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 지맥(地脈)과 수맥(水脈)

작성일
2005-06-05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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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지맥(地脈)과 수맥(水脈)


















연휴라고 서울을 빠져 나가는 차들이 많은가 봅니다. 엇 저녁에 뉴스를 보니 도로가 복잡하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오늘도 내일도 쉬는 날이라서 그런가 보네요. 이렇게 쉬는 날만 되면 서울을 빠져 나가는 차들로 장사진을 치는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결론은 새로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핑계야, 바다가 보고 싶다거나 계곡이 좋다거나 하지만, 결국 그 목적하는 바는 본능적으로 새로운 공기를 흡입하지 않으면 생체리듬을 지킬 수가 없다는 긴급한 SOS를 울리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며칠 전에도 청계천을 돌아다니면서 그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과연 공기가 탁하기는 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목이 텁텁한 것이 좀 느껴지더군요. 원래는 둔한 낭월이거든요. 그래서 몸이 원하는 것이 맑은 공기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틈만 나면 서울을 벗어나고자 하는 서울시민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수맥(水脈)과 지맥(地脈)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습니다. 현공(玄空)을 공부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만, 지맥이라는 존재를 지맥봉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면서 특히 이러한 존재들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그래서 나름대로 이러한 정리를 해 봤습니다.




1. 지맥(地脈)은 동맥(動脈)이다.




그렇게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엇그제 지맥봉사용법을 촬영하기 위해서 김좌진장군의 생가를 갔을 적에도 문득 그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지맥의 활동성과 좋은 파장은 인체(人體)에서의 동맥(動脈)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맥이 움직이면서 기관 기관마다 각기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충분한 산소를 보급하고 있는 것은 벗님도 알고 계실 것으로 봅니다. 그 기관이 크거나 작거나 관계치 않고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동맥이 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크고 작은 통로를 갖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고요.




이러한 동맥은 색깔은 붉은 색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핏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역동적(力動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까요? 과연 활동하는 에너지인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멀리는 사물에서 관찰하여 진리를 발견하고,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관찰하여 터득한다는 성현의 말씀(近取諸身 遠取諸物)이 늘 새삼스럽게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네요.




그리고 묘하게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지을 적에도 그 동맥위에 지어야 생동감이 넘치는 에너지를 취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과연 자연의 이치는 일사불란하여 질서정연한 법문을 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늘 생기를 운송해 주는 동맥과 지맥의 연결점을 이렇게 찾아 봤습니다. 그래서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모두 생기운을 운송하는 통로에 머물러야 한다는 연결고리를 찾아내고서는 또 벗님과 나누고 싶어서 안달이 나는 낭월이지요. 이 넘도 아마 동맥의 기질을 쪼매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사람인들 동맥과 같은 사람이 없겠어요? 부처나 공자님은 대동맥(大動脈)일 것이고, 학교 선생님은 소동맥(小動脈)이겠지요. 그렇지만 각기 자신이 하는 일들은 아무도 대신 할 수가 없는 소중한 역할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낭월과 같은 사람은 더욱 작은 동맥이겠지요. 그래도 그 역할이 없으면 전체의 균형을 이루는데 장애가 발생할 지도 모르겠다는 자신만의 자부심을 은근히 갖고 살아갑니다. 벗님도 멋진 동맥이 되실 것입니다. 왜냐면 유유상종(類類相從)이고, 동기감응(同氣感應)이니까요.




2. 수맥(水脈)은 정맥(靜脈)이다.




당연한 제목이군요.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지맥이 동맥이라면 수맥은 정맥이지요. 정맥은 고요한 맥입니다. 글자가 그렇게 생겼잖아요. 고요할 정이니 말이지요. 그리고 하는 일은 죽어가는 피를 운송하는 통로라고 이해를 한대서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게 됩니다.




정맥을 보면서 수맥을 생각하니까 그것이 바로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수맥에서는 생명을 파괴하는 에너지가 흐른다고 하는 말은 모두 상식 삼아서 아시니까 말이지요.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연결법이 크게 자연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시겠지요?




그리고 사람도 동맥과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만큼 정맥과 같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라고 하면 또한 음양법(陰陽法)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맥과 같은 사람은 지구에서 사라졌으면 싶은 사람이 반드시 있지요? 그래도 참 묘하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법칙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신기한 것 같습니다. 대정맥(大靜脈)은 스탈린이나 걸왕같은 사람이 될 것이고, 소정맥(小靜脈)은 좀도둑이나 소매치기가 될 것으로 보면 무난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고 살아가고 있으니 참 묘해도 너무 묘하네요.




그럼 사람은 동맥은 가까이 할수록 정신수준이 높아지고, 앤돌핀이 나오는 반면에 정맥은 가까이 할수록 두렵고 스트레스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혹 벗님이 동맥계열인지 아니면 정맥계열인지 알고 싶으시다면 테스트를 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맥계열에 자신의 마음을 얹어 보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하면 동맥계열, 마음이 불안하고 반발심이 생기면 정맥계열입니다. 또 반대로 정맥계열에 자신의 마음을 얹어 보세요. 수긍이 되고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다면 정맥계열이고, 두렵고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하면 동맥계열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정맥계열은 그렇게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며, 부정적인 현상들을 포함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존재들은 학문을 하는 것에도 있고, 정치를 하는 곳에도 있기 마련이어서 멀리 찾을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든 이들의 좋은 생각들을 모아서 쌓으면 동맥의 제왕이 되고, 반대의 행위를 하면 정맥의 제왕이 되겠지요. 밤의 제왕이라고 하는 칭호를 들을 수가 있다면 아마도 그 부근이 아닌가 싶습니다.


 


긍정적으로 포용적이고 나누는 성분이 많은 사람에게는 공격적인 사람이 부담스럽고, 부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는 것은 다른 대단한 법칙이 아니고, 그냥 늘 접하게 되는 음양의 법칙일 뿐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시면서 뭔가 연결이 되는지 음미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러한 것을 구분할 방법은 없습니다. 벗님이나 낭월이나 정맥계열과 동맥계열이 나란히 흐르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다만 그 중에서 51%를 누가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경계가 정해질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경계는 언제라도 무너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요. 인체의 구조가 그렇게 생긴 것을 누굴 원망하겠느냐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선인과 악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보다 얇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경계가 그렇게 간단하다는 것이기도 하겠네요. 낭월도 사람의 고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만 또 악인의 행위를 보면서 수긍도 합니다. 자신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이러한 것을 느끼면서 균형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 수행(修行)일 것이라고 짐짓 생각하고 있습니다.




3. 왜 수맥만 찾아요?




수맥만 찾는 것을 생각하면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가득 서려 있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오버일까요? 활동적이고 희망적이고 생산적인 동맥인 지맥을 찾아서 활용을 할 가르침을 주는 것이 수맥을 찾아서 피하는 것이 우선한다는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것에 비해서 뭔가 생각을 해볼 점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옛 고인들은 늘 혈(穴)이니, 명당(明堂)이니, 길지(吉地)니 하면서 생산적인 기운을 찾았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왜 옛 사람들은 생산적인 기운을 찾아서 보금자리를 틀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죽음의 기운을 찾아서 피하려고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것에 대해서도 생각의 기회가 있었다면 더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그럴 기회가 없었지요. 왜냐면 지맥은 탐지를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줄만 알고 있었던 낭월의 무지로 인해서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겠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수맥을 피할 필요도 없고, 피하려고 할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해서 피해 질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지맥 옆에 수맥이 있고, 또 수맥 옆에 지맥이 있다는 것을 확인 한 이상 이제 의문이 가시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김좌진장군 생가터는 중간에 지맥과 지맥 사이에 수맥이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문득 ‘통뼈’라는 낱말이 생각나네요. 그렇게 지맥으로만 세 가닥이 뭉치고 나서 그 가에 수맥이 있는 것은 대동맥(大動脈)에 해당한다고 해석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대동맥의 노릇을 한다고 해도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은가요?




이거 또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일어나서 책 한권이 다 되어버리겠네요.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하고 더 세세한 부분은 벗님의 연구를 촉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알고 사는 것과 모르고 사는 것의 차이이며, 자연의 이치는 그대로 모든 것에 관통하는 통일점이 있다는 것도 생각해 봤습니다. 이 정도로 줄이겠습니다. 행복하신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5년 6월 5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




(※본 글은 가칭‘현공풍수공부’의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