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2] 오주괘관법이 나왔습니다.

작성일
2011-07-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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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오주괘관법이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남들은 장마 중에 뭘 하면서 보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감로사에서는 《오주괘관법(五柱卦觀法)》을 만드느라고 약 두 달간을 꼼짝 못하고 원고(原稿)에 매달려 있었네요. 그래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지나간 장마였던 모양입니다. 어제 오후에 인쇄소에서 책을 찾아왔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의 공사가 완료되었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간단하게 생각나는 대로 정리를 해 봅니다.




1. 발단(發端)


모든 일에는 그 시작의 끈이 있기 마련입니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첫 발을 딛게 되는 사람의 생각을 떠올려 봅니다. 학교에서 배운 모든 대로만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까지 동서고금(東西古今)의 지식을 습득(習得)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날과 해를 보냈는지 생각해 보면 능히 그럴 만도 하겠다 싶네요.


그런데, 막상 세상에 나가보면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그 과정에서 좌절(挫折)도 하고, 분노(憤怒)도 하겠지만 결국은 인생의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적당한 타협(妥協)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걸리는 시간만큼의 갈등은 빨리 끝낼수록 좋다고 해야 할 모양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세상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다시 많은 세월이 흘러서 나이 70고개를 넘고 나서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러지요. ‘이놈들아, 늙어봐라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것인지를 말이다……’라고 하게 되는 가 봅니다. 그러고 보면 여하튼 삶은 살아봐야 알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오행(五行)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도 또한 이러한 원칙은 그대로 유효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처음에 입문을 하면서 최고(最高)의 명리서(命理書)가 무엇인지를 알아본 결과, 《적천수(滴天髓)》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 책을 수년 동안 파고들었었지요. 그러고 나서 개업(開業)을 했을 것 아닙니까. 배웠으면 써먹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찾아온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불과 1시간도 되지 않아서 마구 파고들어오는 좌절(挫折)감이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고지식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낭월은 적천수만 제대로 보면 사주풀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방문자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바로 깨달은 것은,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공부할 적에는 미처 몰랐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가 30대 초반이었겠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좌절감으로, 어렵게 마련한 상담실(相談室)을 접어버리고 노가다를 뛰러 나갔던 느낌이 벗님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벗님도 이러한 과정의 경험이 있으셨을 가능성도 없다고 못하겠습니다.


질통에 모래를 퍼 담아서 5층까지 올라가면서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체력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왜 책에서 배운 것이 활용되지 않았느냐는 것이고,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오기로 버티는 것도 오래 가진 못했지요. 두어 달의 노동 속에서 분노와 좌절도 어느 정도 삭여지고 나니까 다시 공부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의미 없는 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겠다는 조바심이 이내 뒤따라 왔던 모양입니다.


다시 스승을 찾아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였고, 책을 찾아서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어렴풋이나마 해답에 작용하는 어떤 조짐(兆朕)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도사(道士) 스타일의 고수(高手)를 만나게 되면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들었지요. 그렇지만 그 원리를 물으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고의로 그랬는지 수업료를 지불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도 설명을 할 방법이 없었는지는 모를 일이었습니다만 실은 그 당시로써는 전수비용을 감당할 형편이 안 되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냥 궁금한 대로 책을 뒤지면서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서의 탐색(探索)이 이뤄지고 어느 정도의 상식에 대한 폭을 넓히는 계기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오주괘관법이 있게 된 발단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2. 끝없는 시도(試圖)


일단 방향이 잡히면서 닥치는 대로 실험대에 올려놓고 흔들어봤습니다. 월령도(月令圖)가 대단하다고 하여 그것을 붙잡고 몇 달을 보내기도 하고, 시가기문(時家奇門)을 알게 되면 귀신같은 해답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는 글을 읽어보고는 또 이기목(李奇穆) 선생의 기학정설(氣學精說)로 부터 시작해서 기문둔갑(奇門遁甲)에 대한 책을 뒤지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그 이치를 혼자서 적용시키기에는 무지하게 어려웠습니다. 몇 발자국 나아갔는가 싶으면 도로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것이지요.


‘아닌가보다’싶은 생각, 이것이 참으로 위험한 것이지요. 자신의 머리가 나쁜 생각은 해봐야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책에 나온 대로 대입을 해보다가는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이내 좌절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무렵이 무진(戊辰)년 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책상 옆에는 나날이 난해한 책들이 쌓여가고 연지님의 한숨소리는 그에 비례해서 깊어져 갔습니다. 나중에 잘 살게 해 줄 테니까 조금만 참으라는 말도 한 두 번이지 나중에는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돌이켜보면 이러한 과정이 결코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여기까지 오진 못했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지만 그 당시로써 그렇게 절박(切迫)했던 것은 앞으로 20년이 더 지나간다고 해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전생에 반딧불이만큼의 선근(善根)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해 보곤 합니다. 웬만하면 그만뒀을 가능성도 많았을 텐데 말이지요.




3. 스승의 복(福)


책으로 만나거나 실제로 만나거나 스승의 복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입문을 했을 적에도 백민 선생님을 만나서 크게 헛돌지 않고 시작을 했는데, 그 후로 책을 만나면서도 항상 다행스러웠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은 비록 시행착오가 없었다고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책을 만나면서 점차로 내공이 조금씩 쌓여갔던 것 같거든요.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한자(漢字)를 조금 깨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이 아무리 깊은 내용의 이치를 글로 담아준다고 해도 그것을 읽을 눈조차 없다면 인연이 되기는 불가능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절간에서 글을 읽었던 공덕은 무량(無量)이라고 해야 하겠네요.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해 보면 강당(講堂)에서 글 읽던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같이 공부했던 화상들은 나름대로 여기저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혼자 미소를 짓곤 합니다. 머지않아서 본사 주지도 나오지 싶네요.


돌이켜 생각을 해 보면 일일이 열거를 할 수가 없을 만큼의 많은 안내자들이 계셨습니다. 지금도 서가(書架)에서 준엄한 표정으로 낭월을 노려보시는 스승들의 입김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서 좀 늘어져 있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곤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스승들의 인연에 의해서 조짐을 읽어내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 봤고 그 중에서는 감탄을 하기도 하고, 또 실망도 하면서 세월이 쌓여갔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항상 머리 꼭대기에 높이 세워진 깃대에는 ‘생극제화(生剋制化)’라는 네 글자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은 일단 배제(排除)하고 관찰을 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음양(陰陽)의 관찰법이 반복되고, 오행(五行)의 생극법이 수십 번은 뒤집어지고, 다시 간지(干支)의 제화(制化)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것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에 모두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오는 방문자에게도 공부의 방법을 물으면 이것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지를 묻습니다. 가끔은 공부에 대해서 묻기 위해 찾아오는 벗님도 있습니다. 상담이 아니라 질문하러 오는 것이지요. 물론 과거에 낭월이 헤매고 다녔던 시절이 생각나서 잠시 이야기를 나눕니다. 처음에 주객이 서로 만나게 되면 질문보따리가 엄청나게 큽니다. 그것을 끌러놓고 모두 다 물어보겠다고 대들지요.


그런데 어쩝니까! 그 모든 질문보따리는 90%가 음양오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래서 질문을 듣고서 툭 던집니다. ‘이 찻잔에 대해서 음양으로 논해 보시지요.’라고 말입니다. 뭐 닥치는 대로 질문을 던집니다. 옆에 있는 모든 것은 질문의 대상이 되거든요. 그리고 낭월을 찾아오는 공부인들의 대부분은 낭월보다 음양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공부가 많이 되신 분들이야 뭐하러 찾아오겠습니까. 당연하겠네요.


처음에는 이러한 질문을 받은 방문자는 의아해 합니다. 자신은 심오한 해답을 요청하는 것인데 찻잔의 음양이나 답하라고 하니까 말이지요. 아마도 어떤 벗님은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가르쳐 주기 싫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려니’하고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눈치 빠른 대부분의 명석한 학인들은 자신이 뭘 모르고 있는지를 알아내곤 가벼운 걸음으로 귀가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항상 귀한 가르침을 전해 주신 스승의 공덕(功德)을 찬탄하고 있는 낭월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없었다면 학문의 진보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앞으로도 귀한 스승은 항상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그래서 항상 분발하려고 호시탐탐 틈바구니를 주시하고 있기도 합니다.




4. 제자의 복


낭월에게 스승의 복만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제자의 복도 엄청 많이 있다고 자부(自負)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 아득한 전설(傳說)이 되어버린 ‘01410’을 기억하고 있는 벗님들 말입니다. 밤을 새워가면서 채팅하고 머리 터지게 게시판으로 열을 올리던 경술(庚戌)생, 신해(辛亥)생들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하이텔의 역학동호회(易學同好會)에서 말이지요. 지금도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기억나는 그 당시의 이름들과 닉네임들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세월이 20년이나 흘러갔으니 이미 그들도 사회의 중견들이 되어가고 있겠네요. 모두 자신의 삶에서 열심히 정진하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낭월의 운명은 선생의 팔자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행복한 인연이었지요. 이렇게 꾸준히 자신의 연구와 경험을 책으로 엮을 수가 있는 것도 이렇게 타고 난 제자의 복이 아니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또 행복한 낭월입니다.




5. 오주괘관법의 예판(豫販)


원고를 인쇄소에 넘기고 나서 예판의 공지를 올린 후에 낭월도 놀라고 있습니다. 오주괘의 해석법에 대해서 독자들께서 이렇게도 목이 말랐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지요. 어제 저녁에 찾아온 책을 아침에 예판에 참석하셨던 벗님들께 보낼 택배를 도와주고 내려와서 책을 옆에 놓고 바라보고 있자니 만감(萬感)이 교차(交差)하여 이렇게 생각을 적어보고 있는 낭월입니다. 물론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에 대해서 열렬한 환영에 감동(感動)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혹 너무 게으르지 않았었나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꾸준하게 인내심으로 기다려주신 벗님들의 끈기에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라도 그러한 열성(熱誠)에 보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화인에게 이야기하게 되었고, 그래서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은 선물을 제공하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책의 구성이 1부의 공식과 2부의 임상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공식에 대해서는 쉽사리 적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봐서 휴대용으로 제작을 하기로 했는데, 이것을 예판에 구매해 주시는 벗님께는 무상으로 선물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예판기간을 마치게 되면 별도로 판매는 하지 않을 것이고 오주괘관법을 구입하면서 원하시면 함께 구매를 하실 수가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이제 낭월의 짧은 소견으로 봐서는 이 정도라면 오주괘를 활용하시는데 큰 어려움은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또 모를 일입니다. 처음에 《왕초보사주학》을 쓸 적에도 그런 마음이었는데, 앞으로도 해설을 위한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게 될지도 말이지요. 그렇지만 기본적인 골격은 이만하면 갖춰졌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웬만큼 기본기가 갖춰진 경우에는 충분히 바로 활용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미 잘 활용하고 계신 경우에는 전혀 필요가 없겠습니다. 다만 뭔가 적용으 시켜가면서도 2%가 부족해서 만족스럽지 못했던 벗님께는 참고를 할 내용이 제법 될 것으로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것이 목적이었기도 하고요. 이제까지의 임상을 통해서 얻은 것은 나름대로 잘 정리했다고 생각됩니다만, 앞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는 모를 일이므로 새로운 깨달음이 추가된다면 다음 기회를 봐야 하겠습니다.




6. 파란해골 13호


“말도 마십시오~~!”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웬 파란해골이냐고 하시겠습니다만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집니다. 지난 한담에서 교정하는 화인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이번 책의 경우에는 다른 책과 다르게 순순히 진행이 되질 않았습니다.


원고는 분명히 낭월이 썼습니다만 자꾸만 글이 되씹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시 손을 보기도 여러 차례 했지요. 오죽하면 다른 사람이 쓴 원고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습니까? 그리고 교정하는 과정에서 낭월은 다리에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것도 무단히 넘어질 자리도 아닌데 충전기 아답터의 줄에 걸려서 의자 모서리에 다리를 찧었는데 이것이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아직도 온전치 않습니다. 그냥 그렇겠거니 하다가도 ‘혹시 음계(陰界)의 마왕(魔王)이 파란해골 13호를 보내서 출판(出版)을 막으려는 수작(酬酌)’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애로가 많았습니다.


그럴 리는 없겠습니다만 천기누설(天機漏泄)을 막으려는 신계(神界)의 의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다 했지 뭡니까. 그래서 과연 책을 출판해야 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기조차 했다니까요. 원래 낭월은 겁이 많잖아요. 책을 만들어놓고서 마왕의 공격을 받아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그것도 모양이 빠지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하하~


그 뿐이 아닙니다. 일껏 수정(修整)을 다 해놓고 뭔가 이상해서 봤더니 엉뚱한 파일(몇 단계 이전의 교정본)을 붙잡고 씨름을 했지 뭡니까. 그래서 또 눈물을 머금고 다시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기다리시는 벗님들이야 목이 마르셨겠습니다만 작업하는 낭월과 화인은 또 이런 속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으면 많이 억울할 것 같다는……


그 와중에서도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러한 점술(占術)을 통해서 인간의 고통을 미연(未然)에 방지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그것은 분명(分明)히 선신(善神)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악의 무리에게 잡아먹히더라도 책은 세상에 내어놔야 하겠다는 비장한 생각도 했었다는 것을 누가 믿기나 하겠습니까만서도 여하튼 그런 과정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지네에게 발가락까지 깨물렸다니까요. 참 묘(妙)한 일이지요.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인 이야기도 의미를 부여하려고 드니까 이런 황당한 이야기까지 나오네요. 여하튼 파란해골 13호를 물리치고 책은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하하하~~!!




이런저런 생각들을 중언부언(重言復言) 적다가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렇게 뭔가 하나의 작업을 마치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이 여운을 남기는가 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날이 행복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2011년 7월 22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