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 2007봄 대만-3 (자미두수의 진수)

작성일
2007-02-14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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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봄의 대만풍경-3


 

 

오늘은 아침에 진선생님을 뵈러 가서 사진도 두어 장 찍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기록에 필요하겠다 싶어서이지요.

 



질병에 대한 이야기나, 경험담을 듣다가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갑니다. 이야기를 하면서도 늘 급하게 활용하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생각을 하면서 대입하면 이해가 잘 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늘 빼 놓지 않습니다. 방문자가 찾아온 시간을 활용하는 법이나 점기(占機)가 동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자료는 또 시간을 두고 살펴봐야 정확하게 응용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되네요. 물론 다시 낭월판으로 개정을 해야만 자신의 스타일로 소화가 될 것으로 생각을 해 봅니다. 낭월의 선생 복은 특별히 많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항상 그렇게 느끼게 되네요. 감사한 일이지요.



진춘익 선생님과는 언젠가 소개말씀을 드렸겠습니다만,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서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심리분석에 대해서 호감이 가서 인연이 되었는데, 과연 신뢰를 할만 한 연구성과가 있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다 좋은 인연의 복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다음 날을 기약하고 나와서는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냄비를 보시면 알겠지만 제주도식 찌게입니다.



보기보다 먹을만 합니다.



입맛이 개운한지 화인의 표정도 만족스러워 보이네요.



앞의 과일은 진춘익 선생님이 선물로 사주신 봉리(파인애플)석가입니다. 오른쪽의 울퉁불퉁한 것은 일반석가입니다. 그리고 개량종이 봉리석가인데, 뒤에 먹으라고 했기 때문에 기다리다가 이날 저녁에 맛을 봤습니다. 위에 있는 검은 것은 씨앗입니다. 맛은 무척 달고 구미에 맞습니다.

점심을 먹었으니 또 선생님을 만나러 가야지요. 이번에는 진원서국의 사장님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사실은 철판신수에 대해서 맛을 본 것이 좀 실망스러워서 다시 다른 선생을 뵙고자 하여 모씨를 찾았는데, 이름은 익명으로 밝히지 않겠습니다. 어떻게 몇 차례의 전화 끝에 연락이 되어서 상담료가 얼마냐고 했더니 9천원이라고 했습니다. 비용이 고가이기도 하고, 생일과 부모의 띠와 형제의 숫자를 불러주고 오라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는 일단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다음에 진원서국에 가서 사장님에게 그 선생에 대해서 철판신수를 보러 가고자 한다는 말을 했더니 손을 내 젓더군요. 그러지 말라는 것이지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맞아도 9000원, 틀려도 9000원'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책임감이 없다는 말로 이해를 하라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유명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철판을 자유롭게 운용하는 대만선생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전인(傳人)이 없다는 말은 올바르게 운용하는 사랆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이러한 조언을 받고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과연 거금 30만원을 들여서 실망하게 되면 어떻하나 싶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희는 미리 다 알려주고 가서 무슨 이야기를 듣겠느냐고 하는 말도 하네요.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철판신수가 그렇게 용하다면 사람을 보고 최소한의 자료, 즉 생일 정도로써 모든 것을 알아 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기는 했습니다. 더구나 수리학의 오묘한 영역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배워보지 못한 영역이어서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네요.

책은 있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은 이런 경우에 적당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수판으로 두드려서 답을 찾아가는 모습을 첫날 저녁에 본 것과 겹치면서 중국어로 '마마후후(馬馬虎虎)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마마후후라는 말은 속담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호랑이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말로 엉성하여 뚜렷하지 않을 경우에 쓰는 말입니다.

그래서 추천을 받은 사람이 범진목(范振木)선생입니다. 전화예약을 한 사람이라고 하고 찾아뵈었더니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나이는 임진생이라고 하니까 56세가 되셨나 봅니다. 스타일도 수수하니 꾸밈이 없는 모습으로 거부감이 없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려서는 고생을 많이 했구만요."
"예, 가끔은 끼니가 없었습니다."
"눈이 많이 안 좋겠습니다."
"예, 한 쪽 눈은 특별히 더 안 좋습니다."
"직업은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구만요."
"예, 그렇군요."
"뭘 가르치는 거요?"
"예? (명리학을 가르친다고는 못하고) 불교를 가르칩니다."
"그래요. 지금도 교수를 하고 있겠구만요."
"예, 그랬는데 지금은 쉬고 있습니다."
"쉬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언제부터 쉬는거요?"
"(자꾸 찔립니다)작년부터 쉬고 있습니다."
"아니, 쉴 운이 아닌데 왜 쉬는거요? 직장에서 쉬라고 한 거요?"
"아닙니다. 스스로 좀 쉬려고요."
"그...참.... 이해가 안 되네요."
"(더욱 찔립니다. 흐흐~)사실은 이런 계통으로 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요."
"아, 그래서 책을 보고 있구만요?"
"예, 바로 그겁니다. (겨우 숨돌릴 구멍을 찾았습니다.) 맞아요~~~!!"

 



"명반을 보니까 글을 쓰는 재주도 타고 났네요."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아니, 고맙습니다가 아니고, 책을 썼느냔 말이요."
"아, 예 그렇습니다. 책을 썼습니다.(또 진땀.... 그냥 사실대로 말 할껄....)"
"무슨 책을 썼소?"
"아, 예.... 불교 관련 책이요.... (점점 말이 궁색해 집니다. 그려~~)"
"이러한 팔자는 연구하고 글을  쓰면서 남을 가르치는 나와 같은 일을 할 사람이오."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지 않겠소. 당신도 그러한 팔자인데 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소."
"사업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재물이 출입은 많아도 쌓이기는 쉽지 않으니 사업은 하지 마시오."
"그럼 뭘 해야 합니까?"
"공부만 많이 해도 먹고 살겠고, 그래 지금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소?"
"아, 역학 오술(五術)계통으로 관심이 있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살피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계통의 공부가 좋겠고, 남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직업이란 말이오."
"그렇군요.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계통으로 공부를 하면 좋겠습니까?"
"자평명리학을 공부하면 좋은 인연이 되겠으니 그 방향으로 해 보시오."
"자미두수는 어떤가요?"
"자미두수도 하면 되겠지만 그보다는 팔자명리가 더 좋을 것이오 적성에 맞으니 말이오."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보시네요. 대단하십니다."
"한국 사람도 자미에 잘 부합이 되네요. 한국에도 이런 것(명반표를 가르키면서) 이 있오?"
"예 있습니다. 연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요? 의외네요. 한국에서도 연구를 하는구만요."
"그렇습니다. 많이 연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해년의 운세는 직장을 구할 수가 있을 것이요. 나타나거나 와서 일을 해 달라고 제안이 올거요."
"그렇군요. 재물운은 좀 있나요?"
"재물운은 작년보다 훨씬 나을 것이오. 많은 결실이 있겠구만요. 열심히 하시오."
"그래야 하겠네요."
"나는 나이가 56세인데도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왜 논단 말이오."
"곧 일을 할 것입니다."
"아이들도 돌봐야 하는 사주인데, 좋은 일이 있을 거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인연이 되면 공부하러 오겠습니다."



별도로 도움이 필요하다 싶은 내용은 따로 메모를 하면서 설명을 했습니다만 모두를 기억하기는 어렵겠고, 녹음을 했으니 다음에 시간이 나면 다시 차근차근 들어봐야 하겠네요.



위의 메모는 자신의 눈에 비친 한글이랍니다. 그렇게 보였던가 보네요.

"한국사람들 중에서 한자를 이렇게 바로 아는 사람은 당신 뿐이겠소."
" 아닙니다. 한국에도 한자 아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공부 많이 하셨구만요. 학자의 팔자요."

선생이 지은 책이 있는가를 물었더니만 자신의 책은 없고 스승님의 책으로 교재를 삼아서 가르친다면서 소개를 해 줬습니다. 아래의 책들입니다. 이 책을 3년간 가르친다는군요. 그리고 초급과정은 대학에서 가르치고 중급이상은 개인지도로 연구실에서 지도하는 것을 보면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사부님은 천을상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찾아 가 뵐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가봐야 말도 못알아 들을텐데 뭐하러 가겠느냐면서 말리더군요. 이렇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지도 않을 뿐더러 가봐야 시간만 낭비할 테니 그만두라고 하는데 상당히 괴팍한 사람이거나, 보통어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통역이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다음에라도 시간이 되면 한 번 뵐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은 활자가 좋아서 볼만 하더군요. 자미두수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살펴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습니다. 한세트 구하고 진원서점에서도 다시 한세트 구해 왔습니다. 언제 시간이 되면 차근차근 보고 싶기도 하네요.

이러한 인연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찾아 온 것이 아니겠는가 싶었습니다. 멋진 인연이었으니 다음에는 조촐한 선물이라도 사들고 찾아가서 과거의 일을 말씀드리고 한바탕 웃어야 하겠습니다. 신나는 하루의 마무리였습니다.

참고로 인터넷에서 다음과 같은 범선생님의 글을 발견하여 첨부합니다. 자미두수의 파에 대해서 설명을 한 내용이며 선생은 점험파에 속한다는 것을 밝힌 내용으로 보입니다.




 

紫微斗數之派別與應用


자마두수의 학파의 구별과 응용

  根據記載紫微斗數星命學源自於宋朝太宗年代陳希夷祖師爺,任何一門學問,能夠流傳幾個世紀,必定有它存在的價值。


자미두수의 학문에 대한 뿌리는 송나라의 태종시대에 살았던 진희이 조사할아버지이니 어떤 문파를 막론하고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해서 몇 세기를 유전하다가 보니 반드시 그 존재에 대한 가치를 정하게 되었다.

   紫微斗數和八字都是以人的生辰年月日去推命,兩者都是中國古代非常高深的統計學,邏輯推理的一門學問,絕非鬼神之論,所以廣受知識份子的喜愛與認同。紫微斗數由十二個宮位配合一百多顆星曜的組合而千變萬化,可以非常細膩精準的去推論一個人的命運。


자미두수와 자평명리는 모두 사람의 생년월일시로 운명을 추론한다. 양자는 모두 중국 고대의 대단히 심오한 통계학이며 구조적으로 추리하는 학문의 문파이니 절대로 귀신의 논리가 아니니 많은 지식인들은 즐겨 공부하고 활용한다. 자미두수는 12개의 궁에 배합하는 100여개의 별들을 조합하여 천변만화를 읽어내니 가히 대단하고도 세밀하고 정확한 추론으로 한 개인의 운명을 판단한다.

   坊間紫微斗數的派別非常多,有北派,南派,占驗派,中州派等。以下就個人所知論述於下:


자미두수의 학파에 대해서 논한다면 대단히 많으니 북파, 남파, 점험파, 중주파 등등이 있는데, 이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로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北派:比較重視四化,沒有擎羊,沒有陀羅,只有十八顆主星,底下有化祿、化權   、化科、化忌,要跳四次,反應比較遲鈍的人,就可能學不來了,就變成花盤了,沒有小限,只有本命盤,大限盤,太歲盤,由於只有十八顆主星在應用,所以又有 人稱之為十八飛星派。


북파는 비교적 사화를 중시하고, 경양이나 타라는 없다. 다만 18개의 주성과 그 아래로 화록, 화권, 화료, 화기의 사화를 활용하니 반응이 비교적 더디고 둔한 감이 있다. 그이유는 학문의 기원이 오래지 않은 까닭이라서 화반을 변형시켜서 사용하며 소한이 없고 본명반과 대한반과 태세반으로 바탕을 삼고 18개의 주성을 응용하므로 사람들은 이들 학파를 일러서 18비성파라고도 한다.

南派:比較重視格局,和十八飛星剛好相反,比較重視格局,較不重視四化,著重星與星之間的互動。例如大家所熟悉的,它把封神榜的那些人物來做比擬,


남파는 비교적 격국을 중시하며 18비성은 반반정도 사용한다. 격국을 중시하고 사화는 중시하지 않으며 성과 성의 관계의 변화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봉신방에 나오는 인물들로 비유를 드는 경우이다.

   例如天機星是一顆智慧星,很聰明,以姜子牙來代表,貪狼星是一顆桃花星以紂王的妃子妲己來代表,天同星是一顆福星以周文王來代表等,又有人稱之為透派。


예를 들어 천기성은 지혜성이며 매우 총명한데 강자아(강태공)으로 대표하고 탐랑성은 도화성으로 작용하는데 이것은 주왕의 비였던 달기를 대표로 비유하는 것이며, 천동성은 복성인데 주문왕으로 대표하는 것 등이다. 또 사람들은 이들 학파를 투파라고도 한다.

中州派:重視格局和四化,這派以香港的王亭之,陸斌兆,陸在田等為代表。


중주파는 격국과 사화를 중시하고 이 파의 대표는 홍콩의 왕정지 육빈조, 육재전 등이 있다.

占驗派:也就是筆者所學的這一派,也是重視格局和四化,為明朝神宗年代由道家無心道人所創,把紫微斗數和奇門遁甲融合運用,更活潑化了,增加了小限和斗君,加上本命盤,大限盤,太歲盤,合計五個盤。


점험파는 또한 필자의 학문도 같은 파이며, 중시하는 것은 격국과 사화이다. 명조의 신종시대에 도가의 무심도인이 창안했는데 자미두수와 기문둔갑을 융합하여 운용하니 더욱 활발한 변화를 나타낸다. 여기에 소한과 두군을 추가하고 명반, 대한반, 태세반의 5개 반으로 풀이한다.

   至清朝康熙年間第三十六代掌門人林永基先生皈依入佛教禪宗而延續承傳,民國六十七年傳至五十四代傳人天乙上人,也就是我的恩師許金發老師,我是民國七十七年跟許老師學,所以筆者算是五十五代,七十八年學成授予靖園主人法號,而我所教的學生就是五十六代了,以上是我們占驗派的沿革史。


흘러서 청대의 강희시대에 36대 장문인인 임영기 선생이 불교의 선종으로 들어가면서 대를 이었는데 민국67년(1978)에서부터 54대 전인인 천을상인으로 이어졌으며 나의 스승이시고 허금발 선생에게서 법통을 이어 받았다. 민국77년(1988)에 선생님이 공부를 허락하셨으니 필자는 계산해 보면 55대가 된다. 78년(1989)에 학문이 이뤄져서 정원주인이라는 법호를 받았고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은 56대가 된다. 이상이 우리의 점험파에 대한 연혁사이다.


이하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