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 사진수업방랑 - 윤종현 선배를 찾아서

작성일
2008-09-12 20:07
조회
6350


아래의 글은 사진수업의 인연으로 만난 선배님께 찾아가서 몇 수 지도를 받은 내용을 무협식으로 정리해 본 것입니다. 낭월학당에 찾아주시는 벗님들께 심심풀이로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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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기] 지하신공 윤종현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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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추절을 3일 앞 둔 초가을이었다.


계룡산에서 폐문수련에 전념하던 낭월화상은 자신의 탄지공(彈指功-한 손가락을 써서 무공을 연마함-후인은 셔터를 누른다고도 함)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아서 초조한 마음으로 숲 속을 배회하다가 문득 사부님의 한 말씀이 귓가를 때리는 것에 대해서 화들짝 놀랐다.


  


“윤종현에게 물어라~!”


 


그렇구나. 만사는 수준이 있고 단계가 있는데 사부에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애만 타서 숲 속의 나무들이나 꽃들에게 탄지공을 날려봤지만 소득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허무한 땜빵이었고 그렇게 일천합을 날려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동료들 간에는 혹 발전이 있다고도 하였지만 그것은 위로용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지라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 전화를 날리고 시간을 약속했다.


 


연도에는 중추절을 맞이하고자 많은 인파들이 북적였고, 대로에는 마차들이 줄을 지어서 각자의 향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한 복잡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길 가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는 자신들의 대화에 넋을 놓고 몰두하는 풍경이었다.


 


동행은 화인낭자였다. 원래 화인낭자는 말을 조련하는데 선수였다. 어떤 난코스라고 해도 그의 조련을 받은 테라칸은 천하를 좁다고 외치면서 강산을 누비기를 벌써 5년, 그의 테라칸은 이미 여기저기에서 나이를 먹은 흔적들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그래도 주인의 탁월한 능력으로 거뜬하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는 화인낭자와 함께 강호를 유람하는 낭월화상은 복이 많은 사람이었다.


 


기~인 마차들의 행렬을 타고 분당성에 도착을 한 것은 이미 주변이 어둑어둑해지는 6시20분, 마차를 받쳐두고 지하신공이 계시는 현관에 도착하니 이미 시간은 6시 50분이었다. 약속했던 7시를 가까스로 넘기지 않고 도착을 하게 되어 신의없는 무림인이라는 이름은 얻지 않을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러나 부천강변에서 수련하고 있던 푸른별낭자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전화를 날렸더니 대치하고 있다나 대치동에 있다나, 그래서 우선 지하신공을 만나서 저녁을 먹기로 하였다. 저녁은 천하일미 홍합짬뽕이었으며 일찌기 강호를 유람하면서 산과 바다의 온갖 진미를 다 맛보았지만 분당성의 홍합짬뽕은 그 맛이 특이했고 풍미가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백알 일배가 팍팍 당겼으나 지하신공의 전일과음으로 인해서 무리라고 판단, 욕망을 자제하느라고 혼났다.


 


삼성프라자 장원에서 커피 한 통을 비우면서 가벼운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서로의 악기를 조율하지 않으면 연주가 되지 않는 까닭이다. 마침 그 사이에 푸른별낭자도 도착을 하여 일행은 산채로 들어갔다. 그리고 산채의 곳곳에는 온갖 암기들이 숨어있어서 자칫 한 발을 잘못 디디게 된다면 전갈지옥이나 독사굴로 바로 떨어져서 뼈만 앙상하게 남을 지경이었다.


 


모골이 송연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장치들을 바라다보면서 지하신공의 공력이 얼마나 출중한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문을 하나 지날때마다 암호를 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일체 출입이 불허였다. 그러나 노련한 지하신공의 손빠른 초식으로 인해서 비교적 강호의 경험이 부족한 화인낭자나 푸른별낭자는 눈치를 채지 못하는 사이에 순식간의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천리경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중앙데이타뱅크에 저장이 된다는 것쯤은 산골화상 낭월도 익히 짐작을 할만 했다.


 


이렇게 경계가 삼엄한 것은 이 산채의 중요한 무림비급들 때문이었다. 강호의 무림인이라면 이 산채에 보관되어 있는 한국인의 신상명세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몇 일 전에 강호에 나타난 지에스디브이디 2장으로 인해서 산채의 경비는 더욱 삼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탄지공파들은 이러한 것과 무관하게 자신의 무공연마에만 전념하기 때문에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차 한 잔이 식을 만큼의 시간이 경과한 다음에야 안채의 별실에 자리를 잡을 수가 있었다. 방문자 3인은 분당성주 윤종현의 안내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그 공간은 평소 산채의 수괴들이 모여서 강호의 삼분지계를 논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모두 중추절 맞이를 하기 위하여 귀향을 한 다음이라 별채는 조용하였으며 일체의 방해를 하는 인적은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방문자는 자신의 내공수련에서 주화입마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성주는 탄지신공을 연마하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면서 감회에 젖어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불과 십여 초. 그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던 것이다. 드디어 성주가 말문을 열었다.




 


-자리를 펴고 앉다


 


[성주] 오늘 나에게 묻고자 한 것이 무엇이오?


[낭월] 우선 이렇게 분주함에도 방문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성주] 감사는 무슨 우리는 한 식구인 것을 쓸데없는 예의는 차릴 것이 없소이다.


[낭월] 그럼 단도직입으로 여쭙겠습니다. 후배의 무례를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성주] 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해 보시오.


[낭월] 강호에 전해지는 비급들을 구입했으나 읽을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성주] 그렇기도 할 것이오.


[낭월] 사부님께서는 많이 보라고 하셨으나 봐도 모르겠으니 이런 답답이 어디 있겠소.


[성주] 이해하오. 누구나 초급무공을 연마하면서 다 겪게 되는 것이니 너무 자책마시오.


[낭월] 우선 어느 문파에서 전해지는 비급이 가장 효과적이겠습니까?


[성주] 당금 무림계를 뒤흔들고 있는 것으로 매그넘보전을 능가할 것이 없소이다.


[낭월] 16만냥을 들여서 비급은 구했으나 아무리 봐도......


[성주] 잘 하셨소이다. 그 내용들에 나오는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10년의 내공이 있소.


[낭월] 도대체 왜 그 비급이 좋다는 것이며, 어떻게 봐야 합니까?


[성주] 사실 그 비급은 모두 숨은 문자로 기록이 되어서 그냥 보면 평범하지요.


[낭월] 바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성주] 어쩌면 평범하다 못해서 ‘이게 뭐야? 도대체 뭘 보라는 거야?’라는 생각도 들 것이오.


[낭월] 이렇게 후배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니 성주께서도 그러한 과정을.....?


[성주] 당연하지요. 그러한 과정이 없이 어찌 무공의 발전을 기대한단 말이오.


[낭월] 그래서 이렇게 무례를 무릅쓰고 방문을 하여 가르침을 청하게 된 것입니다.


[성주] 그럴 것이오. 그럼 잘 들으시고 그대로 해 보시오.


[낭월] 예, 이미 귀를 활짝 열었습니다.


 


-비급을 전수받다


 


[성주] 우선 처음에는 눈으로 익히시오.


[낭월] 이미 여러 차례 살펴봤습니다. 대략 외울 지경입니다.


[성주] 다음에는 귀로 들으시오.


[낭월] 녹음테이프가 없던데요?


[성주] 응? 으하하하~


[낭월] 아무래도 후배가 망언을 한 모양이군요.


[성주] 마음의 귀를 말하는 것이오. 심이(心耳)말이오. 이것으로 천이통에 도달하게 되오.


[낭월] 너무 심오합니다. 마음의 귀가 있습니까? 마음이면 그냥 마음이지.....


[성주] 작가에게 물어보라는 뜻이오. ‘왜 이렇게 찍으셨소?’ 하고 말이오.


[낭월] 물론 그는 대답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들을 수가 없으니 말이지요.


[성주] 나도 처음에는 그랬지요. 그래서 사부님께 따졌지요.


[낭월] 일우문에서 쫓겨 나시려고요?


[성주] 뭐든지 관문을 뚫으려면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오. 그냥 되는 게 어딛겠소.


[낭월] 그랬더니 사부님의 말씀은요?


[성주] ‘보고 또보고 하면 귀가 열리느니라’ 그 한마디로 끝이었소.


[낭월] 참으로 무심한 사부님이셨군요. 좀 자세히 말씀을 해 주시잖구서리....


[성주] 그런데 그것이 정답이었소. 그것을 알게 되는데에는 3년여가 필요했지만 말이오.


[낭월] 과연 작가의 소리가 들립디까?


[성주] 물론 자신의 마음이 작가의 마음을 쳐서 돌아오는 메아리를 듣는 것이오.


[낭월] 아~, 그렇겠군요. 이렇게 쥐어줘야만 알아먹는 곰이랍니다.


[성주] 과연 소문대로 틀림없는 곰이구료. 하하하~ 농담이오 농담 하하하~


[낭월] .....................


[성주] 사진을 보고 작가의 말을 들은 다음에는 직접 유사하게 찍어봐야 하오.


[낭월] 모방을 하라는 뜻입니까?


[성주] 모방이라고 해도 좋고, 흉내라고 해도 좋소. 소화를 시키는 과정이라오.


[낭월] 그렇게만 하면 비급의 내용이 읽혀 질까요?


[성주] 물론 어림도 없소. 그러한 것을 30차 반복하시오.


[낭월] 명 짧은 사람은 숨 넘어 갈 수도 있겠군요.


[성주] 수명은 하늘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반복적으로 해야 하오.


[낭월] 선배께서는 얼마나 수련을 하셨는지요?


[성주] 나의 별명이 뭔지 아시오?


[낭월] 알지요. 지하신공(地下神功) 아니십니까?


[성주] 바로 그렇소. 내가 그러한 별호를 얻게 된 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소이다.


[낭월] 이야기 해 주세요. 듣고 싶습니다.


 


-지하신공의 내력


 


그는 원래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조선시대를 붓 하나로 주름 잡았던 윤선도는 그의 4대 조부였으며 그 영향으로 인해서 그의 피에는 생활다큐멘터리라고 하는 장르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매료되었으며 학업을 마치고 그 어렵다는 굴지의 통신사를 우수한 성적으로 취직하여 안정된 자리를 얻었지만 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예술혼은 편안한 나날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없는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 온 것은 마악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한 탄지신공법이었다. 그리고 홀로 무공연마를 하던 차에 멀리 금정산 부산골에 일우문주 김홍희라는 절세고인이 있다는 풍문을 듣고는 오매불망 하다가 기어코 찾아가서 사제의 인연을 만들게 되었다. 이것이 그에게는 또 하나의 시작이요 창조요 전부가 될 줄을 그는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예수업은 시작했지만 항상 넘치는 것은 열정이요 부족한 것은 시간이었다. 다른 동문들은 각기 안정된 공간에서 여유롭게 탄지공을 연마했지만 자신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늘 안타까워하던 그를 보고 사부가 조용히 불렀다.


 


[사부] 무공 수련이 힘들지?


[제자] 시간이 없는 것이 늘 한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사부] 그래 내가 봐도 샷의 수치가 너무 낮아서 걱정이구나.


[제자] 도저히 출사의 시간을 낼 수가 없음입니다.


[사부] 내가 무림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마


[제자]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어서 말씀을 해 주소서.


[사부] 넌 태극권이라는 무공에 대해서 들은 바가 있느냐?


[제자] 이미 들어봤습니다. 음으로 양을 다스리고 양으로 음을 제압한다는....


[사부] 그래 듣기는 제대로 들었구나. 그 태극권을 연마하던 수련가가 있었느니라.


[제자] 그랬군요.


[사부] 그의 무공이 한참 물이 오를 때쯤에서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갖히게 되었지.


[제자]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항상 있는 일들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사부] 그는 무엇보다도 태극권을 연마할 수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지.


[제자] 감옥에서 무엇인들 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안타깝군요.


[사부]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 한 과객이 면회를 왔던 거야. 동문수학하던 선배였지.


[제자] 무슨 묘안을 전해 줬나 보군요. 꿀꺽~ 어서 말씀해 주세요.


[사부] 그는 감옥에 갖힌 후배를 보고는 위로를 한 다음에 한 수 알려줬어.


[제자] 그게 무엇이었습니까?


[사부] 선배는 그의 발에 채워진 쇠고랑을 바라다 봤지. 폭은 대략 두자(60cm) 정도였지


[제자] 중죄인이었던가 보네요. 보통은 칼만 씌우는데 족쇄까지 사용하다니....


[사부] 무예인의 보폭은 대략 넉 자가 되는데 절반에 불과했던 것이었지.


[제자] 그래서 무예연마를 못했었군요,


[사부] 원래 태극권은 보폭이 특히 더 크거든.


[제자] 다른 무예를 연마하면 되잖아요.


[사부] 그래서 선배는 그에게 새로운 무예를 선 보인거야.


[제자] 그게 뭔데요?


[사부] 변형태극권이었지. 그걸 후대인은 양가식 태극권이라고 불렀지.


[제자] 왜요?


[사부] 아 이놈아 그 사람의 성이 양씨니까 그렇지 왜는 왜냐~!


[제자] 아, 예~ 알겠습니다. 그래서요?


[사부] 그에게 자세를 세우고 반걸음으로 움직이는 보법(步法)을 보여 준거야.


[제자] 그게 됩니까? 원형이 있는데 말이지요.


[사부] 되고 말고는 얼마나 절실하냐에 달렸지.


[제자] 그렇겠습니다. 그래서 성공을 했나요?


[사부] 양씨는 그렇게 십년 세월을 지하 감옥에서 ‘반보달려 후려치기’의 무공을 연마했지


[제자] 대단했군요. 십년이나~~~


[사부] 왕조가 바뀌면서 모두에게 사면령이 내렸고 그도 풀려났지.


[제자] 기회가 왔겠군요. 쇠고랑을 풀었으니 이제 본래대로 태극권을 연마 했겠군요.


[사부] 천만에 그는 감옥에서 익힌 그 방법을 정리했지.


[제자] 아무래도 불리하지 않을까요? 보폭이 좁으면.... 활동범위가 좁고....


[사부]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지. 그런데 그의 무공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어.


[제자] 어떻게요?


[사부] 원래 태극권을 펼치려면 공간이 필요하거든.


[제자] 그랬겠지요. 태극처럼 돌아가는 것이 빙글빙글 하잖아요.


[사부] 그런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던걸 발견하게 되었던거야.


[제자] 그게 뭘까요?


[사부] 바짝 붙어서 달려드는 놈에게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었지.


[제자] 그럴 수 있었겠네요. 그렇다면 반보로 달려 칠 수가 있으니까..... 우와~~!!!


[사부] 그래 이제서야 기별이 간 게로구나 그래서 그는 무림의 문주가 되었지.


[제자] 그러니까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는.......


[사부] 그렇다. 지하에서 신공을 연마하는 것이지.


[제자] 그게 가능할 까요? 보는 것이라고는 지하철의 사람들 뿐인데요....


[사부] 되고 말고는 너의 마음에 달렸느니라.


[제자]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날부터 그는 직장을 오가면서 지하철에서 탄지공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5년여~ 비로소 천하의 사람들 입에서는 지하신공이라는 이름이 회자되기에 이렀던 것이다. 그의 내력을 들으면서 낭월의 일행은 감동에 사로잡혔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핑계를 대었던 모든 생각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웠는지를 통감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화인낭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내실 안은 은은한 복숭아 향이 감돌아서 일순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그녀는 옥구슬이 크리스탈 쟁반을 구르는 듯한 맑고 초롱초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낭자들의 고민


 


[화인] 선배님, 소녀는 저잣거리에서 탄지공을 익히면 좋다기에 나갔다가 욕만 먹었어요.


[문주] 그랬겠지요.


[화인] 그래서 얼굴이 발개져서는 이내 돌아왔답니다. 너무 창피했습니다.


[문주]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더구나 강호 경험이 별로 없는 낭자들이라면.....


[푸른] 저도 그래서 선배님. 특히 아는 사람은 못 찍겠어요.


[문주] 아니, 왜요?


[푸른] 내가 안다는 것을 미끼로 내 욕심을 채우는가 싶어서요.


[문주] 사부님께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아마 혼 날 겁니다.


[푸른]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푸른별낭자는 지고지순한 미모와 절세의 섬세함으로 ‘꽃 속의 미녀’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가 탄지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것도 꽃을 오래도록 담아두기 위해서 마음을 일으킨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부천강변에서 고금의 도서를 총관하는 영예로운 자리에서 항상 지식의 창고와 지혜의 보물들을 한 손으로 갖고 놀면서 내공을 연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살아가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 고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탄지공의 세계는 냉정했다. 극복을 해야만 할 경계가 있었던 것이다.


 


[문주] 이해는 되나 용납은 안 되는 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카메라 부끄럼이라오.


[화인]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푸른] 그 방법을 알려 주세요. 제발요~


[문주] 나의 수련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될 것이외다.


[낭월] 귀를 활짝 열었습니다. 어떻게 수련하셨습니까. 고통은 없었습니까?


[문주] 세상에 아픔이 없이 이뤄지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로또 뿐일 것이오.


[낭월] 많이 힘들으셨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더구나 미소년의 섬세한 감정으로.....


[문주]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것이오..................(울컥~)


 


그 순간 우리 일행은 느낄 수가 있었다. 그의 지하신공이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는 이루 말로 다 설명을 할 수가 없는 온갖 일들이 함께 했었다는 것을 말이다. 말을 더 잇지 못하고 천정을 바라다보는 시선의 끝에서는 그 고통들이 진하게 배어 나옴을 볼 수 있었다.


 


[문주] 아마 말을 해도 믿을 수 없을 여러 고충들이 있었소.


[낭월] 지하의 세계에는 원래 어둠의 자식들이 주름잡고 있잖아요. 그러니....


[문주] 때로는 끌려가서 기절을 할 정도로 고초를 당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고....


[낭월] 그럼에도 신공 수련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주]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 고통은 잊혀지고 공력만 남으니까.


[낭월] 두려움은 공부의 가장 큰 장애물이겠군요.


[문주] 그렇소.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당장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낭월] 오늘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반성합니다.


[문주] 일본의 기성 조치훈이 24세에 한 말이 있었소.


[낭월] 아, 바로 그 책 말씀이군요. <목숨을 걸고 둔다>


[문주] 바로 그렇소. <목숨을 걸고 찍는다>로 바꾸고 싶은 제목이오.


[낭월]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어떤 맘으로 카메라를 들어야 할지 느낌이 옵니다.


[문주]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강호에서 지하신공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오.


[낭월] 마음으로 존경합니다.


[문주] 존경은 사부님이 받으셔야 하오. 그 분의 안내가 없었더라면.....


[낭월] 그렇군요. 올바른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삼생의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특급 비법의 노출


 


[낭월] 그런데......


[문주]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


[낭월] 아직 말씀하지 않은 것이 있는 듯 해서.....


[문주] 역시 세상을 살아 온 연륜은 속일 수가 없군요.


[낭월] 아닙니다. 벌써 주시고 싶어서 안달이 나신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주] 사실 이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낭월] 왜 마음을 열게 되셨습니까?


[문주] 나에게 어떤 것이든지 극복이 가능하고 냉정한데, 학문열정에는 못 당하는....


[낭월] 선배님 그 점에서는 낭월과 같으십니다. 배우겠다는데 어찌 담아 두겠습니까.


[문주] 그럼 내 한 수 알려 주리다.


[낭월] 마음을 열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문주] 얼음같이 차가워야 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소이다.


[낭월] 예? 따스한 감성으로 찍는 것이 아니던가요?


[문주] 내가 그래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망설이고 있는 것이오. 그만 가시오.


[낭월] 아니, 따뜻한 감성으로 피사체를 바라보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문주] 그럼 다음에 봅시다. 이만~~


[낭월] 알겠습니다. 그래서 망설이셨군요. 이미 모든 것을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다.


[문주] 그럼 내 이야기 하리다. 차가운 머리로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것이오.


[낭월] 대드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래야 하는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주] 감성은 금물이라고 이미 강호의 고수들이 곳곳에서 설파했던 것이오.


[낭월] 그 말씀의 뜻은 알겠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문주] 감정에 사로잡히면 자기도취경으로 몰아가게 되기 때문이오.


[낭월] 그게 사진 아니던가요? 아차~! 아니, 그게 아니오라 자기도취를 경계하라는?


[문주] 그렇소. 지금 수련중인 대부분의 견습생들은 이것을 놓치고 있으니....


[낭월] 그러니까..... 자기도취에 빠져서 사진을 찍어 온다는 말씀이신지요?


[문주] 사부님이 말씀하셨을게요. ‘니가 말하지 말고 사진이 말하게 하란 말이야~!’


[낭월] 예, 그 말씀은 이미 여러 차에 걸쳐서 들었습니다. 사실 그 의미도 모르고 있지만.


[문주] 그 의미심장한 뜻을 빨리 이해하지 않으면 6개월로 사진의 시옷도 어렵소.


[낭월] 자, 그럼 오늘 그 방법을 알려주실 것이란 말씀이네요. 경청 경청~


[문주] 생각을 해 보오. 사진이 말을 하게 하려면 기다려야 하겠소? 다그쳐야 하겠소?


[낭월] 그야 기다려야지요.


[문주] 기다리려면 이성처럼 차거워야 하겠소? 아니면 감정처럼 뜨거워야 하겠소?


[낭월] 그야 당연히 차갑게 끈기로 기다려야지요. 감정은 폭발하잖아요.


[문주] 그렇다면 본 문주가 한 말과 서로 통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오마는.....


[낭월] 이성은 냉철해지고 감정은 들뜨게 만들지요. 셔터는......


[문주] 그렇게 차거워진 이성으로 피사체를 바라다 볼 수 있을 적에 한 번 ‘착~’


[낭월] 그래도..... 아직 사진이 이성이라는 것이 얼른 납득이 되지 않아서리.....


[문주] 그대들이 찍은 사진에는 보이는 것만 찍히던가 생각을 해 보시오.


[낭월] 웬걸요. 오만 잡다한 것들도 같이 딸려옵디다.


[문주] 그것 보시오. 왜 그런 일이 생긴다고 보시오?


[낭월] 그러니까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서 신공을 발휘하기 때문일까요?


[문주] 바로 그것이오.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소?


[낭월] 그야....... 차분하게 살펴야 하겠지요... 뭔가 조금 이해가 됩니다.


[문주] 이해가 되었다니 여기에서 줄이겠소이다 연마 해 보시오.


 


-공포심을 항복 받는 법


 


[화인] 선배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문주] 내가 두려워하니까 상대방도 두려워하는 것을 알게 되었소.


[화인] 예? 상대방이 왜 두려워하지요?


[문주] 내가 편안해지면 상대방도 편안해 하는 것을 느껴보면 바로 알게 되오.


[화인] 아무래도 그 깊은 뜻을 이해하기에는 아직 공부가 형편없는 것 같습니다.


[문주] 지난여름에 부산봉사에서 내가 찾아 간 곳은 3조였소이다. 사진 보셨소?


[화인] 아, 죄송합니다. 생각이 나지....... 돌아가서 살펴보겠습니다.


[문주] 처음에는 사진을 찍어도 긴장하여 그림이 되지를 않았소.


[화인] 그럴 수 있겠네요. 그래도 그 사람들이 긴장하는 것이겠지요.


[문주]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로 알았더랬소. 그런데 나에게도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오.


[화인]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라고 하는 것을 읽었는데 그와 유사한 것일까요?


[문주] 바로 그것이오. 그래서 대화를 나누면서 두려움을 없애가면서 사진을 찍었소.


[화인] 뭔가 달라졌나요?


[문주] 그렇소.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 줬으며 전혀 어색하지 않았소.


[화인] 이미 두려움을 없애고 난 다음이겠군요. 그것도 실력이고 능력이겠어요.


[문주]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 보려오?


[화인] 이야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요. 얼른 해 주세요.


[문주] 예전에 칼을 잘 던지기로 유명한 사나이가 있었다지요.


[화인] 별별 재주가 다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문주] 그에게는 콤비가 있었소. 둘이는 환상의 조가 되어서 천하를 누볐지요.


[화인] 서로 궁합이 잘 맞았던가 보네요. 그래서요?


[문주] 그는 상대방을 세워놓고 멀리에서 예리한 칼을 던지는데 사람은 다치지 않아요.


[화인] 자칫하면 몸에 칼이 푹푹 꽂힐 텐데요..... 위험했겠네요.


[문주] 어느 날 상대방이 병으로 죽자 칼 던지는 것을 그만 두어버린 거지요.


[화인] 다른 대타를 찾아봐야지 그만두면 어떻해요....


[문주] 가까운 사람이 안타까워서 물었소.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말이오.


[화인] 그랬더니요? 왜 그러셨대요?


[문주] 상대방이 내 칼을 두려워하므로 내도 그가 두려워서 칼을 못 들겠구려.


[화인] 그러니까 서로를 믿었기 때문에 잘 할 수가 있었다는 이야기네요 그치요?


[문주] 사진도 그와 같다고 생각하오. 즉 피사체와 동화가 되어야 작품이 되지요.


[화인] 참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으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어요.


[낭월] 낭월을 포함해서 우리 동료들의 사진은 그렇지 못했겠지요....?


[문주] 으.........흐..............흠..................


[낭월] 느낀대로 말씀을 해 주시지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문주] 사실 내가 보기에는 피사체를 사냥 깜 정도로 본 것이 아닌가 싶었소만....


[낭월] 사냥 깜~?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요?


[문주] 두려움을 그 속에 감추고 대범한 척 하면서 상대방이 느끼지 못할때 샷~~!


[낭월] 사실 그랬습니다.


[문주] 그러니까 피사체의 껍질만 메모리에 남게 되는 것이오.


[낭월] 아무려나 구도에 대한 공부는 되지 싶습니다만.....(발악 발악~~)


[문주] 두려움을 버리고 피사체를 바라다보면 순간 광채가 발산되는 순간이 있소.


[낭월] 사부님께 들어 본 것 같습니다만.....


[문주] 바로 그 순간, 탄지공을 시전해야 비로소 영혼도 함께 메모리에 들어온단 말이오.


[낭월] 마음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사실 두려움이 없어야 가능한 것이고요...


[문주] 이제 그대들의 도반들과 함께 이 문제를 진지하게 토론해 보도록 하시오.


[낭월] 그 속에 두려움이 잠재되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감개무량입니다.


 


-16기 사진의 제일 큰 문제점


 


[낭월] 꼭 해 주고 싶으신 점에 대해서 귀한 말씀을 청합니다.


[문주] 그야 두 말을 할 것도 없이 기본이 문제요.


[낭월] 기본이라고 한다면 사진의 역사와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문주] 물론 그것도 좋기는 하지만, 우선 총쓰는 법을 좀 배우시오.


[낭월] 스위치 온, 에이모드, 거리조정, 조리개 조절, 샷~~! 뭐가 문젠가요?


[문주] 아무리 구도가 좋으면 뭘 하냔 말이오. 초점이오 초점~!


[낭월] 사진이 흔들리는가 보네요?


[문주] 흔들리다 뿐이겠소. 가관이오 가관~~!!


[낭월] 어떻게 해야 고칠 수 있겠습니까?


[문주] 아주 간단하오. 핀 맞추고, 노출 맞추면 끝이오. 단 연습이 필요할 것이오.


[낭월] 그러고보니까 사부님께서도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생각이 나네요.


[문주] 그런 것을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은 죄지은 줄을 알아야 할 것이오.


[낭월] 모르니까 배우러 온 것 아니겠어요. 뭐 죄씩이나.....


[문주] 내가 연마를 할 때에는 책을 보면서 스스로 그러한 부분을 메꿔나갔더랬소.


[낭월] 사부님께서 안 갈차주셨나 보네요?


[문주] 소중한 사부님과의 함께하는 시간에 그딴 것을 가르쳐 달랄 시간이 어딧단 말이오.


[낭월] 우리는 가르쳐 주셨는데, 셔터 누르는 방법에 대해서도....


[문주] 음.... 사부님 성질 다 죽으셨구나...... 예전 같으면 불호령이 떨어졌을텐데....


[낭월] 그렇겠네요. 고맙습니다. 잘 헤아려서 후기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문주] 이미 마음들은 하늘 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기본이 좋아지는 것만으로 변화할거외다.


[낭월]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감이 잡힙니다.


[문주] 사진보전을 많이 보면서 공부하시오. 큰 성취가 있을 것이오.


[낭월] 선배님께서는 특별히 어떤 경전을 위주로 하셨는지요?


[문주] 나는 유진리차드의 <총과 칼의 클럽>을 보면서 많은 감명을 받았소.


[낭월] 특히 어떤 점에서 그러셨는지요?


[문주] 그렇게 냉철하게 사물을 담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감명받았고 나도 닮고 싶었소.


[낭월] 이름은 들어 본 바가 있네요. 그 책은 모르겠습니다만.... 어디가면 구할 수 있지요?


[문주] 충무로에 가면 포토박스라고 있으니 지나는 길에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오.


 


-작별의 시간


 


이야기에 빠져서 생각하는 사이에 약속이 된 한시진(120분)이 다 지나가 버렸고, 우리는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늦게 도착을 하여 저녁도 먹지 못한 채로 이야기에 열중한 푸른별낭자는 시장하기도 하였겠지만 공부의 위력은 생존본능조차도 뒤로 밀쳐뒀던 것 같다. 그렇게 일어나야 할 시간이 온 것을 느끼고 나그네는 몸을 움직였다.


 


[문주] 멀리서 오셨는데 약간의 소득이 있었는지 모르겠구려~


[낭월] 소득이 다 뭡니까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지 가닥이 잡혔습니다.


[화인] 너무너무 감사했어요. 앞으로 책을 보면서 많이 연습하겠습니다.


[푸른] 선배님 덕분에 방향을 잡은 것 같아요.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시 일우당에서 뵙기로 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화인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나들이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는 두려움에 대한 극복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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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고마웠습니다. 더욱 열심히 연마하여 사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가내 두루 행복하시고 온 가족이 즐거운 추석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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