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 파자점 이야기

작성일
2010-02-24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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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파자점 이야기


 


 


 


  안녕하세요. 낭월입니다.


  오늘은 잠시 시간을 내서 파자점 책을 한 권 살펴봤습니다. 아니 보고 있습니다. 책은 구해다 놓고서도 시간이 나지 않아서 자세히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겨우 책을 잡아 봤네요. 그리고 또 하나를 이해했습니다. 이성계의 問자 점이 사실은 중국에서 넘어와서 각색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이런저런 이야기들 중에서 재미있는 것을 간추려서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유문당(裕文堂)에서 나온 ⟪측자취담(側子趣談⟫에 있는 이야기들을 간략하게 번역하여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파자점(破字占)에 대한 고사(故事)들이 많이 있어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읽고 있습니다.


 




  1. 송나라 고종이 사석(謝石)을 만나다.


  아마도 사석이라는 사람이 파자점으로 유명했던 모양입니다. 송대의 고종(高宗)이 평민의 복장으로 순행을 나갔던 모양인데 어느 주막에서 사석을 만나자 고종은 알아봤는데 사석은 몰라봤던 모양이네요.


  풀이를 해 달라고 하면서 땅 위에다가 자신이 뭐하는 사람인지를 알아맞춰보라고 하면서 한일(一)자를 그었습니다. 그러자 사석은 즉시로 풀이를 했습니다. “땅(土)에 하나를 더하니 임금(王)입니다.” 그 말을 들은 고종이 놀라서 다시 물을문(問)을 썼습니다. 그러자 답하여 가로대, “왼쪽에서 봐도 임금군(君)이고 오른쪽에서 봐도 임금군(君)이니 임금이 틀림없습니다.” 하고서 알아맞추자 고종은 더욱 놀랐습니다.


  또 한 번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봄춘(春)자였습니다. 사석은 그 글자를 보더니 이번에는 쉽게 입을 열지 않고 가만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는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네요. “봄날이 비록 좋기는 하지만 진(秦)이 머리를 너무 심하게 누르고 있으니 그 위력에 눌려서 일(日)이 빛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답을 했답니다.


  당시 황제를 좌지우지하던 재상이 있었는데 이름이 진회(秦檜)였으며 전권을 잡고 국사를 망치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혹 중국역사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진회에 대해서는 대략 알 만한 인물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놀라운 것을 몸소 겪게 된 고종이 왕궁으로 불러다가 벼슬을 주려고 했으나 사양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물을문(問)이 이렇게 각색이 되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한국에서 떠돌고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네요. 여하튼 근원을 모르고 인용만 했던 이야기가 대만의 학자가 쓴 책에서 발견하게 되어 반갑기도 했습니다.



2. 알려지지 않은 소강절의 파자점


  소강절 선생의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싶습니다. 두 사람의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갔다가 유명한 소강절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한 마음에 점을 보기로 했던 모양이지요. 글자를 써 보라고 했습니다. 1번 선비가 또차(且)를 썼습니다. 그것을 보고는 즉시로 풀이를 하여 말했답니다.
  “젊은 친구 축하하네~! 이번에 반드시 급제를 할 것이네!”
 
  그러자 그 선비는 왜 그렇게 풀이를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연유를 물었답니다. 선비는 원래 의심이 많잖아요. 자신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수용하려고 하지 않는 못된, 혹은 기특한 버릇이 있으니까 말이지요.
  “또차(且)를 보면 벼슬하는 사람이 쓰는 사모(紗帽) 같이 생겼잖여. 그러니까 자네는 벼슬을 하여 어사모를 쓰고 금의환향을 하게 될 것이네.”


  2번 선비가 그 말을 듣고서는 ‘옳커니~!’ 했겠지요. 그 선비도 같은 글자를 썼습니다. 물론 과거급제하고 금의환향한다는 해석을 목말라했을 것은 당연하였겠습니다. 어떻게 해석을 했을까요? 물론 같은 해석이 나왔다면 애초에 재미없는 재탕 삼탕이 되고 말 겁니다. 하하~


  그것을 본 소강절 선생은 탄식을 하면서 말했답니다.
  “자네는 아무 것도 바랄 수도 없겠거니와 생명을 보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으니 당연히 시험이고 뭐고 다 접고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서 목숨이라도 보전하시는 것이 좋겠네.”


이렇게 해석을 했으니 그 선비인들 그 말에 복종을 할 마음이 생겼을 리가 없지요. 같은 글자인데 그렇게 말을 하다니 납득이 되지 않았을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왜 그렇게 해석을 하느냐고 달려들었던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고 보겠습니다.


  “1번 선비가 쓴 且는 모자처럼 보이지만 자네가 쓴 且는 조상의 위패를 닮아있지 않은가? 그러니 자신이 죽어서 위패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단 말이니 어찌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를 듣고 시험을 보러 가던 두 사람은 다음 날에 큰 비를 만났는데, 두 사람이 무리하여 하천을 건너다가 산사태가 일어나는 바람에 2번 선비는 그 자리에 파묻혀서 죽고 말았답니다. 기가 막히네요.



3. 이순풍의 기이한 이야기


  이순풍(李淳風)이라는 이름은 혹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파자점에서 그 이름이 자주 거론되는 것을 보면 이 방면으로도 이름을 날렸던 모양이네요. 여러 이야기 중에서 이해하기에 쉽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가지 골라봤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찾아와서는 버금아(亞)를 써 놓고서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물었답니다. 이순풍이 여인을 한번 살펴보니 삼각눈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무척 악해 보이더라네요. 그래서 한 마디로 잘라서 말을 했답니다.


  “유심위악(有心爲惡)”


  그러니까 亞에 心을 붙이니까 모질악(惡)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법을 배우면 이러한 소리도 할 수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서 흥미가 생기기도 하네요. 여전히 혜안(慧眼)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게 됩니다만 배워서 가능할런지도 모르지요.


  부인은 뺨이 붉어지지도 않으면서 다시 한일(一)자를 썼답니다. 그것을 한 번 보고서는 이순풍이 바로 해석하여 답을 했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분명하지 않구나~!”


  왜냐하면, 一은 날생(生)의 끝이기도 하고 죽을사(死)의 머리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라는군요. 부인은 그러한 풀이를 듣고서 애매한 표정을 남기고 떠나갔더랍니다.


  나중에 이순풍이 들어보니까, 그 부인은 당씨의 댁으로 시집을 왔는데 7년이 되도록 아이가 없었는데, 그녀의 동서는 연달아서 1남1녀를 낳았다는군요. 그러자 질투심을 이길 수가 없었겠지요.


  그로 말미암아서 다시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듣자 모진 마음을 먹고서 동서를 밀어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하여 아이가 유산되었답니다. 이러한 결과를 알고 보니까 이순풍이 속 마음이 악하다는 것까지도 살폈으니 어찌 신기묘산(神機妙算)이 아니겠느냐고 했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읽을 만하게 쌓여있네요. 사실 우선 무슨 이야기가 전해지나 싶어서 이야깃거리로 되어있는 책을 골랐기 때문에 이러한 일화집을 읽게 된 것이지요. 또 앞으로는 본격적으로 글자를 풀이하는 방법을 적어 놓은 책도 봐야지요.


  그런데 아직은 정월달이라서 절의 일과 서울 강의실과 분주하게 오고가느라고 여유를 얻지 못하여 집중을 하기는 좀 이르네요. 우선 이렇게 맛을 들이고 나서 다음에 짬이 나는 대로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 틈에 벗님과 함께 나누려고 간단하게 풀이를 해 봤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또 다음 기회를 봐야 하겠습니다. 정말 읽어야 할 책은 많은데 항상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혹 시간이 되시면 열심히 독서를 하시라고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을 보면서 공감을 하는 것도 점기(占機)의 의미를 오주괘(五柱卦)를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그래서 만사는 때가 있는 모양입니다.


  늘 행복하신 나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년 2월 24일 서울강의실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