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공인(公人)과 예인(藝人)

작성일
2011-04-2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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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공인(公人)과 예인(藝人)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아침 날씨가 꽤 쌀랑하네요. 어찌 보면 비가 오고 싶은 것도 같고, 아직도 봄이라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리기도 하는 분위기로도 보입니다.




요즘의 인터넷포털에서는 어느 가수의 이혼에 대해서 좀 시끌시끌한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들 그렇게 관심을 보이나 싶은 생각에 좀 들여다보기도 했습니다만 결론은 없네요. 낭월의 결론이라면, ‘뭐, 사는 게 다 그렇지요.’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만 듭니다. 그렇지만 지칠 줄도 모르고 물어뜯고 파고드는 들쥐와 같고, 거머리와 같은 동조자들로 인해서 계속해서 재탕 삼탕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낭월은 관심사의 하나로 개인적인 감정을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스타가 되어서 영예와 부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축하를 하기 보다는 그 이면에는 어떤 마음으로 머물고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마도 자동적으로 되어있는 생각의 구조인가 싶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한 일들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주변사람들로 인해서 힘이 들게 되어서 고통스러운 모습을 살펴보는 것이지요. 물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또한 즐거울 것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좋고 나쁨의 기준은 주관적이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행복하다면 그것은 좋은 운이 되는 것이고, 스스로 고통스럽다면 나쁜 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누구라도 같은 경우일 것이므로 농부이거나 고관대작이거나 모두 같다고 봐서 심리적인 잣대를 갖고서 대입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자꾸만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까 ‘누구는 언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으므로 좋은 운이다.’라고 하는 기준에 대해서도 썩 내키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알려진 사람들의 사주를 연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연예인들은 관중을 즐겁게 하거나 감동을 주거나 여하튼 그러한 역할을 하는 직업군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젊은 청소년들은 연예인이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겠습니다만 세상을 살만큼 살아본 사람에게는 그 속에서도 희노애락(喜怒哀樂)은 고스란히 살아있음을 잘 알고 있지요. 가끔은 고통을 못 이겨서 자살도 합니다. 최고의 배우로 각광을 받고 있음에도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객관적인 평가는 본인에게 별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늘 생각하게 되네요.




그러다 보니까 스스로 행복하다면 운이 망가졌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면서 노자나 장자와 같은 글들에 대해서 동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비록 흉한 운이라고 하더라도 허허롭게 웃으면서 담담히 바라본다면 이미 그 사람에게 길흉의 운은 의미를 상실한다고 봐도 되지 않겠나 싶은 것이지요. 즉 노장(老莊)과 같은 상태에서는 남에게 운을 물을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연예인이 해외에 나가서 도박을 했다고 비난의 화살을 퍼부어댄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곰곰 생각을 해 보면, 그냥 한 개인이 별로 좋지 않은 오락에 깊이 빠져서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이상으로는 확대를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것이 회사원이든 상업가이든 연예인이든 같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연예인은 공인(公人)이 아니거든요. 툭하면 ‘공인운운’하기는 합니다만 실로 공인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 사람이 공인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무원이 공인이지요. 오죽하면 직업도 공무(公務)이겠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연예인도 공인에 들어가게 된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아마도 정확하게 말을 한다면 그냥 ‘자유인’이라고 해야 맞을 것입니다. 물론 낭월도 자유인입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녹봉(祿俸)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스스로 자신과 가족을 먹여 살려야만 하는 모든 사람은 자유인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일도 스스로 벌이고 책임도 스스로 지고 또 즐거움도 스스로 느끼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유인의 길을 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박(束縛)을 싫어하고 방종(放縱)도 거부하는 그 중간에서 조화(調和)를 이뤄가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예인은 연기력에 대해서만 평가를 하면 된다고 봅니다. 도덕적인 것까지 바라고 간섭하는 것은 자유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접이라고 하겠기 때문입니다. 분에 넘치는 지나친 관심은 삶의 리듬을 망가뜨리기에 충분합니다. 그들은 공인(公人)이 아니라 예인(藝人)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그를 아끼는 추종자를 넘어서 숭배자들이 생기면서 반대적으로 부정을 넘어서 비난을 해 대는 안티까지 양산하게 되기도 하는가 봅니다. 물론 예인이라도 일단 정치에 발을 들어놓고서 국록을 받게 된다면 당연히 공인의 임무를 다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잘했다는 이야기 보다는 비난을 받고 떠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면 이미 그들의 능력은 예능에 맞춰져있기 때문이겠지요.




공인의 반대는 사인(私人)이 되겠네요. 사전에 그렇게 나와 있으니 틀림없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사인은 자유로운 개인이라고 하는 부연설명을 보면서 연예인은 분명히 사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겠습니다. 문제는 사인을 공인으로 둔갑시키는 다수의 시선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다시 생각을 해 보지만 사인에게 공인의 부담감을 지워줘서 고통스럽게 살도록 만들었다면 불특정다수의 폭행이라고 봐야 할 것도 같습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예능활동만 하면 되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공인의 굴레를 왜 씌워줬는지를 한 번쯤은 생각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연예인이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또 이혼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의 마음살이과 운명의 사슬에 얽혀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이 겉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할 수도 있고, 속으로 연인이 이별을 해서 고통스러울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또 우리는 그 중의 한 면을 보고서 운이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의 행복과 불행은 스스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낭월의 관점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심심하면 터지는 연예인의 스캔들에 대해서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사람도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특히 의심스러운 것이라고 하는 부분을 생각해 보면, 공인들이 자신의 치부(恥部)를 감추기 위해서 연예인의 이야기를 이용한다는 말도 있네요. 물론 그렇다면 이것이야말로 공인의 책무(責務)를 져버리고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습니다만 만에 하나라도 그러한 발상을 할 수가 있는 권력자라고 한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다고는 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논리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볼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는가 봅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어렵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결과가 있기 마련인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만 놓고서 말하는 것도 반쪽짜리가 될 것이고, 원인만 놓고 말하는 것도 반쪽짜리이기는 마찬가지가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봐도 서로에게 이 이야기가 터져서 이득을 볼 부분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보다는 그렇게 오래도록 꼭꼭 숨겨왔던 만큼 더 오랫동안 숨어있기를 바랬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러므로 아무리 뒤집어서 생각을 해봐도 그들에게 돌아갈 이득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더우기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고 하필이면 발설(發泄)의 진원지가 정권자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사건을 담고 있는 기관과 같은 법무법인이라고 하는 말도 들려서 왠지 떨떠름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밝혀질 수도 있겠지요.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국민이시라면 모쪼록 공인이 아닌 사인의 자유가 특정 목적에 의해서 희생되는 일만은 없는 나라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것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낭월입니다. 그냥 아침에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접속하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네이버의 뉴스 창에 나온 이야기에 끌려서 클릭을 하다가 이것저것 주워 읽은 것이 전부이니까요. 다만 개인의 행복추구권은 지켜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 보면서 힘없고 약한 연예인들이 항상 누군가의 손끝에 의해서 희생양이 된다면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겠다는 생각이 가끔은 드는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자판을 들고 시청 앞에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면서 말이지요.




벗님은 공인이십니까? 아니면 사인이십니까? 물론 낭월학당에 오셨다면 사인의 자격이실 것으로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사인은 자유로워야 하고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공인도 행복을 할 수는 있지만 행복보다는 공무가 우선이기 때문에 쓰나미가 밀려와도 자신의 집에 가족을 구하러 가지 못하고 수문을 막으려고 제방으로 향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지요. 이것이 국가에서 주는 밥을 먹은 밥값이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사(慘事)가 났는데 대통령이나 장관이 개인적인 연회에 참석하고 있으면 비난을 면키 어려운 것이지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공인인 고로.




공인은 공인다울 적에 멋진 것이고 그래서 동상까지도 세워주듯이, 사인은 사인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가면 된다고 봅니다. 연예인이든 철학자이든 혹은 농부든 간에 제각기 자신의 삶이 행복하고 자유로웠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 노력을 하여 입지전(立志傳) 적인 성공을 거두거나, 삶을 탕진하여 패배자(敗北者)가 되어서 쓸쓸한 삶을 지켜보거나 결과적으로 모두는 자신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사주팔자는 깨어지고 충극이 되었더라도, 그래서 하는 일마다 꼬이고 얽혀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할지라도 마음만큼은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도록 속박이 없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실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지요.




빗줄기까지 뿌려대더니 잠시 멈추고 있는 계룡산입니다. 오늘 날씨만큼이나 찝찝한 신해(辛亥)일의 아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여 햇살이 들어나기를 기다렸다가 산자락에 산책이라도 나가봐야 하겠습니다. 벗님의 오늘 하루도 밝고 맑은 순간으로 채워지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4월 26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