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학자의 말 한마디

작성일
2005-03-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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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학자의 말 한마디










75세의 노학자께서 발언을 한 문제로 또 한 번 시끌시끌한 것 같습니다. 산골의 낭월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가 싶어서 해당 사이트도 살펴보고 나름대로 번역이 된 전문도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언행에 대해서 너무 매도하지 말라는 글을 썼다는 사이트도 둘러봤습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은 언론의 자유 영역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일본을 극히 사랑하는 성향의 잡지에다가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말로 쓴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조금은 깊은 생각을 하셨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그러한 논조를 쓰더라도 한국의 책에다가 표현하게 된다면 참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글로 작용을 하는데 좋은 효과도 있었을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울러서 그렇잖아도 독도의 문제로 신경이 예민한 한국 사람들에게 그러한 정보를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과민하다고만 대응을 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래서 참으로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자신도 망치고 남도 힘들게 하는 말도 있고, 자신도 이롭고 남도 즐거운 말도 있기 마련이라고 봅니다. 그렇지만 늘 좋은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이 또한 인간사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소신대로 자신의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야 언론의 자유로운 시대에서 축복을 받을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노학자님은 자신의 말이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서 그 명예로운 교수라고 하는 자리를 포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이 또 한 번 안타까움을 갖게 만드네요. 아마도 수십 년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줄 곳 그러한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고, 그래서 그 동안의 공덕이 한 순간에 소멸되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싶은 안타까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득 부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서 잘 맞는 진리를 설해야 듣는 사람들이 혼란스럽지 않다’는 것이지요. 항상 옳은 이야기이지만 그 말이라도 상황에 맞지 않으면 역효과를 낼 수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를 하면 되겠습니다. 겸해서 낭월도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임을 생각하면서 정말 언행과 글이라는 것은 자신이 긴장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그러한 허물을 범할 수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라를 걱정하고 당파싸움을 염려하는 지식인들이야 수도 없이 많으시지요.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게 된다면 더욱 세상을 이끌고 가는 지식인으로 손색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을 방법을 깊이 고민해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메뚜기떼와 같이 달려들어서 인민재판을 했다’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것도 또 문제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어제 낮에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글에 대해서 해명을 하는 곤욕을 치르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 분은 원래가 군사전문가 이셨더군요. 군사전문가라고 한다면 능히 그러한 직설도 가능하리라고 생각을 해 봤습니다. 평소에 그러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어 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표현도 부담이 되기는 마찬가지였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도와준다고 한 것이라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겠는가 싶어서 말이지요. 평소에 친분이 있어서 망가져가는 모습의 노학자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그 정성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말은 참으로 묘합니다. 글자로 있는 것은 감정이 없어서 오해의 여지가 있고, 말로 나타나면 또 감정이 실려서 오해의 여지가 발생하는가 싶습니다. 본마음이야 그렇지 않겠지만 글로 말로 변한 다음에 수용하는 과정에서는 자신의 생각대로 상대방이 이해를 했을 거라고 보기는 참으로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낭월도 요즘 고민에 잠길 때가 많습니다. 방문자가 상담을 의뢰하실 적에 발생하는 고민입니다. 사주를 적어놓고 살펴보게 되면 우짠 일인지 사주와 운세가 맞아 떨어져서 순풍에 자신의 항로를 달리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고, 모진 풍랑과 험한 산벼랑을 타고 넘어야 하는 상황은 60%는 되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말문이 막히는 것을 아마도 이러한 방면으로 공부하시는 벗님이시라면 다 공감을 하셨을 것입니다. 과연 있는 그대로를 말해 주자니 기대감을 갖고 찾아온 사람의 마음이 너무도 분명하게 거울 속같이 보이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없는 말로 위로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주체가 용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오랜 시간을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것도 상담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상담료를 도로 물려드리고 입을 다물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해가 되시려는지요?




그래도 뭔가 말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과연 상담을 하지 않는다고 폐문하고 유유자적하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직무유기죄에 속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과의 상담이 사회적으로 큰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해서 방심을 할 수도 없는 것이 늘 자신의 긴장감을 만들게 하는 화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세월이 흐른 다음에 다시 찾아와서 그 때에 조심하라고 한 말씀을 듣고 현명하게 넘겼다고 하는 말을 해주는 벗님은 세상에서 제일로 예쁜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로소 머리 한 쪽에 正官나무에 매달아 둔 안쓰러움을 떼어 버릴 수가 있겠지요. 어쩌면 그러한 댓가가 가장 보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에게 돈 많이 벌겠다는 말이야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싶기도 하거든요.




또 하루가 진행 됩니다. 오늘도 자신의 꿈을 이루겠는지 물으러 연락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고민이 발생하겠지요. 남의 길을 안내한다는 것도 아마 전생에 빚이 많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늘 듭니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또 너무도 싱거우니, 이것은 강력한 마력에 중독이 된 사람의 느낌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음양오행으로 관찰해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을 앞에 놓고 방문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다 즐거운 내일이 되도록 함께 연구하는 시간이 되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장 반가운 방문자는 낭월의 책을 보면서 나름대로 공부하고 고민하다가 찾아오신 벗님들이기도 하네요. 소위 말하는 코드가 맞아서 일까요?




벗님도 어느 형태로거나 학문을 연구하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늘 오늘의 말은 내일의 열매라고 하는 생각으로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권해 드립니다. 말에는 네 종류가 있다는 말로 마무리 합니다. 고맙습니다.




첫째-남을 이간질 하는 말(兩語-兩舌)


둘째-나의 이익을 위해서 남을 해치는 말(惡語-惡口)


셋째-아무에게도 덕도 해도 없는 말(虛語-妄語)


넷째-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말(愛語)




       2005년 3월 8일 계룡감로에서 낭월 두손모음