. '좀 쌩뚱맞긴 하지만 느낌이 딱 들어오네요.'라고 말이지요. 화인도 '괜찮네요~!'라고 하면서 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습니다. 그래서 뭔가 맘에 걸리는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잖아도 '地支'편에서 신대운을 말씀하신 바람에 전화를 받아서 설명하느라고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을 지경인데 또 이름이 바뀌었으니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어대면 일일이 답변을 해 줘야 할 것이니, 싸부님의 아이디어를 수습하느라고 전 쉴 날이 없어서 그것이 걱정이지 뭐겠어요~!"


  이렇게 하는 말을 들으니까 (아주)쪼매~ 미안하기는 합니다. 뭐,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것은 또 다음의 문제라고 할 밖에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개선을 할 점이 발견 되었는데도 화인이 전화 받기 편하라고 그냥 묻어두는 것은 화인도 원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 말이지요. 그래서 또 한 마디 던집니다.


  "그러마? 그냥 냅두뿌까?"


  "그건 아니지요. 잘 하셨습니다. 싸부~!"


  여하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낌의 전달은 잘 된 것으로 봐도 되겠다는 것에 대해서 합의를 도출해 냈습니다. 이렇게 된 다음에는 무조건 진행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용신편에서 언급될 내용임을 여기에서 안내말씀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신지요? 그런대로 적응이 되실 수 있겠지요? 물론 낭월도 2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말이기 때문에 한 동안은 의식적으로 생각하면서 말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내 적응이 될 것으로 자신의 입을 믿습니다. 혹 다음에 낭월을 만났는데 일강일약이라고 하는 말이 들린다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하하`


3. 바뀐 이름은 일강(日强)과 일약(日弱)입니다.


  입안에서 되뇌어 보시고 그런대로 이치가 타당해서 바꿔서 불러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렇게 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냥 익숙한대로 신강신약으로 하겠다고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것도 전통을 중시하는 하나의 관념이니까요. 다만 일강일약으로 부르게 되면 건강이 좋다는 말인지? 혹은 나쁘다는 말이지에 대해서 혼란을 겪을 초보자나 무학자의 쓸데없는 생각은 미연에 차단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볼만 하겠습니다.


  日强과 日弱이 느낌상으로는 조금은 더 본질적인 이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일간이 강하면 일강이고 일간이 약하면 일약이므로 신(身)이 들어간 이유를 따로 설명할 시간적인 낭비를 줄일 수가 있다면 그것도 1천명을 상담한다고 했을 적에 적지 않은 시간의 절약효과가 있을 것이고 그 시간에 책을 한 권 읽어도 또한 소득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호들갑을 떨어봅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설명하도록 할 요량입니다. 그래서 함께 생각해 보시자고 간단하게 소개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며칠 전에는 사기(史記)를 한 질 구입했습니다. 민음사에서 나온 것으로 완역이라고 해서 구입했는데 대략 보니까 잘 되었네요. 어떤 번역본은 열전위주로 되어 있기도 하고 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제 제대로 된 책을 구입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탕으로 삼은 책이 중국의 중화서국에서 나온 책이라고 하니까 그것을 또 구입해서 참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선 본기를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책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옛 사람이나 요즘 사람이나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네요. 그래서 역사의 공부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결코 아득한 옛날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저녁에 또 도올 선생님의 중용 강의가 있네요. 요즘 한참 중용의 핵심이라고 하는 성(誠)과 효(孝)에 대해서 열강을 하고 계시는데 혹 잠이 오지않으시거나 심심하시다면 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아서 권해 드립니다. EBS에서 밤 10시 40분 무렵부터 약 30분간 이야기 합니다. 내일까지 매주 두 번씩 하는데 앞으로 여섯 번이 남은 것으로 봐서 3주가 남았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열강을 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천생 학자'라는 생각이 드네요.


                        2011년 12월 19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