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받은편지) 스승님께 드리는 글월

작성일
2005-10-17 11:41
조회
6951
 

[제271화] 스승님께 드리는 글월






오늘은 또 제자에게서 온 편지와 여기에 답을 한 내용을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조그만 공간에서지만 나름대로 자연과 씨름하고 있는 학인들이니 벗님들과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마음으로라도 격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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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 드리는 글월




조석으로 싸늘하게 느껴지는 것이 이제는 완전히 겨울의 문턱으로 다가온 듯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의 늦가을이 사회에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가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산에는 단풍이 붉게 물들어 우리네 마음을 설레게 하듯 우리도 한 해의 마무리를 하게 되고, 뒤돌아보는 결실의 계절이 되겠지요.




스승님 먼저 두 손 모아 삼배 올립니다. 그리고 항상 건강하신듯하여 기쁩니다. 스승님의 희신을 받고 바로 편지를 드렸어야 했는데 바로 열려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그리고 요즈음 많은 혼란을 겪다보니 많은 생각과 뒤를 돌아보게 되고, 과연 난 무엇을 하며 사는지를 보게 되고,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배우며 느끼고 공부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참 모습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며 사는지 행복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은 무엇인지 그러한 것을 공부하며 그것에 대해 이해하려 노력을 하게 됩니다. 우리네 삶은 모두 다 거짓투성이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보게 되고 우리가 추구하고 믿는 신(神)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찾는 많은 이들도 무엇이 무엇인줄 모르고 신을 추구하고 우리에 마음 속에 있다고 하는 신도 자기의 기분에 다라서 그 ‘신’은 마누기가 되었다 부처가 되는데 정말 참다운 종교인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스승님. 스승님께서는 스님이신데 조송하지만 많은 의문이 들고 그렇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많은 책을 보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를 비롯하여 경영은 무엇인지 그리고 심리학은 무엇이고 아무튼 인간의 사회를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많은 걸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삶이 비록 많은 걸 가르쳐 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내 자신이 보고 배우고 깨닫고 내 자신을 한 층 더 성숙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얖삽한 짓을 하면 용서가 안 되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되고 용서가 됩니다. 내가 너무 무지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내가 지금은 그것에 내 자신을 합리화를 시켜가면서 보는 것일까요? 과연 이것은 음적인 부분은 무엇일까요? 인간은 양면성 뒤에 또 하나가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일즉삼(一卽三)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아무튼 이 넓은 세상 모두 다 이해하기는 부족하지만 많은 노력을 해 보렵니다. 그리고 꼭 역학이 아닌 인생의 스승님으로도 많은 가르침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지껏 정말 너무 무지하게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많이 깨닫고 싶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자꾸만 깊어져가는 계절 건강에 유념하시고 이만 두손모아 공손히 삼배 올립니다.




항상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실 두손모아 빕니다.






                   안동에서 제자 **올림




[답장]




**선생 잘 지내시는가 낭월이네










이번에 보내 준 편지를 보면서 올 가을에는 결실이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만. 꾸준한 발전을 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겠고 말이네 그대로 진행 하시면 되겠네.




주변의 사람들에 대해서 의문이 자꾸 늘어나는가 보구만 그래. 잘 보셨네. 사실 겉모습으로 평가를 하다가 실체를 알게 되면 혼란이 많이 발생하게 되어있다네. 가령 낭월도 그렇다네 이게 스님이라고 하는데 하는 짓으로 봐서는 사주쟁이를 하고 있으니 스님인가 사주쟁인가, 스님이라면 사주쟁이가 직업처럼 보이니 가짜스님일 게고, 사주쟁이라면 스님을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스님이라고 하니 그것도 영업상 도움이 되어서 스님노릇을 등에 업고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다가 보면 진짜로 머리가 아플 것이네 하하~




낭월은 그러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난 듯 하이. 처음에는 직업이나 직함 등에 의해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면 늘 실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그래서 모든 사람의 평가는 내면의 정신능력으로 평가하게 되었다네.


예를 들면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고승인지 수행승인지 살림 사는 주지승인지 아니면 기도만 하는 스님인지 혹은 그야말로 옷만 얻어 입은 가짜승인지도 생각을 하지. 즉 겉모습은 그리 중요하지 않더란 말일세. 무슨 뜻인지 알겠는감?




이러한 관점으로 교육자든 박사든 학자든 살펴보는 기준을 삼게 되면 사람으로 인해서 실망을 할 것도 없고, 기대를 할 것도 없다네. 장사를 하는 사람을 장사꾼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겉모습에 불과 하네 비록 장사를 하더라도 그 주체는 수행을 하는 도인도 있고, 돈에 환장 병이 든 돈 노예도 있으니 겉으로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구만 그래. 다시 낭월을 쳐다보면서 생각 해 볼랑가?




스님은 스님인데 진짜배기 100% 스님은 아녀. 그리고 결혼도 했으니 그것을 봐도 스님의 점수로는 별로 줄 수가 없는 일여. 그럼 스님을 관두면 될 거 아녀? 그렇긴 혀. 스님을 관둔다고 해서 내가 생계에 위협을 느끼거나 스님을 한다고 해서 생계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므로 오히려 하나를 정리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나도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중노릇 하는 것은 전생의 업 인개벼. 그러니까 그냥 중은 중이로되 얄궂은 중이로다. 하고 생각을 하지.


그럼 사주쟁이로는 어떤가 하면, 그것도 그렇구만. 남들처럼 용하지도 못혀. 족집게를 못한다고 이렇게 떠벌이고 있으니 그 실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겠구만 그래. 그래도 그냥 지가 사주쟁이에 가장 가까운 줄로 알고 살고 있으니 다 제 맛에 산다고나 해야지 뭐.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보면 방랑객이 적성인가 싶어. 중이 된 것도 알고 보면 방랑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출가한 것이기도 하니 말이네 하하~


어느 노승 하는 말이.


“야 이놈아 세상에서 살아봐야 뭐 하것냐. 중이 되어봐라 어디를 가도 다 내 집이고 내 절 아니냐. 절에 가면 재워주지, 밥 먹여 주지, 간다고 하면 차비까지 주지. 이렇게 좋은 직업이 또 있는 줄 아느냐? 그리고 할매들도 중 옷만 입고 다니면 ‘시님요~’ ‘시님요~’ 하고 돈도 주제... 정말 할 것은 이거 말고 는 없다카이까네. 후회하지 말고 내 말 잘 듣거레이~”




요 말을 듣고 낭월이 솔깃해서 중이 되기로 했다는거 아녀. 그리고 지금 생각을 해 보면 그것이 옳았고, 그 스님이 스승이었던거 같어. 그렇게 다니면서 선지식도 만나보고 개귀신도 만나보면서 인생 수업을 이만큼이나마 하게 되었으니 말이네. 이제 와서 생각을 해보면 답답한 것이 없다고 해야 하겠지.




그리고 사주쟁이로는 어떤가 생각을 해보면, 그런대로 중간은 간다고 생각이 되기도 하는구만. 왜냐면 비록 신통한 안목으로 팍팍 집어내어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함께 머리 맞대고 고민이라도 할 정도는 되니까 말이네. 그리고 그렇게 신통해야 사주쟁이로 우수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네. 그냥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으로 기본적인 역할은 다 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네. 그래서 상담가로는 그런대로 좀 점수를 써도 되지 않을까 싶으이. 아니면 그만이고 그냥 자신을 평가해 보니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구만.




그래도 낭월은 전생에 공덕이 쪼매~ 있어서 스승 복이 많은거 같어.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은 부모를 잘 만나는 것보다도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이쯤의 나이가 되니까 비로소 알게 되는구만. 그래서 스승의 인연이야말로 최상이라고 한 인도 명상가들의 말들이 과현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스승에게는 삼배를 하고, 부모에게는 일배를 하는 이유도 알 것 같더란 말일세.




여하튼 낭월은 오늘도 스승의 자취를 찾고 있다네. 그리고 가능하면 내년 봄에는 스승을 찾으러 밖으로 나갈 꿈도 꾸고 있다네. 이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설레게 하는지 아는감? 어딘가에 있을 스승을 찾아보려고 마음먹는다는 거 자체로도 흥분되는 일이니 말이네.




자네는 어떤감? 좁은 공간에서 담장 너머로 보이는 공간은 너무도 좁겠지? 그래서 좁은 밖을 보지 말고 넓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공부를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수도 있겠네. 부산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는 창틀에 민들레가 핀 것을 보고 우주가 보인다고 편지를 보냈더구만.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하하·


그 친구의 세상은 결코 교도소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면을 통로로 해서 우주를 유영하는 자유인의 비법을 조금은 깨달은 것도 같어. 어뗘?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감?




선악(善惡)이니 진가(眞假)니 하는 그딴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여.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자유일 뿐이지. 인생이 울타리에 갇힐 수도 있고, 자유롭게 방랑을 할 수도 있으니까 과연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얼마나 즐겁게 살아가느냐는 것이 열쇠요 화두구만 그렇게 즐거움의 나날이 되도록 찾아보시렴.


예전에 어느 스님이 하신 말씀이네.




‘日日是好日’




          2005년 10월 16일 아침에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