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 (글쓰기 놀이) 산처녀

작성일
2011-01-15 22:37
조회
6271

[501] (글쓰기 놀이) 산처녀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그야말로 맹동이네요.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감로사에서도 날은 춥고 뭔가 재미있는 일이 없느려나 하다가 화인과 금휘에게 글쓰기 훈련이나 시켜볼까 하고 주제를 공통으로 [산처녀]라고 정한 뒤에 각자 A4로 5장 내외의 글을 써보자고 하여 두어 시간 뚝딱거렸습니다. 각자 쓴 글을 서로 돌려가면서 보고는 촌평도 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글도 아는 만큼 쓸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는 것인가 싶습니다. 마침 낭월이 써 놓은 글을 여기에 올려봅니다. 심심하신데 잠시 거짓말 속으로 동행해 보셔도 나쁘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럼 그냥 웃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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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처 녀


 

 


 

 


 

 


 

                                                                             낭월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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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 속에 처녀가 살고 있었다. 가끔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어디서 왔는지, 부모는 계신지를 물었지만 그냥 웃기만 할 뿐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동네 사람들은 그냥 편한 대로 ‘산처녀’라고만 불렀다.


 

산처녀의 용모는 평범했지만 항상 혼자서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통 말이 없었다. 그래서 신비한 처녀가 산 속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멀리 퍼져나가면서 듣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곤 했다.


 

부산의 영도 입구에서 허름한 만화방을 하고 있는 김정식에게도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흘리는 말을 듣고서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그 말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들여서 인스턴트커피를 대접하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자세히 들려 달라고 정중히 부탁을 하자, 중년의 그 사람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청도의 호거산에는 산처녀가 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든지 한 번에 보면 바로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까지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알아맞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십니꺼? 만나 보기도 하셨습니껴?”


 

“그란해도 만나 볼라꼬 지난 토요일에 우리 둘이 갔었다 아잉교, 그란데 산길을 하로 점두룩 헤매고 댕겼지만도 처녀는 고만두고 할망탱구리도 멈십띠더. 허탕아잉교.”


 

그러면서 손바닥을 보여주는데 미끄러운 바위를 타다가 떨어져서 다쳤다고 하는 상처가 꽤 깊었다. 호거산이라는 곳이 그렇게 깊은 산이었던 것이다. 고맙다는 이야기로 손님들을 보내놓고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 자신은 반드시 그 처녀를 만나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운명의 끈이 그 산처녀로부터 자신에게 닿아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김정식은 원래 서울사람이었다. 6.25 난리 통에 부친과 함께 피난을 왔다가는 부친은 돌아가시고 배운 것도 없이 만화방을 전전하다가는 사람이 착실하다고 봤던지 이 점방을 운영하던 주인 최 씨가 자신은 절로 도를 닦으러 간다고 하면서 물려줬던 것이다. 그것도 벌써 3년 전의 이야기이다.


 

김정식은 항상 운명의 끈이 자신을 안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은 이러한 인연들로 인해서 더욱 확고하게 굳어졌던 것이다. 그 사이에 틈이 나는 대로 무술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마음이 내키는 대로 배우다가 태극권의 유연한 동작에 매료되어서 열심히 연마를 한 결과로 지금의 실력은 태권도로 치면 대략 5단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바람에 중국의 소림사에 가서 6개월간 유학생의 자격으로 특별수련도 받았던 것이다. 나중에 도장의 조 사범은 자신에게도 같이 후학을 지도하자는 제안을 항상 끈질기게 하고 있지만 승낙을 하지 않고 버티는 것은 어느 날에 갑자기 바람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자 할 적에 그러한 것이 모두 짐으로 작용을 할 것에 대해서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김정식에게 이번 이야기는 하마터면 ‘얏호~!’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길로 라면박스를 뜯어서 옆집의 미용실에서 빌려 온 매직으로 ‘주인이 여행 중으로 잠시 쉽니다.’를 큼직하게 쓴 다음에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서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도록 해 놓고는, 배낭에 옷이며 미숫가루와 등산용품을 챙겨 넣고서는 새벽에 날이 밝기를 기다려서 부산역으로 갔다. 호거산으로 가려면 청도역에 내려서 완행버스로 매전면까지 간 다음에 걸어서 50리 길이라고 했다. 그 손님들의 말로는 운문사의 뒤편이 될 것이라고 했으므로 운문사 방향은 아니라고 판단을 했다.


 

새벽열차는 통근열차이다.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이 북적댔지만 그것도 구포를 빠져나가면서는 한가해졌다. 청도에서 내린 다음에 터미널에서도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매전면에 내리니까 봄날의 긴 하루임에도 어느 사이에 높은 산의 그림자가 많이 길어진 무렵이었다.


 

원래 태극권으로 다져진 몸이기 때문에 50리 정도를 걷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항상 애용하는 등산지도를 챙겨왔기 때문에 달리 걱정을 해야 할 것은 없었다. 여하튼 마력에 끌리듯이 이렇게 정신없이 길을 나서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어서인지 괜한 설렘으로 마음속은 이미 부푼 풍선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산처녀를 만나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도 없었다. 일단 만나야 하겠다는 생각만 들었으니 누가 봤다면 아무래도 실성을 했다고 할 참이었다.


 

잰 걸음으로 서너 시간을 걸었을까? 배낭을 진 등에서는 땀이 촉촉하게 배어드는 느낌이 들 때쯤에서 ‘호거산입구’라고 쓴 팻말을 발견할 수가 있었고, 주변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는 민가가 띄엄띄엄 5,6채정도 있었다. 그리고 개울가에는 우물이 있었는데, 마침 저녁 지을 보리쌀을 씻으러 나왔는지 아주머니가 열심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저기, 아지매요. 지좀 보이소.”


 

“뉘십니꺼? 와요?”


 

“딴기 아이고예. 이 산에 살고 있다카는 어떤 처자를 쫌 만날라꼬 왔는데예. 어덜로 가마되는지 쫌 여쭤볼라꼬예.”


 

김정식은 일부러 사투리를 강하게 써서 대화를 시도했다. 그래서 친근감이 들어서 좀 더 자세하게 안내를 해 줄 것 같아서였다. 아주머니는 그냥 일을 하면서 고개만 들어서 흘낏 보고서는 앞쪽을 가리켰다. 계속해서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긴 모양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물어서 귀찮다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올매나 더 가마 처자가 사는 집이 나옵니껴?”


 

“한참 가마 됩니더.”


 

그렇게 답을 하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을 보면서 더 길게 묻기도 그렇고 해서 고맙다는 말을 던지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그래 인연이 되면 만나는 것이지 뭐. 가다가 보면 무슨 답이 나올 거야.’ 항상 그렇듯이 발걸음에 운명을 맡기고 숨이 턱에 닿을 만큼 올라가니까 다소 펑퍼짐한 넓은 바위가 나타났다. 등산객들에게는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물을 꺼내서 목을 축이고 건빵을 먹으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사이에 노을이 지려고 서녘은 주황빛을 띠우고 있었다. 아마도 한두 시간 이내로 산처녀를 만나지 못하면 노숙을 해야 할 모양이다 싶었다. 둘러봤지만 주변에서는 어떤 조짐도 발견을 할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5시였다. 잠시 생각을 한 다음에 배낭에서 조그만 나침판을 꺼냈다. 등산용으로 사용하는 것이지만 오늘은 소림사에서 곽정 선배에게 배운 기문팔진법을 활용해 볼 참이다.


 

팔진도표를 펼치고서 일진반과 시반을 돌려보니까 곤방(坤方)이 생문(生門)이었다. 그 방향을 따라서 눈으로 방향을 살펴보니까 계속해서 산을 끼고 옆으로 돌아가는 방향인데 물론 길도 없었다. 혼자서 미소를 짓고는 다시 물건들을 주워 담은 다음에 바위와 나무사이를 누비면서 약 1시간 정도 나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절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비로소 사람의 흔적이 보였다. 나무가 잘려져 있었고, 왼쪽으로 노루길이 나 있었다. 그 길로 5분 정도 더 들어가자 커다란 바위 아래에 나무로 대충 얽어서 바람을 피하게 만든 토굴이 나타났다. 바로 찾아 온 것이다.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인기척을 냈다.


 

“저, 실례합니다. 주인 계십니까?”


 

이 시각,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가볍게 승복을 걸친 사람은 날렵한 몸매로 봐서 분명히 여인이었다. 아까부터 이 길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일거수일투족까지 살피면서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절벽의 위는 높고 은밀해서 안에서는 밖이 잘 보이지만 외부에서는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 요새와 같은 형세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움막을 찾아 온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내는 무슨 비법을 사용했는지 단박에 자신의 움막을 찾아드는 것을 보면서 한편은 놀라면서도 또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주인을 불러도 잠시 답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잠깐만 뵙고자 합니다.”


 

예의를 갖춰서 말하는 품세가 은은하게 풍기는 도인의 풍모가 엿보였다. 그 정도라면 만나도 될 것 같았다. 자신만이 다니는 길로 가볍게 내려서서는 토굴 앞으로 나아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젊은 남자가 용모도 준수한 것이 호감이 생기는 모습이었다. 뭔가 인연이 있어서 찾아 온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곳은 외지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데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뵌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무례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정식이라고 합니다.”


 

산처녀는 이 남자를 보면서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난 적은 없지만 분명히 낯이 선 모습은 아니었던 것이다. 괜지 모를 설렘은 또 무슨 조짐일까?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고는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자신을 바라보면서 넋을 놓고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처자의 이름이 김연화라고 하지 않으시는지요?”


 

“예? 김연화요?”


 

산처녀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 누구도 자신이 어려서 사용하던 이름을 불러준 사람도 없고 아는 사람은 더더구나 없는데, 이 초면의 남자에게서 그 이름을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떨리는 가슴을 억누르면서 차분하게 물었다.


 

“그 이름을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요?”


 

“맞구나…… 연화야~! 오빠다. 소문을 듣고서 설마설마 하면서도 그래도 혹시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헛일 삼아서 찾아왔는데 진짜로 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오빠가 기억나겠니? 그때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피난을 하던 도중에 밀양역에서 복잡한 인파들 속에서 널 잡았던 손을 놓친 이후로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산처녀는 순간적으로 다섯 살의 어린 시절의 한 풍경이 또렷이 되살아났다. 그때 엄마를 찾으면서 울고 있는 자신에게 여덟 살의 오빠가 과자를 사준다고 해서 따라가다가 갑자기 사람들이 기차를 타려고 몰려드는 바람에 그만 손을 놓치고 말았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었다.


 

울면서 오빠를 찾아다녔지만 기차는 떠나가고 어쩔 수가 없이 밥을 얻어먹으면서 길을 걸었는데, 그래도 모진 목숨이라서 어린 아이가 용케도 산속으로 들어와서는 어느 암자에서 연명을 하다가 나중에는 하도 못살게 구는 스님을 피해서 혼자 이 바위 아래에 움막을 치고는 가끔 운문사에 가서 남은 음식들을 얻어다가 먹으면서 스님들에게 책을 얻어서 글을 깨치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가 나를 찾아주다니……”


 

두 남매는 서로를 얼싸안고 한참을 그렇게 말을 잃고 있었다. 하긴, 무슨 말이 필요하랴! 모진 세상에 태어나서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가 있었다는 것만이 감사할 뿐이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것에 대해서 지켜봤기 때문에 오빠가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또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는 더구나 꿈도 꾸지 못했던 것이다.


 

“오빠 이렇게 나를 잊지 않고 찾아줄 줄은 몰랐어. 안으로 들어가. 내가 저녁을 지어 줄께. 그래도 오빠와 아버지를 만나는 꿈은 늘 꿔왔었어. 그것이 현실로 이뤄질 줄은 몰랐네. 아버지는? 잘 계셔?”


 

“아니, 세상을 떠나셨다. 그렇게 널 보고 싶어 하셨는데, 아이들을 가르치시던 몸으로 하지 않으신 일이 없다시피 하게 닥치는 대로 하시더니 어렵게 모은 돈으로 누군가 사업을 하자는 말에 넘어가서는 한 순간에 털리고는 그길로 병을 얻어서 일어나지 못하고 떠나셨어.”


 

“그랬구나…… 그럼 오빠 잠시만 자식이 부고를 받았으니 곡은 해야 하지 않겠어.”


 

갑자기 두 눈에서 굵은 이슬이 맺히더니 양 뺨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사발을 꺼내들고는 물통에서 한 그릇 떠서 방의 윗목에 놓고서는 절을 두 번 하더니 그대로 엎어져서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애절하게 흐느끼는 소리는 깊은 산에 메아리가 되어서 허공으로 울려나갔다. 김정식도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여동생이 그렇게 울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고 옆에서 같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애써 자제하느라고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30분이 자났을 것이다. 이윽고 울음을 그친 산처녀는 밖으로 나가서 얼굴을 씻고 저녁을 지어왔다. 그 사이에 김정식은 배낭에서 수건을 꺼내어서 눈물을 닦았다. 그래도 오빠가 같이 울어버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밥 두 그릇에 소금으로 절인 간 배추가 전부였다. 백김치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세상에서 처음 받아보는 동생의 저녁상이었다. 다시 뭔가가 가슴에서 치고 올라왔다. 말없이 밥을 먹었다. 다 비웠다 너무나 맛이 있었다.


 

“오빠 저녁이 적지 않았어? 좀 더 할 것을 그랬나봐.”


 

“아니야.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지경인걸. 이렇게 맛있는 만찬을 받아 본 적이 없었어. 20년간 쌓인 가슴 속의 응어리가 확 풀리면서 갑자기 시장했던가 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널 만날 수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고, 또 꿈이 아니기를 바라고 있는 내 마음 속의 풍경을 생각하면 그 동안 얼마나 마음의 빚을 지고 있었는지 너도 짐작을 할 수 있을 거다. 왜냐하면 항상 꿈속에서만 널 만날 수가 있었거든. 그래봐야 다섯 살짜리의 어린 꼬마였지만 말이야.”


 

“오빠, 잠깐만! 내가 얼른 치우고 차를 한 잔 준비하도록 할께. 며칠 전에 운문사의 원주스님께 얻어 온 차가 있는데 맛이 괜찮더라.”


 

“그래, 얼른 하고 들어와서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나 들어보도록 하자꾸나. 갑자기 너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이 마구마구 솟구치는구나.”


 

잠시 후 끓는 무쇠 차관에 찻잎을 넣어서 펄펄 끓는 채로 들고 들어온 동생을 촛불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않은 김정식은 그 동안 자신이 살아 온 이야기부터 동생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 창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긴 이야기를 마친 다음에는 동생의 경험을 듣게 되었다.


 

“오빠의 삶도 힘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자유롭게 살았네. 그래도 계속 공부를 하면서 책을 멀리하지 않아서 기뻐. 나도 호거산에서 들고양이처럼 살아왔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였는지 몰라도 계속해서 책은 볼 수가 있었어. 아무래도 스님들에게서 책을 얻어다 읽었으니까 불경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나봐.”


 

“그래 기특하다. 그냥 밭에 나가서 풀이나 뽑으면서 살아왔다면 내 마음이 더 아플 텐데 그래도 위로가 되는구나. 고맙다.”


 

“그리고 5년 전인가 저 위에 토굴에 어느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는데, 주역을 연구하셨던 모양이야. 가끔 찾아가서 차도 다려드리고 공양도 챙겨드리고 했더니 예쁘게 보셨던지 주역을 조금씩 가르쳐 주셨어. 물론 처음에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귀하게 쓰일 것이라고 하시면서 애써서 말씀을 해 주시니까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어서 하루 이틀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까 점점 재미가 있더라구. 그래서 작정을 하고 공부를 했는데, 그 바람에 마을에 놀러갔다가 아주머니들의 고민을 들어줬더니만 이상한 소문이 나서는 자꾸 찾아와서 귀찮게 하기에 이렇게 깊이 들어앉았던 것이야.”


 

“아하, 그래서 그런 이야기가 떠돌았구나. 그리고 헛된 이야기가 아니었네? 그럼 이제 우리 앞으로는 헤어지지 말고 그 동안 누리지 못했던 시간들을 곱으로 늘려서 재미있게 살아야지.”


 

“나도 그러고 싶어. 이제는 다시 헤어지지 말자 오빠.”


 

 


 

그로부터 3개월 후의 일이었다. 부산의 영도다리 옆의 만화방은 문을 닫고 그 이웃에 있는 2층짜리 건물에 새로운 간판이 달렸다. 아래층에는 ‘연화운명상담실’이라고 붙었고, 위층에는 ‘정식태극권도장’이라고 씌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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