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2] 가을의 무게가 느껴지네요.

작성일
2008-10-26 11:06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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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뒷 자락이 누런 빛으로 물들어 가고 나서야 가을인가 싶은 생각을 해 보고 있는 낭월입니다. 그만큼 분주하게 살아왔던 모양이네요. 오늘 아침에는 햇살을 받으면서 가을의 느낌을 생각해 봤습니다.


겁도 없이 덜렁 시작을 한 사진 공부가 이제 넉 달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매주 사진수업을 준비한다고 산으로 들로 때로는 도심으로 뛰어다니면서 카메라와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처음보다 뭔가 생각을 조금은 더 할 수가 있겠다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매주 책 한 권씩을 읽고 요약하는 레포트까지 겸해서 분주하게 만들었네요. 그런데 이렇게 읽은 책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 대한 생각을 접할 수가 있었으니 또한 소득이 적었다고 못하겠습니다.


그 덕분에 비록 짧은 시간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사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윤곽이라도 어렴풋하게 잡을 수가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배움의 기회는 왔을 적에 바로 파고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덕분이라고 여깁니다.


아직도 두 달의 과정이 더 남았습니다. 그리고 과정을 마치게 되면 졸업작품전도 준비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물론 졸작을 전시하여 누굴 보여드리겠는가 싶기도 합니다만, 그 모두는 수업의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경험이라고 합니다.


음양에 대해서, 오행에 대해서, 사진으로 담아 보겠다고 생각하고 쉽게 달려들었는데, 그것이 과연 얼마나 어려운 주제였는지를 이제서야 어렵풋하게나마 느끼고 있는 낭월입니다. 그리고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서 요즘은 그런 거창한 생각들은 다 뒤로 미루고 그냥 단순하게 보이는대로 담는 공부나 해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웅크려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야말로 게도 놓치고, 바구니도 잃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그리고 사진 수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사진은 선(禪)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김홍희 선생님 자체도 그런 성향이신 것 같습니다만, 사진이 갖고 있는 특징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직관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선의 직관과 흡사하게 닮았다는 것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직관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사진을 잘 찍겠다는 것도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여 찍은 사진을 제출할 적마다 계속 깨어지고 혼나는 낭월입니다만, 어쩌다가 그냥 느낌이 좋아서 찍은 사진을 제출하면 생각지도 못한 칭찬을 받게 되더란 말이지요. 그래서 이 공부를 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또 해보게 됩니다. 어쩌면 그 사진에서 사부님은 선을 읽으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침에 상담실을 무심코 들어가다가 따사로운 햇살을 만났습니다. 뭘 찍는지도 모르고 그냥 카메라를 찾아서 눌렀습니다. 간단한 책상과 방석 두어개 뿐이었네요. 예전 같으면 이러한 사진은 찍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제 조금의 변화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리고 낭월이 느낀 것은 가을의 무게가 가득 실린 햇살이었던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내일도 공부하러 가야 합니다. 그리고 또 새로운 세계에 대한 경험으로 온 몸의 촉각이 짜릿~한 느낌으로 여울져 나갈 것이라는 기대를 또 하게 되네요. 이번 주의 레포트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라는 조그만 책이었습니다. 그 책은 불과 150여 쪽에 불과한데 저자는 40여년을 사진강의로 후학을 양성하시면서 스스로 느낀 것에 대해서 참으로 요약에 요약을 한 결과물을 담았는가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그 대상에 대해서 사무쳐 깨닫고 나면 한 마디로 요약을 하여 답을 할 수가 있다고 하더니만 필립 선생이 그런가 싶습니다. 그래서 작은 책이지만 몇 차례를 읽으면서 그의 생각과 그 과정에서 느꼈을 경험들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글이지만 내용에서는 음양에 대한 사색의 흔적들이 느껴지기도 하네요. 어딘가 편견을 갖지 않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아서 할아버지에게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재미있었다고 해야 하겠네요.


무엇을 배우더라도 최소한 6개월은 그 속에 빠져 볼 필요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두 달을 더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큰 변화야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어느 정도 방향과 느낌은 잡을 수가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느낌이 결국 이 순간에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네요. 하하~


건강하시고 알찬 가을 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8년 10월 26일 아침에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